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4)
마운드의 빌런-44화(44/285)
마운드의 빌런 44화
스프링캠프가 종료됐다.
예상대로 하성은 개막전 로스터에 합류했다.
하지만 잭은 그러지 못했다.
“크으! 맛있네.”
하성은 그런 잭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숙소 근처의 펍에서 맥주 한잔을 기울였다.
캠프 기간 동안 맥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던 잭이지만, 오늘만큼은 술이 당기는지 단번에 잔을 비웠다.
“고맙다, 하성.”
“응?”
“네 덕분에 마지막 경기에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할 수 있었어.”
“그래. 다 내 덕분이지.”
예상치 못한 대답이어서일까?
잭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그래, 맞아. 다 네 덕분이지. 어릴 때부터 멘탈에 대해 그렇게 들었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할 수 없더라.”
“뭐, 인생이 그렇지.”
“크크, 너는 무슨 애늙은이처럼 말하는군. 나이에 맞게끔 이야기를 하란 말이야.”
“그러는 너야말로 미국놈이 왜 동양인이 하는 것처럼 허리를 숙이냐?”
“아아, 브루스 리를 좋아하거든.”
참, 웃기는 이유다.
“어쨌건 이번에 뼈저리게 알게 됐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멘탈도 중요하다는 걸.”
“그걸 알면 됐네. 그리고 너무 낙담하지 마.”
“응?”
“네가 개막 로스터에 들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주전급 포수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럼 왜 내가 캠프 마지막까지 남은 거지?”
“어슬레틱스는 뎁스가 얇아. 그러니 가능성 있는 녀석들을 끝까지 보려는 거지. 너만 아니라 성적이 나쁜 다른 놈들도 마지막까지 남았잖아?”
확실히 그랬다.
어슬레틱스는 이번 시범 경기에서 다소 의아한 선택을 내렸다.
성적이 좋지 않은 유망주들을 시범 경기 끝까지 데려갔다.
이는 크리스 단장의 선택이다.
‘얇은 뎁스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다음 카드를 준비해야 해. 그걸 테스트한 거겠지.’
시범 경기를 말 그대로 테스트의 장으로 쓴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녀석들의 실력은 프런트에서도 기억해 두고 있을 가능성이 커. 그 말은 시즌 진행 도중 언제든지 올라올 수 있다는 거지.”
“넌 정말 대단하네. 그런 거까지 생각하면 지내는 거야?”
“프로는 실력이 전부지만, 거기에 플러스알파가 된다면 더 많은 찬스를 얻을 수 있으니까.”
“후우…… 나도 배워야겠어.”
그 뒤로도 두 사람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구에 대해서.
그리고 일상에 대해서.
그렇게 두 사람은 캠프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 * *
오클랜드에 돌아왔다.
하성은 이번에도 호텔을 숙소로 택했다.
바뀐 거라면 이전의 호텔이 아니란 점이다.
“역시 레지던스가 좋지.”
취사 시설도 겸비한 레지던스.
거기에 시설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물론 돈은 더 나갔지만 말이다.
“큰 지름은 돈을 벌게 해주는 의욕이 나게 해주니까!”
이 호텔을 택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호텔의 건축이 신식이란 점이다.
내부의 설비들도 모두 최신식으로 갖추어져 있었다.
특히 피트니스 센터는 웬만한 짐보다 더 많고 좋은 머신으로 채워져 있었다.
“훈련도 겸할 수 있지.”
누가 보면 훈련 중독이랄 수 있다.
하지만 하성은 잘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탑클래스 플레이어가 된다는 건 괴물이란 걸 말이다.
“올 시즌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
메이저리거로서의 진정한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3일 뒤부터 본격적인 시즌이니. 그때까지 푹 쉴까.”
하성은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때마침 ESPN을 통해 메이저리그 개막 소식이 들려왔다.
[메이저리그 개막이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 시즌 주목해야 할 선수를 점검해 볼까요?]개막을 앞둔 특별방송답게 다양한 코너가 진행됐다.
[첫 번째는 최근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선수죠? 알렉스 로드리고입니다.]화면에 알렉스의 사진이 떴다.
[최근 약물 복용을 시인한 알렉스 로드리고 선수입니다.] [아-! 이거 정말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가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는지 말이죠.]알렉스 로드리고의 약물 복용 이슈.
더 큰 충격은 그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두고 매우 우울한 날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흑인 세계에 큰 충격을 전달했다.
하지만 하성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뭐, 이건 스타트에 불과하지.”
이번 약물 파동은 의외로 조용히 넘어간다.
본인이 시인했다는 점, 그리고 과거의 행적이라는 점들이 정상참작이 됐다.
별다른 제재도 받지 않고 시즌을 치르게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알렉스 로드리고는 그게 가능한 선수였다.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그는 여전히 슈퍼스타로서 삶을 이어나가지.’
실력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워 버리는 선수.
그게 바로 알렉스 로드리고였다.
물론 그게 영원하진 않지만 말이다.
[버스터 포지의 활약도 기대됩니다. 그리고 다음 선수를 보도록 하죠.]코너는 계속 진행됐다.
다양한 선수들이 소개됐다.
그리고 중반쯤 되었을 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슈퍼루키]자신의 사진이 나왔다.
[정하성 선수입니다. 작년 확장 로스터에서 정말 대단한 활약을 선보였죠?] [그렇습니다. 정말 기대되는 루키입니다. 올 시즌 시범 경기에서는 한껏 벌크업 된 모습으로 돌아왔더군요.] [벌크업 된 모습에서 많은 전문가가 우려도 내비치지 않았습니까?] [예. 피지컬이 변하면서 정교한 피칭 메커니즘에 영향이 가지 않을까 걱정했죠.]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시범 경기 성적 5게임 2세이브 무실점 완벽투로 작년의 활약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죠.] [100마일의 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구가 되기에 더욱 무섭죠. 무엇보다 구위가 폭력적입니다. 타자들이 때려내기 어려울 지경이에요.]찬사들이 줄을 이루었다.
그만큼 빅리그에서 하성에 대한 가치는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소리다.
‘올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가면 더 많은 광고가 들어오겠지.’
부업이 늘어난다.
말인즉슨 수입이 증가한다는 소리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제법 많아질 거 같았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호.”
번호를 확인한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때마침 적절한 상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 * *
다음 날.
호텔 로비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웬일로 바로 보자는 거지?’
그녀는 J&J에이전시의 이사벨이었다.
그녀가 호텔에 찾아온 것은 당연하게도 하성을 만나기 위함이다.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두 사람이 만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음료가 두 사람 앞에 도착하자 하성이 입을 열었다.
“바쁘신 분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J&J와 계약을 맺으면 제가 얻는 이득이 뭐가 있나요?”
이사벨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성은 메이저리그에서 핫한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이미 잡아두면 대어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 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성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대답하시기 전에 기회는 한 번입니다.”
“네?”
“제게 제안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제안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다른 에이전시와 미팅을 가지면서 서로 비교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에이전시라면……?”
“설마 제게 관심 있는 에이전시가 J&J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호…… 호호! 물론 아니죠. 그럼 저도 하나만 물어볼게요.”
“얼마든지요.”
“저희가 첫 번째인가요?”
짧은 질문.
하지만 하성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다.
“작년부터 내게 꾸준히 접근한 건 당신이 유일해서 말이죠. 그 보답이라긴 뭣하지만, 첫 번째 기회를 드렸습니다.”
이 여자는 똑똑하니까, 이거면 충분하다.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건 적중했다.
“물론이죠. 최고의 조건을 제시해 드리죠.”
그녀의 눈동자가 바뀌었다.
* * *
메이저리그 선수는 바쁘다.
1년 중 절반을 경기에 참여한다.
하지만 선수를 원하는 곳은 많다.
선수가 시즌을 치르면서 그러한 연락을 모두 받을 수 있을까?
당연히 못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에이전트와 매니지먼트다.
두 회사는 차이가 분명했다.
에이전트는 선수의 성장을 돕는 역할도 병행한다.
그래서 대형 에이전트의 경우 의사를 비롯해 트레이너를 보유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유명한 에이전트인 보라스는 자신의 회사 소유의 훈련장도 보유하고 있었다.
‘J&J도 이러한 훈련장을 보유하고 있지. 시설의 규모는 보라스 코퍼레이션 수준이다.’
J&J는 규모만 놓고 보면 보라스 코퍼레이션보다 위에 있다.
하지만 보라스와 다른 점이 있었다.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한 보라스와 달리 J&J는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서포트하고 있다는 점이지.’
하나의 종목만 서포트하는 것과 여러 종목을 서포트하는 것.
당연하게도 이러한 차이는 심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하성이 고민하는 건 J&J가 가진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J&J는 글로벌컴퍼니다. EPL쪽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유럽쪽에 진출할 때는 더 도움이 돼.’
보라스 코퍼레이션이 집중하고 있는 건 야구가 인기 있는 미국과 아시아권의 국가들이었다.
반면 J&J는 유럽까지 지사가 퍼져 있기에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회사는 수도없이 많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어차피 협상 능력은 비등하다. 특히 내가 연봉 협상 권리를 얻게 되는 시점부터는 세이버매트릭스로 에이전트들도 데이터를 뽑기에 보라스나 J&J 어디를 택하더라도 연봉에 큰 문제는 없어.’
훈련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하성은 미래에 발전한 스포츠 사이언스를 이미 알고 있다.
그에 따른 훈련 프로그램을 자신이 짜서 적용시키면 된다.
J&J의 자금력이라면 자신을 서포트하기에 충분할 거다.
‘그럼 남은 건 역시 얼마나 많은 기업에 나를 소개하고 광고를 따올 수 있는지야.’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J&J가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성은 굳이 먼저 나서지 않았다.
‘결국 원하는 쪽이 조급하게 되어 있지.’
하성은 차분히 기다렸다.
* * *
메이저리그는 세계 4대 스포츠 사업 중 하나다.
당연히 개막전에는 수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에서는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인기구단들의 경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한국에선 스몰마켓 중 한곳이 관심을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전국의 야구팬 여러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LA 에인절스와의 개막전에서 인사드립니다!!]그 스몰마켓구단이란 바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였다.
한국에서 중계되는 오랜만의 개막전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크으-! 메이저리그 개막전 라이브 중계 간만이네.
-스프링캠프에서 지렸으니 이번 시즌 기대해도 되겠지?
-캠프에서 날아다녀도 정규 시즌에서는 모르는 일임.
-어차피 국대도 피한 배신자 아님?
-배신자는 무슨 ㅋㅋ KBO에서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고 했잖아?
-거기에 하성이는 WBC 안나간게 탁월한 선택이 됐지. 병역혜택도 없었는데 ㅋㅋ
한국은 WBC에서 2위를 기록.
준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병역 혜택은 따라오지 않았다.
미래와 달라진 건 없었다.
소수의 인원은 하성이 대표팀에 합류했다면 우승도 가능했을 거라 이야기한다.
물론 야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성은 WBC를 나가지 않았고 그게 현재였다.
‘오늘 경기에 나갈 수 있으려나.’
하성은 불펜에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막전 선발은 댈러스 브레이든이었다.
08시즌 5승 4패를 기록한 투수였다.
그가 개막전 선발이 됐다는 것만 보더라도 오클랜드의 선발 뎁스가 얼마나 얇은지 알 수 있었다.
‘흠.’
하성은 말 없이 경기를 지켜봤다.
클로저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경기의 상황에 따라 등판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개막전.
첫 단추를 끼우는 경기다.
하지만 어슬레틱스의 타선은 무기력했다.
‘오늘은 기회가 없겠어.’
하성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어슬레틱스는 마지막까지 1점도 내지 못하고 3 대 0이란 스코어로 개막전을 패배했다.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겠지.’
하성은 조바심 내지 않았다.
자신의 기회가 오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어슬레틱스와 에인절스의 2차전! 9회 말! 6 대 3의 스코어에서 마운드에 정하성 선수가 등판합니다!!]게임을 끝내기 위해 하성이 마운드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