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
마운드의 빌런-4화(4/285)
마운드의 빌런 4화
개또라이.
새롭게 생긴 하성의 별명이었다.
이 별명을 지은 건 양동근과 3학년들이었다.
별명을 들은 하성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드네.”
더 마음에 드는 건 선배들의 태도였다.
“쳇!”
“또라이 새끼.”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한마디씩 툭툭 던지긴 했지만, 하성에게 직접적으로 뭐라 하진 않았다.
또라이를 상대하기에는 그들이 잃을 게 너무 많았다.
‘노린 대로 되고 있네.’
건들지 않으면 자신도 건들지 않는다.
그것이 새롭게 태어난 하성의 룰이었다.
3학년들이 무시하자 2학년들 역시 크게 하성과 적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국대회에서 기회를 얻을 일이 많지 않았으니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정하성!”
유독 한 사람.
새로 감독대행이 된 박민석이 그를 적대했다.
“넌 왜 글러브를 끼고 있지?”
“토스 훈련할 시간이라서요.”
“아니, 넌 런닝이다. 운동장 10바퀴 돌아.”
“왜죠?”
“……하! 이 새끼 정말 또라이네.”
박민석은 백우식의 후배다.
백우식이 데려와서 현재 코치를 맡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하성에게 악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 훈련은 내 영역이야. 내가 시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가 그냥 꺼지면 돼. 퇴부 원하면 언제든지 말해. 너 같은 문제아는 꺼져주는 게 나도 편하니까.”
박민석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그런 그를 노려보던 하성은 이내 몸을 돌려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저 새끼도 작업해 버려야겠어.’
하성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진 것을 모른 채, 박민석이 혀를 찼다.
“독한 새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한 달 뒤.
답은 나왔다.
[그 나물에 그 밥? 뒷돈을 챙겼던 백우식의 후배로 알려진 박 모 코치도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충격!]* * *
연달아 터진 뒷돈 사건에 야구부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야구부만이 아니라 학교 자체가 뒤집혔다.
이사회가 소집됐고 교장과 교감이 불러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허허, 결국 너희 학교 교감이 물러나기로 했구나.”
“어머, 그렇게 결정됐어요?”
“방금 결정이 됐어. 대준이 녀석이 준 문자야.”
이대준은 아버지의 친구로 학생주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덕분에 내부 정보에 빠삭할 수 있었던 하성이다.
물론 이 시절에는 듣지 못하고 먼 미래에 듣게 되지만 말이다.
“어휴……. 그럼 야구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머니가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음, 아마 올해는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겠지. 감독이 두 명이나 내쳐졌고 사실상 내부에서 야구부를 맡아서 진두지휘했던 교감도 물러나게 됐으니까. 아, 하성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곧 정상화가 될 거야.”
아버지는 흔들릴 하성을 걱정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하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차피 제 일도 아닌데요 뭐. 참, 그리고 아버지.”
“응?”
“저 국내구단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고 싶어요.”
“미국? 메이저리그를 말하는 거냐? 왜? 원래는 국내구단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자고 이야기를 했잖아.”
하성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빛을 발했다.
당연하게도 프로 진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건 당연했다.
“갑자기 국내구단이 아닌 메이저리그로 가겠다는 이유가 뭐니?”
“이번 일로 국내구단들에게 찍혔을 테니까요.”
“으음…… 하성아. 네가 실력을 보여준다면 이번 일은 가볍게 묻힐 일이다. 무엇보다 너의 실력이라면 모든 구단이…….”
“그 모든 구단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우투는 평범하지만, 150㎞ 이상을 던지는 고교투수는 많지 않잖아요?”
“그야…….”
“아버지는 국내구단에 들어가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박민석 감독의 지인들이 아직 프로 무대에 있는 거 아시잖아요.”
“으음…….”
아버지 정용호는 놀라워했다.
설마 아들이 저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자신도 저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의 예상보다 아들의 생각이 깊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는 그들을 피해 미국으로 가겠다는 거냐? 그건 도망밖에 되지 않아.”
“도망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뛰면 제 어깨가 미국에 갈 때까지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정용호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어깨가 어째서?”
“전국대회 때부터 통증이 있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정용호의 얼굴이 굳었다.
* * *
다음 날.
정용호는 하성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지인이 대학병원에 있었기에 지인찬스를 통해 빠른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받을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받고 의사와 대면했다.
결과를 본 의사 김민기의 얼굴은 오묘했다.
그 표정을 본 정용호가 물었다.
“왜? 결과가 좋지 않은가?”
“음…… 결과가 좋은 편은 아니야. 그런데 꼭 그렇게 나쁘다곤 할 순 없네.”
“그게 무슨 소리야?”
“팔꿈치에 문제가 있어. 인대가 다친 상태야. 이대로 계속 공을 던지면 부상이 악화될 거야.”
“팔꿈치 인대?! 그러면 토미 존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야?”
정용호가 놀라 물었다.
이 시절의 토미 존 수술은 위험도가 높은 편이었다.
수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선수들이 무리한 재활을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고 수술 자체가 실패할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토미 존 수술을 받는다는 건 프로 선수들에게도 은퇴를 걸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팔꿈치 인대에 문제가 있다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진정하게. 아직 그 정도로 악화가 진행되진 않았으니까.”
“그…… 그럼?”
“약물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 충분히 완치가 가능한 상태야. 주위 근육을 강화시키면 인대에 가는 데미지도 약해질 테니 악화를 막을 수 있을 거야.”
“수술은 필요 없다는 건가?”
“현재 상태라면 전혀 필요 없어. 단, 무리가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정용호의 눈이 커졌다.
아들이 했던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성아, 넌 알고 있었던 거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알고 있었냐니?”
“사실 아들 녀석이…….”
정용호가 사정을 설명하자 김민기의 눈도 커졌다.
“정말 알고 있었던 거니?”
“정확히는 몰랐어요. 사실 지금 팔꿈치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놀랐어요. 저는 어깨가 아팠거든요.”
“부상부위가 있으면 거기가 아파야 된다고 생각할 테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란다. 사람은 어디가 불편하면 그 불편한 곳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쪽에서 힘을 끌어다 쓰게 되어 있어.”
민기가 모형 관절을 가져왔다.
“팔꿈치가 아프면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어깨를 더 쓰게 되어 있단다. 그러니 어깨가 아프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는 거지.”
“그럼 제가 어깨에는 무리가 없나요?”
“염증 증세가 조금 있긴 하지만, 이건 자연 치유가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야.”
알고 있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물어봤던 건 아버지를 납득시키기 위함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겠나?”
“6개월 동안 공을 던지지 않는 게 좋아. 공을 던지면 데미지가 누적될 거고, 그렇게 되면 결국 수술을 하게 되어 있어.”
“으음…… 6개월이나 쉬어도 괜찮을까?”
이 시기에 쉬는 건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잘 생각해. 지금은 6개월만 쉬면 되지만, 나중에는 몇 년을 쉴 수도 있어. 무엇보다 토미 존 수술이 어떤 수술인지 자네도 잘 알잖는가?”
“성공이 어려운 수술이지. 성공해도 문제가 생기기 쉽고.”
“그래. 미래를 생각해서 지금 6개월을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후우…… 당장 결정하긴 어렵군. 하지만 자네의 말을 심사숙고하겠네.”
정용호와 하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섰다.
간단한 약을 처방해 주었으니 당장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방에 홀로 남은 민기는 한 번 더 차트를 확인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하성이 녀석 체중이 몇 개월 전보다 늘었네? 그중 대부분이 근육이고.”
차트를 넘겨 더 자세한 데이터를 확인했다.
“허…… 아무리 성장기라 해도 이 정도의 성장이 가능한 건가?”
가능하긴 하다.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가장 많은 시기를 18세 이후로 본다.
괜히 쇠도 씹어 먹을 나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정말 무서워지겠구나…….”
더더욱 팔을 쉬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 *
결과는 나왔다.
“학교 쪽에 말해서 휴부를 결정했다. 이유는 부상 치료고 6개월 뒤, 그러니까 3학년이 될 때부터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그럼 저는 당분간 부상 치료에 전념하면 되겠군요.”
“그래. 김 박사 말로는 팔꿈치는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는 물론 지금보다 더 완벽한 상태가 될 수 있다더구나. 그러니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도록 하자.”
“예. 그리고 아버지, 해외에 가는 건…….”
“그건 조금 더 상황을 보도록 하자. 일단 복잡한 생각은 미뤄두고 부상 치료에 전념하도록 하자.”
“네.”
아버지는 아직 미국에 대한 확신이 없으신 듯했다.
그 이유는 잘 알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겠지. 환경도 다르고. 대부분의 선수가 미국에 진출해 실패하는 이유들이 그러한 것들이니까.’
자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미국진출이 단순히 실력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건 말이다.
‘하나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보여드려야 해.’
확실히 할 수 있는 걸 보여드리면 허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대를 하신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지. 혼자 넘어가는 수밖에.’
하성이 이렇게까지 메이저리그를 고집하는 건 신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진짜 죽을 뻔했어.’
며칠 전.
하성은 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비트코인을 구매하려 했다.
이 당시 비트코인은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상황.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 미국 레딧에 접속하는 순간.
하성은 엄청난 고통과 마주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고통이 사라졌을 때 모니터에 하나의 글이 나타났었지.’
[지켜보고 있다.]그 글을 보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신의 경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하성은 비트코인 구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의 목표가 각인됐다.
‘메이저리그에 가야 해. 그러지 않으면 또 그 고통을 만끽해야 할 수도 있어.’
고통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단순히 그 하나만의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메이저리그에 간다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을 지켰던 친구.
태수는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갔다면 더 성공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같이 술을 마시다 목숨을 잃었다.
‘비록 녀석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자신을 믿어준 친구의 말.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 * *
6개월이 지났다.
하성은 그동안 부상 치료와 함께 재활훈련을 충실히 이행했다.
거기에 자신만의 루틴으로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진행하면서 6개월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성아, 너 또 몸이 커졌구나?”
“삼촌 안녕하세요.”
“허…… 이제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야. 이 정도면 야구가 아니라 프로레슬링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에이, 제가 그런 델 왜 나가요.”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몸이 커져서 그렇지. 도대체 지금 체중이 몇이야?”
“딱 90이에요.”
“키는?”
“187이요.”
“허허…….”
6개월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이었다.
신장은 2㎝가 늘어난 것에 불과하지만, 체중이 무려 15㎏이나 증가했다.
단순히 체중이 늘어난 것만이 아니라 근육도 같이 늘어나 탄탄한 몸이 완성됐다.
“팔꿈치는 어때요?”
“아아…… 내 정신 좀 봐. 완벽하다. 인대 주변에 생겼던 염증이 가라앉았고 인대도 어느 정도 회복됐어. 무엇보다 팔 주변에 근육이 붙어서 이전보다 인대에 데미지가 덜 갈 거다.”
“그럼 가볍게 캐치볼 정도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단, 무리해서는 안 된다.”
“물론이죠.”
하성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속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지만, 그걸 모르는 삼촌 민기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하성은 인사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곧장 택시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태일고로 가주세요.”
학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