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30)
마운드의 빌런-30화(30/285)
마운드의 빌런 30화
알렉스 로드리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베이브 루스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로 평가받는 선수다.
엄청난 실력과 거기에 걸맞은 FA계약까지.
그의 횡보는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이슈를 만들어냈다.
명예의 전당 입성은 물론이거니와 메이저리그 역사에 영원히 남을 선수였다.
‘약물 스캔들이 터지지만 않았으면 말이지.’
하성은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때마침 들어서는 알렉스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약쟁이 새끼.’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메이저리그는 대스테로이드 시대라고 칭해야 할 정도로 약물로 도배되어 있었다.
알렉스 로드리고는 그 중심에 있던 선수였다.
‘비록 지금은 의심만 받고 있지만, 내년 시즌을 시작으로 약물 스캔들이 터지기 시작하지.’
이 당시 메이저리그를 보는 팬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건이었다.
호세 칸세코가 낸 자서전을 시작으로 2007년에 터진 미첼 리포트 사건.
그리고 아직은 미래의 이야기지만 2013년에 터질 바이오제네시스 스캔들까지.
특히 2013년에 터진 스캔에서는 중심에 서게 되는 선수가 바로 알렉스 로드리고였다.
‘앞으로도 약쟁이 놈들이랑 어울릴 일이 많겠어.’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무조건 클린한 세상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엄청난 돈이 걸려 있기에 일반적인 사회보다 더 더러울 수 있었다.
지금 타석에 선 알렉스처럼 말이다.
딱-!!
[알렉스 초구부터 배트 휘둘렀습니다! 엄청난 타구가 만들어집니다! 이건 넘어갔어요!!]초구를 때려 그대로 양키 스타디움의 펜스를 넘겨버리는 알렉스 로드리고.
그의 모습에 오클랜드 불펜투수들이 고개를 내저었다.
“와…… 초구부터 휘둘러서 저런 타구를 만들어내네.”
“이번 시즌에는 부진하다는 거 거짓말 아니야?”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지.”
“하-! 저런 녀석이랑 상대하려면 어떤 공을 던져야 하나?”
불펜투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불펜투수 중 막내인 테드가 하성에게 물었다.
“하성, 너도 알렉스가 누군지 알지?”
“응.”
“만약에 네가 저 괴물하고 붙게 된다면 어떤 공을 던질 거야? 아니, 정면승부는 할 수 있을 거 같아?”
테드의 질문에 다른 투수들도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 오클랜드의 불펜에서 가장 잘 던지는 건 하성이었다.
이것에 이견을 가지는 투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공을 옆에서 지켜보는 그들이었기에 사실 궁금했다.
슈퍼루키와 슈퍼스타의 대결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말이다.
“그것도 못 할 거면 이거 없애야 하지 않겠어?”
하성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오-!”
“크으! 역시 우리 슈퍼루키답다!”
“그래! 알렉스가 별거냐?”
갑자기 불펜의 사기가 올라갔다.
막내가 저런 말을 하는데 기죽고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하성이 나설 일은 없었다.
알렉스 로드리고가 3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을 쓸어 담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 * *
호텔에 도착한 하성은 오늘 경기의 리플레이를 확인했다.
‘타격감이 좋네.’
오늘 경기 성적이 말해주듯 알렉스 로드리고의 타격감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배트 스피드는 물론이거니와 정확도와 파워까지.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었다.
‘운이 없게도 컨디션이 좋을 때의 알렉스를 만나게 됐다고 봐야겠지.’
이번 시즌 알렉스의 누적성적은 분명 나빴다.
하지만 나쁜 컨디션이 시즌 내내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늘처럼 컨디션이 좋은 경기가 나오는 날이 분명 있다.
오클랜드는 그런 순간에 알렉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30홈런 이상을 때려낸 타자가 부진하다고 말할 수 있나?’
알렉스 로드리고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부진한 시즌이라 하더라도 30홈런 이상을 때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약 빨고 이 정도면 부진한 게 맞을 수 있지.”
알렉스는 스테로이드를 비롯해 갖가지 약물을 복용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는 집중력을 높여주는 도핑 약물도 있었다.
집중력과 파워까지 올라가니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 기록을 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놈에게 지는 건 싫단 말이지.”
하성은 약물에 손을 댄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도핑을 밥 먹듯이 한 놈에게 당하는 건 싫었다.
“오늘 불펜도 제법 소진됐기에 내일 상황이 어떻든 나갈 가능성이 높아. 그리되면 알렉스와 붙을 가능성이 크고.”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 * *
다음 날.
애슬레틱스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 양키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전날 스코어 7 대 2로 대패했기에 분위기가 처질 수밖에 없었다.
‘타선은 막히고 마운드는 뚫리니 분위기가 좋을 수 없지.’
이런 분위기에서 연패가 자주 나온다.
이런 팀 분위기를 잡아줄 선수가 필요했지만, 오클랜드에는 그럴 선수가 없었다.
‘귀찮게 나설 필요는 없지.’
하성은 그게 가능할 수도 있었다.
방법도 알았고 연륜도 있었다.
물론 겉모습은 19살에 루키지만 말이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귀찮았으니까.
라커룸 리더가 된다는 건 다른 선수를 챙겨야 하는 일이다.
하성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연봉이야 개인 성적에 의해 결정되고 팀 성적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
두 번째 삶에서 하성의 목표는 충분히 많은 돈을 벌고 떵떵거리며 사는 거다.
첫 번째 삶에서 하지 못했던 그런 삶 말이다.
‘망할 신 양반만 아니면 내년에 비트코인 좀 사두는 건데.’
아직 비트코인이 발행되진 않았지만,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이 나온다.
그것들 중 일부를 사둔다면 십몇 년 후에는 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된다.
그런 쉬운 길이 있는데, 사용할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었다.
‘안 되는 건 버리고 FA 대박이나 생각하자.’
잡념을 떨쳐내고 훈련에 전념했다.
그렇게 한바탕 땀을 빼니 배가 고팠다.
양키 스타디움의 카페로 이동해 샌드위치를 먹었다.
‘크으……! 역시 양키스라니까. 야채가 아주 살아 있구나.’
선수들과 관계자만 이용할 수 있는 곳답게 퀄리티는 매우 높았다.
만족스럽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을 때였다.
“응?”
카페로 한 무리가 들어왔다.
무리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워낙 키가 컸기에 그가 누구인지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약쟁이네.’
알렉스 로드리고였다.
주위에는 기자로 보이는 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손에 녹음기를 들고 있어 쉽게 알 수 있었다.
‘인터뷰를 카페에서 하나?’
어디서 하건 별로 관심은 없다.
자신에게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를 오물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 정하성이다.”
기자 중 한 명이 그를 발견하고 외쳤다.
기자들의 시선이 순간 자신에게 집중됐다.
‘귀찮아지려나?’
인터뷰는 좋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인터뷰는 별로다.
자리를 피할까 생각했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오지 않았다.
‘슈퍼스타와의 인터뷰를 무시하고 올 일은 없겠지.’
안심하고 샌드위치를 다시 입에 물려고 했을 때다.
“알렉스!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루키인 정하성 선수와 오늘 경기에서 붙을 가능성도 높은데. 어떤 승부를 하실 겁니까?”
왜 불똥이 이쪽으로 튀지?
하성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알렉스의 다음 말이 없었다면 그냥 떠날 생각이었다.
“루키 누구요?”
모른다고?
“정하성 선수요! 오늘 붙게 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정하성 선수 말입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스태프가 이야기하더군요. 요즘 물이 오른 투수라고 말이죠.”
스태프가 이야기해서 알아?
“어차피 루키입니다. 제 상대로 언급할 정도는 아닌 거 같네요.”
“그 말씀은……?”
“저는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이제는 메이저리그의 위대한 전설들을 넘어섰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죠.”
알렉스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기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수많은 루키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들 중에는 매우 훌륭한 선수도 있었지만, 저만큼의 업적을 쌓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감정이 고양됐는지 조금씩 목소리가 높아졌다.
덕분에 하성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정…… 발음이 어렵군요. 어쨌든 오클랜드의 루키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이나마 주목을 받지만, 메이저리그에는 그런 선수가 수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습니다. 제 상대가 되지 않아요.”
맞는 말이긴 하다.
루키의 반짝 활약은 언제 어디서건 나왔다.
그런 선수와 슈퍼스타를 비교하다니.
슈퍼스타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 있었다.
저 정도의 인터뷰는 뭐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럼 정하성 선수와 만난다면 그의 퍼펙트 기록을 깰 수 있겠습니까?”
메이저리그 콜업 이후.
하성은 현재까지 단 하나의 피안타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었다.
물론 선발과 계투의 차이가 있기에 퍼펙트게임이라 할 순 없었지만, 루키가 달성했다는 것에 야구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기자의 질문에 알렉스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거 참, 언론은 언제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군요. 퍼펙트게임은 선발로 등판해야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는 잘하고 있지만, 글쎄요. 이렇게 떠들썩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네요.”
“의미가 없다는 건가요?”
“그 정도는 이전에도 나왔고 앞으로도 나올 기록들이니까요. 뭐, 그래도 칭찬받을 일은 맞죠.”
병 주고 약 주고.
혼자 생쇼를 한다.
말은 하성은 배려하는 듯했지만, 말투와 제스처는 그러지 못했다.
미국에서 지내지 않았다면 몰랐을 거다.
저런 걸 놓쳤을 테니까.
이제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 하고 있었다.
거기에 알렉스가 트리거를 당겼다.
“어떻게 할 거냐고 했죠? 흠, 그가 선발이었다면 난타를 해주면 될 텐데. 불펜이니 그건 힘들 거 같네요.”
언제든지 때릴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만약 만난다면 기록을 깨드리죠. 그것도 그냥 깨는 게 아니라 홈런으로 말이죠.”
“오오-! 이건 마치 베이브루스의 예고 홈런과 비슷하네요.”
“하하! 베이브루스가 했다면 저도 할 수 있습니…….”
아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
하성은 몸을 돌려 알렉스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들며 외쳤다.
“헤이-! A-로이더.”
* * *
라커룸에 도착한 알렉스는 신경질적으로 라커의 문을 닫았다.
쾅!
“망할 새끼!!”
그는 도무지 화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나보고 로이더라고?”
분명하게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별명인 A-로드가 아닌 A-로이더라고 부른 걸 말이다.
하지만 녀석은 능청스럽게 기자들의 질문을 피했다.
(아, 제 발음이 좀 구렸나요? A-로드라고 불렀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자신을 보며 웃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개자식……!”
그럴 리 없다.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베테랑도 아니고 이제 갓 데뷔한 루키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에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알렉스는 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달달한 맛의 사탕이 녹으면서 몸에 힘이 넘치는 게 느껴졌다.
‘역시 성능이 좋아. 이걸로 그동안의 부진을 모두 만회하겠어. 그리고 녀석에게도 내 무서움을 알게 해주지.’
알렉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당한 만큼 돌려준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하성에게 알렉스는 선을 넘었다.
‘내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그런 소리를 지껄였단 말이지.’
슈퍼스타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뭐?
하성에게는 단지 약쟁이일 뿐이었다.
아직 들키지 않았을 뿐.
녀석이 경기를 앞두고 스테로이드가 첨가된 사탕을 먹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약 빨고 이룬 업적을 자기가 한 것마냥 지껄이고 있어.’
둘 모두 꼴 보기 싫었다.
그래서 질러버렸다.
성격대로 말이다.
‘그럼 여기서도…….’
녀석을 다시 만난 건 그라운드에서였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스코어가 4 대 0까지 밀린 오클랜드! 오늘 경기까지 내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는지 여기에서 정하성 선수를 투입시킵니다!!]카메라가 타석에 들어서는 알렉스를 비추었다.
해설위원과 캐스터의 극찬이 쏟아졌다.
그만큼 하반기 알렉스의 페이스는 좋았다.
특히 오클랜드와의 2연전에서는 양키스 팬들이 원하는 그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우리의 영웅이 돌아왔군!”
“이대로면 빨간 양말 놈들을 누르고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겠어!”
“으하하! 그렇게 되면 가장 베스트겠군!”
“오클랜드의 루키가 불쌍해. 최고의 컨디션인 알렉스를 만나게 됐으니 말이야.”
“헤이! 로드!! 살살 다뤄주라고!!”
양키 스타디움을 채운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플레이볼!!”
사인을 교환한 하성이 투구자세에 들어갔다.
‘나한테 건방 떤 걸 후회하게 해주마!!’
하성이 와인드업과 함께 초구를 뿌렸다.
알렉스가 그 공을 때리기 위해 하체를 돌리려는 순간.
‘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에 다급히 뒤로 몸을 뺐다.
뻐어억-!!
몸을 빼면서 균형이 무너진 알렉스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넘어진 상태로 포수의 미트 위치를 확인한 알렉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 초구 완전히 빠졌습니다! 머리로 오는 공에 알렉스가 급히 피하면서 그대로 넘어지고 마네요.] [음, 제구력이 나쁘지 않았던 정하성 선수인데요. 오늘 초구는 제구가…… 어?]그때 넘어졌던 알렉스가 일어나며 하성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