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89)
마운드의 빌런-89화(89/285)
마운드의 빌런 89화
역전이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슬레틱스의 선수단 분위기는 완벽하게 바뀌지 않았다.
딱-!!
[높게 떠오른 타구! 중견수에게 잡히면서 세 번째 아웃 카운트가 올라갑니다! 9회 말 공격이 허무하게 끝나면서 전날의 분위기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어슬레틱스! 시리즈 스코어 3 대 1이 됩니다!]승리를 계속 이어나가지 못한 채, 4차전을 내주었다.
그리고 5차전 역시 연달아 내주면서 어슬레틱스의 포스트시즌은 챔피언십 시리즈가 마지막이 되었다.
[시리즈 전적 4 대 1로 아쉽게도 정하성 선수의 시즌이 마무리됩니다.] [어슬레틱스의 한계가 명백하게 보인 시리즈였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노력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하성의 첫 시즌이 끝났다.
* * *
포스트시즌까지 진출했다는 건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패자의 라커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몇몇 선수들이 언론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히 그중에는 하성도 있었다.
“정하성 선수, 팀이 거둔 유일한 1승을 본인의 손으로 결정지었는데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평소대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기회가 더 찾아왔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클로저라는 보직은 아무래도 상황이 따르지 않으면 경기에 나설 수 없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 팬들도 많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하성 선수가 선발로 전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계획은 없습니다. 시즌이 끝났으니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죠.”
물론 거짓말이다.
이미 머릿속에는 내년 시즌 선발로 전향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밝힐 생각은 없었다.
‘극적으로 밝혀야 더 드라마틱하고 이슈가 되는 법이지.’
선수에게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극적인 변화를 주어야 가장 좋은 홍보가 되는 법이었다.
그때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알렉스 로드리고가 당신과의 대결에 대해 ‘고작 한 타석을 상대했는데, 무슨 코멘트를 남길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요. 여기에 대해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그 한 타석에서 로드리고는 저에게 발렸는데. 뭐, 제가 듣기로는 패배자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네요.”
“오오…….”
“역시 하성의 멘트가 세단 말이지.”
“아주 좋아.”
기자들은 화색을 띠며 하성의 멘트를 써 내려갔다.
이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다 한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데뷔 첫 풀타임을 보낸 소감이 어떠신가요?”
“재밌었네요.”
“……그게 전부입니까?”
“예. 너무 싱거웠나요?”
하성의 말에 기자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날의 헤드라인이 정해졌다.
[정하성 루키 시즌 소감으로 “재밌었다”라고 밝혀!]그렇게 하성의 시즌은 마무리됐다.
* * *
시즌이 끝났다.
하지만 하성의 스케줄은 오히려 더 빼곡해졌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시고 내일부터는 이 일정대로 움직일 거예요.”
이사벨이 건넨 일정표를 확인한 하성이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분 단위로 움직입니까?”
“그만큼 정하성 선수를 원하는 곳이 많다는 뜻이니까요. 그래도 정하성 선수의 요청대로 매우 적게 잡은 거예요.”
“이게요?”
“그럼요! 정하성 선수는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였어요. 원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건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첫 풀타임 선발을 뛰었을 때 얼마나 많은 곳에서 자신을 찾았던가?
야구 관계자, 홍보 관계자, 업체 관계자는 물론이거니와 지역 유지와 정치인들까지 만났다.
그들이 자신을 만나고 싶은 건 오직 하나였다.
자신들의 명성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별 쓸데없는 단체들은 빼죠. 여긴 뭡니까? 환경보호단체?”
“거긴 최근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어요. 정하성 선수의 이미지에 좋을 거예요.”
“야구선수는 야구를 잘하면 이미지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걸 챙겨 보는 팬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런 쓸데없는 홍보단체들을 돌 시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무능력을 그렇게 드러낼 생각입니까?”
하성의 말은 명백한 모욕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모욕적인 건 이러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아니에요. 고객이 원한다면 당연히 스케줄에서 빼야죠.”
“당장 돈벌이가 될 만한 것들이 필요합니다. 제 이미지는 알아서 잡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스케줄을 전체적으로 조정하도록 할게요.”
“일부러 한국으로 들어가는 걸 늦췄으니 좀 생산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도 주의해 주시고요.”
“네.”
하성은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돌려서 이야기했다가는 오히려 일이 틀어질 수 있다.
그리되면 틀어진 것을 다잡기 위해 또 일을 해야 했다.
‘시간 낭비는 할 필요 없지.’
비시즌의 시간은 귀중하다.
단순히 휴식이 아닌 내년 시즌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들이다.
낭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럼 내일 다시 뵙도록 하죠.”
* * *
하성은 다양한 스폰서들을 만나며 계약을 체결했다.
그의 소식은 곧 기사화되어 한국에서 크게 다루어졌다.
[정하성 명품 시계 브랜드인 로렉스와 스폰서 계약 체결!] [이탈리아 명품 남성복 브랜드인 로이드와 계약을 체결한 정하성!] [로이드의 안토니오 CEO는 인터뷰에서 “정하성은 동양인답지 않은 비율을 가진 뛰어난 선수다. 자신들의 브랜드와 어울린다”며 극찬!] [오성전자 미국 홍보모델로 정하성을 기용하기 위해 에이전시와 협상 중!]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게임인 MLB 2010의 모델로 정하성 유력!]시즌이 끝났지만, 하성에 대한 기사는 끝없이 쏟아졌다.
오히려 경기에 들쭉날쭉 나가던 시즌 때보다 더 많은 기사가 나오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한국에서 하성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이야…… 루키 시즌에 로렉스와 계약하네.
-어차피 시계 스폰해 주는 거잖아?
-그거만 해도 어디임? 수천만 원 시계를 그냥 후원해 주는데.
-다른 선수들은 모델료로 수십억을 받는데?
-정하성도 곧 그렇게 되겠지.
-하여간 이런 새끼들이 꼭 있어요.
-오성전자와 계약하면 자기 연봉만큼은 더 벌겠네.
-내년 시즌 연봉 더 오르지 않을까?
-서비스 타임 채우지 못해서 어차피 올해랑 비슷할 거임.
-사이영상인데?
-사이영상 할애비가 와도 똑같음.
인터넷에서는 연일 하성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며 그의 유명세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와중에 하나의 동영상과 함께 기사가 올라왔다.
[미국 유명 팝가수인 JB의 파티에 참석한 정하성!]파티에 참가한 하성이 유명 스타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와…… JB는 물론이거니와 제이지도 있네.
-저기 마돈나 아니냐?
-팝 쪽 유명 아티스트는 다 모인 거 같은데?
-정하성 출세했네.
-고작 루키 시즌 끝나고 저런 파티에 참석할 정도가 되나?
-사이영 수상이 확정적인데 충분하지 ㅋㅋ
-시즌 끝났다고 파티나 즐기고. 내년 시즌 안 봐도 훤하네.
-아이고 노스트라다무스 강림하셨네.
-나도 이건 좀 아닌 듯.
-야구선수라면 야구에 좀 충실해야지.
-1년 반짝했다고 그게 쭉 이어지는 건 아닌데, 아쉽네.
여론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유명 스타들과 어울리는 하성의 모습을 신기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실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스타들이 파티에 참석하는 문화가 당연한 게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보수적인 성향이 많이 남아 있는 한국이었다.
하성이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을 때.
월드시리즈가 마무리됐다.
[뉴욕 양키스 월드시리즈 우승!!] [악의 제국이 돌아왔다!]2009년 월드시리즈 우승컵은 뉴욕 양키스에게 돌아갔다.
* * *
월드시리즈까지 마무리되면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일정이 끝난 메이저리그에는 1년간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다양한 상들의 주인이 결정되기 시작했다.
의외로 미국의 시상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한국은 시즌이 모두 끝나고 한자리에 모여 시상식을 즐겼지만, 메이저리그는 딱히 그런 게 없었다.
그나마 명예의 전당 행사는 수상자가 모두 모이지만, 다른 상에는 그러지 않았다.
[한국과 달리 메이저리그는 시상식이 따로 없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메이저리그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선수들이 참가하는 리그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즌이 끝나면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많죠.] [즉, 시상식에 참가할 선수가 미국에 없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상식도 구장에서 구단 관계자들과 선수 몇몇이 모여 조촐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메이저리그에서 상을 수상한 선수가 많지 않기에 방송국에서는 이러한 부분도 특집프로그램을 통해 방영했다.
[하지만 올 시즌 국내 야구팬들은 이번 시상식의 결과를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을 텐데요.] [디 엔드 정하성 선수의 수상이 확실시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정하성 선수가 어떤 상의 수상이 유력한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가장 먼저 올해의 신인입니다. ROY로도 불리는 이 상은 기나긴 커리어 중 데뷔시즌밖에 받지 못하기에 오히려 가치가 높다 생각하는 팬들도 있습니다.] [ROY의 수상은 거의 확실하다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데요.] [맞습니다. 사실상 확정이라 봐야 합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정하성 선수보다 뛰어난 신인은 없으니까요.]하성의 ROY 수상은 확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는 골드글러브에 대한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음, 이 부분은 아마 어려울 겁니다. 골드글러브는 인플레이 상황에서 나오는 수비에 대한 평가에 따라 받는 상입니다.] [한국과는 다르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차이로 인해 혼동이 있는 거 같은데, 골드글러브의 수상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럼 한국의 골든글러브와 가까운 건 뭐가 있을까요?] [사이영상입니다.] [아, 사이영상이군요. 정하성 선수의 사이영상 수상은 어떻게 보십니까?]사이영상.
한 시즌을 가장 훌륭하게 보낸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종합적인 스탯을 기준으로 내리기에 가장 뛰어난 투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라 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리그에선 정하성 선수의 수상이 유력합니다. 한 가지 불안요소라면 클로저라는 점인데요. 보수적인 미국의 기자단이 변수이긴 합니다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경쟁자인 잭 그레인키 선수보다 정하성 선수가 유리한 상황입니다.] [만약 ROY와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하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 케이스라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1981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선수가 ROY와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한 뒤로는 한 번도 없던 케이스입니다.] [과연 정하성 선수가 두 상을 모두 받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그리고 며칠 뒤.
하성의 수상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해의 신인을 수상한 정하성!]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신인에 정하성 수상 확정!!]ROY는 예상대로 하성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이틀 뒤.
[정하성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 [동양인 최초로 사이영상을 품에 안은 정하성!!] [정하성!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ROY와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하다!]사이영상을 수상하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