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79)
마운드의 빌런-279화(279/285)
마운드의 빌런 279화
1회 1실점.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쁘지 않은 스타트였다.
하지만 무라카미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홈런이라고……?’
실투가 아니었다.
자신의 손에서 떠난 공은 완벽했다.
최소한 자신은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넘어갔다.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깔끔한 홈런이었다.
‘말이 돼……?’
이게 의미하는 건 한 가지였다.
하성이 모든 걸 앞서고 있다는 뜻이었다.
파워, 스피드, 정확도 등.
모든 면에서 자신을 압도했다는 소리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났다고?’
인정하기 싫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인정해 버린다면 그것들이 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연이야. 그냥 아주 운좋게 정타로 맞은 거뿐이야. 아직 난 지지 않았어.’
무라카미는 정신승리를 하며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덕분에 1회에 더 이상의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고 있을 때.
하성은 여전히 무적의 모습을 마운드 위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2회 2개의 탈삼진을 추가하며 마운드를 내려가는 정하성 선수!! 아~]삼진을 추가하며 2회를 마감한 하성이 마운드를 내려가기 전에 일본 쪽 벤치를 바라봤다.
카메라가 그를 줌인하고 있었기에 그 장면은 정확히 포착됐다.
입꼬리가 올라가 마치 비웃는 듯한 모습이 찍힌 게 말이다.
[정하성 선수의 도발일까요?! 일본 쪽 더그아웃을 보며 미소를 짓습니다!]캐스터는 미소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본 사람들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누가 봐도 썩소라고 말이다.
* * *
홈런을 허용한 무라카미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2회와 3회 모두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감하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무라카미의 피칭은 확실히 한국 대표팀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는 크게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상대가 하성이라는 점이었다.
뻐어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우우웃!!”
[삼진입니다! 오늘 경기 10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는 정하성 선수!] [12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벌써 10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다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네요.]하성은 일본 타자들을 번번이 돌려세웠다.
타자일순이 되었지만, 그의 공을 공략하기 힘들 정도였다.
“무슨 공이 저렇게 움직이냐?”
“무브먼트가 장난 아니야. 분명 패스트볼인데. 홈플레이트 앞에서 뱀처럼 휘어서 들어온다니까.”
“어쩔 때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배트 위를 지나고 있어.”
더그아웃에선 하성을 상대한 타자들이 푸념을 털어놓고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타자들이지만, 하성의 공을 건드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적을 그렇게 칭찬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던 걸까?
무라카미가 타자들을 향해 쓴소리를 뱉고는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로 걸어 나갔다.
그의 쓴소리를 들은 타자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저 새끼 선배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야야, 내버려 둬. 저 자식 싸가지없는 건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수비나 나가자.”
“하…….”
일본의 더그아웃 분위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운드에 선 무라카미는 가볍게 몸을 풀면서 루틴을 밟았다.
‘이번 이닝에는 반드시 잡아주겠어.’
그의 정신은 오로지 대기 타석에 있는 하성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국 대표팀의 선두타자 김현식은 기분이 상했다.
‘먼저 상대하는 건 난데. 나보다 하성에게 더 신경을 팔고 있네.’
김현식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였다.
타격 기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정확도 높은 타격을 하는 선수였다.
거기에 장타력과 주력도 겸비하고 있어 팀에서는 리드오프 역할을 도맡아 했다.
비록 여기에선 이용수가 있어 리드오프가 아닌 2번으로 출전하지만, 그 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날 이렇게까지 무시하는 녀석은 오랜만이네.’
화는 났지만, 이성은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날 무시한다면 금방 처리하고 싶겠지.’
정답이었다.
‘이런 녀석은 빨리 돌려세우고 하성을 상대하는 데 집중하자.’
무라카미는 자신이 직접 사인을 보냈다.
그걸 본 김현식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저 녀석 성격상 내게 유인구 승부보다는 승부를 보려 할 테고.’
자세를 잡은 김현식이 배트를 짧게 쥐었다.
‘자신의 특기인 강속구를 던질 가능성이 높지.’
자세를 잡는 게 끝나자 무라카미가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예상과 같이 공은 바깥쪽 낮은 코스로 날아들었다.
존에 걸치는 아주 좋은 공이었다.
구속, 구위, 무브먼트.
모두 훌륭했다.
하지만 김현식은 이미 그 공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걸 대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결대로…….’
후웅!
‘때린다!’
딱!!
간결하게 돌린 배트에 공이 맞았다.
내야에서 원바운드 된 공이 유격수와 3루수 사이로 날아갔다.
유격수가 러닝과 함께 몸을 날려 공을 캐치했다.
퍽!
촤아아앗-!!
잔디 위에 미끄러진 유격수가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나 1루로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전력으로 날아간 공이 원바운드 되어 1루수의 미트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전에 이미 김현식의 발이 베이스를 밟고 지나갔다.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한국 대표팀의 선두타자 김현식 선수가 오늘 경기 첫 안타를 때리고 출루에 성공합니다!] [아주 좋은 타격이었습니다! 욕심부리지 않고 공을 밀어쳐 안타를 만들어냈어요!]이 안타가 가지는 의미는 컸다.
하성이 아닌 다른 타자가 무라카미를 공략했다는 것과 주자가 나갔다는 점이다.
[주자 1루 상황에서 정하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하성의 등장에 다시 한번 스타디움이 들썩였다.
* * *
타석에 선 하성은 여유로웠다.
천천히 자신의 루틴을 밟아가는 그의 모습에서 무라카미는 짜증이 치솟았다.
‘망할 새끼……. 나를 상대하는 데 부담이 전혀 없다는 거냐?’
이미 이런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무라카미 스스로 하성에게 부담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걸 무시하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야말로 잡는다……!’
이미 뱉은 말들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성을 한 번도 잡아내지 못하면 그거야말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라카미가 로진을 손에 묻히고 마운드에 서자 아베 포수가 사인을 보냈다.
‘고의사구로 내보내.’
고의사구 사인이 나왔다.
무라카미가 투구판에서 발을 빼고 더그아웃을 바라봤다.
그의 행동에 일본 대표팀의 감독 요시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머저리 자식! 뭐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더그아웃을 보면 작전이 나간 걸 뻔히 알게 되잖아!’
무라카미의 행동은 프로라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만큼 지금 정신에 여유가 없다는 소리였다.
‘젠장…… 고의사구를 하라고? 정하성을 상대로?’
머리로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 뒤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팬들이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할지 같이 상상됐다.
그렇다고 대표팀 감독이자 일본야구의 원로인 요시노의 말에 거역할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의 순간.
그의 머리에 해서는 안 될 생각이 떠올랐다.
‘고의사구로 내보낼 바에는……!’
다시 투구자세를 취한 무라카미가 세트포지션에서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차라리……!’
그리고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몸에 맞는 볼로 꺼져버려!’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1구 던졌습……! 아!!]공이 날아가는 방향을 본 캐스터가 탄성을 저질렀다.
[위험합니다!]해설위원도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라카미의 손을 떠난 공은 정확히 하성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머리에 직격할 거 같은 궤적에 사람들이 놀라고 있을 때.
휙!
하성이 상체만 뒤로 젖혔다.
직후 그의 눈앞으로 아슬아슬하게 공이 지나갔다.
공은 그대로 캐처박스와 구심까지 지나쳐 뒤의 판넬을 때리고 튕겨 나왔다.
[공 놓쳤습니다! 1루 주자 김현식 선수 2루까지 달립니다!]김현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2루로 달렸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지만, 하성은 타석에 그대로 서서 말없이 마운드에 있는 무라카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 공을 움직이지도 않고 피했다고?’
무라카미는 그런 하성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충돌할 거 같은 두 선수의 분위기에 공을 잡은 아베가 급히 하성의 앞을 막았다.
“진정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영어로 말한 덕분에 아베의 말은 이해했지만, 하성은 여전히 무라카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갑니다.]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양측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거 같은 분위기였지만, 한국 더그아웃에서 코치가 나오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다친 곳은 없어? 맞은 거 아니야?”
“안 맞았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하성의 말에 안도한 코치가 그를 진정시켰다.
“일부러 던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열 받으면 네가 오히려 손해다.”
“성질 같아서는 빠따라도 휘두르고 싶은데. 그러면 퇴장이겠죠?”
“퇴장만 당하겠어? 차후 징계까지 나올 수 있어.”
이번 대회는 메이저리그가 아닌 올림픽위원회에서 관리한다.
아무리 하성이라 하더라도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징계를 면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너무 흥분하지 말고 네 스타일대로 가자.”
스타일대로 가자는 말에 하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
* * *
상황이 정리되고 구심이 무라카미에게 경고를 주었다.
“한 번만 더 빈볼을 던지면 퇴장 조치 하겠습니다.”
더 이상 빈볼을 던질 수 없게 된 무라카미가 인상을 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얼굴에 맞췄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얼굴에 맞췄다면 녀석은 오늘 경기에서 더 이상 뛰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되면 이 승부는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든 무효로 돌릴 수 있었다.
그때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확실히 거르도록 해.’
고의사구를 확실하게 하라는 사인에 무라카미가 인상을 구겼다.
‘얼굴에 공이 날아갔으니 반응이 느려졌을 텐데도 거르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만큼 하성을 두려워한다는 소리였으니까 말이다.
그때였다.
타석으로 들어선 하성이 갑자기 배트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우익수 쪽 담장을 가리켰다.
[아~ 이게 뭔가요?! 정하성 선수 설마 예고 홈런인가요?!]하성의 예고 홈런이 나왔다.
“플레이볼!!”
‘저 망할 새끼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국제대회에서의 예고 홈런이다.
그걸 본 무라카미의 이성이 끊어졌다.
‘오냐…….’
흥분한 그는 세트포지션에서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한번 때려봐!!’
쐐애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바깥쪽 낮은 코스.
정확히 제구가 된 공이었다.
만약 때린다 하더라도 우익수 쪽이 아닌 좌익 방면으로 날아갈 공이었다.
만약 억지로 당겨치면 배트의 스윗스팟에 맞추기는 어려워 제대로 힘을 실을 수 없다.
즉, 어떻게 맞더라도 하성의 예고 홈런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라카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후웅-!!
무라카미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하성의 파워였다.
딱!!
[때렸습니다!!]하성의 풀스윙과 함께 타구는 삽시간에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갔다.
우익수는 고개를 들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타구를 쫓았다.
높게 떠오른 타구를 잡으려는 듯한 우익수의 행동에 무라카미는 안심했다.
‘파워 하나는 좋네. 저 공을 외야 플라이까지 날려 보내다니.’
파워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우익수가 멈추지 않고 계속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턱!
우익수가 펜스에 부딪혀 멈췄을 때 타구는 그대로 담장 밖으로 사라졌다.
[넘어갔습니다!!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는 정하성 선수!! 예고 홈런을 성공시킵니다!!]절망에 빠진 무라카미가 마운드 위에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