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3)
마운드의 빌런-43화(43/285)
마운드의 빌런 43화
시범 경기가 진행될수록 선수들의 수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빗맞은 타구! 2루수 정면으로 향합니다. 2루수 공을 잡아 유격수에게! 원아웃!! 그리고 다시 1루로, 아웃입니다. 주자 1, 3루 찬스에서 더블플레이가 나오고 마네요.] [잭 선수가 오랜 만에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섰지만, 이번에도 기회를 살리지 못합니다.]잭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시범 경기에서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좀처럼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단순히 타격이 부진한 게 아니었다.
‘주눅이 들어 있어. 그래서 본인이 가진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성이 보기에 잭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처음 경험하는 것과 이 고비를 넘기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중압감이 그의 능력을 억누르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처음 경험하는 것은 미지의 공포감을 준다.
그래서 거기에 도전할 때 평소에는 하지 않던 실수를 한다.
마지막 고비를 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만 넘으면 그 동안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다.
이런 기대감은 곧 부담감이 되어 선수를 짓누르게 된다.
‘저러한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면 빅리그에 남을 수 없어.’
트리플A와 메이저리그.
고작 하나의 단계밖에 남지 않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멘탈이 잡히지 않는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뛰긴 힘들어.’
메이저리그조차 경기의 중요함에 따라 긴장감이 다르다.
거기다 3만 관중 앞에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
이 중압감은 또 다르다.
그렇기에 애초에 멘탈이 잡히지 않은 선수를 올리지 않았다.
‘넘지 못한다면 도태된다.’
냉정한 말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 * *
시범 경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선수들이 수시로 사라졌다.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것이다.
‘슬슬 개막전 로스터에 뛸 선수만 남게 되었네.’
물론 아직 확정은 아니다.
여전히 테스트를 받는 선수도 있었다.
‘시범 경기를 완주한다고 로스터에 끝까지 남는 건 아니니까.’
물론 하성과는 관계가 없는 말이었다.
‘이미 클로저로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지.’
불펜코치의 지시가 달라졌다.
자신에게 먼저 몸을 풀게 하지 않았다.
경기 후반에 몸을 풀게 하면서 9회에 등판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하나다.
‘내가 이제 어슬레틱스의 클로저다.’
개막전에서 자신은 클로저로서 경기에 나서게 될 것이다.
계획대로 일이 풀리고 있었다.
하성은 음료를 마시면서 훈련장을 나섰다.
어슬레틱스의 스프링캠프에는 실내훈련장을 지나면 실내 배팅장이 있었다.
하성이 그곳을 지나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푸하하! 그러니까, 나한테 배팅하는 법을 알려달라고?”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자 맷 홀리데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허리를 숙이고 있는 잭이 있었다.
‘타격이 풀리지 않으니 맷에게 도움을 요청한 건가?’
가능성은 충분했다.
잭은 궁지에 몰린 상태였으니까.
어떻게든 빅리그에 남고 싶은 심정에 자존심을 굽히고 부탁했을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겠지. 나도 처음 커터를 배울 때 그랬으니까.’
처음 커터를 배운 건 외국인 용병에게서다.
트리플A에서 주로 뛰던 그는 커터를 주 무기로 사용했다.
당시 변형 패스트볼 중 하나인 커터는 한국에서도 큰 유행이었다.
하성은 그것을 꼭 배우고 싶었고 그에게 부탁했었다.
동료이기에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내가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너한테 그런 걸 왜 알려줘야 하지?”
딱 저런 대답이었다.
하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맷을 노려봤다.
사실 저게 나쁜 건 아니다.
자신이 가진 무기를 알려주는 건 그 사람의 자유다.
그걸 가지고 뭐라 할 이유는 없었다.
“아아, 실수했네. 네가 내 경쟁자가 될 일은 없지. 어차피 트리플A에서 빌빌대다가 사라질 테니까.”
저건 아니다.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 그래야 빅리그에 잠깐이라도 발을 붙일 거 아니야?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다른 일을 찾아보든가.”
저것도 아니다.
“…….”
잭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가 화를 참는 게 눈에 보였다.
볼살이 떨릴 정도였으니까.
그런 잭의 모습에 오히려 맷은 그를 비웃었다.
“뭐야? 열이라도 받는 거야? 그럼 실력을 키워. 네가 빅리거가 된다면 내가 했던 말을 사과하도록 하지.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선을 넘었다.
* * *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하성은 철칙을 하나 정했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보답하고 해를 끼친 자에게는 복수한다.
그것을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왔다.
잭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녀석 덕분에 록하운즈에 녹아들기 편했지.’
잭은 록하운즈의 분위기메이커였다.
그가 스스럼없이 다가오니 다른 동료들과도 트러블이 없었다.
‘이제는 내가 도와줄 차례지.’
사실 타격에 대해 하성은 전문적인 부분은 몰랐다.
그렇기에 관련해서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줄 수 있는 건 있었다.
“잭.”
“어, 하성.”
잭은 자신의 라커룸 앞에 앉아 있었다.
기가 죽은 모습이 역력했다.
록하운즈에서 봤던 기운 넘치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요즘 타격이 잘 맞지 않아서 걱정이 많나 보네.”
“하아…… 정말 미치겠다.”
잭은 기다렸다는 듯 속에 담아두고 있던 이야기를 털어냈다.
사람마다 속에 담아두는 게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걸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간혹 어떤 방법으로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사람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한다.
자신의 약점을 표출하는 거니 말이다.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어쩔 수 없이 털어놓게 된다.
잭이 그런 상태였다.
“너무 부담감을 느끼는 거 아니야?”
“응?”
“이제 첫 번째 캠프 합류잖아. 다음에도 기회가 올 거라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지 마.”
“그건 알지만…… 이왕 내게 찾아온 기회를 잡고 싶어.”
“그럼 거기에 맞게끔 멘탈을 잡아야지.”
“멘탈…….”
“너도 오래 야구를 해왔으니 알고 있잖아. 멘탈이 흔들리면 평소 너의 실력이 나오지 않아.”
하성의 말에 잭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타석에 서기만 하면 떨려. 상대는 빅리거란 말이야. 지금까지 상대했던 투수들과는…….”
“무슨 소리야?”
“어?”
“네가 원하는 건 빅리그에서 뛰는 거 아니었어?”
“마…… 맞지.”
“그럼 당연히 빅리거들이랑 싸우게 되지. 그것도 지금처럼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녀석들이나 유망주들이 아니라. 진정한 빅리거들과 말이야.”
하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긴 아직 메이저리그가 아니야. 여길 극복하지 못하면 넌 정말로 여기까지인 거야.”
잔인하지만 현실을 알려주었다.
* * *
캠프가 진행되면서 프런트 역시 연일 회의를 이어갔다.
“맷은 어때?”
“일단 페이스를 찾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현재 성적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그 동안 해온 게 있으니 개막전에 들어가면 잘할 것이라 기대중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건 처음이니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 올 시즌 녀석이 제대로 중심을 잡아줘야 해.”
“예. 그리고 지암비는 확실히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타격이 조금 무뎌진 감이 있습니다.”
지암비는 어슬레틱스를 대표하는 간판타자 중 한 명이다.
몸값이 올라가 다른 구단에 트레이드로 내보냈지만, 우승을 노리는 올 시즌 그를 다시 데려왔다.
어슬레틱스 입장에서는 큰 지출이었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 루키들은 어쩌고 있나?”
회의는 타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마운드는 큰 걱정이 없었다.
선발은 정해진 상태였고 클로저 역시 하성으로 낙점됐다.
불펜에 대해서는 크리스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이는 크리스의 성향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계투를 신뢰하지 않았다.
계투에서 실력 있는 투수가 있다면 선발로 돌릴 정도였다.
“일단 잭이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건가?”
“예. 이대로면 시즌 중반에 콜업을 하는 것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크리스는 명단에서 잭을 확인했다.
‘포수면서 한 방을 가지고 있어서 기대했는데. 아직 빅리그에 올라오기에는 무리였던 건가?’
이런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유독 아쉬움이 남는 건 포지션 때문이다.
‘포수에 여유가 있으면 시즌을 치르는 동안 편해질 텐데.’
아쉬웠다.
그렇기에 잭에게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차피 시범 경기도 몇 경기 남지 않았으니, 몇 번의 기회를 더 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기에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 * *
시범 경기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하성은 시범 경기 기간에 4경기에 등판해 1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시범 경기에도 맹활약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오늘 시범 경기 마지막이네.
-하성이 등판하려나?
-마지막 경기이니. 개막전 앞두고 점검차 등판하지 않겠음?
-올해 메쟈 진짜 재밌겠다.
-간 만에 메쟈 볼 생각에 벌써 떨리네.
고작 시범 경기에서의 활약이다.
본래라면 이 정도 관심을 끌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만에 등장한 한국인 메이저리거라는 점.
거기에 언론까지 가세해서 부채질을 하니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개막전을 앞둔 어슬레틱스의 마지막 시범 경기. 스코어는 4 대 7로 뒤지고 있습니다.] [음, 이런 상황이면 정하성 선수가 등판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마지막 경기이니 점검차 올라오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컨디션이 최고조인 그가 굳이 점검할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경기는 어슬레틱스가 지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6회를 넘어 후반으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한 방이 나오지 않는 이상 뒤집는 건 어려워 보였다.
딱-!!
[때렸습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 2루까지 서서 들어가면서 노아웃에 득점권에 주자가 나갑니다.]하지만 야구에는 흐름이란 게 있다.
후반에 접어들자 어슬레틱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퍽!!
“볼! 베이스 온 볼!!”
두 명의 타자가 연달아 출루에 성공했다.
[노아웃에 주자가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타석에는 맷 홀리데이가 들어섭니다! 올 시즌부터 어슬레틱스 유니폼을 입게 된 맷 홀리데이 선수, 하지만 시범 경기에선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죠?] [예. 타율과 장타율 모두 기대 이하입니다. 아직 홈런도 나오지 않고 있고요.] [일각에서는 로키스를 떠난 게 실수라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아직 시범 경기 기간이니 조금 더 두고봐야죠.]맷이 타석에 섰다.
관중들은 물론 프런트에서도 그가 여기서 한 방을 날려주길 바랐다.
비싼 돈을 썼으니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 것이다.
하지만.
딱-!!
[초구부터 때렸습니다! 하지만 먹힌 타구! 멀리 뻗지 못합니다. 중견수 앞으로 달려나와 잡아냅니다. 주자는 전혀 뛰지 못했네요.] [아-! 너무 성급한 스윙이었어요.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데 이런 스윙이라뇨.]맷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물러났다.
문제는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아~ 더럽게 안 맞네.”
아무렇지 않은 그를 보며 잭은 생각했다.
‘비록 재수없는 녀석이지만, 내게 필요한 게 저런 모습일지도 몰라.’
그때였다.
“잭! 다음 타석에 나간다.”
그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 * *
하성은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왕이면 마지막 점검을 해보고 싶은데. 기회가 오려나?’
현재 상황이면 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딱!!] [잘 때렸습니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타구, 2루 주자는 3루에 멈추면서 만루가 됩니다.] [맷도 이런 타격을 했어야 해요.]그때 안타가 나왔다.
1사에 주자는 만루.
그리고 타석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섰다.
[어슬레틱스가 여기에서 대타를 쓰네요. 마이너리거인 잭이 등장합니다. 아직 시범 경기에선 안타가 없는데, 찬스에서 그를 출전시키네요.]다소 의아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시범 경기는 어디까지나 시범 경기다.
정규 경기가 아니기에 최대한 많은 선수를 테스트한다.
물론 잭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다소 의외의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 기회겠지. 여기에서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올해 빅리그 출전은 어려울 거야.’
자신이 해준 조언이 도움이 됐을까?
하성은 차분히 그의 상태를 살폈다.
변화는 초구부터 느껴졌다.
[퍽!!] [볼!] [초구 볼입니다.]변화구에 배트가 나가지 않았다.
침착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침착함은 그의 본래 모습이었다.
“으흠.”
하성은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베스, 몸 좀 풀고 싶은데요.”
하성의 말에 불펜코치인 차베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경기에서 쉴 가능성이 높…….”
딱!!
그때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와아아아아-!!”
관중의 엄청난 환호 소리가 그라운드를 울렸다.
[넘어갔습니다!! 시범 경기 첫 안타를 그랜드슬램으로 장식합니다!!]그랜드슬램이 터진 걸 확인한 하성이 차베스에게 물었다.
“몸, 풀어도 되죠?”
“어? 어어! 물론이지!!”
* * *
[마지막 시범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정하성!!] [7회에 터진 잭 오턴의 그랜드슬램! 그리고 승리를 지킨 정하성!] [우려는 현실로? 산사나이 맷 홀리데이, 시범 경기에서 부진!!] [5경기에 등판해 2세이브 무실점 완벽투를 이어나간 정하성의 정규 시즌이 기대된다!!]메이저리그 시범 경기가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