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88)
마운드의 빌런-88화(88/285)
마운드의 빌런 88화
알렉스 로드리고가 타석에 섰다.
거구의 그가 타석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늘도 컨디션이 좋은 거 같던데.’
앞전 타석들에서도 컨디션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안타는 맞추지 못했지만, 2개의 볼넷을 얻어낸 게 컨디션이 좋다는 증거였다.
‘상관없지.’
로진을 손에 묻힌 하성이 마운드에 섰다.
‘녀석을 상대할 때 방심은 없다. 항상 최고의 상태라 생각하고 상대해야 해.’
하성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오롯이 알렉스에게 집중할 순 없었다.
‘지터 녀석이 언제 뛸지 알 수 없다.’
데릭 지터는 올 시즌 30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그의 커리어에서 세 번째로 많은 도루였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빠른 발과 정확한 타이밍을 가지고 있었다.
‘알렉스에게만 집중하면 언제든지 뛸 거다.’
트레버도 그것을 알기에 사인을 보내 지터를 신경 쓰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도 신경 쓰고 싶지만, 문제는 녀석을 신경 쓰다가 이 녀석에게 얻어 맞을 거 같은데.’
집중력이 분산되면 아무래도 공의 날카로움이 떨어진다.
정신을 집중해야 근육의 움직임과 힘의 이동을 느끼면서 던질 수 있다.
집중력이 분산된다는 건 이러한 전력투구를 할 수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래도 녀석이 달리면 골치 아파지니.’
하성은 피처 플레이트를 밟으며 투구자세에 들어갔다.
사이드로 서서 데릭 지터를 눈짓으로 견제하며 자신의 타이밍을 잡아갔다.
“후우…….”
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지터를 뒤로 하고 하성이 슬라이드 스텝을 밟으며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콰직!!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몸을 회전시키며 1구를 뿌렸다.
[1구 던졌습니다!]쐐애애액-!!
코스는 몸쪽 낮은 코스였다.
딱!!
알렉스의 배트가 공을 낚아챘다.
빨랫줄처럼 뻗어 나간 공이 3루 라인 선상에 떨어졌다.
아슬아슬한 코스, 3루심의 판정이 중요했다.
“파울!!”
[1구 강타했지만, 파울입니다!] [비록 파울은 됐지만, 잘 맞은 타구였어요.] [알렉스의 타격이 무섭네요.] [확실히 컨디션도 좋아 보이지만, 1구는 조금 밋밋했습니다.] [아무래도 주자가 있어서 그런 거겠죠?] [예. 주자가 있으면 투구에만 집중할 수 없으니까요. 비록 미세한 차이지만, 컨디션이 좋은 알렉스를 상대하는 데에는 조금 부족했습니다.]약간의 차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알렉스를 제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차이는 2구와 3구에서 계속 드러났다.
퍽!!
“볼!”
[체인지업에 배트 나오다 멈춥니다!]퍽!
“볼!!”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에 꿈쩍도 하지 않는 알렉스!]두 번이나 변화구를 던졌다.
하지만 알렉스의 배트를 유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슬라이더가 더 휘어서 들어가네.’
무엇보다 3구는 카운트를 잡기 위한 브레이킹볼이었다.
그런데 평소보다 더 변화해서 들어가는 바람에 볼이 되었다.
볼카운트는 투볼 원스트라이크.
하성에게 불리한 볼카운트가 되었다.
‘아무래도 지터를 계속 쓰니 공이 평소와 달라. 하지만 아주 미묘한 차이가. 알렉스는 그게 눈에 보이는 건가?’
공을 직접 받는 자신도 겨우 알 수 있을 정도의 차이다.
그런데 알렉스는 타석에 있으면서도 그러한 차이를 명백하게 느끼고 있는 듯했다.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트레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하성은.
‘약쟁이 새끼.’
로드리고가 약을 했다고 확정을 짓고 있었다.
‘저 녀석 경기를 앞두고 스파이더라는 집중력을 끌어올려 주는 사탕을 먹었다고 했었지.’
스파이더는 일종의 ADHD 치료제였다.
ADHD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을 증가시켜야 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교감신경계를 자극하여 집중력을 증가시켜주는 효능이 있었다.
물론 이는 도핑 물질이다.
하지만 이 당시 로드리고가 복용한 스파이더에는 도핑에 걸리지 않게끔 만들어진 특별한 약물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진 모르지만, 확실한 건 의사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었지.’
의사가 직접 전달해 주었다는 폭로까지 나오면서 메이저리그가 발칵 뒤집혔었다.
같은 업계이니 하성도 소식을 접해서 알 수 있었다.
어쨌건 녀석의 현재 집중력은 단순히 좋다는 수준으로 보기 힘들었다.
‘어설프게 들어가면 내가 상대할 수 없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지터가 1루에 나간 것만으로도 하성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패스트볼로 가겠어.’
하성의 사인에 트레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답에 가까웠다.
지금 상황에서 어설픈 공을 던지는 것보다는 가장 자신 있는 공을 던지는 게 정답이었다.
하성에게 있어 그런 공은 당연히 패스트볼이었다.
‘응?’
하성이 세트포지션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왜, 견제를 하지 않아?’
데릭 지터를 자유롭게 풀어버린 것이다.
단순히 바라보지 않는 게 아니었다.
데릭 지터는 등을 보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정면에서 보고 있는 트레버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하성의 뇌리에는 데릭 지터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주자는 아예 신경을 끄고 투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젠장! 지터가 눈치채면 안 돼! 빠르게 던져!’
그런 트레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하성은 평소보다 빠른 템포로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콰직!
발을 내디디고.
휘릭!!
하체와 상체를 돌리며 4구를 던졌다.
“흡!!”
쐐애애액-!!
그의 손을 떠난 공이 알렉스의 몸쪽을 강하게 찔렀다.
뻐어억-!
“스트라이크!!”
[4구 스트라이크입니다! 100마일의 강속구가 알렉스의 몸쪽 깊숙한 곳을 찌릅니다!] [아주 좋은 공이 들어왔어요! 알렉스가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이었습니다!]투볼 투스트라이크.
그리고 지터가 눈치를 챘다.
‘날 신경 쓰지 않는군.’
뒤이어 알렉스와 더그아웃의 사인을 확인하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현재 알렉스를 상대하기 위해서 날 신경 쓰지 않는다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루키다운 패기였다.
자신도 어릴 때는 저랬던 적이 있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과감함을 보인 적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이 아저씨에게는 너무 잘 보인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달리겠어.’
지터의 사인에 더그아웃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작전은 곧 타석에 있는 알렉스에게도 전달되었다.
‘나와의 대결을 위해 주자를 버리다니. 애새끼가 할 만한 생각이군.’
벤치에서도 그것을 눈치채고 과감한 작전을 지시했다.
‘런 앤드 히트. 나쁘지 않은 작전이지.’
투수가 주자를 버린 상황에서 가장 완벽한 작전이었다.
‘플레이오프는 페넌트레이스와는 다르다 애송아.’
포커페이스로 타석에 들어선 알렉스가 타격자세를 취했다.
사인 교환은 빠르게 끝났다.
하성이 사인을 보냈고 트레버가 받아들였다.
사인 교환이 끝나고 하성이 세트포지션에 들어가자 지터가 조금 리드폭을 늘렸다.
그럼에도 하성은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지터의 리드폭이 늘어났지만, 정하성 선수는 견제구를 던지지 않네요.] [타자에게만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5구 던집니다!]그 순간.
하성이 슬라이드 스텝을 밟았다.
동시에 지터가 땅을 박차고 2루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 도루를 시도하는 데릭 지터!!]완벽한 타이밍의 도루였지만, 하성이 할 수 있는 건 홈으로 공을 던지는 것뿐이었다.
‘와라! 반드시 때려내 주마!’
알렉스가 눈을 부릅떴다.
“흡!!”
쐐애애애액-!!
외마디 기합 소리와 함께 하성의 손에서 공이 떠났다.
그 순간 알렉스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뭐야? 왜 저리로 가?’
공은 스트라이크존이 아닌 아예 바깥쪽으로 빠지고 있었다.
배트를 돌리던 알렉스는 다급히 스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눈앞으로 공이 지나갔고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공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예 일어서서 공을 받는 트레버가 보였다.
[아-! 완전히 공 뺐습니다! 일어나서 공을 잡은 트레버 포수! 2루로 송구!!]쐐애애액-!!
트레버의 손을 떠난 공이 하성의 머리 위를 지나 그대로 2루수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퍼퍽!!
공을 잡은 2루수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오는 지터의 어깨를 글러브로 때렸다.
모든 이의 시선이 2루심에게 향했을 때.
“아웃!!”
[도루 실패!! 양키스의 작전이 완벽하게 정하성, 트레버 배터리에 읽혔습니다!]주자가 사라지면서 첫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다.
볼카운트가 쓰리볼 투스트라이크가 됐지만, 하성에게는 오히려 좋은 상황이 됐다.
[주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정하성 선수는 이제 온전하게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게 됐습니다!]* * *
6구를 던지기 위해 사인을 교환한 하성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정하성 선수, 풀카운트에서 6구 던집니다!]와인드업에서 힘을 모은 하성이 스트라이드에 이어 몸을 회전시키며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흡!!”
쐐애애애액-!!
공은 다소 높은 코스로 들어왔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들었기에 알렉스의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후웅-!!
그의 배트가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단번에 공을 때려내려는 순간.
공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배트 위를 지나갔다.
‘젠장!’
라이징을 예상하고 배트를 돌렸지만, 공은 생각보다 더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예상보다 높게 들어오는 공을 맞히는 건 불가능했다.
뻐어억!!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입니다! 풀카운트 승부에서 알렉스 로드리고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정하성 선수!! 멋진 승부였습니다!] [승부도 승부였지만, 정하성 선수가 5구에서 선택한 작전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설마 거기서 공을 빼는 선택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풀카운트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담함이 돋보이는 작전이었죠.]트레버는 경악했다.
설마 거기서 그런 사인이 나올 줄이야.
‘지터가 달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신도 아니고 그걸 알 수 없다.
트레버는 단순히 우연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은 아니었다.
‘지터가 뛰어난 선수이니까, 거기서 뛸 거라 예측했지.’
데릭 지터는 좋은 선수다.
단순히 타자로서 뛰어난 게 아니라 야구를 이해하고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그에게 신경을 끄는 모습을 보이면 분명 달릴 거라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리스크가 크긴 했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보상도 크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누군가 보기에는 미친 짓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하성은 확률에 배팅했고 그에 따른 보상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남은 건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 정하성 선수가 팀의 챔피언십 시리즈 첫 승을 위해 마크 테셰이라를 상대합니다!]승리까지 남은 건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였다.
* * *
[정하성 챔피언십 시리즈 첫 세이브 달성!] [절벽에 몰렸던 팀을 구한 정하성의 슈퍼세이브!] [알렉스 로드리고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정하성!] [인터뷰에서 “지터가 달릴 거라 예상했다”라는 정하성의 발언이 화제!]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고 현지 기자의 정하성은 어땠냐는 질문에 “특별히 말할 게 없다. 고작 한 타석이다. 큰 의미는 두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혀!]경기가 끝났다.
하성의 활약으로 어슬레틱스는 귀중한 1승을 손에 넣으며 시리즈 스코어 2 대 1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