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72)
마운드의 빌런-272화(272/285)
마운드의 빌런 272화
11년 우승을 만들어낸 조 지라디는 12년에도 양키스의 지휘봉을 잡았다.
캠프가 열리고 선수들의 훈련에 열중하던 그는 하성이 복귀하자 곧장 미팅 자리를 마련했다.
‘불과 몇 개월이지만, 그사이에 몸을 잘 만들어왔군.’
마주한 하성은 척 보기에도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시즌을 치르면서 줄어드는 근육은 다시 커졌고 윤곽이 확실히 살아났다.
무엇보다 근육의 밀도 역시 좋아졌다.
‘야구선수가 근육이 많은 게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성은 그 근육을 잘 이용하는 선수다. 최소한 작년과 비슷한 컨디션을 만들어왔어.’
선수 본인이 몸상태에 대해 제대로 아는가는 성적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하성은 지금까지 벌크업된 근육을 잘 활용해서 메이저리그를 제패해 왔다.
그런 그가 갑자기 근육을 줄이고 나타나면 어떨까?
오히려 그게 이상하고 걱정해야 할 일이었다.
“쉬는 동안 잘 준비해서 온 거 같군.”
“돈값은 해야 하니까요.”
“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야. 이제 메이저리그 최고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으니 말이야.”
“예. 그래서 완벽한 몸상태로 시즌에 돌입하고 싶습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 자네가 완벽하지 않은 몸상태로 시즌에 들어가면 나한테도 큰 문제라네.”
“그러니 감독님이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편히 말해보게.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주지.”
“연습경기에서의 출전을 최소화하고 싶습니다.”
“응? 그건 무슨 소린가?”
“연습경기의 의미는 컨디션을 선수 본인과 벤치에서 체크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맞지. 그리고 연습경기를 보러 오는 팬들을 위한 것도 있지.”
지라디 감독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선수가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그의 불안감이 점점 커질 때 하성이 말했다.
“연습경기에서 1경기만 나가고 싶습니다.”
“한 경기만?”
“예. 새로운 계약도 맺었으니 개막전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만들고 싶습니다.”
“음…… 연습경기에서 힘을 아끼겠다는 건가?”
“그것보다는 제 컨디션 조절을 완벽하게 하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개막전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성은 지금까지 대형사고를 펑펑 터트려왔다.
마무리에서 선발투수로 전향할 때도 언론을 통해 먼저 공개했고 투타 겸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프런트와 상의하고 이야기를 진행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라디 감독은 자신에게 먼저 상의해 주는 그의 모습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알겠네. 그럼 그렇게 일정을 잡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바로 수락하는 지라디 감독을 보며 하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스프링캠프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하성은 캠프의 훈련에 참가하면서 자신이 준비해온 것들을 하나둘 보여주었다.
단순히 연습을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취재진들과 팬들이 몰려들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정하성 올해도 장난 아닌데?”
“그러게 말이야. 공의 구위가 작년보다 더 좋아진 거 같아.”
“그건 아니야. 작년보다 더 좋아질 게 어디에 있다고?”
“그것도 그런가?”
이미 메이저리그의 상식을 벗어난 활약을 펼친 하성이다.
당연히 거기에서 더 위로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명백하게 하성은 작년보다 더 나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올해 다른 팀들도 나를 연구하고 공략하려 할 거다. 내가 작년과 같은 활약을 펼치려면 결국 더 나아져야 한다는 소리야.’
간단한 이론이었다.
하지만 그걸 실천으로 옮기는 건 무척이나 어려웠다.
자신과의 싸움이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람들은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고 당사자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러다 보면 무리하고 무리하면 부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었다.
본인의 페이스대로 끌고 가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런 무리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뻐어억!!
‘내가 가는 길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딱!!
‘그렇게 달린다.’
하성은 본인의 페이스를 정확히 지키며 새로운 시즌을 준비했다.
* * *
스프링캠프 동안 마지막 정비를 끝냈다.
이제 남은 건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연습경기 첫 경기에서 선발은 자네라네.”
지라디 감독이 말해주기 전부터 선발임을 알고 있었다.
모르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일이었다.
하성은 거기에 맞춰 몸상태를 완벽하게 만들었다.
“타순은 3번으로 정해뒀으니 그렇게 준비하면 돼.”
“예.”
지라디 감독과의 미팅을 끝내고 감독실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그런 하성에게 민머리 사내가 붙었다.
“마리아노.”
“숙소 가는 거지? 같이 가자.”
마리아노 리베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투수이자 양키스의 수호신이었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더니. 정말이야?”
“슬슬 놓아줄 때도 됐지. 오래 했잖아?”
“하긴, 썩은 물 중에 썩은 물이긴 하지.”
“뭐라고?”
“하하! 왜? 너 스스로 오래 했다고 했잖아.”
“에휴…… 너는 선배에 대한 예우도 없냐?”
“물론 존경하지. 메이저리그 역사에 그런 업적을 남겼으니 말이야.”
존경이란 단어와 업적이란 말이 나오자 마리아노 리베라가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왜?”
“아니, 너도 그렇게 말할 줄 아나 싶어서.”
“이래 봬도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그래서 언론에 대고 매번 어그로를 그렇게 끄는 거야?”
“그건 일종의 엔터테이닝이지. 나를 대중에게 알리는 방식이야. 그리고 언론이 뭐 같은 건 너도 동의하잖아?”
“음…… 그건 그래.”
언론을 좋아하는 선수는 별로 없었다.
그들이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참고 받아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했고 또 그러한 부분들이 팬들에게 잘 먹혔다.
완벽하게 캐릭터가 잡혀서 하성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셈이다.
“어쨌든 은퇴한다니 축하한다. 별다른 구설수에 오르지도 않고 은퇴하다니. 대단하네.”
“흐흐, 그거 고맙네. 하지만 아직 1년이 남았어.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했지만, 사실 리베라는 은퇴하지 못한다.
수비훈련 도중 부상을 입고 시즌아웃이 되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남은 그는 은퇴를 번복, 13년까지 뛰고 은퇴한다.
“훈련 조심해라.”
“응? 훈련?”
“괜히 무리하게 훈련해서 은퇴 미루지 말라고.”
“하하! 당연하지 인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며 숙소로 향했다.
* * *
양키스의 첫 연습경기 상대는 레인저스로 정해졌다.
작년 시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당했던 레인저스는 올 시즌 스토브리그에서 선수들의 영입에 열을 올렸다.
레인저스의 단장이 인터뷰를 통해 선언한 것이 양키스의 정하성을 반드시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 시즌 막강한 타선을 구축해서 하성을 공략하기 위해 연습경기에 나섰다.
하성의 선발등판이었기에 당연하게도 연습경기의 좌석은 모두 매진됐다.
한국에서는 위성중계를 통해 현지에서 생중계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인들 역시 연습경기를 보기 위해 플로리다를 찾으면서 역대 가장 많은 한국인이 찾은 달이 되었다.
이런 엄청난 관심을 이끌어 낸 하성이 마운드에 섰다.
[정하성 선수가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작년 뉴욕 양키스와 장기계약을 맺은 그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캠프 기간에 진행한 훈련을 보았을 때 그의 컨디션은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실전 감각만 찾으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사람들은 하성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이번 시즌 하성이 몇 승이나 할까?
– 이왕 이렇게 된 거 30승 가즈아!!
– 현대야구에서 30승 ㅋㅋㅋ
– 그런데 불가능할 거 같지 않아서 또 어이없네
– ㅇㅈ
– 30승 70홈런 가능?
– 아…… 미친 소리라 하고 싶지만, 하성이라 모르겠다.
– 진짜 하성이 데리고 월시 우승 못 하면 그것도 범죄다.
하성에 대한 믿음은 종교에 가까웠다.
절대 깨질 거 같지 않은 믿음을 받는 하성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을 위해 던지는 게 아니었다.
‘자, 오늘도 일을 해볼까.’
이전의 삶에서 남을 위해 살았던 그였다.
그렇기에 또 한 번의 삶을 얻게 되면서 그는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살고 있었다.
그런 삶을 사는 하성에게 남의 기대에 대한 부담은 다른 세상 이야기나 다를 바 없었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사인을 교환한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후우…….”
숨을 크게 몰아쉰 하성이 킥킹과 함께 연습경기 첫 번째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날아가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 * *
첫 연습경기가 끝나고 하성을 취재하기 위해 라커룸에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구단에서는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기자들을 따로 모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덕분에 하성은 마치 기자회견처럼 기자들의 앞에서 답변을 해야 했다.
“정하성 선수, 오늘 경기 3이닝만 던졌는데. 몸상태에 이상이 있었던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컨디션 조절을 하기에 3이닝이면 충분했기 때문에 그거만 던졌습니다.”
“3이닝 9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탈삼진으로 돌려세웠는데. 오버페이스가 아닙니까?”
“조금 던지면 몸상태에 이상이 있다 하고 성적이 좋으면 오버페이스라 하니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가시가 달린 그의 말에 기자들이 발끈했다.
하지만 하성에게 함부로 시비를 걸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에 함부로 시비를 걸진 못했다.
그러나 한 명은 분을 이기지 못하겠는지.
간접적으로 그를 도발하려 했다.
“최근 일본에서 정하성 선수에게 도전하는 이가 나타났는데. 아십니까?”
“도전이요?”
“예. 일본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무라카미 투수가 런던올림픽에서 정하성의 한국대표팀을 누르고 내년부터는 자신도 메이저리그에서 도전하겠다 하더군요.”
기자의 말에 하성이 피식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 날 잡지 못하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배짱이 없답니까?”
“그건…….”
“일본이 좁다 생각이 들면 메이저리그에 오면 됩니다. 메이저리그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죠. 성공하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죠.”
“무라카미가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전 그 선수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작년 일본프로야구에서 24승을 올린 에이스를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메이저리그에만 수백 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그들을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본야구에서 뛰는 선수를 기억할 이유가 없죠.”
이게 어떤 식으로 확대해석 될지는 하성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게 도전장을 내밀고 싶으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라고 전해주십쇼.”
이게 진심이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