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81)
마운드의 빌런-81화(81/285)
마운드의 빌런 81화
그들의 외침대로 주차장에 세워진 페라리에서 하성이 내렸다.
선글라스를 쓰고 내린 그가 기자들에게 다가오면서 자연스레 오른손을 쓸어넘겼다.
그의 손목에 차여진 시계가 태양 빛에 번쩍였다.
“오…… 저거 로렉스 아니야?”
“정하성이 언제부터 로렉스를 차고 다녔지?”
“어쨌든 저것도 찍어!”
기자들이 그 장면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그사이 기자들 앞에 도착한 하성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정하성 선수! 첫 디비전 시리즈인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 컨디션은 어떠신가요?”
“떨리지는 않으십니까?!”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하성이 그들을 바라보다 조용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그의 태도에 기자들은 당황했다.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하성의 신호를 받은 직원들이 와서 기자들을 제지했다.
“뭐야? 왜 저래?”
“오늘 컨디션 별로인 거 아니야?”
“이거 큰일인데?!”
하성은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기에 기자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성에 대한 소식은 곧장 크리스의 귀에도 들어갔다.
“뭐? 하성이 언론과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예. 평소와 달리 경비들에게 기자들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제가 알기로도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알았네.”
보고를 받은 크리스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불과 이틀 전만 하더라도 나한테 대들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는데.”
“감기라도 걸린 걸까요?”
캐서린의 말에 크리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느덧 10월이다.
일교차가 제법 나기에 감기에 걸리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하성은 한국에서 살다 왔으니 기후가 다른 이곳의 가을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당장 의료팀을 보내서 하성의 컨디션을 체크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캐서린이 방을 나서자 크리스는 홀로 남아 고심에 잠겼다.
‘하성의 컨디션 난조를 보이면 안 돼. 녀석은 우리 팀의 핵심이야.’
만약 하성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크리스의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 *
“그럼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의료팀은 별다른 수확 없이 돌아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나름 연기를 잘하는 거겠지?’
하성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다. 이런 수고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괜히 나에게 짐을 더 실으려고 할 게 뻔하니까. 미리 양념을 쳐두는 게 낫지.’
벤치에서 자신에게 나가라고 했을 때 둘러댈 핑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벤치의 요구를 거부했을 때 팬들이 보기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거부하면 자신의 이미지만 나락으로 떨어진다.
‘대중이 등을 돌리는 순간 내 몸값도 같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팬은 내 편으로 만들어둬야 해.’
그러기 위해서 이런 귀찮은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크리스도 나를 최대한 아끼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겠지.’
포스트시즌의 혹사가 은퇴의 계기가 됐었던 하성이기에 이런 불필요한 작업이 필요했다.
‘부상은 조심해야 해. 지금 부상을 입게 되면 그만큼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이 뒤로 미뤄진다.’
당장이야 젊으니 은퇴할 정도의 부상이 찾아올 가능성은 적었다.
거기에 시한폭탄처럼 잠들어 있던 부상도 완치했고 말이다.
하지만 부상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른다.
특히 혹사로 누적된 부상은 터지면 투수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부상으로 공백이 찾아오면 그 피해는 온전히 하성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두 번 다시 그럴 일은 없어.’
하성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그럴 일은 없도록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 * *
디비전 시리즈가 시작됐다.
1차전은 아놀드의 시리즈라고 할 수 있었다.
딱-!!
[때렸습니다!! 그리고 이 타구는 큽니다! 큽니다!! 넘어갔습니다!! 아놀드 선수의 쓰리런이 터지면서 어슬레틱스가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 아놀드 선수의 멋진 스윙이 나왔어요! 첫 디비전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스윙을 완벽하게 보여주었습니다!]때리자마자 담장을 넘어갔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큰 타구였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것도 포스트시즌부터였던가?’
처음 아놀드의 기사를 봤던 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때린 그랜드슬램이었다.
거기서부터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아놀드는 단숨에 라이징스타로 떠올랐다.
‘다음 해에 반짝이다가 사고를 당했지만, 직접 보니 정말 대단하네.’
대단하다는 말로밖에 표현되지 안하는 활약이었다.
아놀드는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4타수 3안타 1홈런 5타점을 쓸어 담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MVP로 뽑혔다.
그리고 그런 아놀드의 활약 덕분에 하성은 출전하지 않아도 됐다.
* * *
1차전이 끝나고 하성에 대한 기사가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을 완승으로 장식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1차전 MVP는 루키 아놀드!] [1차전을 제압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디 엔드 정하성의 컨디션 난조인가?] [인터뷰를 거절한 정하성! 일각에선 부상을 입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어슬레틱스의 승리 소식보다 하성의 부상 우려에 대한 기사가 더 많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하성이 오클랜드의 중심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터넷 반응 역시 뜨거웠다.
-정하성 부상임?
-어슬레틱스 1승-!
-트윈스는 우리의 상대가 아니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정하성 부상이냐고.
-컨디션은 별로라던데.
-인터뷰 거절했더라.
-걔 인터뷰 좋아하지 않았냐?
-언론 앞에서는 언제나 당당했지.
-영상 떴는데, 기자들 힐끔 바라보더니 그냥 가던데. 그 뒤에 경비가 막고.
-링크 좀.
-아-! 하성이 부상이면 경기 후반에 어떻게 함?
-트윈스가 이기겠네…….
하성의 부상에 팬들도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팬들의 반응은 크리스 역시 알게 되었다.
‘팬들이 모두 하성의 건강에 염려하기 시작했어. 이러면 그를 무작정 등판시켰다가는 오히려 역풍이 찾아오겠는데.’
오클랜드 주민들은 아직 팀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다.
지금이야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했다지만, 팬이 완전히 돌아왔다고 볼 수 없다.
‘사실상 팬들을 돌아오게 만든 것은 하성이나 마찬가지고…….’
시즌 최다세이브를 달성하면서 팬들이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을 생각했을 때 만약 하성이 무리하다 부상 입으면 내년 시즌 관중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뻔했다.
‘다시 경기장을 찾지 않겠지. 흥미를 끌 수 있는 선수가 없으니까.’
팬들은 단순히 경기만 보러 오지 않는다.
팀에 있는 선수를 보러 오는 관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역시 바꿔야겠어.’
1차전을 승리한 이상 굳이 무리한 전략을 쓸 필요는 없었다.
크리스는 전화를 들어 토니 감독을 호출했다.
* * *
디비전 시리즈 2차전은 박빙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제의 난타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2차전은 투수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두 선발투수의 호투가 빛을 발하고 있어요!]5이닝이 끝난 현재.
두 팀이 낸 점수는 제로였다.
“오늘은 우리가 나갈 일이 많겠네.”
“그러게 말이야.”
베일리의 말에 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불펜의 전화가 울렸다.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산체스가 하성 쪽을 바라봤다.
“베일리! 슬슬 몸을 풀도록 해.”
“벌써요?”
“어제 너는 쉬었으니 일찍 나갈 수도 있어. 디비전 시리즈는 페넌트레이스와 다르다. 평소와 다른 타이밍에 등판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둬.”
“예, 알겠습니다. 어? 그런데 하성은요?”
베일리의 질문에 산체스의 시선이 하성에게 향했다.
“하성은 클로저다. 클로저가 할 일은 경기를 끝내는 일이야. 웬만해선 중간에 나갈 일은 없어.”
“하긴, 그건 그렇네요.”
“알아들었으면 빨리 몸이나 풀도록 해!”
“옙! 그럼 나 먼저 몸 푼다.”
“그래.”
불펜으로 걸어가는 베일리를 보던 하성이 산체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산체스가 저런 대답을 했다는 건, 크리스가 생각을 바꾸었다는 소리겠지.’
1차전이 끝나고 팬들이 자신에 대한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크리스의 생각을 바꾸었을 거라 생각한 하성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오늘 경기에서는 나도 잘하면 나갈 수 있겠네.’
이런 분위기라면 한 점 차 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오랜만의 포스트시즌 출전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긴장이 되는 하성이었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상황이 낫지.’
이전 삶에서의 포스트시즌들을 떠올렸다.
‘설마 한국시리즈에서 4경기나 나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어.’
그때 하성의 머릿속에는 오직 팀과 팬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아프고 힘들어도 마운드에 올랐다.
결과는 최악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나은 생각이었다.
‘1이닝만 완벽하게 잡아내면 된다.’
하성은 차분하게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경기 상황을 지켜봤다.
* * *
하성의 예상대로 경기는 1점 차 승부가 됐다.
[8회 말, 어슬레틱스가 1점을 얻어내면서 이닝을 마감합니다.] [그래도 1점을 내서 다행입니다! 1점만 내면 어슬레틱스가 이길 확률이 확 올라갑니다!] [그렇습니다! 디 엔드 정하성 선수가 9회 출격을 대기 중입니다!]카메라가 불펜에서 걸어 나오는 하성을 비추었다.
그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추자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정하성이다!!”
“너 보러 왔다!!!”
“형! 한국에서 형 보러 왔어요!!”
응원 중간중간에는 한국어도 들려왔다.
하성의 경기를 보기 위해 한국에서 온 열성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카메라의 먹잇감이 됐다.
[태극기를 흔드는 관중도 보입니다! 교민분들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기사를 보니 한국에서 직접 찾아간 분들도 있다 하더군요!] [정말 대단한 열정입니다! 이곳 오클랜드 콜로세움에는 정하성 선수를 향한 팬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이번 디비전 시리즈를 위해 방송국에서는 직접 중계팀을 보내 위성중계를 하고 있었다.
중계에 대한 반응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정하성 출격-!
-디엔드가 경기 끝내러 나왔다.
-크으-! 이걸 직관하러 갔네.
-와…… 직관러들 뭐냐? 열정 쩌네.
-저 사람들은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ㅋㅋ
-정하성 덕분에 학교에서 라이브를 보네 ㅋㅋ
-우린 회사에서 틀어줌.
-난 낮술 하면서 보는 중이다.
-오늘 월차 냈음.
하성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팬들이 TV 앞에 몰려들었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시작됐지만, 아직까진 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다 보니 TV를 보는 일이 더 잦았다.
어쨌든 이렇게 TV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 하성은 가볍게 연습 피칭을 하면서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연습 투구를 끝낸 하성에게 토니 감독이 다가와 물었다.
“몸 상태는 어때? 듣기로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하던데.”
“썩 좋지 않은 건 맞는데. 어쩌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성은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를 아끼지 않았다.
전략이야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오늘 경기를 잡고 미네소타로 넘어가야 한다. 그게 베스트야.”
“예.”
“너만 믿는다.”
하성의 어깨를 두드린 토니 감독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홀로 마운드에 남은 하성은 로진을 손에 묻히며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바라봤다.
‘나 역시 점수를 줄 생각은 없습니다.’
점수를 준다는 건 그의 이미지에 흠집이 생긴다는 거다.
그럴 일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가 만만치 않았다.
[정하성 선수가 1점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섰습니다! 그런 정하성 선수가 상대해야 할 첫 번째 타자는 트윈스의 상징! 조 마우어입니다!]신이 설계한 포수.
조 마우어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