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28)
마운드의 빌런-28화(28/285)
마운드의 빌런 28화
크리스가 마운드를 주시하고 있었다.
‘콜업 되고 고작 보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성은 우리 팀에서 가장 믿을맨이 되어버렸어.’
루키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과 멘탈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를 수 있어. 전국구 데뷔는 또 다른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과연 이것도 이전처럼 이겨낼 수 있을까?’
전국구 데뷔는 모든 선수에게 특별하다.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면서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힘이 들어가면 제대로 된 피칭과 배팅 모두 어렵다.
중요한 경기에서 선수들이 실력 발휘를 못 하는 이유였다.
‘여기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한다면…….’
그때 하성이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그리고 초구를 뿌렸다.
순식간에 공간을 가로지른 공이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뻐어어억-!!
굉음이 들릴 정도로 엄청난 공이었다.
크리스의 시선이 곧장 전광판으로 향했다.
‘100마일…….’
크리스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확인했다.
전광판에는 여전히 100마일이란 글자가 박혀 있었다.
‘100마일을 던졌다고……?’
100마일 자체는 놀라운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속은 나날이 빨라지고 있었다.
스포츠 사이언스의 발전과 거기에 발맞춰 도입되는 첨단 장비들 덕분이었다.
과거보다 영양이 좋아지면서 선수들의 피지컬이 압도적으로 좋아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애슬레틱스에도 100마일을 던지는 마이너리거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메이저리거로 올라오지 못하는 건 실전에서 쓸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성이 던진 공은 완벽했다.
또한.
‘세트 포지션에서 던진 공이 100마일이라고?’
일반적으로 와인드업 포지션보다 세트 포지션의 구속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하성은 세트 포지션에서 오히려 빠른 공을 던졌다.
‘저 공을 계속 던질 순 없을 거야.’
크리스의 예상은 정확했다.
딱-!!
“파울!!”
2구의 구속은 96마일이 나왔다.
유킬리스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지만, 1구가 뇌리에 남아서인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구속은 떨어졌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마운드 위의 하성을 보며 크리스는 확신을 가졌다.
‘하성의 신체는 100마일 이상의 공을 던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100마일을 던질 수 있는 건 단순히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다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타고난 피지컬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지금 하성이 100마일을 던졌다는 건 그 기본조건이 충족됐다는 소리다.
‘저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때 하성이 3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후웅-!!
유킬리스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공과 배트의 궤적이 하나가 되려는 순간.
공의 궤적이 바뀌면서 좌타자인 유킬리스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촤앗-!
동시에 유킬리스가 스탠스를 오픈하면서 몸쪽에 강제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팔을 몸으로 붙이며 파고 들어오는 공의 궤적에 배트의 궤적을 일치시켰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휘릭!!
공이 한 번 더 유킬리스의 몸쪽으로 파고들면서 배트의 궤적에서 아예 달아났다.
결국 두 궤적이 어긋나면서 공은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후웅!!
힘없이 돌아가는 유킬리스의 배트와 함께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크리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성에게는 하나의 무기만 숨겨져 있던 게 아니었다.
지금 던진 공은 고속 슬라이더.
커터보다 더 크게 휘어져 들어가는 공이었다.
‘녀석은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다.’
* * *
케빈 유킬리스가 허무하게 타석에서 물러섰다.
“아-! 저게 뭐야?”
“왜 저런 공에 배트를 돌리는 거야?”
“저런 놈이 어떻게 메이저리그에서 3할을 때리는 거지?”
미디어실의 한국 기자들이 안타까운 탄성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보던 강다빈 기자가 조용히 말했다.
“우웩! 너무 역겨운데요? 어떻게 같은 한국인끼리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거죠?”
“저들에게 하성은 지금 적이니까.”
“에휴…… 꼰대들 늙으려면 좀 곱게 늙지……. 아, 물론 선배는 제외에요. 선배는 곱게 늙으셨죠! 암요!”
“넌 얼굴은 그렇게 예쁘면서 하는 짓은 남자 같냐.”
“에헤이, 사람 얼굴 가지고 판단하시면 섭하죠. 옛날부터 이런 성격인 걸 어떡해요?”
“그건 그렇지.”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모니터로 향했다.
“선배, 만약에요.”
“응?”
“정하성 선수가 레드삭스의 타자들을 다 잡아내면 어떻게 될까요?”
“흠, 꽤 큰 이슈가 되겠지.”
“그럼 저 양반들의 높은 콧대가 찌부되겠네요.”
다빈의 말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하성은 지금까지 훌륭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아직 커리어가 짧기에 데스크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연일 기사가 쏟아질 수 있는 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
그렇기에 기사가 홍수처럼 쏟아질 수 있었던 거다.
즉, 기사는 계속 써야 했지만, 목을 매달 정도는 아니란 소리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레드삭스의 타선을 훌륭하게 잡아낸다면? 하성의 실력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게 된다. 데스크에서도 압력을 가할 정도로 말이지.’
대중의 반응은 올라갈 것이고 데스크는 현지에 있는 기자들을 닦달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전처럼 찌라시에 가까운 악성 기사를 내놓기 어려워진다는 소리다.
‘저 자존심 강한 양반들의 콧대를 눌러주면 좋겠군.’
그러기 위해선 하성이 여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선의 결과는 삼자범퇴다.
거기까지만 이룬다면 기자들이 지금과 같이 행동하진 못할 거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백준기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첫 타자 유킬리스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운 정하성 선수, 루키임에도 공격적인 피칭을 보여주었습니다.] [초구와 2구는 패스트볼이었는데, 3구에 브레이킹볼을 던지면서 유킬리스의 허를 찔렀어요.] [브레이킹볼의 변화가 컸죠?] [예. 무엇보다 속도도 빨라서 유킬리스라 하더라도 대처가 어려웠을 겁니다.] [좋은 공을 던지면서 기선제압에 성공한 정하성 선수, 두 번째 타자를 맞이합니다.]두 번째 타자는 더스틴 페드로이아였다.
그 역시 타율이 3할이 넘었고 장타율은 5할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유킬리스보다는 낮은 5할 턱걸이였지만, 그에게 걸리면 바로 장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타율이 3할 2푼 7리로 주자가 없을 때보다 더 높았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선수란 소리죠.]페드로이아가 타석에 섰다.
그가 위험한 타자라는 건 메이저리그를 보는 시청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성은 거침없었다.
[정하성 선수 1구 던집니다.]쐐애액-!
딱!!
“파울!!”
[초구 파울입니다. 94마일의 패스트볼, 마지막에 궤적이 휘었는데. 커터로 봐야 할까요?] [예. 그렇게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초구부터 좋은 공을 던지네요.] [데이터가 많지 않지만, 콜업 이후 커터를 결정구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던 정하성 선수네요.] [그렇군요. 2구 던집니다.]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2구 바깥쪽 낮은 코스에 정확히 공이 꽂힙니다.] [아주 좋은 공이 들어왔어요. 구속, 구위, 그리고 제구까지. 삼박자가 완벽한 공이었습니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잡아낸 정하성 선수. 과연 3구는 어떤 공을 던질지. 세트 포지션에서 3구 던집니다!]쐐애애액-!!
후웅!!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브레이킹볼에 페드로이아의 배트가 허공을 가릅니다!!] [레드삭스를 대표하는 두 타자를 상대로 연속 삼구삼진을 만들어낸 정하성 선수! 정말 놀랍습니다!]해설자와 캐스터가 일제히 감탄을 터뜨렸다.
그만큼 하성의 공은 무척이나 좋았고 또 공격적이었다.
하성의 활약이 높아질수록 미디어실에 있는 기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풉, 누가 보면 똥이라도 씹은 줄 알겠어요.”
다빈의 말에 백준기는 피식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기자들의 표정이 정말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두 타자 연속 삼구삼진. 정말 대단한 녀석이라니까.’
동네 야구도 아닌 메이저리그의 중심타선 두 명을 삼진으로 잡아낸 것도 대단한데, 삼구삼진이라니?
정말 엄청나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뻐억!!] [스트라이크!!]세 번째 타자를 상대로도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뒤이어 2구 역시.
[후웅!!] [스윙! 스트라이크 투!!]고속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하면서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그 모습을 본 백준기의 눈이 커졌다.
‘설마……?’
여기에서 하나의 아웃 카운트를 더 잡아내면 삼구삼진이 된다.
그럴 경우 1이닝을 단 9개의 공으로 마무리하는 진기록을 세우는 셈이었다.
거기다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이라는 기록까지 겸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다른 기자들의 뇌리에도 스쳤다.
하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만약 그 기록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그럴 리 없겠죠?”
그때 한 젊은 기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씁! 말이 씨가 된다고! 입조심 좀…….”
강동수가 젊은 기자를 노려보며 한소리를 하는 순간.
[뻐어억-!!]불길한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그리고.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구심의 콜에 강동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마…… 말도 안…….”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려는 순간.
“꺄아악!! 선배 봤어요?!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이에요!!”
강다빈의 외침이 미디어실에 울려 퍼졌다.
그 외침은 강동수로 하여금 현실을 인지하게 만드는 외침이었다.
* * *
세 타자 연속 삼구삼진.
메이저리그에선 무결점 이닝(Immaculate Inning)으로 불린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61번의 기록이 나왔다. 이 중에서 08시즌에 2번이 나왔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61번의 기록으로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시즌 막판에 62번째 기록이 탄생했다.
“정하성 선수! 루키 시즌에 무결점 이닝 기록을 세웠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62번째 기록인데.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오늘 메이저리그 콜업 이후 처음으로 100마일의 공을 던졌습니다. 컨디션이 좋았나요?”
당연하게도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는 기자와 방송국의 집중 타깃이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레드삭스의 홈구장임에도 불구하고 애슬레틱스의 라커룸에는 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휘유~ 하성이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내년에도 저 친구는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겠어.”
동료들 사이에서도 하성의 입지는 올라갔다.
그때 인터뷰를 진행하던 하성이 한국인 기자들을 발견하고는 비웃음을 지었다.
그 비웃음을 본 기자들은 얼굴이 빨개졌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젊은 기자가 녹음기를 내밀며 하성에게 인터뷰를 따내려고 했다.
“정하성 선수!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무결점 이닝이신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직업정신을 발휘하는 기자였다.
오늘 인터뷰를 따야 데스크에게 면이 서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하지만 하성은 그를 무시했다.
그때 백준기가 녹음기를 내밀며 물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백영호 선수 이후 한국인으로 두 번째 기록입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주 좋습니다. 저는 백영호 선배를 무척이나 존경하는데, 그분과 같은 기록을 세울 수 있어서 기쁩니다!”
똑같은 질문에 대응이 달랐다.
젊은 기자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하성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강동수와 그 패거리들의 질문을 일제히 무시하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떠날 순 없었다.
다른 기자들이 진행하는 인터뷰라도 따서 기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선 굴욕이었다.
백준기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 * *
인터뷰가 모두 마무리된 뒤.
기자들이 모두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아, 거 기자님들은 잠깐 나 좀 보고 가시죠.”
하성이 강동수와 기자들을 불러세웠다.
백준기는 의아한 마음에 조금 떨어져 상황을 지켜봤다.
“저기…… 정하성 선수, 우리가 전에는 너무 심했던 거…….”
기자들을 대표해 젊은 기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성은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사과는 엿이나 드시고요.”
그러면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 이게 무슨!”
“뭐 하는 짓인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너무해요? 고작 가운뎃손가락 한 번 들었다고 너무하다고 하는 거예요?”
하성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신네들이 한국에 싸질러놓은 찌라시들.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욕먹었는지 알고 지금 내가 가운뎃손가락 한번 들었다고 너무하다 하는 거냐고요!”
그의 말에 기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성은 그런 그들을 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더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니까. 본론만 이야기하죠. 난 당신들하고 인터뷰할 생각 없어요.”
“뭐라고……?”
“당신들이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당신들과 인터뷰 안 한다고요. 그러니 데스크에 나랑 인터뷰하고 싶으면 다른 기자들 보내라고 해요. 알았어요?”
“그…… 그건!”
“내 할 말은 끝. 그럼 돌아가서 열심히 제 활약을 널리 퍼뜨려 주시길 바랍니다. 기. 자. 선생님들.”
그 말을 끝으로 하성은 돌아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황망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자들을 보며 백준기는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코너에 몰렸군.’
하성의 무결점 이닝은 당분간 한국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될 거다.
데스크 입장에선 어떻게든 그의 기사를 내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거절한다면?
데스크는 기자들을 갈아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목적을 이루려 할 것이다.
‘가운뎃손가락을 올린 걸 기사에 쓴다면 더 큰 보복을 당하겠지.’
강동수와 그 패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는 말이다.
‘업보를 제대로 돌려받았군.’
백준기는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날.
한국에서는 하루 종일 하성에 대한 이름이 오르내렸다.
[오클랜드의 슈퍼루키 정하성! 보스턴 레드삭스의 중심타선을 상대로 무결점 이닝 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