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56)
마운드의 빌런-56화(56/285)
마운드의 빌런 56화
라커룸은 선수들의 공간이다.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동료들끼리 시간을 보내면서 팀워크를 단단히 만든다.
그런 공간에 이방인들이 출몰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단장을 통해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KTVU의 찰스입니다. 오늘부터 3일간 동행하면서 여러분을 촬영하게 됐으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찰스 오랜만이에요.”
현재 라커룸의 최고참인 지암비가 찰스와 악수를 나누었다.
“지암비! 오랜만에 홈팀으로 돌아오니 어때요?”
“아주 좋습니다. 집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할까요?”
어슬레틱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지암비에 대한 인터뷰가 초반을 장식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선수들은 긴장 어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우리도 인터뷰하겠지?”
“당연히 하겠지.”
“우리가 요새 잘나가긴 하나 보다. 동행 취재라니.”
“지구 1위잖아. 당연한 거지!”
어슬레틱스는 젊은 팀이었다.
선수들도 어리고 경험이 적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언제나 초를 치는 이가 있었다.
“자식들, 인터뷰 못 해본 티를 내네.”
초를 친 이는 맷 홀리데이였다.
그의 말에 들떠 있던 선수들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어차피 지역방송국인데. 긴장할 필요 없어. 예전에 ESPN에서 인터뷰할 때는 말이야. 지금처럼 카메라가 여러 대 와서 했단 말이지.”
맷 홀리데이는 본인의 경험담을 쏟아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성은 인상을 썼다.
사실 저런 타입은 흔했다.
어떤 상황이건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는 자들.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를 깎아내리는 행동을 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다.
‘쯧, 마음에 안 드네.’
맷 홀리데이의 저런 태도는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슬레틱스의 라커룸은 현재 클럽하우스 리더가 없는 상태였다.
지암비라는 고참이 있는데, 리더가 없다는 게 이상할 수 있다.
이는 메이저리그가 경력보다는 실력 위주로 편성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암비는 분명 좋은 커리어를 쌓은 선수다.
하지만 현재 그의 성적은 클럽하우스를 휘어잡을 정도가 아니었다.
‘덕분에 홀리데이 녀석이 더 날뛰고 다닐 수 있는 거지.’
하성은 이내 신경을 껐다.
하루 이틀도 아닌 데다가 자신에게 피해를 준 게 없기 때문이다.
“맷, 인터뷰 좀 가능할까요?”
“하하! 물론이죠.”
인터뷰를 하는 그를 바라보다 하성은 고개를 돌렸다.
* * *
하성에 대한 각 팀의 분석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클로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성이 체인지업을 장착하자 그 분석은 모두 도로 아미타불이 됐다.
뻐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입니다! 정하성 선수, 체인지업에 이어 패스트볼을 던지면서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어냅니다!] [체인지업을 장착한 이후로 정하성 선수의 피칭이 한결 더 강해졌습니다.]체인지업이라는 구종의 추가로 타자들은 경우의 수를 추가해야 한다.
단지 구종 하나지만, 거기에 따른 경우의 수는 수도 없이 늘어난다.
머리가 복잡해지니 타이밍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딱!!
[때렸습니다! 하지만 높게 뜬 타구! 중견수 잡으면서 게임 끝납니다! 시즌 14번째 세이브를 달성하는 정하성 선수!!]체인지업의 장착은 하성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14번째 세이브의 달성과 함께 메이저리그 전체 1위 자리를 단단하게 지켜갔다.
이런 하성을 방송국에서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정하성 선수, 14번째 세이브 달성 축하합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찰스의 질문에 하성은 카메라를 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13번째건 14번째건 별 차이는 못 느끼겠습니다.”
“그냥 일상적이었다는 건가요?”
“예. 나가서 게임을 끝내는 게 제일이니까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하는 하성을 보며 찰스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자기 자랑을 하거나 아니면 겸손을 떨거나 할 텐데. 이 녀석은 특이하네.’
방송국 입장에서는 재밌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이런 유형을 좋아했다.
방송에 내보낼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인터뷰가 길어졌다.
“오클랜드에서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팬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공은 경기장에서 보면 더 쩌니까, 경기장에 와주세요. 일찍 오시면 제 사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푸하하! 그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요즘 구단 재정이 어렵잖아요.”
대답이 재밌었다.
루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찰스는 질문을 쏟아내며 하성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 * *
하성의 활약이 길어질수록 J&J에이전시의 이사벨은 몸이 달아올랐다.
“아우! 지난번에 도장을 찍었어야 하는데!”
“누구 말하는 거야?”
“누구긴 누구겠어. 당연히 정하성이지.”
“아아-! 그 슈퍼루키? 요즘 활약이 엄청나던데?”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짜증 나는 거잖아!”
“그러게, 왜 일찍 도장 안 찍었어? 너의 미인계로도 도장 못 찍는 녀석이 있나?”
동료인 톰의 말에 이사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이야? 내가 미인계라도 써서 선수들 계약을 따낸다는 소리야?”
“에헤이, 오해하지 말라고. 계약이 어려우면 그런 방법도 있다, 이거지.”
“너 그 입 한 번만 더 놀리면 인사과에 그대로 전달해 줄게.”
“미안, 미안.”
부리나케 도망가는 톰을 보며 이사벨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망할 새끼!”
그때였다.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리면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확인한 이사벨은 다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하성 씨!”
[내일 LA로 원정 가는데, 잠깐 얼굴 좀 볼 수 있을까요?]“무…… 물론이죠!”
[제가 머무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레스토랑 하나 있던데, 거기에서 보죠.]“알겠어요! 그럼 내일 봬요!”
전화를 끊은 이사벨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어!’
* * *
LA는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다.
덕분에 과거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LA에서 뛸 때는 마치 한국에서 뛰는 것과 같은 응원을 받았다.
한국인이 많이 살기에 한국 음식도 다양해서 살기에 편한 동네였다.
‘나중에 LA다저스로 이적할까.’
하성은 호텔에서 LA를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아니야, 세금 생각하면 캘리포니아는 아니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맞아. 어차피 시간 지나면 한류가 대세가 될 텐데.’
미래에는 한류가 전 세계적인 대세가 된다.
덕분에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북미는 어디를 가더라도 한국 음식을 찾기 쉬웠다.
‘어쨌든 일이나 하나 처리하자.’
하성은 객실을 나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이사벨을 만나서 계약을 마무리해야겠어. 이제 세금 문제도 처리해야 하고.’
하성은 J&J와 계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보라스와의 계약도 생각해 봤지만, 하성의 선택은 J&J였다.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나에 대한 PR을 하려면 글로벌한 J&J와 일을 하는 게 맞아.’
보라스코퍼레이션의 장점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건 J&J도 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스카이라운지에 도착하자 직원이 다가와 그를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룸이었기에 계약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흰색 정장을 차려입은 이사벨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화사한 미소와 함께 내미는 손을 잡은 하성도 가볍게 인사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먼저 연락 주셔서 고마워요. 언제쯤 연락 주실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간단하게 식사라도 하시겠어요?”
“코스요리로 하죠.”
“괜찮으시겠어요? 저녁에 경기 뛰셔야 할 텐데.”
“이 정도 먹는다고 경기 뛰는 데 지장 없습니다.”
“알겠어요.”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문을 닫고 나가자 이사벨이 입을 열었다.
“최근 활약 잘 보고 있어요. 아주 멋지시던데요?”
“앞으로 더 멋진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지금 성적을 유지하시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으시겠던데요?”
“그럴 계획입니다. 입에 발린 이야기는 여기까지면 됐고. 제가 이런 활약을 펼치는데도 계약 조건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하성은 J&J와 계약을 맺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순순히 계약할 생각은 없었다.
최대한 얻어낼 건 얻어낼 생각이었다.
자신이 갑이란 걸 정확히 알고 있기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원하시는 게 있나요?”
“수수료율의 조정과 세금 처리에 대한 수수료는 제외하도록 하죠.”
“그건…….”
수수료율의 조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에이전시의 주요 수입원은 선수가 계약하면서 받는 돈에 대한 수수료였다.
그 비율을 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사벨이 망설이자 하성이 그녀를 재촉했다.
“왜요? 결정이 어려운 일인가요?”
“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하기에는…….”
“그럼 시간을 드리죠.”
“정말인가요?”
“예. 물론 그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요.”
그러면서 하성의 시선이 창밖을 바라봤다.
순간 이사벨의 뇌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우리가 노린다면 보라스도 노릴 텐데.’
보라스코퍼레이션은 LA에 있다.
왜 하필 여기에서 만나자고 한 걸까?
다른 장소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하성은 콕 집어서 LA에 원정을 올 때 연락을 해왔다.
‘이전부터 느꼈지만 이 남자…… 보통이 아니야.’
자신과 이야기가 틀어지면 하성은 보라스코퍼레이션에 갈 것이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자 시간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이사벨은 곧장 스마트폰을 집으며 말했다.
“10분만 시간을 주세요.”
“뭐, 그 정도는 식사를 기다리면 되겠네요.”
“감사해요.”
이사벨이 룸을 나가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행동을 보며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눈치가 빠른 여자라서 다행이군.”
자신의 요구조건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몸값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니 말이다.
‘이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그때 문이 열리며 웨이터가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파트너분은……?”
“잠깐 전화하러 갔어요. 세팅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졌다.
하성은 그것들을 먹으며 이사벨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 * *
에인절스와의 3연전에서 하성은 마지막 경기에 등판해 1세이브를 추가했다.
[슈퍼루키 정하성 시즌 15번째 세이브 달성!] [15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 달성! 메이저리그 기록까지 앞으로 6경기만 남았다!] [현재 페이스대로 간다면 시즌 종료까지 60세이브 이상을 기록할 수도!] [메이저리그 역대 세이브 기록에 도전하는 정하성!]하성에 대한 기사는 언제나 극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대부분 경기 결과에 대한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정하성, 글로벌 에이전시인 J&J에이전시와 계약 체결!] [글로벌 에이전시와 계약하면서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정하성!]J&J에이전시와의 계약 체결 소식이 한국에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