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38)
마운드의 빌런-38화(38/285)
마운드의 빌런 38화
2시부터 시작된 촬영은 8시까지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이 진행됐다.
“오케이! 하성 씨, 이번에는 패딩에 주머니를 넣고 사선으로 설게요. 예! 아주 좋아요!”
감독의 말에 따라 움직이면서 사진을 찍었다.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모델용 사진이었기에 다양한 옷을 입고 찍어야 한다는 것도 고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신을 대우해준다는 게 느껴졌다.
아마 김혜령 대표 덕분인 듯했다.
그걸 알게 된 이유는 하나다.
“은하 씨!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
같이 촬영을 하는 은하에게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게 느낌을 살리지 못해서 어떻게 모델을 하겠다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로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좀 합시다!”
“네…… 네!”
별로 잘못한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참 많이 혼난다.
거기에 스태프들도 은근 그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성은 그 모습이 신기하게 보일 따름이었다.
‘미래의 월드스타도 신인 때는 험난한 대우를 받았구나.’
은하라는 이름은 잘 모른다.
하지만 EH라는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내놓는 앨범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거기에 드라마에 출연해서 대종상까지 수상한 배우지. 2020년 이후에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글로벌 진출에도 성공했고.’
그녀가 미래에 쓰는 예명은 EH다.
본인의 이름을 이니셜로 바꾼 것뿐이다.
묘하게도 이름을 바꾼 시점부터 그녀의 앨범은 대박이 났다.
덕분에 그녀의 예명이 더욱 알려졌고 은하라는 이름은 대중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물론 그녀의 골수팬들은 알겠지만, 하성은 그 정도의 팬은 아니었다.
“오케이! 식사 간단히 하고 촬영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의 말과 함께 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휘유…….”
“힘드시죠? 이거 좀 드세요.”
한숨을 쉬자 옆에 있던 은하가 이온 음료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은하 씨는 힘들지 않으신가 봐요?”
“데뷔하기 전에 피팅모델 잠깐 했었거든요! 그래서 조금 익숙해요!”
본인도 힘들 텐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을 주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은하야, 도시락 먹어야지.”
“네~ 그럼 나중에 봬요!”
“네.”
멀어지는 은하를 보며 하성은 피식 웃었다.
* * *
광고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특히 하성에 대한 평가가 무척이나 높았다.
“이야-! 하성 씨 핏이 제대로 사는데요? 어깨가 넓어서 그런지 옷을 입는 대로 모양이 딱 잡힙니다!”
하성의 외모는 훈남에 가까웠다.
엄청난 얼굴 천재와 같은 외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단련된 몸과 깨끗한 피부 덕분에 시너지가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현장의 여성 스태프들의 눈길을 한 번에 끌었다.
“야구선수라고 들었는데. 엄청 훈남이지 않아?”
“그러게. 배우 해도 되겠다.”
“몸이 엄청 좋더라.”
“어깨는 무슨 태평양 같지 않아?”
“메이저리그라면 돈도 많이 벌 텐데. 확! 꼬셔버릴까?”
여자 스태프들의 대화 주제는 하루 종일 하성에 대한 것이었다.
같이 촬영하는 은하 역시 하성이 멋져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녀는 딱 달라붙어 촬영하니 하성을 더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와…… 나랑 동갑인데. 왜 이렇게 크지?’
하성의 키는 189㎝였다.
반면 은하의 키는 160이었으니 무려 29㎝나 차이가 났다.
당연하게도 옆에 서 있으면 거인처럼 느껴졌다.
그때 시선을 느낀 하성이 고개를 내렸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은하가 깜짝 놀라는 순간.
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리고 결과물을 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방금 연기 아주 좋아요! 이야~ 이거 마치 진짜 놀라는 듯한 장면이 찍혔는데?”
“그…… 그래요?”
“네. 은하 씨 연기 잘하네. 정말 반한 것 같은 연기였어.”
연기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나왔다.
하지만 굳이 그걸 티 낼 이유는 없었다.
“잘됐나요? 다행이에요!”
프로정신으로 밝게 웃어 보이는 그녀였다.
그 모습을 본 하성은 생각했다.
‘연기에 재능이 있네.’
하성은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놀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저런 식으로 대처하다니.
어린 나이임에도 대단했다.
장래에 연기를 잘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자! 이제 촬영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까지 파이팅하죠!”
“네~”
촬영은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하루 만에 모든 촬영을 끝낸다는 건 어렵다.
스태프들의 손발이 잘 맞은 덕분이 컸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촬영은 모두 마무리됐다.
체력이 좋은 하성이어도 이 정도의 촬영 강행군은 꽤 지치게 만들었다.
“힘들죠?”
“예. 정말 힘드네요. 당장에라도 침대에 누워서 기절하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래도 좀 하다 보면 적응하실 거예요.”
“좀이라면 얼마나……?”
“지금 이야기 되고 있는 곳들이…….”
김혜령이 조수석에서 서류 파일을 꺼내 건넸다.
“7곳이에요.”
“하하…….”
신인인데도 7곳이랑 이야기가 되고 있다니.
자신의 인지도가 높은 걸까?
아니면 김혜령의 능력이 그만큼 대단한 걸까?
어찌 됐든 내년에 미국에서 사용할 자금은 충분할 듯했다.
“저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혜령이 비키자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은하가 보였다.
“저는 잠깐 감독님이랑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다녀올게요.”
김혜령의 눈치는 생각보다 빨랐다.
그녀가 빠르게 자리를 비키자 은하가 조심스레 말했다.
“내년 시즌 힘내세요! 이건 별거 아닌데…… 제 데뷔앨범 CD예요!”
그녀가 용기를 내서 내민 건 CD 케이스였다.
그걸 받아서 보자 사인도 되어 있었다.
CD를 받아 든 하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듯 자신의 가방을 찾았다.
“잠깐만요.”
가방을 열자 야구공 몇 개가 보였다.
그중에 하나를 꺼내 주위를 둘러보다 은하에게 물었다.
“혹시 수성펜 있어요?”
“아, 여기요!”
“저도 이제 갓 데뷔했지만, 사인 CD를 받았으니 답례로…….”
슥슥!
“사인볼을 드릴게요.”
공을 건네자 은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욱 커져 마치 놀란 사슴을 보는 듯했다.
“저 사인볼 처음 받아봐요!”
“저도 처음이에요. 사인 CD 받는 거.”
묘한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은하야!”
멀리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제 가야 하나 봐요. 혹시 핸드폰 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예.”
아직 메신저가 없는 시대다.
문자가 더 발달되어 있었기에 두 사람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연락할게요!”
“네.”
돌아가는 은하를 보던 하성은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피식 웃었다.
‘많이 컸다, 정하성. 미래의 월드스타 개인번호도 따내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김혜령은 확실히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7개의 광고 중 성사된 것은 모두 5개였다.
하나같이 하성의 이미지와 맞는 것들이었다.
아직 신인이라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하성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골라서 광고를 할 수 있었다는 건 김혜령의 능력이 좋다는 소리였다.
‘후우…… 모델 일이 쉬운 건 아니네.’
비록 TV에 서는 광고는 찍지 못했지만, 알짜배기 모델에 서면서 연일 촬영이 이어졌다.
이전 삶에서 해본 적이 있다고는 하나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힘들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잔고 덕분이다.
‘통장에 돈이 쌓이는구나.’
인터넷 뱅킹을 통해 확인한 통장의 잔고는 어느덧 5억을 넘어서고 있었다.
물론 모두 광고로 번 돈은 아니다.
광고로 번 돈은 건당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선이었다.
모두 4억 원으로 나머지 돈은 한 달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등록되면서 받은 돈이었다.
‘최저연봉이긴 해도 한 달만 뛰어도 이 정도의 돈이라니.’
한국에서 뛰었다면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세금을 생각하면 절반 정도는 못 쓴다고 생각해야겠지.’
야구선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이 경우 1년의 세금을 다음 해 5월에 한 번에 신고한다.
소득에 따라 세금의 비율이 다르지만, 하성은 최고 소득자로 분류되기에 최고 비율의 세금을 내게 된다.
‘국내와 해외의 세금신고는 따로 해야 하니. 국내는 김혜령 대표를 통해서 세무사를 구하고 미국은 돌아가는 대로 에이전시를 알아봐야겠어.’
한때 미국에 진출하려고 했던 하성이기에 세금에 대해서도 알아본 적이 있었다.
당시 들었던 말이 미국에서 발생한 소득은 미국에, 한국에서 발생한 소득은 한국에 세금을 낸다는 말이었다.
그에 따라 세무사를 이중으로 구해야 했다.
“이래저래 나가는 돈 생각하면 앞으로 더 열심히 벌어야겠네.”
세금 낼 생각을 하니 돈을 벌어야겠단 의욕이 샘솟았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이다.”
광고 스케줄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이제 부업은 그만두고 내년 시즌을 위한 훈련에 들어갈 시기였다.
‘트레이닝 센터도 괜찮은 곳을 찾았고…….’
김혜령 대표의 추천으로 강남에 위치한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했다.
비용은 제법 나갔지만, 이런 건 경비처리가 되니 아깝지 않았다.
‘훈련 스케줄을 만들어야겠어.’
트레이너와 상담을 통해 최종결정을 하겠지만, 하성은 직접 훈련 스케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풀 시즌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메이저리그의 일정은 살인적이다.
거의 매일 경기가 있고 이동 거리 역시 무척이나 길다.
‘전용기를 타고 다녀도 이동하는 거 자체에 체력이 소모된다. 당연히 한국에서의 훈련보다 강도를 높여야 해.’
메이저리그에서의 첫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게 메이저리그에서의 정착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의 분석력은 KBO를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첫 시즌을 잘 치른 루키가 다음 시즌에 난타를 당해서 마이너리그로 가는 경우도 많아.’
KBO와 메이저리그의 차이.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분석 능력이었다.
‘메이저리그는 현미경으로 선수를 파악해서 모든 걸 알아낸다. 상황에 따른 구종, 구속, 선호하는 코스 등. 거기에 타자들은 그 분석을 통해 투수를 공략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했다는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을 뛰어야 한다.
그 기간 동안 충분한 데이터가 누적이 된다면 FA 대박으로 이어진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발전해야 해.’
그러기 위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 * *
다음 날부터 하성은 본격적으로 훈련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무리를 하진 않았다.
‘천천히 몸 상태를 올린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러닝으로 웜업을 하고 스트레칭을 철저히 하는 것으로 부상 방지를 이어갔다.
그리고 트레이너를 붙여 도움을 받았다.
“그럼 여기 적힌 프로그램대로 도움을 드리면 되는 거죠?”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성이 설계한 프로그램은 몇 년 뒤 본격적으로 유행할 크로스핏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근육을 놀리는 보디빌딩식 훈련은 유연성이 떨어진다. 차라리 무산소와 유산소가 혼합된 크로스핏식이 더 어울려.’
그렇다고 순수하게 크로스핏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미국에서 제대로 뛰기 위해선 근육의 양도 늘려야 해. 거기에 몸집도 키워야 풀 시즌을 뛸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
그래서 중량 웨이트를 섞은 크로스핏 프로그램을 짰다.
하루가 다르게 신체를 괴롭히는 프로그램은 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의 몸은 빠르게 변해갔다.
훈련을 통해 흘리는 땀방울은 다음 시즌을 뛸 수 있는 양분이 될 것이다.
하성은 그것을 알기에 묵묵히 힘든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아…… 죽겠다.”
훈련을 끝내고 집에 도착한 하성은 샤워를 끝내고 방에 들어왔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잠깐 휴식을 위해 침대에 누웠다.
그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백준기였다.
‘백 기자님이 웬일로 문자를 보내셨지?’
친분은 있었지만, 연락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의아한 얼굴로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오클랜드가 휴스턴 스트릿을 트레이드한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는 대로 보내드릴게요.]휴스턴 스트릿의 트레이드가 결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