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7)
마운드의 빌런-7화(7/285)
마운드의 빌런 7화
160㎞.
메이저리그에서는 던지는 투수가 제법 됐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프로 무대에서 160이 나온 적은 단 3번밖에 없다. 그중 두 번은 컨트롤이 잡히지 않았고.’
프로 무대조차 세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물며 고교야구로 제한하면 어떻게 될까?
‘전례가 없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60이라고?!”
“스피드건 고장 난 거 아니야?”
“세 대가 한 번에 고장 날 리 없잖아!”
“녀석이 이 정도였어?”
“부상 아니었냐고!”
스카우터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말도 안 돼…….”
벤치의 계단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 있던 이기성 감독.
그는 팔짱을 반쯤 푼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야! 이기성!”
그때 관중석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스카우터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그물망을 쥐고 있었다.
“아…… 선배님.”
“어떻게 된 거야?! 정하성 팔이 망가졌다면서? 그런데 160은 뭐야?”
“아니…… 그게…….”
“이 자식아! 녀석이 이 정도 던지면 나한테 미리 연락했어야지!”
“저도…….”
몰랐는데 어떻게 연락을 해요?
울대를 치는 말을 억지로 삼켰다.
이걸 말하는 순간 자신의 무능을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 서프라이즈였습니다.”
“뭐?!”
“이 새끼가 장난치나!!”
이기성은 몰랐다.
설마 이 나이가 되어서 선배들에게 갈굼을 당할 줄이야.
그것도 잠시.
뻐억!!
“스트라이크!!”
하성의 투구가 계속되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 * *
‘3회까지 퍼펙트.’
기록지를 확인한 백준기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했다.
‘초구를 제외한 나머지 공들은 150대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어. 컨트롤에 집중한다고 봐야겠지.’
시선이 다시 기록지로 향했다.
‘볼넷은커녕 쓰리볼까지 밀린 적이 없다. 공격적인 피칭으로 타자를 압도하고 있어.’
고교야구에서 150㎞ 이상의 공을 던진다는 건 치트키나 다름없다.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타자들은 공에 손도 대지 못했다.
하지만 간혹 규격 외의 선수가 나타났다.
딱-!!
“오오!”
“때렸다!”
대일고 1번 타자 황석우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그의 배트에 걸린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내 회전이 걸리며 라인 밖으로 떨어졌다.
“파울!!”
“쳇!”
파울이 선언되자 황석우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타이밍은 맞았어. 하지만 배트의 중심에 맞추지 못했다.’
타격을 확인한 백준기의 눈이 빛났다.
‘다음 공도 패스트볼로 나오면 정타를 만들어낼 수 있겠어. 역시 1차 지명을 받을 만해.’
황석우는 서울 엔젤스에 1차 지명을 받은 선수다.
이번 드래프트 최대어 중 한 명으로 불릴 정도로 포텐셜이 대단한 선수였다.
계약금만 6억을 받았으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었다.
‘정면승부만 고집하면 안 될 텐데?’
프로급 고교선수인 황석우를 상대로 정면승부만 고집하면 당할 수 있다.
‘타자일순이 되었으니 황석우는 공에 눈이 익었을 거야. 녀석의 재능이라면 150대의 공이라도 때려낼 수 있다.’
정면승부만 고집하면 힘들 거라 생각하는 이유였다.
과연 이 대결이 어떻게 끝날까?
궁금해할 찰나.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액-!!
빠르게 날아오는 공의 궤적은 패스트볼과 같았다.
‘같은 공으로……!’
그렇게 판단하려는 순간.
황석우의 배트가 공을 잡아먹기 위해 회전했다.
‘응?’
그때 공의 궤적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그로 인해 배트의 스윗스팟에서 벗어나 헤드 부분에 공이 맞았다.
그 순간.
빠각!!
“악!”
배트가 둘로 쪼개지면서 황석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배트가 부러질 때는 이전과 다른 충격이 온다.
그것을 경험한 황석우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퍽!
“퍼스트!!”
황석우가 비명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타구는 데굴데굴 굴러가 2루수의 손에 들어갔다.
2루수는 1루에 공을 던져 가볍게 황석우를 아웃시켰다.
퍽!
“아웃!!”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초고교급, 프로에서 바로 통할 거라 예상됐던 황석우가 두 번째 타석에서도 허무하게 물러났다.
그리고 백준기를 비롯해 스카우터들은 이번 공에서 전율을 느꼈다.
‘뭐지?’
‘무슨 공이야?’
‘분명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변화했어.’
‘슬라이더였나?’
몇몇 스카우터들은 무슨 공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백준기는 정확히 간파했다.
‘커터였어. 그것도 완벽한 컨트롤에 변화였다.’
컷패스트볼.
일명 커터로 불리는 변화구는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슬라이더와 같은 변화지만, 그 변화는 작고 구속은 패스트볼과 비슷하게 나온다.
‘스카우터들이 헷갈려 하고 있어. 그럴 수밖에. 국내에서 커터를 제대로 던지는 투수는 극소수밖에 없어. 무엇보다 저렇게까지 완벽한 커터를 구사하는 건…….’
백준기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프로에서도 없다.’
고교선수가 이 정도의 커터라니.
오늘 정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태가 연달아 일어났다.
‘160의 공을 던지고 완벽한 커터를 뿌린다? 그것도 타자를 완벽하게 유린할 수 있는 타이밍에?’
투수는 단지 빠른 공을 던져서는 안 된다.
실제 150㎞ 이상의 공을 던졌던 투수들이 프로에 와서 자주 실패했다.
그 이유는 바로 컨트롤의 부재, 그리고 경기 운영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정하성 저 녀석은 달라.’
처음 160㎞의 공을 보여주었다.
그걸로 모든 이의 시선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타자들을 단번에 압도해 버린 것이다.
이후에는 150 초중반의 공을 던지며 정밀한 컨트롤을 보여주었다.
그 컨트롤에 타자들은 제대로 농락당했다.
마지막으로 타자일순이 되었을 때, 커터라는 조커를 꺼내 들었다.
이런 경기 운영은 프로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였다.
‘메이저리그에서나 간혹 볼 수 있는 운영법이다. 어떻게 이런 운영을 고작 고등학교 3학년이 할 수 있지?’
경기 운영만 지켜보면 능구렁이가 따로 없었다.
‘이런 녀석이 메이저리그에 가야 하는데.’
백준기는 아쉬웠다.
2008년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에는 몇몇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으나 빅리그에서는 전무한 상황.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메이저리거의 홍수였는데.’
1990년대부터 메이저리그를 봐오던 백준기로서는 짙은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빅리그에서 뛸 만한 재목이 있었다.
‘문제는 녀석이 빅리그에 갈 것이냐지.’
아마 오늘 경기가 알려지면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달려들 것이다.
그만큼 하성의 오늘 경기는 압도적이었다.
매 타자 삼진 혹은 범타로 돌려세우며 7회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다.
‘고교 레벨이 아니야.’
1차 지명을 받은 선수들조차 그의 공을 건들지 못했다.
이 엄청난 활약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었다.
‘프로구단도 눈독을 들이고 있어. 게다가 현재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직행에 대한 인식은 너무 부정적이고.’
2000년대 초반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홍수를 이루었다.
고교 시절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맺은 선수들이 포텐셜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했다.
그것을 본 유망주들이 대거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했다.
달콤한 꿈을 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이 실패였다.
‘빅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고 대부분 마이너리그에 남아 있다. 그사이 국내구단과 계약한 유망주들은 빛을 발하면서 부와 명예를 얻었지.’
KBO 시장이 커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과거와 달리 KBO에서도 수십억 규모의 FA 계약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었다.
비록 메이저리그와 비교할 수 없지만, 수준 차이가 심한 그곳보다는 국내에서 왕이 되겠다고 말하는 선수가 많아진 이유다.
‘용의 꼬리가 될 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겠다는 거겠지.’
백준기는 하성도 그럴 선택을 할 것으로 봤다.
현재의 트렌드가 그러했으니까.
어린 선수가 그런 트렌드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또 삼진이야!”
“이걸로 14탈삼진이잖아?”
“아니, 그것보다 이제 9회만 잡아내면 퍼펙트게임이야!”
퍼펙트게임.
KBO에서도 아직 나오지 않은 기록이었다.
물론 고교야구가 수준이 더 낮지만, 그로 인해 더 나오기 힘든 기록이었다.
수비들의 도움을 받기 더 어려우니 말이다.
그런데 하성은 그것을 자력으로 해내고 있었다.
1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면서.
그 모습을 보는 백준기가 펜을 쥐었다.
‘한번 만나봐야겠어. 이런 길도 있다고 생각만 하게끔 해줘도 목적은 달성할 수 있어.’
이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더욱 하성을 메이저리그로 보내고 싶었다.
* * *
이기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자식이 이렇게 잘 던졌어?’
대통령배 우승은 둘째 치고 퍼펙트게임이 눈앞에 있었다.
이런 선수를 지금까지 썩히고 있었다니.
‘교장 새끼 X신 아니야?’
아무리 학교의 명예가 중요하다지만, 이런 선수를 벤치에 앉혀놓게 하다니.
‘뭐, 상관없지. 오늘 경기만 끝나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올해 등판하지 않았던 것?
부상 이슈?
모든 게 잠재워질 것이다.
그때 하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기성에게 다가왔다.
‘뭐지? 설마 그만 던지겠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퍼펙트가 눈앞이다.
이 기록이 나오면 엄청난 이슈 몰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만둔다고?
어떻게든 말릴 생각이었다.
그때 하성이 입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어? 어어…….”
예상치 못한 말에 이기성이 말을 더듬었다.
하성은 아무런 말 없이 마운드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 *
9회.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3개였다.
“플레이볼!”
구심의 외침과 함께 관중들이 경기에 집중했다.
고교야구라 하더라도 퍼펙트게임이다.
그 의미는 대단히 컸다.
촤앗-!!
와인드업과 함께 하성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에 스트라이크가 꽂혔다.
“구속은?”
“152입니다.”
“9회에도 150 이상을 던진다고? 아무리 투구 수가 100구도 안 됐다곤 하지만…….”
백준기가 기록표를 확인했다.
‘방금 공이 89구째. 삼진이 많음에도 투구 수 관리가 잘됐어. 그만큼 공격적이었단 소리지. 하지만 구속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투구 수야.’
그런데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스태미너가 미쳤거나 전력투구가 아니었단 소리겠지.’
둘 중 무엇이건 대단한 일이었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오오! 2개 남았다!”
“미친! 진짜 성공하는 거 아니야?”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두 개.
그때 대일고 벤치가 움직였다.
“대타다.”
“대일고도 최선을 다하는군.”
“희생양이 되고 싶진 않겠지.”
퍼펙트게임의 희생양이 되고 싶어 하는 팀은 없다.
하지만.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대타까지 삼진이야.”
“최고 구속이 156이라니…….”
“구속이 점점 오르잖아?”
“미친놈 아니야? 9회에서 오히려 구속이 오르는 게 말이 돼?”
하성은 구속을 올리며 타자를 돌려세웠다.
이제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긴장할 법도 했지만, 하성은 마치 기계처럼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딱!!
“파울!!”
초구는 파울.
타이밍이 어긋났다.
쐐애애액-!!
뻐어억!
“스트라이크! 투!!”
몸쪽을 파고드는 공에 타자가 꿈쩍도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158입니다.”
“미친…… 계속 늘어나네.”
“다음 공에서 승부할까?”
남은 스트라이크는 단 하나.
선택권은 하성에게 넘어갔다.
하성은 큰 고민 없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이걸로…….’
다리를 차올린 그가 스트라이드와 함께 공을 뿌렸다.
쐐애애액-!!
‘끝이다!’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타자는 패스트볼의 궤적에 맞춰 배트를 휘둘렀다.
그 순간.
공이 휘어나가면서 배트의 스윙궤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포수의 미트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공은 정확히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후웅!!
뒤늦게 타자의 배트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구심이 곧장 콜을 선언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게임 셋!!!”
게임이 종료됐다.
퍼펙트게임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미친!!”
“진짜 달성했어!!”
“퍼펙트게임이야! 당장 본사에 전화해!”
“어떻게든 녀석을 2지명 1라운드에 뽑아야 해!”
스카우터들이 시끄러워졌다.
그보다 시끄러워진 건 그라운드였다.
“우승이다!!”
“하성아 네 덕분이다!!”
“퍼펙트게임이라니! 너 진짜 미쳤다!!”
동료들이 하성에게 다가왔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축하하고 있을 때.
벤치에서 이기성이 걸어 나와 마운드로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성이 축하해 주는 동료들을 제치고 그에게 다가갔다.
“하성아, 장하다! 난 네가 해낼 줄 알고 있었어! 그래도 퍼펙트게임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네가 우리 태일고 야구부를 빛내는구……!”
말을 끝내려는 순간.
하성이 글러브를 벗었다.
그리고 이기성에게 내밀었다.
“응? 이건 왜?”
이기성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하성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부로 야구부에서 나가겠습니다.”
“어?”
“못 들으셨어요?”
하성이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했다.
“퇴부한다고요.”
놀라는 이기성의 표정.
반대로 하성의 미소는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