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1)
마운드의 빌런-41화(41/285)
마운드의 빌런 41화
크리스는 불펜피칭을 관전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매처럼 투수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담았다.
‘몸 상태가 영 별로이군. 릴리스포인트로 끌고 오는 게 늦어.’
누군가는 성에 차지 않았고.
‘나쁘지 않아. 몸의 전체적인 밸런스가 잡혀 있다. 힘의 이동도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누군가는 마음에 들었다.
그런 부분들을 모두 체크하면서 투수들의 상태를 살폈다.
물론 이 한 번의 피칭으로 모든 게 결정되지 않는다.
여러 번의 테스트를 통해 선수의 상태를 점검하고 빅리그에서 뛸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기회는 균등하게 나누어지지 않았다.
빅리그에서 이미 뛴 경험이 있거나 연봉이 높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했다.
이는 경쟁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저기 하성이 옵니다.”
그때 캐서린이 조용히 말했다.
크리스의 시선이 캐서린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간편한 복장을 한 하성이 있었다.
반팔을 입고 있어서인지 그의 몸이 더 확연하게 보였다.
‘엄청나군.’
수많은 선수를 봐온 크리스조차 놀라게 만드는 몸 컨디션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런 몸을 만들어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좋게만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몸이 달라졌으니 거기에 맞춰 메커니즘을 바꾸지 않으면 작년과 같은 실력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지?”
“네. 많은 전문가도 그걸 걱정하고 있어요. 하성의 피지컬 변화는 너무 드라마틱했어요.”
캐서린의 말에 크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대부분 극단적인 변화를 싫어했다.
메커니즘의 변화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구단 역시 선수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싫어했었다.
거기다 하성을 우려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오늘 피칭으로 부상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겠군.”
“일단 메디컬 쪽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곤 했지만,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다는 건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있죠.”
“그의 말대로 단순한 루머였으면 좋겠군.”
캠프가 열린 첫날.
크리스는 하성과 면담을 가졌다.
거기에서 하성은 당당하게 말했다.
(루머입니다.)
그리고 제출한 한국에서의 진료기록.
거기에서도 부상에 대한 부분은 없었다.
단순 염증 반응이었고 그로 인해 치료를 했다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의구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은 애국심이 강한 국가다. 국가대표에 대한 마인드도 다른 곳과 달라. 그런 나라에서 나고 자란 하성이 어째서 국가대표를 거절한 거지?’
부상이라면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왜 거절한 것일까?
모든 게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그를 왜 이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그것에 대한 의문은 곧 풀릴 것이다.
“오케이! 언제든지 던지라고!”
포수의 외침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수를 본 크리스가 캐서린에게 물었다.
“저 친구는?”
메이저리그 캠프 초기에는 수많은 선수가 모인다.
그중에는 마이너리그에 속한 선수도 있고 외부에서 초청한 이들도 있었다.
아무리 단장이라도 인사 담당이 아니라면 모든 이들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캐서린은 달랐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대부분의 선수를 파악하고 있었다.
“작년에 더블A에서 트리플A로 올라간 잭 밀러라는 선수예요. 트리플A에선 7경기를 나가 18타수 5안타를 기록했지만, 그중 3개가 홈런일 정도로 파워가 대단한 선수예요.”
“아, 기억나는군. 캐처로서의 능력은 조금 떨어지는 친구였지?”
“네. 송구 능력은 뛰어나지만, 블로킹과 리드에서 메이저리그급은 아니에요.”
“다른 포지션으로 바꿔도 나쁘지 않겠군.”
파워를 겸비한 타자라면 팀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잭을 눈여겨보는 사이, 하성이 연습 투구를 끝냈다.
그의 곁에 선 투수코치가 말했다.
“가볍게 20구 정도 가자고.”
“예.”
첫 불펜피칭이다.
많이 던질 필요는 없었다.
컨디션을 확인하는 정도로 충분했다.
하성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굳이 처음부터 모든 걸 보여줄 필요는 없지.’
그의 계획은 차근차근 자신이 가진 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성은 와인드업과 함께 가볍게 1구를 뿌렸다.
쐐애액-!!
뻐억!!
“나이스! 아주 좋아!!”
초구에 던진 공이 미트에 박히며 굉장한 소리를 냈다.
캐서린은 밖에서 모니터를 보며 데이터를 확인했다.
“RPM은 2377이 나왔고 구속은 90마일이 찍혔어요.”
“초구부터 90마일이라. 나쁘지 않군.”
“다른 데이터도 모두 훌륭하네요.”
하성은 연달아 공을 뿌렸다.
그때마다 공의 구속과 회전수, 그리고 수직 무브먼트 등.
공의 데이터가 모니터를 통해 표시됐다.
구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수치가 표시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였다.
‘하성의 몸에는 이상이 없다는 거군.’
만약 부상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공을 던지지 못했을 거다.
‘일단 안심해도 되겠어.’
올 시즌 팀의 주요전력이 될 하성이다.
그의 몸 상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것들이 있었다.
‘과연 지난해의 같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만약 그런 활약이 가능하다면 걱정 하나를 덜 수 있다.
클로저라는 큰 짐을 말이다.
뻐어억!!
하성의 피칭 소리가 경쾌하게 불펜장을 울렸다.
* * *
하성은 불펜에서 서서히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첫 번째 투구에서는 90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지면서 몸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두 번째 피칭에서는.
뻐어억-!!
“92마일이 찍혔습니다.”
“지난번보다 구속이 오르고 있군.”
최고 구속 92마일을 찍으며 본인의 몸 상태가 좋다는 걸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정하성 선수는 신인 같지 않은 루틴을 밟아가네요. 첫 캠프인데 급하거나 느긋하지 않아요. 마치 기계처럼 루틴을 밟아가는 게 인상적이에요.”
“두 번째 불펜피칭이니 아직은 모르지. 하지만 자네 말대로라면 정말 무서운 루키가 등장한 셈일 거야.”
크리스는 아직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분명 지금까지는 좋았지만, 이런 모습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 번째 불펜피칭에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뻐어억-!!
“95마일이에요.”
“RPM은?”
“2514가 찍혔어요. 이전의 최고수치였던 2441보다 더 높아졌어요.”
“아무래도 자네의 이야기가 맞는 거 같군. 점점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어. 시범경기에 자신을 내보내 달라는 무력시위인가?”
“앞으로 예정된 불펜피칭은 3회에요. 그 이후 자체 연습경기와 시범경기로 이어지니…… 시기도 비슷하게 맞아떨어지고요.”
하성은 페이스를 시범경기에 맞춰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비어 있는 클로저에 자신을 넣으라 이건가?’
그것밖에 생각해 볼 수 없었다.
‘재밌군. 어디 그럼 시범경기에서 자네가 준비한 걸 보여달라고.’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 몸 상태를 끌어올린다면 시범경기에서 재밌는 모습이 나올 것이다.
그때가 기다려졌다.
* * *
시간이 흘러 타자들이 합류하면서 캠프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본격적인 캠프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많은 취재진이 몰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번잡했다.
취재진이 이렇게까지 몰린 건 올 시즌 오클랜드가 영입한 선수들의 면면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맷 홀리데이라는 대형타자를 영입한 것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맷! 처음으로 로키스를 떠났는데. 올해 오클랜드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겠습니까?”
“으하하! 물론이죠. 내 방망이는 로키스가 아니더라도 불을 뿜을 겁니다.”
“합류하게 된 어슬레틱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잘 모르겠군요. 이름을 모르는 선수도 많고요.”
맷 홀리데이는 슈퍼스타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로 장기계약을 맺을 게 확실시한 그런 스타.
벌써 언론에서는 보라스가 1억 달러 이상의 장기계약을 원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 슈퍼스타의 합류는 팀에 긍정적이 될 수도 있었고 부정적일 수도 있었다.
‘각 팀마다 라커룸의 분위기란 게 있다. 그런데 외부의 존재가 들어온다면 그 분위기가 깨질 수 있지. 슈퍼스타가 단숨에 라커룸의 분위기를 잡아준다면 모를까…….’
하성은 맷 홀리데이가 그럴 존재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어슬레틱스의 재정 상황을 봤을 때 맷 홀리데이라는 거물을 잡을 수 없어. 분명 올 시즌만 뛰고 떠날 게 분명하다.’
우승 도전을 위해 FA를 앞둔 선수를 데려와 싸게 쓰고 다른 팀으로 보내는 방식.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한 케이스다.
‘맷 홀리데이가 오클랜드에서는 어떤 성적을 냈었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떠오르진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긴 역사를 하성이라고 모두 알 수 없다.
거기에 어슬레틱스는 관심도 없던 구단이다.
더더욱 알기 어려웠다.
‘뭐, 나랑은 큰 상관 없지.’
포지션도 다르다.
자신과 충돌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성은 신경을 끄고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 * *
시간이 지날수록 호텔은 한산해지기 시작했다.
캠프의 시간이 흐르면서 탈락자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탈락자들은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아니라 마이너리그 스프링캠프로 내려간다.
초청선수는 어슬레틱스를 떠나 다른 팀으로 가든지 아니면 타국으로의 이적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흔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하성은 생존자 그룹에 속했다.
“여! 하성!”
그가 라커룸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하는 선수가 있었다.
잭이었다.
그 역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생존하면서 계속 호텔에 남게 되었다.
“오늘부터 시범경기인데. 어때?”
“질문이 아니라 자문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들켰나?”
“긴장한 티가 역력해서 그대로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겠는데?”
“젠장!”
잭이 머리를 쥐어 싸맸다.
“하아…… 어제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마치 고등학생 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부모님 외출하셨다고 집에 부를 때처럼 가슴이 뛴다니까?”
“고등학생……?”
“응. 왜?”
자신은 고등학생 때 야구밖에 몰랐는데.
순간 욱하는 심정으로 가라앉히고 잭에게 물병을 건넸다.
“시원하게 들이켜고 진정 좀 해. 그 상태론 오늘 기회를 잡더라도 제대로 타격이나 하겠어?”
“에휴…… 고맙다.”
“너도 알겠지만, 타격은 기술보다 멘탈이야. 침착하게 대응하면 때릴 수 있으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오케이, 오케이.”
하성은 잭을 안심시키며 피식 웃었다.
문득 자신이 1군에 처음 올라왔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도 그때는 이 녀석처럼 이랬지.’
그때의 경험이 있기에 첫 시범경기에서 그렇게 떨리진 않았다.
‘자, 쇼케이스 시간이다.’
이제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줄 시간이 다가왔다.
* * *
하성의 부모님은 TV 앞에 앉아 계셨다.
“어머어머! 경기 시작해요!”
어머니의 말과 함께 TV에서는 오클랜드의 시범경기가 중계되기 시작했다.
공중파가 아닌 지역 케이블 방송이었지만, 생중계로 아들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부모님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전국의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야구의 본고장!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를 중계하게 될 김철호입니다. 옆에는 도움 말씀에 이기태 해설위원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중계가 시작되고 카메라가 마운드를 비추었다.
마운드에는 팀의 1선발을 맡게 될 댈러스가 올라와 있었다.
“하성이는 언제쯤 나올까요?”
“글쎄. 올 시즌에도 불펜으로 뛸 가능성이 높으니 후반에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아버지의 예상은 적중했다.
어슬레틱스와 로열스의 경기는 난타전으로 이어졌다.
6회가 끝날 시점에는 양 팀 스코어가 8 대 7로 비등한 경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딱-!!] [잘 맞은 타구, 그대로 담장을 때립니다. 장타가 터지면서 1루 주자는 3루까지. 타자는 2루에 안착합니다.] [패스트볼을 결대로 밀어치면서 장타를 만들어냈어요.] [위기에 빠진 어슬레틱스, 그리고 여기에서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합니다.]마운드에 방문한 감독이 공을 받아들고 투수를 교체했다.
카메라는 불펜을 비추었고 문을 열고 한 선수가 나왔다.
[정하성 선수가 불펜을 열고 나옵니다!!]시범경기 첫 번째 하성의 등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