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37)
마운드의 빌런-37화(37/285)
마운드의 빌런 37화
며칠 뒤.
예상대로 백준기가 기사를 터뜨렸다.
[유명 매니지먼트 업체의 갑질 계약?]자극적인 제목, 거기에 상세한 내용은 많은 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본지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계약서에 따르면 매니지먼트 업체가 광고 대행 계약을 맺을 때 과도한 수수료와 불합리한 조항이 다수 삽입된 것을 발견했습니다.]내용 역시 충실했다.
백준기는 어디선가 입수한 계약서의 사본을 기사에 첨부했다.
덕분에 기사의 신뢰성이 확 올라갔다.
-이 정도면 노예계약서인데?
-요즘에도 이런 계약이 있다고?
-이거 찐임?
-그런데 매니지먼트 계약을 왜 스포츠기자가 취재함?
-야구선수들도 매니지먼트 계약했대.
-헐…… 이걸로 계약했다고?
-이거 공정계약에 어긋나는 거 같은데.
-공정위에 넣어봐야겠다.
네티즌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 사실은 TJ매니지먼트도 바로 알게 되었다.
당연히 하성에게도 연락이 왔다.
“제가 계약서를 넘겼냐고요? 그때 계약서 김 과장님이 가져가지 않으셨습니까?”
팩트로만 이야기하니 TJ매니지먼트에서도 할 이야기가 없었다.
결국 TJ매니지먼트와 백준기 기자가 속한 언론사의 싸움이 됐다.
하지만 언론이 가진 알 권리라는 건 제대로 써먹으면 대단히 큰 힘이었다.
내부자료, 극비자료 유출이라는 협박을 해왔지만, 백준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론도 이미 돌아선 상태인지라 TJ매니지먼트는 두들겨 맞는 일밖에 없었다.
‘휘유, 회사 하나 작살나는 건 시간문제네.’
매니지먼트에서 큰 규모의 회사이기에 당장 망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에 찍히고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이곳과 계약하려는 이들은 줄어들 것이다.
‘무엇보다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됐고.’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무리한 계약을 요구할 곳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중 가장 발이 빠른 이는 김혜령이었다.
뚜르르-!!
하성은 울리는 폰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김 대표님.”
* * *
다음 날.
하성은 김혜령 대표와 미팅을 가졌다.
“하성 씨가 요구한 조건 중 대부분을 수용할게요.”
“감사합니다. 수정된 계약서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김혜령 대표가 내민 계약서에는 추가 조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하성이 요구한 것들이었다.
사실 그가 요구했던 것들은 그리 어려운 것들이 아니다.
앞으로 5년 뒤에 나올 공정거래서를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매니지먼트랑 엮이면서 알아둔 게 신의 한 수였어.’
5년 뒤에도 하성은 현역에서 뛰고 있었다.
국내 최고의 투수였기에 인기도 엄청 났었다.
당연히 광고와 모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계약을 맺고 활동했다.
당연히 계약도 여러 차례 진행해왔고 매니지먼트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덕분에 두 번째 삶에서는 그들의 심리와 행동, 그리고 상황까지 알고 움직일 수 있었다.
“큰 문제가 없네요. 사인하면 되나요?”
“네. 하시는 위치는…….”
“대략 압니다.”
하성은 익숙하게 사인을 해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김혜령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인해야 할 곳들을 정확히 아네. 이미 프로 계약을 해봐서인가? 어쨌든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계약에 대해 꽤 빠삭한 느낌이야.’
이제 갓 성인이 된 사람을 상대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어리숙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던 김혜령이다.
“작성 다 했습니다.”
“아, 확인 좀 할게요.”
서류를 확인하던 김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네요. 그럼 바로 모델 제안이 온 곳들 확인해 보시겠어요?”
“바로요?”
“현재 스포츠스타에 대한 수요가 조금 있거든요. 그곳들에 대해 확인을 해둔 상태예요.”
일 처리가 빠른 양반이었다.
* * *
미팅이 마무리됐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하성은 잘 선택했다는 확신을 가졌다.
‘준비성도 좋고 일 처리도 빠르네. 덕분에 수익을 좀 얻을 수 있겠어.’
매니지먼트 계약은 복잡할 게 없었다.
자신의 요구 조건이 대부분 다 수용됐다.
다소 무리라고 생각했던 조항은 빠졌다.
계약 기간은 3년이다.
매년 2개 이상의 계약을 확보하는 게 매니지먼트 계약의 중심내용이었다.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면 계약의 숫자는 없지만.’
하성의 상품 가치는 메이저리거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마이너리거인 하성에게는 상품 가치가 없다는 소리였다.
냉정한 소리지만, 시장원리가 원래 그랬다.
‘떨어질 생각은 없으니까.’
하성은 웃으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이제는 내년을 위해 준비할 시간이었다.
* * *
한국에 들어오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하성은 휴식에 전념했다.
먹고 자면서 몸에 쌓였던 피로를 푸는데 전력을 쏟았다.
덕분에 살이 올랐고 체력도 회복되고 있었다.
‘웨이트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하고 심폐지구력은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해볼까.’
심폐지구력 훈련은 체력을 상승시키는 훈련이었다.
심장과 폐의 기능을 높여 전신에 혈액과 산소의 공급을 원활하게 해준다.
대표적으로 인터벌 트레이닝이 심폐지구력 상승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내년에는 확장 로스터가 아니라 개막과 함께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니라면 6월에 올릴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선수의 서비스타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유망주의 콜업을 5월에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메이저리그 서비스타임은 로스터에 등록된 등록일이 기준이 된다.
5월에 올릴 경우 이후 로스터에 계속 등록되더라도 서비스타임 1년을 채울 수 없다.
일종의 꼼수지만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구단이 활용하고 있었다.
‘난 서비스타임 30일을 채운 상태다. 5월에 콜업하면 어차피 1년이 차게 되어 있어.’
6월에 콜업할 거라 생각하는 근거였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개막에 콜업해서 최대한 활용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수뇌진이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는 곧 알 수 있겠지.’
월드시리즈가 끝나면 본격적인 스토브리그가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선수들의 트레이드가 활발해진다.
‘시즌 초반부터 날 올릴 생각이면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휴스턴을 내보낼 거야.’
크리스 단장은 불펜을 신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불펜투수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
불펜에서 성적을 남기는 투수를 자주 선발로 보직 이동을 시키기도 했다.
그런 성향이니 한 팀에 클로저 두 명을 두지 않을 것이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해.’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며 몸을 만들 시기였다.
* * *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포스트시즌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들은 내년 시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건 오클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크리스는 선수단의 리빌딩을 결정하고 정리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장의 호출을 받았다.
똑똑-!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중년인이 크리스를 맞이했다.
그는 오클랜드의 사장인 도널드였다.
“바쁜데 불러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도널드가 자리를 권하자 크리스가 앉았다.
그는 상석에 앉으며 다소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구단주가 연락이 왔네.”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내년 시즌 운영비를 10퍼센트 삭감한다 하더군.”
“10퍼센트요? 지금 운영비도 다른 구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10퍼센트를 더 깎다니요.”
오클랜드는 대표적인 스몰구단이다.
당연히 운영비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운영비를 더 삭감한다니?
팀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단장의 입장에선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어. 관중 입장 수입이 너무 줄어들었네. 거기에 올해는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실패하면서 그에 따른 수익이 줄어든 것도 너무 커.”
“입장 수입이 줄어든 것은 팀의 연고지 이전이 끝까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알고 있네. 하지만 어쩌겠나? 구단주가 이미 삭감을 통보했는데.”
“제가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소용없네. 이미 그는 미국에 없어. 내년까지는 유럽에 있겠다고 하더군.”
“미친!!”
크리스가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시즌은 끝났지만 구단은 가장 바쁠 시기인 스토브리그 시기에 구단주가 자리를 비우다니?
제정신인가 싶었다.
“도대체 그는 생각이 있답니까?”
“후우, 뭐라 해줄 말이 없군. 우리는 어차피 시키면 해야 되는 입장이지 않나?”
“하아…….”
도널드의 이야기는 틀린 게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해야 했다.
어떻게든 말이다.
* * *
매니지먼트 계약 이후 하성이 첫 모델로 발탁된 것은 스포츠 의류였다.
“계약 기간은 원하시던 대로 1년으로 잡았어요. 그 기간 안에 모델로 찍은 사진은 홍보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요.”
“1년 뒤에는 모두 내려가는 건가요?”
“네. 그리고 오늘 촬영에 모델이 한 명 더 오실 거예요.”
“그렇습니까?”
“네. 신인가수인 은하라고 하던데. 아시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하긴, 올해 데뷔했으니 모르실 수 있겠네요. 어린 친구인데 브랜드랑 이미지가 잘 맞는다고 더블캐스팅을 했나 보더라고요.”
그럴 수 있다.
스포츠 의류라고 꼭 운동선수들만 캐스팅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젊은 층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모델로 쓰는 일이 잦았다.
“아, 도착했네요.”
사진 촬영은 오래 걸리는 작업이 아니다.
대부분 하루면 끝나기에 김혜령과 계약 이야기를 하며 바로 이동했다.
촬영장은 파주에 위치한 스튜디오였다.
계약업체에서 제법 돈을 썼는지 단독스튜디오에 내부도 깔끔하고 좋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브랜드 업체 관계자가 다가왔다.
“아, 정하성 선수. 반갑습니다. 아트스포츠의 박성진 과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저희 모델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정말 인물이 훤칠하시네요. 몸도 어마어마하시고요. 아, 김 대표님. 대기실을 따로 마련해 두었으니 그곳에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같이 촬영할 친구가 조금 늦는다고 하네요.”
“네, 감사해요.”
첫 촬영에 단독 대기실이라니.
나쁘지 않은 대우였다.
‘김혜령 대표의 힘인가?’
이전 삶에서 광고계와 잠깐 인연을 맺었던 하성이다.
운이 좋게도 유망주일 때 광고 계약을 해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대기실은커녕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슈퍼스타가 된 후에는 달랐다.
대기실부터 스태프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인지도에 따라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지는 셈이다.
‘이제 갓 데뷔한 나한테 대기실까지 내준다는 건 김혜령 대표의 능력이 내 생각보다 좋다는 거겠지.’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30분쯤 지났을 때.
스태프가 대기실로 찾아왔다.
“1시간 뒤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네.”
김혜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담당 코디가 들어와 하성의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받네.’
은퇴 이후에는 광고는커녕 사진을 찍을 일도 없었다.
당연히 화장이라곤 로션이나 바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다소 어색함이 있었다.
어차피 남이 해주는 거라 딱히 영향이 가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메이크업이 마무리되자 확실히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머, 어려서 그런가? 하성 씨 화장 잘 받네요.”
“하하, 그런가요?”
“네. 피부 톤도 살아나고 이목구비도 뚜렷해서 배우 해도 되겠어요.”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김혜령의 칭찬을 듣고 있을 때.
스태프가 다시 들어왔다.
“준비 다 되셨으면 촬영 시작할게요.”
“예.”
첫 광고 촬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