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75)
마운드의 빌런-275화(275/285)
마운드의 빌런 275화
런던올림픽 개막전을 위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수장인 버드 셀릭 커미셔너 역시 런던을 찾았다.
그가 직접 런던까지 방문해서 개막전을 챙기는 건 그만큼 이번 이벤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이번 이벤트는 매우 중요해. 지금 시점에서 우리 메이저리그를 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네.”
“예. 명심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기는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야 하네. 전 세계인에게 정하성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야.”
“그렇지 않아도 정하성의 경기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냈습니다.”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직접 한국의 경기를 챙기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하성 때문이었다.
하성은 메이저리그를 넘어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메이저리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정하성이란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만큼 하성은 엄청난 활약과 스타성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그 결과 말도 안 되는 인지도를 손에 넣었다.
‘페넌트레이스를 중단하고 내린 결정이다. 이번 결정으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내 자리도 끝이야.’
리그를 중단하는 건 메이저리그에게도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올림픽을 위해 차출되면서 부상의 위험도 높아졌다.
이런 리스크가 있음에도 버드 셀릭이 이번 결정을 내린 건 단 하나,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를 위해서였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정하성이다.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켜줘야 해.’
금메달이 어느 국가에 가든 그건 버드 셀릭의 관심 밖이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단 하나 정하성에게 꽂혀 있었다.
* * *
국가대표에 합류한 하성은 선수들과 다소 서먹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한국야구계에서 날 좋아할 이유가 없지.’
회귀 후.
하성이 가장 먼저 언론에 오르내렸던 건 감독을 날려 버린 뒤부터였다.
인맥이 중요한 한국야구계에서 그 사건은 명백한 하극상이었으며 하성이 찍히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에도 KBO와 반목하면서 번번이 대립을 이어왔다.
물론 하성이 먼저 날을 세운 건 아니었고 지금도 자신이 잘못했단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얘네들은 내가 간 뒤로도 바뀐 게 없나?’
한국야구의 고질병은 지연과 학연으로 묶여 있다는 점이었다.
야구 외적인 부분이 개입되면서 어린 선수들의 발전부터 막아놓고 있으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부수기 위해 나선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을 서먹하게 대하는 저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바뀐 건 없는 듯 했다.
‘하긴, 그리 쉽게 바뀔 거였으면 진즉에 바뀌었겠지.’
한 번 고이기 시작한 집단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그걸 잘 알기에 하성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에도 바빴으니 말이다.
그때 태수가 하성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하성아.”
“그래. 요즘 KBO에서 날아다닌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훈련은 도움이 좀 됐냐?”
“도움만 됐겠어?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다. 어떻게 시즌이 절반이나 지났는데도 체력이 떨어지질 않냐. 작년에는 이맘때쯤이면 골골대기 시작했는데.”
“그만큼 기초체력의 단련이 잘 되었다는 소리지. 무인도에서 했던 훈련들을 떠올려봐.”
“어우…… 욱……! 또 토 나오려고 하네. 하긴 그때 그 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 보답은 있어야지.”
헛구역질하는 태수를 보며 하성이 피식 웃었다.
회귀 전.
유일하게 자신을 마지막까지 찾아와주었던 친구인 태수는 현재 KBO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였다.
전반기에만 10승 1패 평균자책점 2.42를 마크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팀 내 최다승이자 KBO 최다승을 달리는 중이며 후반기 성적에 따라 20승까지 노려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완투 경기가 벌써 5번이었고 그중에 완봉승을 거둔 것만 3번이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체력적으로 문제를 보이던 태수가 갑자기 약점을 극복하고 나오자 관계자들과 팬들이 발칵 뒤집혔다.
거기에 태수는 기름을 부어버렸다.
(정하성 선수와 함께 했던 훈련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괴로웠지만, 시즌에 들어온 뒤로 다시 한번 훈련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인 하성과 함께 훈련하고 그것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언론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화젯거리였다.
덕분에 하성에게도 취재요청이 들어왔지만, 깔끔하게 무시한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잘 되고 있다니 다행이네. 그럼 내년에도 같이 훈련하는 걸로 하자.”
“어? 어어…….”
“떨떠름해 보이는데?”
“크흠…… 떨떠름하긴! 당연히 같이 해야지! 이제 나도 훈련에 어느 정도 적응해서 예전처럼 빌빌대지는 않을 거라고!”
“그래? 아, 참고로 네가 받았던 훈련은 내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직후에 했던 강도였다.”
“어?”
“지금은 그거에 4배가량 강도를 높여서 하고 있어.”
“어어……?”
“나랑 같은 강도는 무리겠고 2배만 올릴까?”
“하…… 하하…… 아! 맞다! 내 동기들이 너랑 소개 좀 시켜주라 하더라. 야야, 뭐 하냐? 여자 소개받냐? 빨리 와서 인사해!”
태수의 말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선수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양석환입니다.”
“이강윤입니다.”
“너도 잘 알지? 작년 KBO에서 신인상 받은 이강윤이랑 3년 차에 골든글러브 수상한 석환이.”
두 선수 모두 현 KBO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들이었다.
그들이 국가대표에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하성이 그들을 알 리 만무했다.
“미안, 모른다.”
“응?”
“KBO는 관심이 없거든. 너야 친구니까 알고 있지만, 그 외에 선수는 잘 몰라.”
하성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 이강윤이 말했다.
“우리를 무시하는 겁니까?”
“무시라…… 그럼 가볍게 한판 붙을까?”
“예?”
“내가 기억하는 건 내 공을 때린 놈들밖에 없거든.”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다.
그런 선수가 야구로 한판 붙자고 했지만, 이강윤은 주눅들지 않았다.
“한판 해봅시다!”
그 역시 프라이드가 대단한 프로선수였으니 말이다.
‘이게 아닌데…….’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면서 하성이 대표팀에 잘 어울리길 바랐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새에 당황하는 정태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성은 이강윤과 함께 실내 훈련장으로 향했다.
배팅 박스에 이강윤이 서고 하성이 마운드에 올랐다.
“아웃카운트 3개. 그 정도면 되지?”
“안타는 어떻게 결정합니까?”
잠시 고민하던 하성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네가 내 공을 정타로 때려내면 안타라고 하지 뭐.”
“날 얼마나 무시하면……! 좋습니다! 던지십쇼!”
“그럼 1구…”
하성이 와인드업과 함께 가볍게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뻐어억!!
“헉……!”
공이 순식간에 홈플레이트를 지나 미트에 꽂혔다.
공을 받던 포수가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찍을 정도로 강력한 공에 강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게…… 현존 최고의 투수의 공…….’
그동안 KBO에서 수많은 투수들의 공을 상대했다.
그중에는 리그 MVP투수 출신도 있었고 해외에서 날렸던 투수의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성의 공은 그런 공들과 질이 달랐다.
‘공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야.’
아무리 빠른 공이더라도 한 번 보면 적응할 수 있었던 강윤이다.
하지만 하성의 공은 그런 것들과 아예 달랐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 이미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 통과하고 있었다.
“다음 거 던집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하성을 보며 다시 승부욕이 발동했다.
‘이대로 당할 순 없지!’
강윤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초구에 놀라기는 했지만, 이대로 물러날 정도로 그의 승부욕은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는 하성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집중력과 승부욕이 좋군. KBO에서 골든글러브를 받을 만해.’
하성은 실력보다 집중력과 승부욕을 우선시 생각하는 선수였다.
실력은 가르치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집중력과 승부욕은 타고나는 경향이 컸다.
무엇보다 상대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승부욕을 불태우는 강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프로라면 응당 그래야지.’
모든 이가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이 생기면 아무래도 상대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주눅이 들기 시작하면 자신의 실력을 내기 어렵다.
하지만 강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승부욕을 불태우면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촤앗-!
와인드업에 들어간 하성도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내 공을 때릴 수 있는 건 아니야!’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윤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후웅-!!
그의 배트가 공이 들어오는 궤적을 따라 돌아가고 있을 때.
‘어?’
공은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배트의 위를 지나갔다.
뻐어억-!!
후웅!!
공과의 심한 높이 차이를 보이며 휘두른 강윤의 눈에 어리둥절함이 나타났다.
‘왜 공이 떨어지지 않지?’
공의 낙차를 계산해서 배트를 돌렸는데 아예 어긋나 버렸다.
그만큼 하성의 구위가 말도 안 되게 좋다는 의미였다.
‘괴물 자식…….’
그동안 만났던 투수들과 구위가 아예 달랐다.
괴물이란 단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은 강윤의 승부욕을 더욱 자극했다.
‘이게 세계 최고 레벨이란 말이지.’
그가 다시 타격자세를 취했다.
“덤벼!”
강윤의 외침에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깡다구 하나는 마음에 드네.”
강윤이 점점 마음에 드는 그였다.
* * *
승부는 하성의 완승이었다.
두 사람은 하성의 공에 스치지도 못하고 선풍기가 되어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승부에서 진 두 사람의 관계가 하성과 서먹해지는 건 아닐까 태수는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 달리 세 사람은 의외로 죽이 맞아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구위가 좋은 애들은 공의 낙차가 적다니까?”
“아니, 그럴 수 있는 거야?”
“그래. 마그누스 효과라고 해서 공이 덜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나. 그러니까, 구위가 좋은 애들을 상대할 때는 배트를 휘두를 때 조금 더 위로 휘두르는 게 좋아.”
“이런 식으로?”
“맞아. 그런데 너 팔이 좀 퍼져서 나온다?”
“응? 그래?”
“응. 이런 경우 오른팔이 제대로 지탱하지 않아서 그래. L 자로 배트를 받친다 생각하고 휘둘러봐.”
“이렇게?”
“오~ 잘하는데?”
“자세가 너무 불편한데? 이런 자세로 어떻게 힘을 실어서 보내?”
“힘은 상체의 회전력으로 만드는 거야. 배트 줘봐.”
배트를 직접 받아 든 하성이 천천히 스윙을 보여주었다.
“잘 봐. 하체를 일단 단단히 고정해 주고 멈추는 힘을 이용해서 하반신과 상반신을 돌려주는 거야. 여기에서 오른팔의 팔꿈치가 밖으로 향하면 안 돼. 몸에 딱 붙어서 L 자가 만들어져야 해.”
하성의 말에 두 사람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체를 돌리면서 자연스레 배트가 나오는 거지. 팔에 힘을 주고 있지만, 왼팔에는 전혀 힘을 쓰지 않아.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팔로스로야. 마지막까지 힘을 줘야 공에 제대로 전달이 되는 거지.”
“나도 해볼래.”
“나도 봐줘!”
갑작스레 열린 레슨을 보며 태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집중하는 세 사람을 보며 이내 미소를 지었다.
‘뭐, 결과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지.’
그의 목적이었던 하성이 대표팀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걸 성공했다고 자평하는 태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