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5)
마운드의 빌런-5화(5/285)
마운드의 빌런 5화
겨울이 지나면서 태일고의 재정비도 마무리됐다.
새로운 감독이 왔고 선수들은 본격적인 훈련을 이어갔다.
하지만 하성이 학교에 도착했을 때 훈련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휴가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선수들에게 일주일 동안 휴가를 준다.
‘봄 대회를 대비해서 충분한 휴식을 준다는 배려 아닌 배려였지.’
사실 이 시기에 온전히 쉴 수 있는 건 주전급 선수들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 프로 입단이 확정된 상태였다.
웬만큼 큰 사건이 터지지 않고선 입단이 엎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입단이 결정되지 않은 애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매일 나와서 훈련하지.”
하성의 시선이 운동장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아직 추운 날씨에도 땀을 흘려가며 뛰는 한 선수가 보였다.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나와서 뛰었지.’
올해 3학년에 올라가는 동기.
녀석의 이름은 한정수였다.
포지션은 내야와 포수를 오가면서 뛰었다.
우투우타로서 평범한 스탯을 보유한 선수였다.
고교야구에서 평범하다는 건 프로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S급 선수도 프로에 가면 C급 선수가 되는 일이 잦아. 그래서 프로구단에선 최소한 A급 이상의 떡밥만 수거하려고 하지.’
냉정하지만 현실이다.
그리고 한정수는 B급에 머물고 있는 선수였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하성은 터벅터벅 걸어 달리고 있는 한정수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다가오는 하성을 발견하곤 달리는 걸 서서히 멈췄다.
“아직 날도 안 풀렸는데, 뛰는 거냐?”
“매일 하는 거니까.”
덩치만큼이나 목소리도 묵직한 게 일품이다.
“넌 부상 치료 중 아니었어?”
“오늘로써 끝.”
“축하한다.”
저 말에는 거짓이나 비꼼 같은 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인생을 살아왔기에 알 수 있다.
녀석은 아직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목소리가 나올 수 없었다.
“고맙다. 그리고 고마운 김에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탁?”
“공 좀 받아주라.”
“바로 던지게? 재활치료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좀 쉬는 게 어때?”
“체크 좀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가능하겠어?”
“어렵진 않지.”
한정수가 흔쾌히 수락했다.
그 역시 혼자 훈련하는 것에 몸이 쑤시고 있었다.
공을 주고받을 상대가 생긴 것만으로도 기뻤다.
“난 금방 열 좀 올리고 올게.”
“같이하자. 쉬고 있으면 금방 식어버리거든.”
“그러든지.”
하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한정수는 그런 하성의 옆에서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하여 러닝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코스였다.
“헉…… 헉……!”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왜…… 왜 이러지? 루…… 루틴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한정수는 차분히 하성의 루틴을 관찰했다.
그리고 곧 이유를 알았다.
‘휴식시간이 거의 없어.’
스트레칭 때는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이 아예 없었다.
러닝은 천천히 뛰다가 빠르게 뛰는 걸 반복했는데, 빠르게 뛰는 시간이 더 길었다.
즉, 몸이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있었다.
‘난 이렇게 죽을 거 같은데…….’
하성은 이걸 가뿐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아니, 가뿐하게는 아니다.
“훅! 훅!”
호흡이 거칠어지고 땀을 흘렸다.
폐가 요동치는 게 보일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참고 하는 것이었다.
‘질 수 없지!’
한정수도 이를 악물고 하성을 따라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성이 약간은 놀라워했다.
‘평소 하는 걸 보면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는 거 같지 않은데. 용케 따라오네.’
인터벌 트레이닝.
일명 태릉 트레이닝이라 불리는 이 훈련법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선수들의 체력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트레이닝 방법이다.
심폐 능력에 최대한 과부하를 주어 지구력을 상승시키는 이 훈련법은 휴식시간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처음 접하는 사람이 하다 보면 구토하기 일쑤였다.
‘녀석도 힘들어하는 게 보이는데, 따라온단 말이지.’
신체 능력이 되기에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이 정도면 정신력으로 따라온다고 봐야겠지.’
과연 어디까지 따라올까?
궁금해진 하성이 속도를 높였다.
“이익!!”
한정수는 이를 악물며 그런 하성의 뒤를 따랐다.
* * *
조금 과하게 해버렸다.
“괜찮냐?”
“흐윽……! 흐윽……!”
대자로 널브러진 한정수가 숨넘어갈 듯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쩝, 이래서야 토스는 물 건너갔네.”
생각보다 잘 따라왔다.
그래서 진심이 돼버렸다.
그 증거로 하성 역시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하성은 스포츠백에서 수건과 티셔츠를 꺼내 땀을 닦고 갈아입었다.
“땀 닦고 쉬어라. 그러다 감기 걸린다.”
하성은 녀석에게 새 수건을 툭 던졌다.
“오늘은 무리일 거 같으니까. 내일 보자.”
과연 내일 나올 수 있을까?
나오지 않으면 혼자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한 하성이 짐을 챙겼다.
* * *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한 하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훅! 훅!”
그의 눈에 운동장을 도는 한정수가 보였다.
어제 자신이 했던 루틴대로 인터벌 트레이닝 방식의 러닝을 반복하고 있었다.
“제법인데?”
마음에 들었다.
하성은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곧장 녀석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30분 뒤.
두 사람이 워밍업을 마무리했다.
어제처럼 박정수가 뻗어버리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후우…….”
“오늘은 잘 버티네.”
“어제는 내가 준비가 안 됐던 거뿐이야.”
자신이 조절해서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수는 인정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다.
일종의 승부욕으로 볼 수 있으니까.
저게 자만심이 되면 독이 되지만, 승부욕으로 남으면 본인에게 도움이 될 거다.
‘뭐,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남을 도울 여유는 없다.
자신 역시 가야 할 길이 있으니까.
“슬슬 몸 풀렸으니까, 가볍게 10m부터 하자.”
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스는 가까운 거리에서 시작하다 점점 거리를 늘려간다.
그러면서 어깨와 전신의 근육을 풀어주는 과정을 거친다.
‘오랜만이네.’
무려 반년 만에 착용하는 글러브다.
전생까지 합치면 수십 년 만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때 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 간다!”
“그래.”
어느덧 준비를 끝낸 정수가 공을 던졌다.
약간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을 가볍게 잡았다.
퍽!
글러브의 볼 집에 정확히 꽂힌 공.
오랜만이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글러브를 뚫고 느껴지는 손바닥의 고통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래, 이 느낌이었지.’
글러브에 손을 넣어 공을 쥐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검지와 중지가 실밥 네 개를 교차해서 공을 잡았다.
포심이라 불리는 가장 기본적인 그립법이었다.
공을 가장 빠르게 던질 수 있는 그립법으로 투수가 가장 먼저 배우는 기본적인 그립이었다.
‘역시 몸이 기억하고 있어.’
따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몸이 기억하는 대로.
가볍게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공에 정수가 다급히 미트를 내밀었다.
뻐어억!!
“윽!”
미트를 뚫고 엄청난 통증이 손바닥을 덮쳤다.
손목까지 아플 정도의 고통에 정수가 신음을 토했다.
“야! 너무 세잖아!”
정수가 토로했지만, 하성은 씩 웃었다.
“살살 던진 거야.”
“허세는!”
정수는 믿지 않았다.
이 정도의 공이 살살 던진 거라니?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는 걸 거리가 늘어가면서 알게 됐다.
퍽!
“큭!”
뻐어억!
“윽!”
뻐어어어억!!
“악!”
거리가 늘어가도 하성의 공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구속이 빨라졌다.
무엇보다 자신의 공은 점점 포물선이 커졌는데, 하성은 계속 같은 궤적으로 날아왔다.
‘뭐…… 뭐야? 벌써 40m인데. 이 궤적이 말이 돼?’
정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40m에서 도움닫기 없이 이 정도의 궤적을 만들어낸다는 건 프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
그런데 하성은 그걸 쉽게 해내고 있었다.
‘거기다 이 속도……. 내가 잡을 수 있을까?’
손에 꽂힐 때 느낌이 근접했을 때와 전혀 달랐다.
‘녀석이 말했던 대로 가까이에서 던졌던 건 전력이 아니었던 거야.’
놀라움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이런 녀석이 마운드에서 던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해결할 시간이 곧 다가왔다.
퍽!
정수가 받은 공을 받은 하성이 말했다.
“이 정도면 몸도 풀렸고 마운드에서 던지고 싶은데. 공도 받아주라.”
그 말에 정수는 올 게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 *
처음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
정수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시야가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반드시 보호 장비를 착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공을 받는 게 익숙해진 뒤에는 연습에선 착용하지 않았다.
‘오늘은 절대 안 돼.’
하나 오늘은 달랐다.
정수는 풀 장비를 착용하고 캐처박스에 앉았다.
‘녀석이 전력으로 던지면 못 잡을 수도 있어.’
롱토스를 하면서 느꼈다.
녀석의 공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말이다.
“준비됐냐?”
“오케이! 언제든지 던져!”
정수가 대답하며 미트를 내밀었다.
코스는 정가운데.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본 하성이 로진을 손에 묻혔다.
그리고 피처 플레이트를 밟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집중해라. 방심하면 다친다.”
허세가 아님을 알기에 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집중해서 하성을 바라봤다.
“후우…….”
하성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궁금했다.
‘이 시절 내 공이 어땠지?’
너무 오래된 일이다.
빨랐다는 건 기억난다.
최고 구속이 150㎞ 초반이었던 거 같았다.
‘과연 지금 내가 던질 수 있을까?’
하성의 목표는 150㎞ 초반이었다.
체중을 불리고 근육을 늘렸다.
이전 삶보다 구속이 늘어나야 하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하성이 삶이었다.
‘너무 오래 쉬었어.’
전생에서 은퇴 후, 한참 동안 공을 쥐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던지는 공이다.
과연 150㎞가 나올지 의문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지.’
하성의 눈빛이 변했다.
고민은 사라지고 단호한 결의로 가득 찼다.
‘던져보면 답은 나온다.’
마음을 정리한 하성이 다리를 박찼다.
촤앗-!
킥킹과 함께 골반을 틀면서 상체를 틀었다.
정수의 시야에 하성의 등 번호가 보일 정도로 극단적인 와인드업이었다.
비틀렸던 상체가 스트라이드와 함께 회전했다.
콰직!
야구화가 마운드를 밟는 순간.
그의 상체의 회전에 가속이 붙었다.
휘릭!!
순식간에 상체를 회전시킨 하성이 팔을 앞으로 가져왔다.
‘조금 더……!’
릴리스포인트를 한계치까지 끌고 온 하성이 있는 힘껏 공을 챘다.
“하앗!”
기합과 함께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쐐애애애액-!!
차가운 공기를 뚫고 날아간 공이 공간을 가르고 날아왔다.
정수는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미트를 내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뻐어어억-!!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공이 미트에 빨려 들어올 듯 꽂혔다.
“윽!!”
정수는 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토했다.
‘뭐…… 뭐가 이렇게 빨라?’
정수는 고통보다 놀라움을 먼저 느꼈다.
자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구속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빠른 공을 본적이 없었다.
예상을 뛰어넘은 건 하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라고?’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메이저리그…….’
처음에는 멀게 느껴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공을 던져보고 느꼈다.
‘가능하겠어.’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의 마운드에 오르는 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