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71)
마운드의 빌런-71화(71/285)
마운드의 빌런 71화
올 시즌을 앞두고 크리스는 타선의 보강에 신경 썼다.
그렇기에 시즌이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운드를 걱정했다.
‘설마 기대했던 맷이나 지암비가 제 역할을 못 할 줄이야.’
특히 충격이 컸던 것은 맷의 부진이었다.
‘연봉만큼 충분한 효율을 보여주지 못했어.’
맷의 연봉은 1,250만 불이었다.
반면 WAR는 3.0에 불과했다.
물론 낮은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맷이 지난 2년간 5.4, 6.0의 WAR을 기록했던 걸 감안하면 아쉬운 성적이었다.
‘우리로서는 그 정도의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남은 연봉이라도 보전해야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새로 오는 녀석들이 잘해주길 기대해야지.’
이번 트레이드로 어슬레틱스는 당장 쓸 수 있는 주전급 타자 두 명과 유망주를 얻었다.
그들이 잘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하반기.
한국 야구팬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정하성은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최다 세이브 신기록.
메이저리그에 갓 데뷔한 루키가 주요지표 중 하나인 세이브에서 기록경신을 앞두고 있었으니 사람들의 기대가 집중됐다.
[7월까지 45세이브를 달성한 정하성! 메이저리그 신기록 타이까지 앞으로 17개 남았다!] [페넌트레이스 마감까지 어슬레틱스의 성적에 따라 달성 여부 판가름 날 듯!] [정하성의 소속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전력보강을 위해 맷 홀리데이와 지암비의 트레이드를 감행!] [타선을 보강한 어슬레틱스, 과연 정하성은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하성의 세이브 기록과 관련하여 분석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여론은 정하성의 세이브 능력이 아닌 소속팀의 성적에 따른 하성에게 주어질 세이브 기회에 맞춰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성은 현재까지 세이브 성공률 100퍼센트를 달리고 있었다.
즉,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세이브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세이브 기회만 주어지면 기록 달성 각 아니냐?
-맞지.
-문제는 어슬레틱스지
-하반기에 무너지는 거 아니냐?
-루키들 많으니 쌉가능.
-솔직히 어슬레틱스 타선이 문제임.
-ㅇㅈ
팬들도 아는 어슬레틱스의 타선.
사실 어슬레틱스가 지구 1위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마운드의 힘이 컸다.
특히 불펜의 힘이 강해서 단 2~3점만 내더라도 선발이 퀄리티스타트만 해주면 어떻게든 끌어갈 수 있었다.
덕분에 지구 1위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지만, 아슬아슬했다.
“후우…….”
[정하성 선수, 스코어 7 대 3의 여유로운 점수에서 마운드에 오릅니다.] [사실 썩 여유로운 점수는 아닌데, 정하성 선수에게는 무척이나 여유롭게 느껴지네요.] [하하! 그렇습니다.]3점의 점수를 등에 업은 하성은 세 명의 타자를 연달아 상대했다.
딱!!
[빗맞은 타구! 유격수 잡아 1루로!]퍽!
“아웃!!”
첫 번째 타자는 6구 만에 체인지업으로 아웃을 잡아냈다.
딱!!
[유격수 점프 캐치!! 하지만 키를 살짝 넘기는 타구!! 안타를 만들어냅니다!]두 번째 타자는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가 되었다.
유격수의 점프타이밍이 조금 빨랐다면 잡을 수 있었을 테지만, 하성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딱-!
[높게 떠오른 타구! 중견수 거의 제자리에서 잡아냅니다! 1루 주자는 제자리에서 뛰지 못합니다. 투아웃!!]투아웃에 주자는 1루.
하성의 피칭은 전반기와 달리 압도적인 모습은 없었다.
[오늘따라 정하성 선수의 공이 타자들의 배트에 잘 걸리는 느낌이네요.] [그렇습니다. 평소보다 위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정타가 없으니 괜찮습니다.]정타는 없었다.
하지만 공은 배트에 맞고 있었다.
평소 하성의 공은 타자들이 건들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오늘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에게 캐서린이 물었다.
“컨디션이 나쁜 걸까요?”
“컨디션이 나빴다면 이미 난타를 당했겠지. 그건 아닐 거야.”
“하지만 오늘따라 타자들의 배트에 공이 걸리고 있는데요?”
“분명한 사실이지. 하지만 정타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어. 안타를 맞은 공도 빗맞은 타구였고.”
분명 그랬다.
만약 컨디션이 나빴다면 그 안타도 장타가 만들어졌을 거다.
“그럼 왜죠?”
의문이 들었다.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데 정타가 만들어지다니?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크리스는 말없이 하성을 보며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딱-!!
“와아아아!”
“이건 잘 맞았다!!”
네 번째 타자에게도 4구째를 강타당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구는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우익수가 앞으로 달려 나오며 타구를 잡아냈고 그대로 게임이 끝났다.
“오늘도 무실점에 세이브는 성공했네요.”
“맞춰 잡는 느낌인데.”
“네?”
“돌아가는 대로 각 점수 차 별로 하성의 데이터를 뽑아줘.”
“점수 차 별이라면? 1점, 2점, 3점의 상황에서 정하성 선수의 데이터요?”
“그래.”
크리스는 무언가를 감지해 냈다.
* * *
시즌 46번째 세이브에 성공한 하성은 라커룸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으…… 피곤해.”
“뭘, 그렇게 피곤해해? 안타는 하나밖에 내주지 않았으면서.”
“그런게 있어. 그나저나 트레버, 너 요즘 컨디션 좀 나빠 보인다?”
“응?”
트레버가 흠칫했다.
“티 나나?”
“조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하…… 사실은 말이야. 요즘 여자 친구 때문에 걱정이 많다.”
하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 그 표정 너무 상처받는데?”
“프로라는 놈이 여자 친구 때문에 경기력에 영향이 가? 너 요즘 타격 엉망인 게 그런 이유였어?”
“아씨!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하아…… 그래서 뭔데?”
“됐어, 인마.”
삐진 듯한 트레버의 말에 하성이 피식 웃었다.
지금의 하성보다는 나이가 많은 27살인 트레버였지만, 하성에게는 아이처럼 보였다.
“자자, 이 형님에게 말해봐. 여자 친구랑 무슨 문제가 있는데?”
“형님은 무슨, 나이도 어린 녀석이.”
“하하, 그래. 너 밥 먹었냐?”
“이제 가서 먹어야지.”
“너 한국 음식 먹어봤어?”
“한국 음식? 바비큐라면 몇 번 먹어봤지.”
“그것보단 좋은 게 있다. 같이 가자. 오늘은 이 동생님께서 쏠게.”
“오올~”
트레버가 혹하는 모습에 하성이 몸을 돌렸다.
그때 익숙한 얼굴의 선수가 보였다.
“베일리, 너도 밥이나 같이 먹자.”
“응? 좋지.”
그렇게 세 사람이 클럽하우스를 나섰다.
* * *
크리스는 사무실에 앉아 데이터를 확인했다.
“올 시즌 정하성 선수의 상황별 데이터예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금 놀라운 점이 있어요.”
“놀라운 점?”
“점수 차이에 따라서 안타를 맞을 확률이 달라져요.”
“높아지나?”
“……네. 알고 계셨어요?”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어. 그거 외에는?”
크리스가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질문했다.
“공이 배트에 맞을 확률도 전반적으로 높아져요. 그리고 체인지업과 브레이킹볼의 비율도 높아지고요.”
“패스트볼의 비중을 줄인다는 건가?”
“네. 데이터로 보면 명확하게 드러나요.”
확실히 그랬다.
캐서린이 정리한 데이터에서 상황에 따라 하성이 어떤 공을 던지는지 명확히 드러났다.
“점수에 따라서 완급 조절을 한다는 거군.”
“힘을 빼고 던진다는 건가요?”
“그것보다는 몸에 데미지가 갈 수 있는 강속구의 비중을 줄이는 거야.”
과거에는 브레이킹볼이 몸에 데미지를 준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투수들의 공이 빠를수록 선수의 몸에 입는 데미지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어. 실제 데이터를 보면 강속구 투수가 일찍 망가지는 경우도 많고 말이야.”
“그럼 정하성 선수는 그것을 생각하고 상황에 따라 패스트볼의 비중을 줄였다는 건가요?”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지. 다만, 확실한 건 아니야.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니까.”
“확실히 하반기 들어서 본격적으로 공이 맞기 시작했으니까요.”
하반기가 시작되고 하성이 뛴 경기는 6게임에 불과하다.
아직은 데이터로서 신빙성을 주기 어려웠다.
‘잠깐, 하반기부터 완급 조절에 들어간 거라면 혹시 체력 안배를 위해서일까?’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걸 섣불리 믿기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걸 루키가 하고 있다고?’
하성이 루키라는 점이다.
이제 갓 빅리그에 데뷔한 루키가 체력 안배까지 생각하면서 경기에 뛸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런 루키는 없었다.’
수많은 루키를 봐왔다.
그들 중 재능이 뛰어난 선수도 있었다.
그런 이들이 포착되면 하루라도 빨리 콜업해서 성장시켰다.
그것이 스몰마켓인 어슬레틱스를 이끌어온 크리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선수도 스스로 체력 안배를 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하성은 뭐지? 루키이면서도 루키답지 않은 이런 모습은…….’
하성에 대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크리스는 말없이 데이터가 떠 있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 * *
LA다저스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 세이브를 챙긴 하성은 두 번째 경기를 불펜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빨랫줄처럼 외야로 뻗어 나갔다.
원바운드로 담장을 때린 타구와 함께 트레버는 2루로 내달렸다.
“와…… 오늘 트레버 아주 날아다니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일리가 감탄했다.
“어제는 빌빌대더니 오늘은 확실히 잘 때리네.”
“어제 먹은 삼계탕이라는 치킨 수프 덕분인가?”
“그럴 리야 있겠냐? 그냥 땀 좀 빼니까 컨디션이 좋은 거지.”
삼계탕이 보양식이긴 하지만, 스테로이드는 아니다.
한 번 먹었다고 무슨 어메이징한 변화를 일으킬 리 없었다.
‘어제 고민을 털어내서 조금 마음이 편해진 거겠지.’
어제 밥을 먹으면서 트레버는 속에 담고 있던 고민을 이야기했다.
역시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밥 먹는 자리가 최고다.
“여자 친구랑 잘 풀렸나?”
“그건 모르지. 뭐, 돌아갈 때 선물이라도 사 간다면 잘 풀리지 않을까?”
트레버가 고민했던 이유는 여자 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트레버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최악의 방법이지. 아예 거절이나 승낙도 아니고 어설픈 태도를 보였다는 게 말이야.’
트레버의 연봉이라면 가정을 꾸리기에 충분하다.
물론 돈이 많은 것과 가정을 꾸리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결혼이라…….’
하성은 회귀 전에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현역 때는 야구에 푹 빠져 살았고 은퇴 후에는 먹고살기에 바빴다.
만났던 여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결혼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었다.
‘그 스튜어디스도 괜찮았지.’
따로 연락처를 받아 만났던 스튜어디스.
며칠 뒤에 만나 가볍게 한 잔 걸치고 호텔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딱히 결혼 대상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뭐, 이런 걸 생각하냐. 이제 20살인데.’
하성은 한국 나이로 20살이었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19살로 파릇파릇한 청춘이었다.
‘일단 이 청춘을 즐겁게 보내면서 천천히 인연을 찾아보면 되겠지.’
이전의 삶은 야구에만 푹 빠져 살았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못하면서 살았다.
은퇴 이후에는 또 다른 삶을 준비해야 했고 말이다.
‘나중에는 후회되는 나날들이었지. 이번 삶에는 즐기면서 살자고.’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면서 충분히 놀면서 지내는 것.
그것이 하성이 이번 시즌 지킬 목표였다.
딱!!
“와아아아아!!”
그때 그라운드를 울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2루에 있던 트레버가 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오늘은 나갈 일이 없겠군.’
스코어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