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58)
마운드의 빌런-58화(58/285)
마운드의 빌런 58화
아놀드 제임스.
현재 그는 더블A 락하운즈를 떠나 라스베이거스에 가 있었다.
“아놀드 이 친구를 하성이 추천했다고?”
“네. 자신이 락하운즈에 있는 동안 가장 좋은 타자였다고 기억한대요.”
“추천이라기보다는 지나가듯이 말한 건가?”
“정확히는 제가 물어봤어요. 작년까지 락하운즈에서 뛰었으니, 괜찮은 선수를 아냐고요.”
“그런 와중에 나온 말이군.”
크리스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거기에는 트리플A에 소속되어 있는 타자들에 대한 데이터가 표시되고 있었다.
“확실히 아놀드 이 친구의 지표가 좋군. 작년보다 타율, OPS, SLG 등. 모든 지표가 상승하고 있어.”
“무엇보다 삼진 비율이 내려가고 있어요.”
“더블A에서 트리플A로 올라왔는데, 삼진 비율이 내려갔다고?”
“네. 특히 헛스윙 비율이 낮아요. BABIP도 높아서 타격의 질도 좋고요.”
“수비는?”
“외야를 맡고 있지만, 1루 수비도 경험이 있어서 테스트해 볼 가치는 있어요. 무엇보다 지암비의 1루 수비가 나쁜 편이 아니라서 DH로 돌려도 되고요.”
수비에는 여러 대안이 있었다.
하지만 타격은 딱 막혀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콜업을 한다면 타격에 재능이 있는 선수를 올려야 했다.
“흠, 일단 이 선수도 후보에 넣도록 하지. 그 외에 후보는 또 누가 있지?”
“다른 선수로는…….”
두 사람은 세이버메트릭스를 적용해 후보 선수를 뽑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 *
타격이 풀리지 않으면 단순히 점수만 내지 못하는 게 아니다.
선수도 사람이기에 한 가지가 풀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다른 쪽도 풀리지 않게 된다.
딱!!
[때렸습니다! 타구, 유격수 방향으로!]평범한 그라운드볼이었다.
잡아서 1루로 던지면 아웃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유격수 올랜도가 공을 맨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휘릭!
[아-! 올랜도 선수 공을 저글합니다!]저글링.
공을 잡아 드는 동작에서 서커스에 나오는 것처럼 공을 던졌다가 다시 잡는 동작을 말한다.
불필요한 동작이기에 당연하게도 송구를 하는 데 더 시간이 걸린다.
올랜도가 급히 1루로 공을 던졌지만, 타자는 전력 질주로 베이스를 통과한 뒤였다.
“세이프!!”
[아-! 세이프입니다! 올랜도 선수, 어처구니없는 실책이 나왔습니다!] [최근 타격이 부진하니 수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네요.]다른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플레이가 산만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실책은 투수들에게도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으아…… 우리 타자들 왜 이래? 이제 수비까지 걱정해야 되는 거야?”
불펜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베일리가 머리를 쥐어 싸맸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니 이런 장면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듯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저런 플레이가 계속 나오는 게 아니잖아.”
“아니, 하성아. 너는 신경도 안 쓰이는 거야? 저런 타구를 놓칠 정도면 공에 맞기만 해도 안타가 될 수 있는 거잖아.”
“말했잖아. 자주 나오는 게 아니라고.”
하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쟤들도 사람이니까. 한 번씩 에러를 범하는 거지. 매번 저런 플레이가 나올 거라 생각하면 네 공이나 제대로 던질 수 있겠어?”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해야 될 건 우리의 공을 던지는 거야. 괜히 깊게 생각하지마.”
“으음…….”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투수코치 산체스가 눈을 빛냈다.
‘반대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베일리는 미국 나이로 25살, 하성은 19살이었다.
하성이 베일리에게 조언할 것이 아니라 반대가 되어야 했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19살이 아니라 무슨 30대 베테랑을 보는 기분이야.’
노련한 베테랑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녀석이 있으니 흔들리는 분위기가 잡혀가는 거 같군.’
하성의 존재감은 루키의 것이 아니었다.
베일리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의 말은 다른 불펜투수들도 들을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말에 흔들리는 멘탈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슬레틱스는 이날 경기에도 패배하며 시즌 첫 4연패를 기록했다.
* * *
호텔로 돌아온 하성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자신의 올 시즌 성적을 확인했다.
“리베라와 동률이라…….”
하성이 정체되어 있는 사이 리베라도 19개의 세이브를 달성했다.
공동 1위를 달리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멈춰 있는다고 해서 다른 애들도 멈춰 있는 건 아니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바심을 느낀다면 오히려 손해다.
최대한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나저나 우리 팀 프런트는 무슨 생각인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구렁텅이로 빠질 텐데.”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도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클럽하우스 리더가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분란이라도 발생하면 팀이 분열될 수 있었다.
팀 스포츠에서 분열만큼 무서운 게 없다.
그래서 클럽하우스 리더가 중요한 거다.
“내가 나설 생각은 없지만…….”
클럽하우스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제 19살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쩝, 알아서 되겠지. 그것보다 5월도 이제 몇 경기 안 남았네.”
어느덧 5월 경기도 3경기만이 남았다.
“한 경기라도 나가고 싶은데.”
이왕이면 20세이브를 채우고 싶었다.
하성이 욕심을 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왕이면 딱 떨어지는 게 보기도 좋잖아?”
1개를 더 추가하면 세이브는 딱 20개가 된다.
왜인지 그럼 편안해질 거 같았다.
하성은 5월의 마지막 상대를 체크했다.
“그나마 좀 널널한 애들이랑 만나네.”
상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였다.
* * *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이상한 징크스가 생겼다.
짝수 해에는 강하지만, 홀수 해에는 약한 팀이 된 것이다.
그리고 2009년에도 큰 돌풍을 일으키지 못한 채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이트삭스와 어슬레틱스의 경기가 투수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양 팀 모두 타선이 이렇다 할 공격의 물꼬를 트지 못하고 있네요.] [아무래도 최근 타선이 슬럼프에 빠진 이유겠죠?] [그렇습니다. 한 점 차 게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이네요.]두 팀의 경기는 투수전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성은 불펜에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 점 차 경기라면 8회에나 기회가 찾아오겠네.’
현재 팀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리고 있는 건 지명타자인 잭 커스트였다.
다른 타자들의 홈런도 형편없었지만, 그나마 커스트가 장타율이 제일 높은 편이었다.
한 방을 기대한다면 어슬레틱스의 타선에는 그밖에 없었다.
산체스 코치도 같은 생각인 듯, 7회 말에 하성을 콜했다.
“하성, 가볍게 몸 풀자.”
“예.”
이미 선발투수는 마운드를 내려간 상황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미리 몸을 풀어야 했다.
하성은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의 긴장을 풀고 공을 던지며 웜업을 했다.
[정하성 선수가 몸을 풀기 시작하네요.] [경기가 후반으로 진행되니,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게 몸을 푸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오늘 정하성 선수가 등판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최근 어슬레틱스 팬들은 물론 한국 팬들도 하성의 등판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 간절함이 얼마나 심했냐면 하성이 몸을 푸는 모습만 봐도 커뮤니티가 들썩일 정도였다.
-하성이 몸 푼다!!
-등판하나?! 진짜 하나?!
-아…… 하성이 투구 좀 보자 ㅠㅠ
-레알 개답답하다.
-어떻게 타선이 이렇게까지 막히냐?
-5월 가기 전에 20개는 채우자!!
-제발 좀 공격 좀 풀려라!
이런 팬들의 간절함과 달리 어슬레틱스의 8회 말 공격은 답답하게 시작했다.
“아웃!!”
[4구를 때렸지만, 중견수가 거의 제 자리에서 잡아냅니다. 원아웃!]아웃 카운트가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탄식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두 번째 타자인 커스트가 타석에 들어섰다.
-커스트 뜬금포 한 번씩 나오지 않나?
-그나마 얘가 공갈포는 잘 때리지.
-어슬레틱스 홈런 1위가 얘임 ㅋㅋ
-지암비나 홀리데이는 뭐하냐?
-걔네들 어차피 똑딱이임 ㅅㄱ
어슬레틱스 팬들은 지암비와 홀리데이에게 기대를 버렸다.
그만큼 그들의 타격은 최근 형편없다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딱-!!
[때렸습니다!!]커스트가 3구를 후려쳤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큼지막한 타구가 외야로 날아갔다.
-가냐?! 진짜 가냐?
-이건 넘어갔다!!
팬들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타구였다.
[넘어갔습니다!! 드디어 점수를 뽑아내는 어슬레틱스!]스코어가 1 대 0이 되었다.
* * *
얼마 만의 리드인지 알 수 없다.
너무 오랜만의 시간이기에 팬들의 환호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와아아아아-!!”
“정! 정! 정! 정!!”
오클랜드 콜로세움이 들썩였다.
팬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하성의 테마가 울려 퍼졌다.
[정하성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19경기 연속 세이브, 성공률 100퍼센트를 달리는 정하성 선수의 등판은 오클랜드의 승리 패턴 중 하나죠.] [오늘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한다면 다시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에 오르게 됩니다!]하성의 등판에 중계진도 흥분한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운드에 오른 하성은 연습 투구를 하며 몸 상태를 풀었다.
단지 연습 투구임에도 불구하고 공 하나하나를 던질 때마다 팬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너만 믿는다!”
“게임 끝내버려!!”
“너 보러 며칠이나 기다렸는지 알아?!”
팬들의 환호성에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토니는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
‘긴장은커녕 아예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나 보군.’
타인이 보더라도 하성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주위는 보이지 않고 오직 미트에만 집중하면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연습 투구가 끝나자 토니가 그에게 다가갔다.
할 말은 많지 않았다.
“너만 믿는다.”
이미 하성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클로저였다.
이 말을 제외한 어떤 말도 필요 없었다.
“예.”
그리고 그 어떤 대답보다 듬직한 대답을 들으며 토니가 벤치로 돌아갔다.
* * *
[정하성 선수,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합니다.] [오랜만의 등판입니다. 첫 타자를 잘 잡아내야 합니다.] [사인을 교환한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합니다.]하성이 와인드업과 함께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초구 던집니다!]휘릭!!
비틀었던 몸을 풀면서 있는 힘껏 초구를 뿌렸다.
쐐애애액-!!
빠르게 공간을 가로지른 공에 타자가 반응했다.
하체를 돌리며 있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배트의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 공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 멈춘 것처럼 보였다.
‘체인지……!’
그것을 본 타자가 급히 배트를 멈추려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속도가 붙은 상태였다.
후웅!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퍽!
공이 미트에 들어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체인지업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어버리는 정하성 선수!] [오랜만의 등판이었던지라 당연히 초구는 패스트볼을 택할 거라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허를 찌르네요!]하성의 허를 찌르는 1구에 타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등판한 하성의 강력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2구 던집니다!]쐐애애액-!
후웅!!
뻐억!
“스윙! 스트라이크 투!!”
[2구 역시 헛스윙! 이번에는 횡으로 크게 휘어져 나가는 브레이킹볼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합니다!] [1구와 2구 모두 변화구를 던지면서 타자를 농락하고 있습니다!] [유리한 카운트를 잡아낸 정하성 선수, 과연 3구는 어떤 공을 던질지! 와인드업을 합니다!]와인드업과 함께 3구를 뿌렸다.
유리한 볼카운트였기에 다시 변화구를 던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하성의 선택은.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100마일의 패스트볼로 빠르게 타자를 돌려세웁니다!]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 패스트볼이었다.
[오랜만의 등판에도 침착함이 돋보이는 정하성 선수! 대단한 피칭을 이어갑니다!]이날.
하성은 20번째 세이브를 달성하며 다시금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