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65)
마운드의 빌런-65화(65/285)
마운드의 빌런 65화
전반기 38세이브.
불과 1년 전에 세워진 이 기록에 하성은 도전하고 있었다.
[올 시즌 데뷔한 정하성 선수는 정말 압도적인 모습으로 어슬레틱스의 뒷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38경기에 등판해 1승 37세이브를 거두는 동안 블론세이브는 제로입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전체로 놓고 보더라도 블론세이브가 없는 마무리투수는 정하성 선수가 유일하죠?]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평균자책점이 0점대라는 것도 엄청납니다.]미래에는 올드 스탯이 되는 평균자책점.
하지만 2000년대에는 평균자책점이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스탯이었다.
거기에 평균자책점 0점대는 미래에도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성적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0점대라니.
현대야구에서 있을 수 없는 성적이었으니 말이다.
[정하성 선수, 사인을 교환하고 1구 던집니다.]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킥킹을 높게 차올리는 정하성 선수, 투구 폼에서도 그의 와일드함이 드러납니다.] [국내의 다른 투수들과 달리 정하성 선수의 투구 폼은 무척이나 다이나믹합니다.]하성과 국내 투수들의 차이점은 와인드업에서부터 드러난다.
대부분 국내 투수는 정밀한 기계처럼 똑같은 투구 폼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그것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선수의 특성보다는 이미 짜인 매뉴얼대로 가르치는 걸 선호했다.
이미 안전하다는 게 입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성장할 수 있다.
누구든지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보는 게 불가능하다.
반면 하성의 투구 폼은 그에게 딱 맞는 형태였다.
덕분에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할 수 있었다.
콰직!!
스트라이드와 함께 마운드에 징이 박혔다.
하성은 하체를 돌리며 골반을 열고 힘을 이동시켰다.
후웅!!
엄청난 회전에너지가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흡!!”
쐐애애액-!
[기합과 함께 1구 뿌립니다!]손을 떠난 공이 타자의 몸쪽을 파고들었다.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다 손목을 비틀어 회전을 멈추었다.
거의 동시에 엉덩이를 뒤로 빼내며 몸에 붙는 공을 피했다.
그건 실수였다.
휘릭!
타자가 엉덩이를 뒤로 빼는 순간.
공의 궤적이 바뀌면서 존 안으로 파고들었다.
뻐억!
“스트라이크!!”
공이 미트에 꽂히며 굉음을 토해냈다.
뒤이어 구심의 화려한 동작과 함께 손이 올라갔다.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96마일의 컷패스트볼이 작렬합니다!] [타자는 너무 깊다 생각하고 엉덩이를 뺐지만, 마지막 순간에 변화를 일으키면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갔어요.] [정하성 선수의 커터는 정말 대단하네요.] [일반적인 컷패스트볼은 타자가 구종을 인지하는 구간에서 변화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정하성 선수의 것은 마리아노 리베라의 것과 흡사하죠.]커터를 아트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마리아노 리베라.
그의 커터는 마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공이었다.
덕분에 각종 프로그램에서 특집으로 그의 커터에 대한 분석을 쏟아냈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가 변화하는 건 다른 투수들보다 더 늦게 변화한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던지는 그립도 달라서 일반적인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니 타자들 입장에선 패스트볼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죠.]하성의 커터가 위력적인 이유는 패스트볼과 분간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은 또 있었다.
[정하성 선수 2구 던집니다.]이전과 똑같은 투구 폼에서 2구를 던졌다.
“흡!!”
쐐애애액-!
기합 소리를 터뜨리며 날아간 공이 매섭게 미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타자는 이번에야말로 때리겠다는 듯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후웅!!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지만, 하성이 던진 공은 다가오지 않았다.
‘젠……장!’
어떻게든 배트의 스윙 속도를 늦추려 했지만, 가속도가 붙은 배트를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이내 배트가 모두 회전한 뒤에야 공이 홈플레이트를 지나 힘없이 미트에 박혔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2구 87마일의 체인지업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어버리는 정하성 선수!] [이것이야말로 체인지업의 묘미죠. 정말 정하성 선수의 완급조절은 대단하다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않습니다.] [정하성 선수는 패스트볼만 던질 때도 위력적이었지만, 체인지업을 던진 후부터는 언터처블이 된 느낌입니다.] [타자들이 생각해야 할 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경우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하성을 상대하는 건 매우 까다로워졌다.
그리고 하성은 그것을 무척이나 잘 이용하는 투수였다.
[3구 던집니다!]“흡!!”
쐐애애액!
이번에 던진 공은 하이 패스트볼.
몸쪽으로 붙는 높은 공에 타자의 상체가 뒤로 젖혀졌다.
뻐억!
“볼!”
[볼입니다. 타자가 허리를 뒤로 젖혀야 할 정도로 다소 높은 공이 들어갔습니다.] [정하성 선수가 한 번씩 제구력이 흔들릴 때 이러한 공이 자주 들어가더군요.]3자가 봤을 때는 제구가 흔들린 걸로 보였다.
하지만 하성은 정확히 제구를 했다.
‘눈에 가까울수록 공은 빨라 보이고…….’
공을 전달받은 하성이 4구를 준비했다.
‘멀어질수록 공의 구속은 느려 보인다.’
체감 속도와 실제 속도는 다르다.
체감 속도는 눈에 가까울수록 빨라 보이는 효과를 낳는다.
같은 속도라 하더라도 눈에서 얼마나 가깝고 머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소리다.
하성은 이것을 잘 이용하는 투수였다.
[5구 던집니다!]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코스는 바깥쪽 낮은 코스였다.
타자는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돌렸다.
휘릭!!
이전보다 0.몇 초가량 스윙이 빨라졌다.
이전의 공이 잔상이 되어 타자의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은 이전보다 느려진 상황.
스윙의 타이밍과 완전히 어긋났다.
거기에 하성이 던진 공은 패스트볼이 아니라 슬라이더였다.
바깥으로 느리게 도망치는 공을 어떻게든 때리기 위해 타자가 엉덩이를 뒤로 쭉 빼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런 타자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공은 더욱 멀리 달아났다.
후웅!
퍽!
“스윙! 아웃!!”
[삼진입니다! 슬라이더로 타자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뺏어내는 정하성 선수! 이제 신기록까지 아웃 카운트가 단 두 개 남았습니다!]공 하나를 던지는 데에도 하성은 다양한 함정을 풀어놓는다.
이런 함정들은 타자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자신의 스윙을 하지 못하게 한다.
‘젠장,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이건 뭐 루키가 아니라 수십 년은 뛴 베테랑을 상대하는 거 같잖아.’
타자는 하성을 상대한 뒤에야 그러한 함정들을 깨닫는다.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남기고 있어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하성이 루키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그렇기에 하성이 파놓은 함정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 * *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는 데 필요한 공은 단 3개였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첫 타자에 이어 두 번째 타자도 삼진으로 처리하는 정하성 선수!] [첫 타자에게는 변화구 위주로 던졌는데, 두 번째 타자에게는 패스트볼 위주로 던지면서 빠르게 승부를 냈습니다.] [힘으로 몰아붙이는 피칭이 정말 인상적입니다!]동양인이 메이저리그에서 힘으로 몰아붙이는 피칭을 한다.
이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국의 야구팬들이 열광했다.
-정하성 신기록까지 한 개 남았다!
-진짜 100마일은 그냥 던지는구나.
-KBO는 150㎞만 던져도 강속구 투수인데 ㅋㅋ
-그런 애들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지.
-태일고 미친놈들. 이런 애를 파벌싸움으로 묻으려고 했네.
-KBO도 실화냐? 정하성을 국대에 안 뽑네.
-얘 국대에 뽑았으면 우승 쌉가능이었겠다.
하성의 활약이 이어질수록 그동안 그를 적대했던 단체들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태일고는 야구 명문고에서 정하성을 내쫓은 학교가 되면서 신입생들이 급격하게 줄었다.
덕분에 올해 아마야구계에서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KBO는 태일고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올해 열린 WBC에서 준우승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하성이 합류했다면 우승이 가능했을 거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얘도 국대 유니폼 입는 거 보고 싶다.
-아시안게임에서는 뛰지 않을까?
-군문제도 있으니 뛸 듯.
-그때 KBO에서 받아주려나?
-안 받아주면 지들이 어쩔건데 ㅋㅋ
벌써 여론은 하성의 편에 서고 있었다.
군대 문제는 민감한 문제였다.
과거 슈퍼스타가 군대 회피를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에도 연예인들의 군대 회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성의 여론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위해 와인드업을 하는 정하성 선수.]하성이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던졌다.
뻐어억-!
“볼!”
[초구 볼입니다. 다소 낮았다는 판정이네요.]초구 볼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을 돌려받은 하성은 가볍게 어깨를 돌린 뒤, 로진을 손에 묻혔다.
‘긴장했나?’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번 아웃 카운트를 잡으면 메이저리그 기록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그런 상황에 긴장하지 않는다면 웃기는 일이다.
‘그래도…….’
하성이 다시 마운드에 섰다.
‘죽는 것보단 덜 긴장되잖아.’
하성은 자신이 죽던 순간을 떠올렸다.
차가 흔들리고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찰나의 순간에 떠오르는 주마등들.
인생 처음으로 시합에 나가는 순간.
고교대회에서 우승을 위해 등판한 순간.
프로가 되고 처음으로 등판한 순간.
모든 순간이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졌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떨리던 심장이 조금은 괜찮아졌다.
‘어차피 지금도 지나가는 순간이다.’
미래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했다.
‘집중…… 집중…….’
하성은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주위의 풍경이 어둠에 물들고 트레버의 미트만이 보였다.
“후우…….”
적막의 공간에서 홀로 호흡하며 긴장감을 떨쳐냈다.
[정하성 선수, 원볼 상황에서 2구 던집니다.]와인드업을 하며 근육의 움직임, 힘의 이동을 느꼈다.
[이번에는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합니다.]킥킹에 이어 발을 내디뎠다.
콰직!
스파이크의 징이 마운드에 박히며 그의 하체가 돌아갔다.
골반이 열리며 축적했던 힘이 이동하고 그것은 코어를 지나 가슴 팔로 이동했다.
[던집니다!]“흡!!”
쐐애애액-!!
힘을 일순간 방출하며 있는 힘껏 공을 뿌렸다.
동시에 주위를 물들였던 검은 배경이 사라지고 온전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빠각!!
뒤이어 배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타구가 높게 떠오르는 게 보였다.
“마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콜사인에 하성이 몸을 돌렸다.
2루수가 높게 뜬 타구의 밑에 자리를 잡고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퍽!!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낸 그의 모습과 함께 하성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웃! 아웃입니다! 정하성 선수가 시즌 38번째 세이브를 달성합니다! 이로써 메이저리그 전반기 역대 최다세이브와 타이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아-! 정하성 선수 정말 멋집니다! 데뷔 첫해에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어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하성 선수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더 있어요!] [맞습니다. 올스타 브레이크까지 두 번의 기회가 남은 상황에서 과연 정하성 선수가 기록 갱신을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입니다!]38번째 세이브 달성.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하성이 타이기록이 아닌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해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