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34)
마운드의 빌런-34화(34/285)
마운드의 빌런 34화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정하성 선수! 세 번째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팀의 시즌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시즌이 끝남을 알리는 아웃 카운트였다.
[비록 오클랜드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정하성이란 훌륭한 투수를 찾은 것만으로도 성과를 거두었습니다.]시즌이 끝났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수들이 관중석 앞에 기립했다.
[오클랜드 선수단이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시즌 마무리를 알립니다.]메이저리그 첫 시즌.
선수단은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번 시즌 할 건 다 했다.’
하성만은 이번 시즌에 대해 백 점을 주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이너리그 패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데뷔까지.
거기에 중간계투를 넘어 클로저까지 올랐다.
모든 게 완벽했던 시즌이었다.
‘내년이 벌써 기대되네.’
하성은 기대에 찬 얼굴로 관중에게 인사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 * *
숙소로 돌아온 하성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미국에 더 있어도 될 일이지만, 한국에 가서 처리할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 가면 연락 온 매니지먼트들이랑 접촉을 해봐야지. 그리고 광고 건도 확인해 보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이 커지면서 광고계에서의 러브콜은 계속 이어졌다.
매니지먼트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직 자리를 잡기 이전이었기에 계약을 급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푹 쉬자. 김치찌개도 좀 먹고.’
미국에 있으면서 가장 그리웠던 건 역시 한국 음식이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하성은 짐을 모두 챙기고 호텔을 나섰다.
“응?”
그런 하성의 앞에 익숙한 여인이 서 있었다.
“태워드릴까요?”
J&J에이전시의 이사벨이었다.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하성은 이내 호텔직원에게 말했다.
“택시 도착했어요?”
“예. 짐을 실어드릴까요?”
“부탁 좀 할게요.”
그녀를 가볍게 무시해 주고 택시에 짐을 실었다.
“하성 씨, 선의를 무시하면 좀 그런데요?”
“순전히 선의라면 받겠는데요. 뭔가 다른 목적이 숨어 있는 걸로 보여서 받지 못하겠네요.”
“어머, 그게 무슨 뜻일까요? 저는 어디까지나 선의로 하는 건데요?”
“J&J같은 대형 에이전시의 직원께서 선의로 선수를 공항까지 데려다준다고요? 그걸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이사벨의 미소가 살짝 흔들렸다.
“그걸 믿느니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을 믿겠네요.”
“예?”
“한국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궁금하면 구글링 한번 돌려보시든가요. 그럼 전 갑니다.”
하성은 그대로 택시에 몸을 실었다.
뒤에서 이사벨이 뭐라 외치는 거 같았지만, 가볍게 무시해 주었다.
* * *
미국에서 한국까지 오는 시간은 무척이나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올 때는 이코노미였지만, 갈 때는 비즈니스니까. 살 만하네.’
이코노미와 비즈니스의 차이는 고작 한 등급이지만, 하늘과 땅 같았다.
‘비즈니스도 이렇게 좋은데, 퍼스트클래스는 얼마나 좋을까?’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서나 보던 퍼스트클래스를 떠올리며 하성은 의욕을 가졌다.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더 생겼네.’
확실히 돈이 있으면 편하다는 게 실감됐다.
‘그나저나 공항에 도착하면 한바탕 전쟁을 치르겠어.’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하성은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그 과정에서 공항에 기자들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번잡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보다 관계가 나쁜 몇몇 인간들이 있지.’
강동수를 비롯한 기자들.
하성의 선언이 있은 뒤부터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 메이저리그 취재에서 밀려난 거 같지는 않았다.
‘시즌도 얼마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경력도 짧은 나 때문에 해외 지사의 기자들을 단기간에 갈아버릴 순 없지. 하지만 이제 달라졌어.’
시즌 막판에 클로저를 맡게 된 하성이다.
말인즉슨 국내 언론들의 집중조명을 받게 될 예정이란 소리다.
‘내년에도 내가 자기들하고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들이 바꾸지 않을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다.
자신이 마이너리그로 강등됐을 때 말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
아니, 없게 만들 생각이다.
‘비시즌에 충분히 몸을 만들어서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지. 그래야 쪽이 안 팔리지.’
말을 거창하게 뱉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것만큼 쪽팔린 건 없다.
하성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약속을 지켜야 했다.
‘어쨌든 이번 기자회견도 정신 좀 바짝 차려야겠어. 그 인간들이 인맥을 사용하면 엉망이 될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만큼 인연이 잘 먹혀들어 가는 곳은 없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야 했다.
성대한 귀국길이 되는 건 자신에게 걸린 문제였다.
* * *
공항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20명은 되는 거 같은데. 루키 시즌 활약이 한국에서도 상당히 화제가 됐나 보네.’
공항에 나온 기자의 숫자는 그 선수에 대한 관심의 척도와 같았다.
미국에서도 국내 여론을 체크하긴 했지만, 실감하니 기분이 색달랐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기쁨이냐.’
예전 에이스 시절에는 언제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은퇴한 뒤에는 기자들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십 년이 넘는 세월 만에 다시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감회에 젖은 것도 잠시.
하성은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 서야 했다.
“정하성 선수!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는데, 한 말씀 부탁합니다.”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마이너리그를 1년도 되지 않아 패스한 선수가 됐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정하성 선수! 100마일의 공을 뿌렸는데, 예상하셨습니까?”
“메이저리그에서 뛴 기분은 어떤가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정상적인 질문들에 하성은 여유롭게 답을 쏟아냈다.
“성공적인 시즌은 응원해 준 분들 덕분입니다.”
“선배님의 뒤를 이어 대기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100마일은 연습에서도 몇 번 던진 적이 있어서 그저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데뷔한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청산유수로 대답이 흘러나왔다.
때로는 겸손하고 때로는 자신감이 넘치는 대답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때 한 기자의 질문이 귀에 들려왔다.
“정하성 선수가 미국에서 기자들에게 폭언을 했다는 제보가 있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을 쏟아내던 기자들이 일제히 멈췄다.
그러고는 서로 수군거렸다.
“뭐야? 그런 일이 있었어?”
“정말이야?”
“못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데스크에서 비슷한 이야길 들었던 거 같은데.”
“정하성 선수! 저 질문이 사실입니까?”
“정말입니까?!”
기자들은 먹잇감을 포착한 매처럼 성난 공격을 쏟아냈다.
그들의 질문 폭탄에 하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설마 여기서 터뜨릴 줄은 몰랐겠지?’
최초로 질문을 던진 기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강동수와 같은 투데이베이스볼 소속의 김명기 기자였다.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건 당연히 강동수의 지시였다.
‘감히 우리 선배님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싹싹 빌 때까지 제대로 두드려 주마.’
김명기는 자신만만했다.
‘네가 만약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면 음성파일을 그대로 오픈해 주지.’
폭언을 쏟아낼 때 음성은 녹음되어 있었다.
만약 하성이 사실을 왜곡한다면 바로 공개할 생각이었다.
그때 하성이 입을 열었다.
“예, 사실입니다.”
“그게 무슨 거짓말…… 예?”
준비하고 있던 김명기가 말을 잘못 뱉었다.
김명기의 말에 하성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사실이라니까요?”
“아니, 그…… 예. 사실이죠. 해명해 주시죠!”
“해명할 게 없는데 뭘 해명합니까? 기자분들에게 폭언 좀 했습니다. 당신들하고 인터뷰할 생각이 없으니 다른 기자들 보내라고요.”
“정말입니까?!”
“지금 그 발언이 사실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제대로 된 기사를 실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자들이 하성의 발언을 빠르게 입력했다.
“제가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된 이후 쏟아진 기사의 대부분이 너무 엉터리였습니다! 그 기사를 작성한 이들에게 제대로 된 기사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이상합니까?”
“엉터리 기사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기자의 질문에 하성이 기사의 목록을 줄줄이 이야기했다.
그 말에 몇몇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 기자들은 얼굴을 붉혔다.
아마도 비슷한 기사를 쓴 기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때 기사들이 너무 중구난방이었지.”
“맞아. 너무 엉망이었어.”
“그리고 폭언도 아닌데?”
“조금 수위가 강하긴 했지만, 저 정도는 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어떻게든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김명기는 다급히 비장의 카드 중 하나를 꺼냈다.
“기자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지 않았습니까?!”
“그게 정말이야?”
“진짜로?”
“증거가 있나?”
김명기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녹음기를 꺼내려는 순간.
“예, 날렸습니다.”
이번에도 순순히 인정했다.
덕분에 녹음기를 꺼내려던 김명기의 손이 무안하게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성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 기자라는 분들은 제가 기사 좀 제대로 쓰라고 했다는 말 한마디 때문에 찌라시와 악성 제목들을 단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하성의 발언은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적었다.
“그런 사람들이 제가 무결점 이닝에 성공하자 웃는 얼굴로 와서 한 말이 오해라고 하더군요. 제게 학폭이니 뭐니, 엉터리 제목으로 몰아붙이던 사람이.”
하성의 말에 몇몇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그런 기사들이 올라왔었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고.”
“올라온 기사들은 대부분…….”
기자들의 시선이 김명기에게로 향했다.
그 기사들이 올라온 곳이 모두 투데이베이스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엉터리 기사 덕분에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걸 돌려준 게 문제입니까?!”
하성이 기자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 모습을 카메라가 연신 찍어댔다.
하성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거짓 기사를 쓴 그들이 잘못한 겁니까? 아니면 제가 잘못한 겁니까?!”
충격적인 입국 기자회견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 * *
[입국 기자회견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날린 정하성!] [미국 현지에서 기자들에게 폭언을 날린 정하성?!] [거짓 기사를 쓴 기자가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폭언을 날린 정하성이 잘못한 것인가?]당연하게도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정하성 쓰레기네
-아무리 그래도 어린놈이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냐?
-인성부터 쓰레기인 듯
-지네 학교 그렇게 날릴 때부터 알아봤지.
-이런 놈을 무슨 국대로 뽑냐?
-인성교육부터 다시 시작해라!!
하성을 욕하는 이들이 반이었고.
-시원하다~
-크으-! 맞말 제대로 했네.
-뭔가 고구마를 실컷 먹다가 사이다를 드링킹한 기분인데?
-표현력 죽이네 ㅋㅋ
-그때 찌라시 엄청 뜨긴 했었지.
-기레기 새끼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기레기들 허위기사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 명인데.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메쟈 마무리를 맡는구나.
-이런 애가 국대로 뽑혀야지!
하성을 지지하는 이들이 절반이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하성의 지지자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지지자들이 많아진 건 하성의 캐릭터 덕분이었다.
-한국야구사에 이런 애가 있었나?
-할 말 제대로 하는 애네
-당돌해서 마음에 든다 ㅋㅋ
지금까지 프로야구 선수면 앞에서는 얌전한 척을 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하성과 같은 캐릭터의 등장은 젊은 층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한편 이 일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KBO 건물의 회의실에 모인 일단의 인물들.
그들은 하나같이 국가대표를 상징하는 파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점퍼의 가슴 부위에는 태극마크가, 등에는 KORE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내년에 있을 WBC를 위해 선임한 국가대표 코치와 위원장들이었다.
WBC 감독은 아직 한국시리즈가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선임되지 않았기에 상석에는 기술위원장인 박태곤이 앉아 있었다.
“대중의 여론은 어떤가?”
“아직까지는 반반으로 봐야 합니다. 젊은 층의 지지가 많아지고 있지만, 반대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쯧, 하필이면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사고를 치다니.”
박태곤이 혀를 차며 종이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정하성의 사진과 함께 올 시즌 데이터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일단 데려와. 데려와서 대국민 사과를 시키든 방법을 마련해서 여론을 잠재워야 해. 그게 우선이야. 그 뒤에 합류시키는 쪽으로 가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전화해서 오라고 하겠습니다.”
눈짓을 받은 직원 중 한 명이 회의실을 나갔다.
‘멍청한 놈. 젊은 치기를 이기지 못하고 여론을 적으로 돌리다니. 어쩔 수 없지. 당장은 여론이 좋지 않더라도 이 녀석이 합류하면 대표팀에 큰 힘이 될 테니까.’
박태곤은 하성이 당연히 합류할 거라 생각했다.
거부라는 건 있을 수 없다.
누가 영광스러운 태극마크를 거부할 수 있겠단 말인가?
그때 문이 열리며 회의실을 나갔던 직원이 들어오자 박태곤이 질문을 던졌다.
“언제 온대?”
“그게…….”
“왜?”
“안 온다는데요?”
“뭐? 왜 안 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대?”
“그게 아니라…….”
“아, 거참! 답답하게 빨리 대답해!”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