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71)
마운드의 빌런-271화(271/285)
마운드의 빌런 271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정태수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정하성이랑 같은 나이긴 하지만, 딱히 접점이 없었는데.’
전국대회에서 마주치긴 했었지만, 하성이 감독들을 그렇게 만든 뒤로는 딱히 마주치지도 못했다.
그리고 자신은 KBO를 택했고 하성은 곧장 메이저리그로 나갔으니 친해질 기회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전지훈련을 먼저 제안하다니?
물론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와 함께 훈련을 할 수 있으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의 훈련에 합류하게 되면서 단숨에 그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
“여! 태수야, 너 이번에 정하성이랑 훈련한다면서?”
“예. 그렇게 됐습니다.”
“인마, 너 그 정도로 정하성이랑 친했으면 진즉에 소개 좀 시켜주지 그랬어.”
“아…… 그런데 제가 친한 게 아니라…….”
“친하지도 않은데 훈련을 같이한다고?”
친분이 있는 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선후배들이 모두 연락 와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그것에 일일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도대체 나랑 왜 훈련을 하려는 거야?!”
그 의문은 출국 날 풀 수 있었다.
“응? 별 이유 없는데?”
인사를 끝내고 서로 말을 놓기로 한 뒤, 태수의 질문에 하성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올해 같이 올림픽에 나가는데. 미리미리 좀 친해지려고 부른 거지. 별다른 의도는 없어.”
허탈할 정도로 별거 아닌 이유에 한숨이 나오는 태수였다.
그래도 태수는 행복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용기도 타고 해외에서 전지훈련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게 메이저리그 클래스구나…….’
괜히 메이저리그, 메이저리그 하는 게 아니었다.
한국 프로팀도 전지훈련을 갈 때 전용기를 타지 않는다.
그런데 개인이 움직이는데 전용기라니?
놀랄 노자였다.
‘하긴, 연봉이 얼만데. 이 정도는 가능하지.’
더 놀라운 건 훈련장이 무인도라는 점이었다.
무인도에서 어떻게 훈련을 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비행기에서 몸을 실었으니 군말 없이 따랐다.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원시적인 훈련 방법을 사용하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태수는 비행을 즐겼다.
* * *
상상은 상상으로 끝났다.
“여기가…… 무인도라고?”
무인도는 무인도였다.
정확히는 무인도에 리조트를 지었고 그 리조트를 통째로 빌렸다.
럭셔리한 시설에 직원들까지 있어서 도대체 비용을 얼마나 썼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휴식은 최고급으로 하지만 훈련은 그만큼 하드하게 할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정도 시설이면 훈련이 빡세도 참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비행을 하면서 친분이 쌓였는지 태수 역시 말을 편하게 했다.
그의 대답에 하성은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 걸었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네.”
괜히 겁을 주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겁주기 용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까지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흐억…… 흐억……!”
체력이면 팀 내에서도 자신 있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왔기에 웬만한 동료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체력이었다.
그런데 이건 따라가는 게 벅찰 정도였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무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명백한 오버 트레이닝이었다.
이 정도로 굴린다면 훈련이 아니라 노동이라 말해야 했다.
아니, 고문이랄 수 있었다.
‘이런 훈련을 매년 했다고? 말도 안 돼!’
무엇보다 이런 훈련을 매년 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인간이 버틸 수 없는 훈련이었다.
그게 태수의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리고 3일째 되는 날 불만이 터졌다.
“이건 훈련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이건 훈련이 아니라 몸을 고문하는 것밖에 안 돼.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스케줄을 계획한 건지는 몰라도 이런 훈련을 거듭하면 부상밖에 얻을 게 없을 거야!”
태수의 말에 하성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은 자율적이야. 네가 여기에서 훈련을 하지 않고 돌아간다면 바로 전세기를 준비해 줄게. 그냥 이 시설을 이용해서 너의 훈련을 해도 상관없어.”
“뭐?”
“나는 이 훈련을 매년 해왔어. 물론 강도를 계속 높이고 있지. 같은 훈련을 하게 되면 내 육체가 익숙해지거든.”
“강도를…… 높였다고?”
“그래. 그렇다고 네 훈련을 내 수준에 맞춘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너는 내 훈련 방식에 처음으로 합류하니까. 그래서 내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합류했을 때 수준으로 레벨을 맞췄어.”
믿기지 않았다.
하성이 자신보다 더 고강도의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니.
“나는 강요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이 트레이닝을 이겨낸다면 새로운 시즌에서 너는 다른 모습으로 탄생할 거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뭐가?”
“왜 나를 이 훈련에 데려와서 도움을 주는 건데?”
“그냥…….”
하성이 몸을 돌렸다.
“나 혼자 알고 있는 빚을 갚는 거뿐이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믿지 못할 그런 빚이었다.
그렇기에 하성은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홀로 남은 태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 이내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 날.
하성은 훈련을 위해 방을 나섰다.
해변가에 도착하자 자신보다 일찍 달리고 있는 태수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옛날이랑 똑같군.”
태수는 자신만큼이나 승부욕이 넘치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그냥 돌아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와 같은 친구의 모습에 하성은 기쁜 마음으로 해변가를 달리기 시작했다.
* * *
전지훈련 기간이 끝났다.
믿기지 않는 훈련량이었지만, 태수는 막판에 그 훈련을 모두 소화해 낼 정도의 체력을 쌓았다.
그리고 귀국 마지막 날.
“한판 붙을까?”
“응?”
“네가 공을 던지고 내가 친다. 어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와 상대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훈련을 할 가치는 충분했다.
“콜!”
피할 이유는 없었다.
준비를 끝낸 태수가 마운드에 서고 하성이 타석에 섰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으면 야구장까지 마련한 거냐?”
“어마어마하게 많아졌지. 앞으로 더 많아질 예정이고.”
말해 뭐할까?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의 선수가 눈앞에 있었는데 말이다.
“전력으로 간다.”
“언제든지 오라고.”
하성의 대답과 동시에 태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흡!!”
기합 소리와 함께 뿌린 공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훌륭한 공이었지만, 하성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후웅!!
딱!!
“홈런~”
저 멀리 공을 날려 보낸 하성이 유쾌하게 외쳤다.
하지만 태수는 그런 하성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바…… 방금 몇 킬로였어?”
태수의 떨리는 목소리에 하성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거기에는 스피드건을 들고 서 있는 이사벨이 있었다.
그녀는 스피드건의 수치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96마일이 찍혔습니다.”
“96마일?! 정말요?!”
“생각보다 느린데?”
“너에 비하면 느린 거지!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저 정도 수치가 찍힌 거야! 무엇보다 내 육체가 이렇게 변했는데. 제대로 내 걸로 만들면 100마일도 꿈이 아니야!”
태수가 항변했다.
그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전지훈련에서 태수가 집중한 건 피칭이 아닌 체력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육체는 발달했지만, 아직 피칭에는 손볼 곳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의 말대로 발달한 육체의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100마일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하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거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어. 올림픽 전까지 말이야.”
“올림픽…….”
태수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함께 금메달 따자.”
“그건 당연한 거고.”
런던올림픽.
당연히 목표는 금메달이었다.
친구에게 은혜를 갚을 겸, 그리고 올림픽에서 훌륭한 동료를 얻을 겸.
태수를 데려왔었던 두 가지 의도를 모두 채운 하성의 전지훈련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 * *
언론들은 궁금해했다.
[대형계약을 맺은 첫해, 과연 정하성은 어떤 성적을 남길 것인가?]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하성이다.
거기에 첫 장기계약에서 단숨에 메이저리그 역대 신기록들을 갈아치우며 당당히 최고 연봉자가 되었다.
4천만 달러를 돌파했지만, 당분간 그와 근접한 계약을 맺는 선수가 나오지 않을 거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정하성의 연봉 4천만 달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기형적인 연봉이다. 과연 그가 소위 말하는 돈값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커리어하이인 작년과 같은 활약을 펼쳐야 한다. 과연 정하성은 그럴 수 있을까?]더 이상 하성의 실력에 대한 물음표는 없었다.
하지만 그가 받는 연봉 대비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는 당연하게도 붙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없었던 연봉이기에 나오는 물음표였다.
그리고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줄 수 있는 시기가 다가왔다.
“어마어마하게 몰려왔군.”
뉴욕 양키스의 스프링캠프가 차려진 호텔 앞.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스프링캠프가 열린 지 제법 시일이 지났지만, 이 정도로 많은 기자들이 모이는 건 처음이었다.
“이 사람들이 다 정하성 선수를 보러 온 거겠죠?”
“당연히 그렇겠지.”
오늘 양키스 구단에선 정하성이 캠프에 합류한다고 공지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의 언론이 몰려들었다.
미국과 한국 일본은 이제 당연한 것이었고 대만과 중국은 물론 심지어는 영국의 가디언과 BBC까지 찾아왔다.
‘유럽에서 정하성의 인기가 엄청나다더니. 이제 메이저 언론들이 스프링캠프까지 왔군.’
그동안 볼 수 없던 장면이었다.
유럽에서 야구의 인기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미비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하성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의 인기는 단어 그대로 월드클래스였고 그를 취재하기 위한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졌다.
“아~ 도대체 정하성 언제 오는 거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거 아니야?”
“최소한 시간이라도 알려주지. 너무하네~”
아침 일찍부터 기자들이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찾아왔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이 기다림의 노동에 대한 원인을 하성에게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부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저 멀리서 한 대의 부가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하성은 페라리를 타고 다녔지만, 저 부가티의 주인공이 하성일 거라는 생각이 기자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상대로 부가티는 호텔 앞에 멈춰 섰고 양키스에서 준비한 가드들이 기자들을 가로막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곧 차 문이 열리고 하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등장에 카메라 셔터가 미친 듯이 눌렸다.
곧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려는 순간.
“이번 시즌 준비는 완벽하게 해왔으니 그런 뻔한 질문은 제외하고 다른 질문부터 받겠습니다.”
하성의 말에 기자들 대부분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 모습을 본 하성이 입꼬리를 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럼 신선한 질문은 기자회견장에서 받도록 하죠.”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그를 바라보는 기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 모습에 한국 기자들은 생각했다.
‘스타트부터 화려한 어그로네.’
‘역시 정하성이다.’
정하성답다면 정하성다운 합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