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6)
마운드의 빌런-6화(6/285)
마운드의 빌런 6화
새로운 감독.
새로운 체재.
태일고 야구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게 있었다.
딱-!!
“와아!!”
“빠졌다!”
“달려! 달려!!”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그라운드.
봄이 되어 춘계대회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선수가 시합에 나섰지만, 단 한 사람.
하성만이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날 완벽히 제외하고 있군.’
감독이 새로 왔지만, 하성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는 바뀌지 않았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전의 감독들과 커넥션이 있는 놈이든, 아니면 학교에서 나를 아예 배제시키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
후자에 더 무게가 실렸다.
자신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죄를 저질렀으니까.
‘그렇다고 야구부에서 퇴부시키지 않는 건, 만약을 위해서인가?’
졸업생이 프로구단에 입단하면 그것만으로 학교는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게 된다.
프로 선수를 배출해 냈다는 명예.
그리고 그 사실로 인해 얻는 수익이 대단했다.
‘프로 선수가 되면 계약금의 일정 퍼센트를 기부하게끔 되어 있지. 그걸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최고 구속 150㎞를 던지는 하성은 프로 입단이 확실시됐다.
단순히 입단이 아니라 1지명이냐 2지명이냐를 고민해야 할 선수였다.
그런 하성이 받을 계약금은 몇억에 달한다.
그것의 몇 퍼센트라면 적은 돈이 아니다.
‘경기에 내보내진 않는데 실리는 챙기겠다 이거지.’
하성의 입술이 비틀렸다.
‘세상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본 나에게 이딴 방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다니.’
영화의 명대사가 떠올랐다.
상대가 비록 자신이 회귀했다는 걸 모르지만 상관없다.
자신은 회귀했고 이런 눈에 보이는 짓에 그냥 넘어갈 정도로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 두고 보자고.’
경기하는 동기들을 바라보며 하성은 이를 갈았다.
* * *
아버지가 학교를 찾는 일이 잦았다.
“도대체 왜 우리 아들을 내보내지 않는 겁니까?!”
이유는 당연히 하성 때문이다.
아버지의 분노에 새로운 감독 이기성이 대답했다.
“하성은 부상으로 인해 동계전지훈련에 빠졌습니다. 당시 전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수비수도 아닌 투수가 전술이 뭐가 있습니까? 마운드에서 공을 잘 던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야구부도 어쨌든 교육의 일환이기에 선수들 간의…….”
“그놈의 교육의 일환! 그런 양반들이 뒷돈을 그리 받습니까?!”
“제 전임자들은 모두 책임지고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재판이 진행 중이고요. 아버님은 이보다 더한 처벌이 필요하신가 보군요.”
“그…… 그건…….”
직접적인 협박은 아니다.
하지만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선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기선을 잡은 이기성이 말을 이어나갔다.
“어쨌든 선수 기용은 감독인 제 권한입니다. 그게 불만이시더라도 이렇게 찾아오시면 다른 선수들 혹은 학부모들이 봤을 때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결국 아드님이 기용되지 않으시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저에게 압력을 가하시는 게 아니십니까?”
“이게 압력입니까?!”
“그럼 선수 기용은 저에게 맡겨주시죠. 제 권한이니까요. 반복된 이야기 계속되면 저는 압력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전 전임감독들과 같은 길을 걷기 싫습니다.”
전임감독이란 말에 아버지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들이 왜 학교에서 나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이기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럼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 * *
그날 밤.
아버지는 홀로 주방에서 소주를 들이켜고 계셨다.
“미안하다……. 아들, 정말 미안하다.”
이전의 삶에선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다.
뭐가 저리 미안하실까?
“아비가 힘이 너무 없구나…….”
그 말과 함께 아버지가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그것을 듣자 화가 치밀었다.
‘내 가족을 건들다니.’
전생에 아버지는 하성이 은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기에 돌아왔을 때 두 분이 온전한 모습에 기뻤다.
그런데 아버지를 슬프게 만들다니.
‘조용히 떠나려고 했더니…….’
자신을 건들지 않으면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그래도 모교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가족을 건든 이상 그들은 선을 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해주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하성은 때를 기다렸다.
‘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엿을 먹일 방법은 많지 않아.’
프로가 된 뒤에는 늦다.
그때면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남는다 해도 고작 한두 명이다.
‘지금 하는 게 가장 베스트다.’
어떻게 엿을 먹일 것인가.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성은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여름쯤 되면 애들도 지쳐 나가떨어진다. 전국대회가 연속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선수의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주전급은 거의 매 경기에 나선다.
프로 지명이 확실히 되더라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일종의 관습이었다.
그로 인해 프로구단과 트러블이 생길 때도 있었다.
확실한 건 여름대회부터는 주전 멤버에 펑크가 생긴다는 점이다.
“악!!”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던 선수가 갑자기 쓰러졌다.
타구가 그대로 선수의 정강이를 때리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지금 마운드에 있는 선수가 선발투수라는 점.
그리고 지금 대회가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결승전이란 사실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감독은 벤치를 힐끔 바라봤다.
하성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이내 외면했다.
그러고는 불펜에서 계투들을 투입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성은 생각했다.
‘기회가 찾아왔어.’
이날.
태일고는 승리를 차지하면서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출혈이 심했다.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졌고 엔트리에 들어 있는 모든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반면 상대인 대성고는 14 대 1이란 압도적인 스코어로 결승전에 도달했다.
“젠장…….”
소식을 전해 받은 이기성이 이를 악물었다.
‘결승전이 당장 내일인데.’
대통령배는 전국대회에서 가장 짧은 일정으로 치러지는 경기다.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연달아 치러지는 이유였다.
‘젠장…….’
이기성은 선수 명단을 확인했다.
그중에 유일하게 별표가 되어 있는 선수가 있었다.
정하성.
팀 내 최고 투수다.
하지만 학교의 명예를 실추한 이유로 권력층에 제대로 찍혔다.
그러한 이유가 아니었다면 오늘 경기도 녀석이 나갔을 거다.
‘운도 좋은 녀석이군.’
이제 방법이 없다.
대통령배는 우승해야 하는 대회.
그것도 상대인 대성고는 태일고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만약 진다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온다.
‘보고는 나중에 올리도록 하고.’
당장 보고를 올리면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지만, 거절당하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저지르고 볼 생각이었다.
성적이 나오면 어떻게든 무마가 될 것이다.
“정하성, 내일 선발로 나선다.”
이기성의 말에 하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웅성거리는 버스 안에서 하성은 남몰래 조용히 웃었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필요하지만, 내 복수는 일 년도 필요하지 않지.’
복수의 때가 도래했다.
* * *
하성은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교대회에서 내 공을 때릴 수 있는 녀석은 하나 혹은 둘 정도밖에 없어.’
당장 프로에 가도 통할 녀석들이다.
‘예전이었다면 말이지.’
이는 회귀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회귀를 하고 하성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체중이 증가하고 근육이 붙었다.
거기에 팔꿈치 인대에 가지고 있던 시한폭탄을 제거했다.
무엇보다 1년이란 시간을 통으로 쉬었다.
‘혹사됐던 몸이 완벽하게 치유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어.’
이제 그 완벽한 상태로 공을 던질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인간이 되었는지 정확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포수는 저 녀석이면 되는 거지?”
“예.”
이기성의 말에 하성의 시선이 벤치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정수에게 향했다.
녀석은 포수 중에서 주전이 아니다.
그럼에도 오늘 경기에서 주전으로 나가는 건 하성의 요청이었다.
“누가 잡건 무슨 상관이라고.”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사실 이기성도 정수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전날 주전 포수였던 최광수가 너무 많은 공을 받았다.
무리한 상황에서 내보낼 생각은 없었기에 정수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최선을 다해라. 대외적으로 넌 부상으로 알려졌어. 그런 네가 복귀전에서 부진하면 프로 지명에도 영향이 갈 거야. 잘 기억해 둬.”
이기성은 혹시나 하성이 이상한 짓을 할까 협박식으로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하성의 대답에 이기성이 미소를 지었다.
‘엿을 그렇게 먹이면 재밌겠어?’
하성은 마운드에 올랐다.
가볍게 연습 투구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하성의 모습에 프로구단 관계자들이 눈을 빛냈다.
“예상대로 정하성이 올라왔네.”
“그럴 수밖에 없지. 어제 경기에서 그렇게 불펜을 소모시켰는데.”
“그동안 부상 때문에 올라오지 못했다던데. 괜찮을까?”
“뭐, 우리에게는 다행이지.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볼 수 있게 됐으니까.”
1차 드래프트가 끝난 프로구단들은 이제 2차 드래프트에 뽑힐 옥석들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하성의 등판은 그들에게 희소식이었다.
부상에서 복귀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확인하고 드래프트에 임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연습 투구는 나쁘지 않은데?”
“135 정도 나오네.”
“실전에선 140은 가볍게 찍겠는데?”
연습 투구에서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스카우터는 부정적이었다.
“몸이 저렇게 커졌는데, 구속 증가가 거의 없잖아.”
“부상의 여파가 있나 본데?”
“1차에서 뽑지 않길 잘했어.”
하성은 원래 각 구단의 1차 드래프트 명단에 있던 선수다.
하지만 부상 이슈.
그것도 팔꿈치에 있다는 소식은 치명적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모든 구단이 그를 1차 지명에서 외면했다.
그만큼 이 시기 팔꿈치 부상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과연 어떻게 될까?”
하성의 복귀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건 프로구단 스카우터만이 아니었다.
후줄근한 복장에 피곤한 얼굴을 한 40대 중반의 사내가 수첩에 무언가를 기계적으로 써내려갔다.
‘정하성의 포텐셜은 국내용이 아니야.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충분히 통할 선수지. 그런 녀석이 부상이라니.’
사내의 이름은 백준기.
메이저리그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기자로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기자였다.
그의 메이저리그에 대한 지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집착이라 불릴 정도로 정보를 수집하고 모았다.
그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스카우터들의 말을 수첩에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체중이 저렇게 증가했는데, 구속은 이전과 크게 다를 게 없어. 그럼 팔꿈치에 문제가 생겨서 구속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걸 근육으로 보호하는 형태로 가면서 구속을 지킨 거겠지.’
연습 투구를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가설이었다.
그때 연습 투구가 마무리됐다.
공은 내야 수비들에게 던져지고 타석으로 타자가 걸어 들어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타자가 구심에게 인사하고 타석에 섰다.
그사이 공은 하성에게 돌아갔다.
로진을 손에 묻힌 하성이 마운드에 섰다.
그가 피처 플레이트를 밟자 구심이 손을 뻗었다.
“플레이볼!”
하성의 복귀전이 시작됐다.
정수는 아주 간단하게 수신호를 보냈다.
‘사인이 너무 간단하군. 경기에 들어오기 전부터 맞췄다는 소리야. 그럼 패스트볼일 확률이 높아. 이거 너무 뻔히 보이는데?’
백준기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리고 이는 타자도 읽어낼 수 있었다.
‘복귀하는 놈들의 선택은 대부분 패스트볼이지. 사인도 간단했으니까 분명할 거야.’
오는 공이 뭔지 알면 쳐내는 건 어렵지 않다.
자신감이 높아진 타자가 배터박스에서 뒤로 물러섰다.
빠른 공을 상대하기 위한 물러섬이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런 타자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를 눈물 흘리게 만들었지.’
그의 시선은 이기성에게 향해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그를 보자 분노가 치밀었다.
‘이번에는 네 차례야.’
이제 그 분노를 방출할 차례였다.
촤앗-!!
다리를 차올린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스트라이드와 함께 있는 힘껏 1구를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단말마의 기합 소리와 함께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바람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공은 순식간에 공간을 꿰뚫어 정수의 미트에 꽂혔다.
퍼어어어엉-!!
마치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이 그라운드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 적막을 깬 것은 정수였다.
“저기, 판정은……?”
“어? 어어. 스…… 스트라이크!!”
정수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구심이 다급히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적막이 흐르던 경기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스…… 스피드건!”
“속도 몇이야?!”
몇몇 스카우터가 외쳤다.
백준기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미처 스피드건을 꺼내지 못한 탓이다.
그때 한 스카우터가 말했다.
“배…… 백육십…….”
“뭐?”
그는 대답 대신 상사에게 스피드건을 건넸다.
스피드건의 모니터에 찍힌 숫자는 [160㎞]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