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77)
마운드의 빌런-77화(77/285)
마운드의 빌런 77화
하성에게 다시 세이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잔여 경기가 8경기만을 남겨두었을 때다.
[스코어 7 대 4에서 정하성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하성이 등판하는 마운드는 오클랜드가 아니었다.
오늘은 원정팀인 에인절스의 에인절 스타디움의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한국 교민이 많이 거주하는 LA의 코리아타운에서 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기에 한국인들도 많이 찾았다.
“하성아!! 오늘 세이브 기록하자!!”
“너 보러 여기까지 왔다!!”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줘라!!”
“신기록 가자!!”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한국어 응원에 하성은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접 들으니 나쁘지 않네.’
이전 삶에서 간간이 들었다.
타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어로 응원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말이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막상 경험하니 정말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쉬어서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오늘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상체를 숙이는 그를 향해 트레버가 사인을 보냈다.
‘초구는 패스트볼?’
‘콜.’
고개를 끄덕이자 트레버가 코스를 잡아주었다.
모든 게 정해지자 하성이 피처 플레이트를 밟은 채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정하성 선수! 와인드업!]부드럽게 이어진 와인드업에 이어 몸을 비틀면서 다리를 차올리는 킥킹 동작으로 이어졌다.
킥킹 동작으로 힘을 충전하고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겼다.
거의 동시에 발을 내딛는 스트라이드와 함께 몸의 회전이 시작되었다.
휘릭!!
하체, 골반, 그리고 상체의 회전이 부드럽게 이어져 이내 팔에 모든 힘이 집중되었다.
채찍처럼 휘두른 팔이 허공을 때리는 순간.
손끝으로 공의 실밥을 긁었다.
“흡!!”
쐐애애애액-!!
[1구 던졌습니다!!]엄청난 회전이 먹힌 공이 빠르게 공간을 잠식하며 날아갔다.
타자는 몸쪽을 파고드는 공에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배트가 채 돌기도 전에 공이 미트에 꽂혔다.
뻐어억-!!
후웅!
뒤이어 배트가 힘없이 돌면서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구속은……!!]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
[102마일!! 본인의 최고 구속을 다시 한번 찍어내는 정하성 선수입니다!!]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1구였다.
* * *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정하성 선수가 시즌 61번째 세이브를 달성했습니다!]모든 공중파에서 하성의 기록에 대해 보도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정하성 선수는 130년 역사를 지닌 메이저리그의 신기록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신기록 달성이 유력한 정하성 선수가 에인절스를 상대로 시즌 61번째 세이브를 거두어…….] [수많은 한국 교민이 찾은 이번 경기에서 102마일이라는 경이로운 구속으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신기록까지 단 1개만을 남겨둔 정하성 선수가, 이번 에인절스 원정에서 기록 달성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한국에서 하성의 인지도는 이제 전 국민이 알 정도가 됐다.
KBO에서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어도 알 텐데, 메이저리그 신기록이니 모를 리가 없었다.
거기에 공중파 뉴스에서 매일 같이 하성의 뉴스를 내보내니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으…… 으허허허! 우리 아들 덕분에 전화가 끊이질 않는구나.”
잘난 아들은 둔 덕분에 아버지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건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인근에 사는 팬들이 하성의 집으로 팬레터나 선물들을 보내 방 하나가 가득 찰 정도였다.
“우리 아들 만세다! 만세야!”
대한민국은 정하성 앓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전에 그가 저질렀던 모든 일은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없어진 뒤였다.
국민의 모든 관심이 오직 하나에 집중되었다.
[정하성은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을 언제 달성할 것인가?!]그런 상황에서 하성은 에인절스와의 2차전에서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 * *
[오늘 경기에서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코어가 9 대 7로 타자들의 타격이 물이 올랐네요.]9 대 7.
두 팀 합쳐 16점이라는 점수가 나온 상황이었다.
그래도 어슬레틱스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베일리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베일리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사실 베일리 선수 역시 올 시즌 훌륭한 루키 시즌을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만약 정하성 선수가 없었다면 베일리 선수가 ROY를 받았을 정도로 훌륭한 시즌을 보내고 있죠.] [오늘 경기에서도 정하성 선수에게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잘해줄 수 있을지! 첫 타자를 상대합니다!]불펜에서 하성은 몸을 풀면서 베일리의 투구를 살폈다.
‘오늘 경기는 기묘한데. 녀석이 잘할 수 있을까?’
특정 경기에서 난타전이 펼쳐지는 이유는 타자들의 컨디션이 좋기 때문이 첫 번째다.
하지만 꼭 그것만이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저 경기의 흐름이 난타전으로 흘러가게끔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기에서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잘 던지던 투수들도 흔들리게 마련이지.’
그런 생각은 곧 현실이 되었다.
딱-!!
“와아아아아!!”
[때렸습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안타!! 타자 주자가 2루까지 들어갑니다!] [아-! 조금 밋밋하게 공이 들어갔습니다. 타자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첫 타자에게 안타를 내준 이후로 베일리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뻐어억-!!
“볼! 베이스 온 볼!!”
[아~ 이게 무슨 일이죠? 베일리 선수가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었습니다!] [올 시즌 처음 있는 일인데요.] [동점 주자까지 누상에 나가자 토니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합니다!]토니가 더그아웃을 떠나는 순간, 불펜의 전화가 울렸다.
뚜르르르-!
“예,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산체스가 하성을 향해 외쳤다.
“하성! 네가 나갈 수도 있겠다. 준비하고 있어.”
“조기 강판입니까?”
“일단 이야기를 나눠본다는데.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다니…….”
과연 어떻게 될까?
그때 토니 감독이 불펜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그걸 본 산체스가 말했다.
“네가 나갈 시간이다.”
조기 등판이 결정됐다.
* * *
[토니 감독이 여기에서 베일리 선수에게 공을 전달받습니다!] [베일리 선수가 부상이라도 입은 걸까요? 스트레이트 볼넷까지 내주긴 했습니다만, 바로 강판을 택하네요.] [사실상 지구 1위를 지킨 어슬레틱스의 입장에서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아마 정하성 선수의 세이브 기록을 위해서 토니 감독이 결단을 내린 거 같습니다.]해설위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마운드에 올라와 연습 투구를 끝낸 하성에게 토니가 다가가 말했다.
“조금 일찍 등판시켰지만,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물론이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건 생각하지 마. 그저 네 피칭만 하면 된다.”
“옙.”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토니는 고개를 돌려 관중석에 앉아 있는 크리스 단장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크리스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하성의 조기 등판은 크리스 단장의 계획이었다.
‘미리 이야기해 두길 잘했어. 설마 이런 상황이 정말 펼쳐질 줄은 몰랐군.’
하성이 신기록 타이까지 근접하면서 크리스는 캐서린과 함께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그 회의에서 나왔던 것이 베일리가 무너졌을 때 어떻게 하느냐였다.
그리고 지금 그런 상황이 펼쳐졌다.
‘여기에서 하성이 막아내면 세이브 포인트를 얻게 된다. 1점 정도는 더 줘도 되지만…… 만약 주자를 모두 들여보내면…….’
세이브 기회는 사라진다.
승계주자이기에 하성의 역대급 ERA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세이브포인트가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하성이 세이브 신기록을 달성하면 포스트시즌 역시 우리 팀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내년까지 그 영향이 가겠지.’
포스트시즌의 수익은 구단의 1년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거기에 다음 시즌까지 매출의 상승을 도모할 수 있었기에 하성의 기록 달성은 구단 입장에서도 중요했다.
그를 조기 등판한 이유기도 했다.
‘오늘 경기에서 신기록 타이까지 올라서자. 그러면 가능성이 있어.’
오늘 경기를 제외하면 어슬레틱스는 6경기만을 남겨두게 된다.
그 6경기에서 한 번이라도 더 세이브 포인트를 얻게 된다면 하성은 전무했던 63세이브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 기록을 세우는 순간 어슬레틱스의 매출이 수직 상승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크리스는 속으로 기도하면서 하성의 피칭을 바라봤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과 타이를 얻을 수 있는 기회, 정하성 선수가 8회부터 마운드를 지킵니다.] [아웃 카운트를 6개나 잡아야 하는 게 변수겠네요.] [그동안 보여준 정하성 선수라면 잘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인 교환을 끝낸 정하성 선수가 초구를 던집니다!]첫 번째 타자를 상대로 하성은 공격적인 피칭을 펼쳤다.
딱!!
“파울!!”
초구는 97마일의 패스트볼로 타자를 몰아붙였다.
타이밍이 제법 맞은 걸 확인한 하성은 2구에서 변화를 주었다.
퍽!
“스윙! 스트라이크 투!!”
체인지업을 던져 타이밍을 뺏어 헛스윙을 유도해 냈다.
순식간에 두 개의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하성은 로진을 손에 묻히며 주자들을 힐끔 바라봤다.
‘여차하면 뛸 수도 있겠네.’
2루 주자가 발이 빠른 대주자로 바뀌었다.
에인절스 역시 필사적이었다.
경기에서 지는 건 큰 문제가 없었지만, 대기록의 제물이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투스트라이크로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은 정하성 선수, 트레버 포수와 사인을 교환합니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정하성 선수는 여전히 침착하네요.] [본인의 피칭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침착함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자신감도 실력에서 나오는 법이죠.] [정하성 선수가 세트포지션에서 공을 던질 준비를 합니다.]세트포지션에 들어간 하성이 1루 주자와 2루 주자를 체크했다.
뛸 거 같은 제스처를 취하는 그들의 모습이었지만, 하성은 이내 신경을 꺼버렸다.
‘자기네들이 유리한 찬스에서 뛸 이유는 없지.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싶은 거야.’
그리고 타자에게만 집중한 채, 3구를 뿌렸다.
[3구 던졌습니다!]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타자는 이번에도 존을 파고드는 공을 향해 있는 힘껏 배트를 돌렸다.
그 순간.
휘릭!!
공이 미세하게 변하면서 배트 헤드를 때렸다.
빠각!!
[배트 부러졌습니다! 타구는 힘없이 굴러 2루수에게!! 2루수 잡아 유격수에게 토스!]퍽!
“아웃!!”
[아웃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공은 1루로!!]퍽!!
“아웃!!”
[더블플레이입니다! 단숨에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올리는 정하성 선수!] [아-! 완벽한 커터였습니다!] [2루 주자가 3루까지 갔습니다만, 집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투아웃을 잡아낸 정하성 선수!]신기록 타이기록까지 또 하나의 고비를 넘은 하성이었다.
* * *
토니 감독의 선택은 완벽했다.
[8회 무사 1, 2루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낸 정하성 선수, 9회에도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면서 이제 신기록까지 단 1개의 아웃 카운트만을 남겨놓게 되었습니다!]하성은 8회에 등판했음에도 게임을 끝내고 있었다.
거기에 자신의 신기록까지 달려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 애너하임 스타디움을 찾은 모든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경기장을 찾은 모든 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정하성 선수의 대기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에인절스 팬들까지 모두 일어섰어요!]하성은 그런 팬들 앞에서 1구와 2구를 연달아 던졌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정확히 찌르는 100마일의 패스트볼!!]따악!!
“파울!!”
[93마일의 커터를 때렸지만, 파울이 됩니다! 순식간에 투스트라이크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합니다!] [빠르게 승부를 끝낼지 기대되네요.]하성은 상체를 숙이고 트레버에게 사인을 보냈다.
‘뭐? 정말 그걸로 갈 거야?’
‘그래.’
‘허…….’
하성의 사인을 본 트레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트를 내밀었다.
[사인 교환을 끝낸 정하성 선수! 여기에서 어떤 공을 선택할지……! 와인드업!!]하성이 결정구로 선택한 공이 그의 손을 떠났다.
매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공에 타자는 배트를 돌렸다.
‘이대로 끝낼 순……!’
온 힘을 다해 배트를 돌렸지만, 빠르게 날아오던 공이 허공에서 멈췄다.
‘체인지…….’
배트를 어떻게든 멈추려 했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은 배트를 멈추기엔 불가능했다.
결국 배트가 온전히 허공을 갈랐고 공은 그 뒤에야 미트로 들어갔다.
‘업……!’
체인지 오브 페이스.
완벽하게 타자의 타이밍을 뺏어버리는 공이었다.
퍽!
“스윙! 아웃!! 게임 셋!!”
[경기 끝났습니다!!]하성의 62번째 세이브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