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65)
마운드의 빌런-265화(265/285)
마운드의 빌런 265화
카디널스 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타이밍에 하성이라니…….”
“당연히 내긴 할 텐데.”
“하-! 왜 만루를 만들어가지고!”
“이러면 거를 수도 없잖아?”
만루 상황이다.
거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팬들조차 알기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스코어 동률인 상황에서 정하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여기에서 경기를 끝내겠다. 이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만루 상황이기에 카디널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고의사구를 하더라도 역전당한다.
카디널스는 승부를 봐야 했다.
‘어쩔 수 없지.’
그걸 카디널스 벤치 역시 알고 있었다.
하성이 타석에 서자 나온 사인은 당연히 승부를 보라는 것이었다.
다만 쉬운 승부는 아니었다.
‘최대한 어렵게 간다. 사구가 나오더라도 어쩔 수 없어.’
승부를 보되 쉽게 갈 생각은 없었다.
사인을 받은 포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최대한 어렵게 가자고.’
‘오케이.’
두 사람이 사인을 교환하는 사이.
타석에 선 하성이 루틴을 밟고 타격 자세를 취했다.
‘여기에서 끝낸다.’
그의 집중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 * *
“플레이볼!!”
경기가 재개됐다.
[2사 만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온 정하성 선수가 초구를 맞이합니다.]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와인드업이라니.
이는 아무리 만루라도 자주 나오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디널스는 주자가 뛰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다.
‘정하성이 나왔다. 작전은 나오지 않아. 그에게 모든 걸 맡길 거다.’
정하성이란 카드를 쓴 이상 양키스도 반드시 점수를 내야 한다.
괜한 작전을 썼다가 아웃이 되면 그 카드가 날아간다.
그런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조 지라디는 멍청하지 않았다.
‘전력으로 승부해라.’
카디널스 벤치에서 와인드업까지 허락한 이유였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와인드업에 들어갔지만 주자들은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뛰려는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하성에게 맡긴 상태.
그런 상황임에도 하성은 침착하게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을 바라봤다.
쐐애애액-!!
‘바깥쪽.’
날아오는 공의 코스를 확인한 하성은 궤적을 확인했다.
‘낮다.’
자신이 그린 가상의 스트라이크보다 낮게 들어오는 공에 배트의 시동을 껐다.
퍽!!
공이 미트에 박히고 빠졌다는 콜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예상하지 못했던 스트라이크 콜이 나왔다.
[아~ 이걸 스트라이크로 판정합니다!] [아니, 이런 공을 잡아주면 도대체 스트라이크존이 얼마나 넓은 겁니까?!] [지금 다시보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공은…… 아~ 존을 벗어났네요!]공은 확실하게 존을 벗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라이크를 잡은 구심에게 하성이 물었다.
“이게 스트라이크라고요?”
“존에 정확히 걸쳤어.”
구심이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하성은 타석에서 물러나 가볍게 배트를 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방금 공을 잡아주면 투수에게는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한다. 스트라이크존을 수정할 필요가 있겠어.’
공 반 개가 정확히 빠졌다.
그럼에도 구심은 그걸 잡아주었다.
여기에서 더 항의할 이유는 없었다.
‘볼카운트는 구심의 고유 권한이다. 거기에 계속 항의해 봐야 바뀌는 건 없다.’
상황판단을 끝낸 하성이 한 것은 불만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스트라이크존을 수정하는 것이었다.
‘평소보다 바깥쪽을 넓힌다. 반대로 몸쪽 존을 줄이면서 상황을 지켜봐야겠어.’
심판마다 고유의 스트라이크존이 존재했다.
바깥쪽을 넓게 잡아주는 심판들의 대부분은 몸쪽의 존을 야박하게 잡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스트라이크존의 수정을 끝낸 하성이 다시 타석에 섰다.
사람들은 하성을 믿었다.
하지만 약간의 불안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투구에 들어갔다.
‘바깥쪽을 넉넉하게 잡아준다면…….’
이번에도 와인드업과 함께 투구를 이어갔다.
‘바깥쪽을 공략해 주겠어!’
“흡!!”
쐐애애액-!!
기합과 함께 날아오는 공이 바깥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하성의 하체가 돌아가면서 배트를 내밀려고 했다.
휘릭!!
그때 공에 스핀이 걸리면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갔다.
‘슬라이더!’
슬라이더임을 간파한 하성이 손목을 비틀어 스윙을 멈췄다.
퍽!!
“체크!!”
공이 미트에 박히자마자 포수가 1루심을 향해 체크 요청을 했다.
하지만 1루심은 팔을 좌우로 펼치며 돌지 않았다는 판정을 보냈다.
[아~ 돌지 않았습니다!] [다행입니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잘 참아냈습니다!] [이걸로 볼카운트는 원볼 원스트라이크가 됩니다.]아슬아슬했지만, 한 가지 얻은 게 있었다.
‘역시 바깥쪽을 집중공략 해오는군.’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구심이 바깥쪽을 여유롭게 잡아주는 편이니, 그곳을 공략하는 게 투수에겐 유리했다.
‘코스를 알게 된다면 공략하는 건 쉽다.’
바깥쪽 코스를 집중적으로 노리면 자신에게는 오히려 유리했다.
딱!!
[3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파울라인 밖을 벗어납니다!] [파울라인을 벗어났지만, 큼지막한 타구가 만들어졌습니다. 조금만 배트의 중심에 가까웠다면 담장을 넘어갔을 거예요.] [아무래도 구심이 바깥쪽 판정에 후한 편이라 그런지 정하성 선수가 무리해서까지 바깥쪽을 공략하고 있습니다.]하성이 배트의 중심에 맞추지 이유는 분명했다.
원래라면 볼이 될 코스까지 때려야 했으니 중심에 맞지 않은 것이었다.
[볼카운트가 다시 몰린 정하성 선수!] [투수와 싸우기도 바쁜 와중에 구심의 스트라이크존과도 싸워야 하는 정하성 선수입니다.] [본래의 스트라이크존이었으면 더 유리한 볼카운트를 얻었을 텐데요.]구심의 존에 불만을 토로하는 해설진들이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깥쪽을 계속 두드렸으니 지금쯤이면 몸쪽을 한 번 던질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오직 승부에만 포커싱을 맞추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무엇보다 구심의 스트라이크존은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거에 괜한 심력을 낭비할 바에는 승부에 더 집중하는 게 우선이었다.
타석에 선 하성이 배트를 쥐고 투수를 노려봤다.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이번에도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예상대로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하성이 이 공을 그냥 지켜봤다.
뻐어억!!
“아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투수가 바로 괴성을 질렀다.
스트라이크일 거라 확신을 한 것이다.
하지만 판정은 달랐다.
“볼.”
“뭐?!”
[아! 볼입니다! 몸쪽으로 강하게 붙은 포심 패스트볼! 마운드 위에서 포효했던 페르난도가 놀란 얼굴로 구심을 향해 항의합니다!]페르난도가 마운드를 내려와 구심을 향해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볼이야?! 당신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페르난도의 항의는 꽤 격했다.
자칫 잘못하면 퇴장까지 당할 수 있을 정도로 격한 항의에 몰리나가 재빨리 그를 가로막았다.
“진정해. 왜 그러는 거야?”
“아니, 너도 봤잖아! 어떻게 저 공이……!”
구심이 다시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몰리나가 힘으로 페르난도를 마운드 쪽으로 몰고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성은 새삼스레 몰리나가 좋은 포수라는 걸 깨달았다.
‘레전드 포수가 괜히 그런 건 아니군. 이런 순간에 투수가 퇴장당하면 골치 아플 수밖에 없지.’
하성의 시선이 페르난도를 향했다.
‘반면에 저 녀석은 의외로 다혈질이군. 아니면 지금 상황이 녀석을 저렇게 만든 건가?’
월드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경기다.
그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상황.
투수로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내게는 오히려 좋게 작용하겠군.’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멘탈이다.
냉정하게 마운드에서 공을 던져야 하는데. 그 냉정함이 흔들렸으니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할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하성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퍽!!
“볼!!”
[4구 다시 볼입니다! 이번에는 어처구니없는 공을 던지면서 풀카운트가 됩니다!] [페르난도 선수의 집중력이 크게 떨어진 모습입니다.] [직전 투구가 영향을 끼친 것일까요?] [그럴 겁니다. 지금 상황에선 볼카운트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정하성이란 특급타자를 상대로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이런 모습은 투수에게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정하성 선수에게는 절호의 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볼카운트가 모두 찼다.
그걸 본 카디널스 벤치는 머리가 아파왔다.
‘여기에서 투수를 바꿀 수 없다.’
페르난도 살라스는 카디널스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불펜투수였다.
아무리 흔들리는 상황이더라도 그를 내리고 다른 투수를 올리는 작전은 생각할 수 없었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오늘 승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
카디널스는 결국 페르난도를 믿는 선택을 했다.
[풀카운트 승부에서 카디널스 배터리, 사인을 교환합니다!] [이제 정하성 선수가 유리해졌습니다!] [여기에선 승부를 할 수밖에 없어요!]밀어내기 볼넷을 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하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깥쪽으로 올 거다.’
그는 코스를 특정하고 타격 준비 자세를 취했다.
뒤이어 사인교환을 끝낸 페르난도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이번에야말로…….’
페르난도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응축시켰다.
그가 해야 할 건 완벽한 공 하나를 던지는 것이었다.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구심과의 트러블이 그의 정신을 온전히 하성과의 승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직 페르난도와의 승부에 집중한 하성과의 큰 차이였다.
‘공을 던지겠어!!’
콰직!!
그의 발이 마운드에 박히고.
“흡!!”
기합 소리와 함께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페르난도의 손을 떠난 공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하성의 예상대로 스트라이크존의 바깥쪽이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좋은 공이었지만, 한 가지 다른 게 있었다.
‘코스가 어정쩡하다.’
힘이 너무 들어간 탓일까?
아니면 집중하지 못한 탓일까?
어찌 되건 상관없었다.
초구와 달리 이번에 날아오는 공은 평소의 스트라이크존에 반 개 정도 걸치는 상황.
하성은 곧장 스트라이드를 내디디며 있는 힘껏 하체를 돌렸다.
휘릭!!
하체에서 시작된 회전이 골반을 지나 상체로 이어졌다.
하성의 배트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정하성 선수는……!]카메라에 잡힌 하성이 배트를 던졌다.
[배트를 던졌습니다! 타구는 그대로 담장을 넘어갑니다!!]가장 필요한 순간.
그랜드슬램이 작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