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47)
마운드의 빌런-47화(47/285)
마운드의 빌런 47화
로빈슨 카노.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다.
08시즌은 커리어 로우 시즌을 보냈지만, 그는 여전히 위협적인 타자였다.
‘얘도 약쟁이네.’
하지만 그 역시 도핑에 걸린다.
현재가 아닌 미래에 말이다.
‘한참 뒤의 이야기지만, 지금 시점에 약을 빨았는지. 아닌지는 내가 모르지.’
어쨌건 조심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어쨌든 내가 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아.’
로진을 손에 묻히고 마운드에 섰다.
[선두 타자 로빈슨 카노를 상대로 어떤 공을 초구로 던질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장점인 패스트볼을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미국 언론들은 하성을 두고 패스트볼을 사랑하는 투수라고 불렀다.
그만큼 하성의 패스트볼 비율은 무척이나 높았다.
그리고 그 사실은 로빈슨 카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의 패스트볼은 위협적이다. 그리고 본인도 그게 강한 무기라는 걸 잘 알고 있어.’
카노는 생각을 정리하고 자세를 취했다.
‘초구는 패스트볼이 올 확률이 높다.’
노리는 건 패스트볼이다.
‘분석자료에 따르면 녀석의 패스트볼은 조금 더 높은 타점으로 들어온다. 위를 때려야 해.’
경기에 들어서기 전.
전력 분석팀에서 투수들에 대한 데이터를 줬다.
클로저는 고정이니 하성에 대한 데이터는 머리에 심어뒀다.
그렇기에 하성의 패스트볼이 수직 무브먼트가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하성 선수, 1구 뿌립니다!]하성이 와인드업과 함께 1구를 던졌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걸렸어!’
배트를 돌린 카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휘릭!
공이 휘어서 바깥으로 휘어나갔다.
배트의 궤적을 바꾸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100마일의 공을 때리기 위해 전력으로 돌렸던 배트다.
평소보다 가속도가 더 붙었다.
당연히 그런 배트의 궤적을 바꾸는 건 어려웠다.
후웅!!
배트가 돌아가고.
뻐억!
공이 미트에 꽂혔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에 카노 선수의 배트가 화려하게 돌아갑니다!] [패스트볼을 노린 듯했는데, 막상 들어온 공은 슬라이더였습니다.]하성은 헛스윙을 한 카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렇게 단순해 보이냐?’
카노가 패스트볼을 노릴 건 알고 있었다.
개막전 이후 그의 패스트볼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았으니까.
특히 초구 패스트볼 비중은 90퍼센트가 넘을 정도였다.
‘양키스는 최고의 팀이다. 선수는 물론 프런트 역시 마찬가지지. 나에 대한 전력 분석도 빠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였다.
초구에서 슬라이더를 택한 것은.
‘너희를 인정하니까 던진 거라고.’
하성은 레퍼토리에 변화를 주었다.
본인의 판단으로 말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크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카노는 패스트볼을 노렸어. 그것도 수직 무브먼트까지 파악해서! 그런데 하성이 허를 찔렀다. 단순히 공만 잘 던지는 게 아니라 스마트하기까지 하는군.”
“좋은 선수예요. 야구를 이해하고 있어요.”
캐서린도 동의했다.
“루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노련함이야.”
[뻐억!] [볼!] [2구 몸쪽에 붙는 패스트볼! 볼 반 개 정도 빠지면서 볼이 선언됩니다!]“이번 공도 좋았다. 몸쪽 높은 곳이면 타자의 눈과 가깝지. 슬라이더 이후에 던진 패스트볼이니 더 빠르게 느껴졌을 거야.”
공 하나하나에 의도가 숨어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루키는 그러지 못한다.
공 하나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
그런데 하성은 그걸 해내고 있었다.
[딱-!!] [3구 때렸습니다! 높이 뜬 타구! 2루수 거의 제자리에서 잡아냅니다! 원아웃!]“패스트볼을 던지고 이번에는 싱커를 던져 스윗스팟에서 어긋나게 했어.”
“패스트볼을 아끼고 브레이킹볼 위주의 승부를 했네요. 레퍼토리를 바꿨어요.”
하성의 다른 모습이 보였다.
‘빅리그에 올라온 뒤에도 아직 숨겨둔 모습이 있다. 거기에 생각하면서 던진다. 이런 녀석이 선발로 나선다면 어떨까?’
크리스는 불펜을 신용하지 않는 단장 중 한 명이다.
불펜에서 재능을 보이는 투수를 선발로 전환시키는 경우도 잦았다.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하성의 가치는 높다. 하지만 선발로 전향시킬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더 높아질 거야.’
물론 지금은 생각의 단계다.
아직 시즌 초반이니 말이다.
‘올 시즌 녀석이 어떤 피칭을 하는지 지켜보자. 시즌이 끝난 뒤 진지하게 의논해도 돼.’
* * *
원아웃.
두 번째 타자는 데릭 지터였다.
‘레전드 플레이어. 양키스의 영원한 캡틴.’
데릭 지터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라운드에서만큼은 그는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커리어를 마무리한다.
21세기 최고의 유격수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선수다.
‘아주 좋아.’
TV에서나 보던 사람이다.
그라운드에서 마주친 적은 없다.
자신의 공이 통할까?
궁금했다.
‘널 잡으면 내 가치도 올라가겠지.’
몸값도 자연스레 따라온다.
로진을 손에 묻힌 하성이 마운드에 섰다.
‘이번에도 변화구?’
트레버의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패스트볼?’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쪽 낮은 코스.’
사인의 교환이 끝났다.
‘전력으로 간다.’
1이닝에 1점 차.
그리고 상대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다.
힘을 아낄 이유는 없었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켜며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촤앗!
킥킹에 이어 발을 내딛는 스트라이드로 이어지는 순간.
“흡!!”
숨을 들이마셔 코어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콰직!!
스파이크의 징이 마운드에 박혀 하체를 단단하게 고정하는 순간.
휘릭!!
하체와 골반 그리고 상체를 차례로 회전시키며 축적된 힘을 상체로 모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코어 근육이다.
코어 근육이 약할 경우 힘의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성의 코어 근육은 힘이 지나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단련되어 있었다.
후웅-!!
이동된 힘을 손끝에 모아 한 번에 방출시켰다.
“흐앗!!”
단말마의 기합 소리와 함께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쐐애애액-!!
매섭게 날아드는 공에 지터의 배트가 돌아갔다.
딱-!!
그리고 그대로 공을 낚아챘다.
하지만 타구는 라인 바깥쪽에 떨어졌다.
“파울!!”
[초구 파울입니다!] [배트가 조금 밀렸습니다.]구속은 101마일.
초구에 이런 공을 던져도 반응하다니.
확실히 좋은 타자였다.
‘더 빠른 공은 현재로서 던질 수 없다.’
101마일은 하성의 최고 구속이었다.
이 이상 구속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가능하더라도 제구가 흔들린다.
‘이번에는 이걸로 가자고.’
하성이 먼저 사인을 냈다.
그것을 본 트레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하성 선수가 사인을 냈습니다. 어떤 공을 택했을까요?] [글쎄요. 정하성 선수가 올 시즌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패스트볼을 한 번 더 던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데요.] [과연 패스트볼을 던질지.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하성이 2구를 던졌다.
쐐애애액-!!
이번에도 바깥쪽을 파고드는 공이었다.
‘이번에도 패스트볼이냐?’
지터는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초구에 타이밍이 늦었기에 더욱 속도를 더했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들렸다.
공을 반으로 쪼개버릴 것 같은 위력이었다.
그 순간.
휘릭!
공의 궤적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지터라는 타자가 반응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스윗스팟을 살짝 벗어나 배트의 헤드 부위를 가격했다.
빠각!!
“크윽……!”
배트가 견디지 못하고 쪼개졌다.
쪼개진 배트는 그대로 마운드에 있는 하성을 향해 날아갔다.
[아! 위험합니다!]누가 보더라도 위험한 상황.
하성은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발을 들어 스파이크의 밑창으로 헤드를 막았다.
퍽!
그리고 곧장 굴러오는 타구를 잡아 1루로 뿌렸다.
퍽!
“아웃!!”
[아웃입니다! 정하성 선수! 부러진 배트를 발로 밀어내고 침착하게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아-!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침착하게 대응을 잘했어요.] [어슬레틱스 더그아웃에서 트레이너와 감독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정하성 선수의 상태를 체크해야겠죠?] [그렇습니다.]하성은 트레이너와 감독에게 아무렇지 않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괜찮아요. 밑창으로 막아서 충격은 없습니다.”
“한번 발을 내디뎌 봐.”
“정말 괜찮다니까요.”
트레이너의 말에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통증은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트레이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거 같습니다.”
“후우…… 다행이군. 앞으로는 무리하게 플레이하지 말도록 해.”
“옙.”
감독이 들어가고 하성 홀로 마운드에 남았다.
그는 로진을 손에 묻히며 대기 타석에서 걸어 나오는 알렉스 로드리고를 바라봤다.
‘어서 와라, 약쟁이.’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
그에게 딱히 원한은 없었다.
단지 자신에게 좋은 먹잇감이었을 뿐이다.
‘널 잡으면 내 가치는 올라가고…….’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하성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 구속은 99마일이 찍혔습니다!]‘그로 인해 내 몸값도 올라가겠지.’
꿈쩍도 하지 못하는 알렉스를 보며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 * *
양키스와의 1차전이 마무리됐다.
[양키스를 상대로 시즌 다섯 번째 세이브 달성에 성공하는 정하성 선수!] [오늘도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킨 수호신 정하성!] [슈퍼루키 정하성! 양키스의 슈퍼스타들을 잠재우다!]양키스를 상대로 거둔 세이브는 그 어느 때보다 큰 화제가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전국구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알렉스 로드리고와 데릭 지터를 잡아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도 이번 세이브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데릭 지터 배트 부러뜨리는 거 봤냐?
-와…… 지렸다.
-그것도 그건데. 부러진 배트 발로 막아내는 거 봄? 인간의 반사신경이 아님.
-루키 맞냐? 마운드에서 당황하지를 않아.
-ㄹㅇㅋㅋ 어떻게 배트가 날아오는데 그렇게 침착하냐?
-A-로이더 상대할 때 지리더라.
-삼구삼진으로 로이더를 잡아낸다?
이번 경기는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ESPN을 통해 전국으로 중계가 됐기 때문이다.
-어슬레틱스의 마무리 잘 던지네.
-플레이가 장난 아니더라.
-악의 제국 상대로 터프세이브 성공하다니.
-저 괴물 같은 타선을 그냥 잠재우냐?
-슈퍼루키라는 표현이 딱이네.
-이번 시즌에만 배트 벌써 두 개 부러뜨렸네.
-원조 배트 브레이커인 리베라 앞에서 배트를 부러뜨리네 ㅋㅋ
하성의 활약에 힘을 얻은 걸까?
2차전에서는 어슬레틱스의 타선이 살아났다.
딱-!!
[때렸습니다! 이번 타구 큽니다! 좌중간을 그대로 가르는 좋은 타구!!] [이 정도 타구면 2루 주자는 그냥 들어오겠어요.] [2루 주자 3루 돌아 홈으로! 가볍게 들어옵니다! 달아나는 추가점을 올리는 오클랜드!]2차전에서 7 대 2라는 스코어로 대승을 거둔 어슬레틱스는 시즌 초반의 돌풍을 이어갔다.
* * *
2차전에서 하성이 경기에 나갈 기회는 없었다.
세이브 상황이 아닌데 경기에 출전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전날 피칭의 피로를 풀고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흐암…….”
다음 날.
3차전을 앞두고 잠에서 깬 하성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여러 통의 문자가 와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문자가 눈에 띄었다.
‘이사벨이네.’
J&J에이전시의 이사벨이었다.
그녀가 보낸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계약과 관련해서 통화하고 싶어요.]내용을 확인한 하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뭐, 당연한 거겠지.’
시즌 초반 자신의 활약에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성은 다른 문자의 내용들도 확인했다.
몇 개의 문자를 넘기던 하성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오호…… 이 양반이 연락해 오네.”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문자에 적힌 내용 덕분에 상대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 스캇 보라스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중 최고의 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