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9)
마운드의 빌런-9화(9/285)
마운드의 빌런 9화
“휘유, 미국은 오랜만이군.”
LA에 도착한 하성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는 공부하러 왔었는데. 이번에는…….’
은퇴 직후.
지도자 연수를 위해 미국에 왔었다.
1년간 생활하면서 지냈기에 언어적인 문제는 크게 없었다.
‘적응도 문제없으려나? 당시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또 모르겠군.’
2020년과 현재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문화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의 발전도 아직 더딘 부분이 있었다.
‘사과폰이 갓 보급되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지 스마트폰 생태계도 아직이고.’
공항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은 몇몇밖에 없었다.
미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저것이 보급되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고 경험했던 하성이다.
그렇기에 아쉬웠다.
‘지금 회사 주식 몇 개 사두면 개꿀인데.’
욱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머리가 아파왔다.
‘망할 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원망을 쏘아내며 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내 앞에 놓인 길만 걷겠지만…….’
회귀하면서 하성의 성격은 모두 바뀌었다.
과거에는 삶에 찌들어 살아갔다면 지금은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주의였다.
그 결과가 좋았기에 더욱 그런 성향이 강해졌다.
‘성공만 하면 보자고. 그때는 더 큰 성공을 찾을 테니까.’
하성의 욕망이 눈을 뜨고 있었다.
* * *
LA에 도착한 하성은 숙소를 잡고 인터넷을 확인했다.
‘한국에서 확인한 것처럼 포스트시즌에서 멀어진 팀들이 본격적으로 트라이아웃을 모집하고 있어.’
어느덧 시간은 흘러 9월이 되었다.
한국에선 2차 드래프트가 마무리되었고 프로팀들은 포스트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들은?
내년 시즌을 위해 새로운 선수의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트라이아웃도 혹시나 자신들이 찾지 못한 선수가 있을까 싶어 진행하는 이벤트지. 어차피 참가비도 선수가 내니 뭐, 이벤트라 하긴 뭐하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선 참가비를 내야 한다.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 구단치고는 쪼잔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트라이아웃의 주체가 되는 건 대부분 마이너리그의 팀들이었다.
‘한국과 달리 마이너리그팀은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을 맺고 선수를 육성해 줄 뿐이지. 제법 지원을 받긴 하지만, 팀 운영하는 데 빠듯하지.’
지도자 수업을 위한 연수를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팀에서 고루했기에 제법 미국 사정에 빠삭한 하성이었다.
덕분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일단 트라이아웃을 진행하는 팀 중에서 후보군을 고르자.”
2008년.
메이저리그에는 총 30개 구단이 있었다.
이들 구단은 마이너리그에 속한 구단과 계약을 맺어 선수들의 육성대행을 맡겼다.
“미래에는 마이너리그 구단을 직접 인수해서 자체적인 프로세스를 만드는 곳들이 생기지만, 현재는 한 곳도 존재하지 않지.”
그래서 마이너리그 구단과 계약이 끝나면 그 팀이 바뀌는 일도 제법 있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게 가장 베스트지만…….”
메이저리그의 일정을 확인했다.
“곧 끝나긴 하겠네. 예정대로 마이너리그 구단의 트라이아웃에 참여하고 만에 하나 실패하면 메이저리그로 방향을 틀면 되겠어.”
하성은 피식 웃었다.
“뭐, 그럴 일은 없겠지.”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다.
한국에서 계약하게 될 경우 자신이 메이저리그 구단에 한 가지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나와 계약을 맺기 위해 KBO와 척을 질 수 있는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는 거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하성은 이러한 케이스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 아닌데도 일이 틀어지면 책임을 자신에게 묻는다.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게 최고지.”
그래서 택한 게 마이너리그 트라이아웃 참가였다.
“한국에선 마이너리그를 메이저리그의 2군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독립된 리그지.”
한국은 크게 1군과 2군으로 나뉜다.
2군을 퓨처스리그라고 하여 1군과 독립된 리그를 진행한다.
이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진행 방식과 흡사해 국내 팬들은 두 리그를 1군, 2군 개념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메이저리그의 구단이 마이너리그와 계약을 맺어 특정 선수를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약의 내용에 불과하지.”
가장 큰 차이점은 마이너리그 구단과 메이저리그 구단 간의 계약이 4년마다 갱신된다는 점이다.
즉, 종속의 개념이 아닌 계약 관계라는 게 정확하다.
독립된 리그이기에 연봉 체계부터 팀의 운영 방식 등.
모든 게 전혀 다르다.
한마디로 전혀 다른 리그라고 봐야 한다.
“메이저리그에 한 번 콜업이 되면 마이너리그에 함부로 내릴 수 없어. 마이너리그 옵션이란 게 있으니까.”
마이너리그 옵션은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들어간 선수가 마이너리그에 무분별하게 내려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40인 로스터에 든 선수가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어 로스터에 등록되고 20일이 지나면 서비스타임 1년을 소비하게 된다.
이 서비스타임이 3년 이상 지나면 마이너리그에 내릴 수 없게 된다.
이런 선수를 내보내기 위해선 방출과 같은 지명할당을 해야 한다.
이 경우 다른 구단에서 계약이 가능한 자유계약 상태가 된다.
“주전급 선수를 지명할당하는 케이스는 거의 없지. 한마디로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야.”
이러한 차이점으로 2군과 마이너리그의 개념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했다.
“즉, 내가 마이너리그와 계약을 맺더라도 그 주체는 마이너리그 구단이 되는 것이지.”
KBO와 마이너리그 간의 협약은 따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마이너리그와 계약을 맺는 건 그들이 어떻게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하나도 빈틈이 있어선 안 돼.”
괜히 트집 잡힐 구석은 만들지 않는 게 최고다.
그것이 한 번 삶을 살아온 하성의 방식이었다.
“내가 가장 빨리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될 수 있는 곳은…….”
하성은 몇 가지 팀을 선정했다.
팀들 대부분이 중하위권에 있는 구단들이었다.
처음부터 부자구단에 갈 계획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구단에 돈이 많을수록 선수층이 두텁다.
그러다 보니 유망주가 기회를 얻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선발은 현재 내 스태미너로는 불가능해. 중간계투 혹은 클로저로 들어가는 게 가장 베스트다.”
고교야구 마지막 경기에서 160의 공을 던졌다.
이는 분명 기념비적인 일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그게 통할 거라는 보장은 아니었다.
“실제로 마이너리그에는 160을 던지는 유망주가 수두룩하지. 그중에 빅리그에 데뷔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세계는 넓고 괴물은 많다.
그들과 붙어 이겨야지 메이저리그라는 무대에 설 수 있다.
“굳이 정면으로 붙을 필요는 없지.”
하성은 조금 더 편한 길을 갈 생각이었다.
“이 정도겠지.”
팀 명단을 확인한 하성이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팀들과 산하 마이너리그 팀의 트라이아웃 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편한 길이 있는데, 싸울 이유는 없지.”
그의 미소가 짙어졌다.
* * *
마이너리그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10월까지 리그를 진행하지 않는다.
단계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빨리 시즌이 종료되는 루키리그의 경우 8월 말이면 시즌이 종료된다.
다른 리그들 역시 독립적으로 운영되기에 시즌 종료 시기는 모두 달랐다.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하성의 시선이 지도로 향했다.
‘캘리포니아 리그에 속한 베이커즈필드 블레이즈.’
캘리포니아 리그는 마이너리그 중 싱글A에 속해 있다.
싱글A는 크게 로우A와 하이A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하이A에 속하는 리그였다.
하이A를 국내로 비교하면 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되는 선수급의 유망주들이 포함되어 있다.
‘베이커즈필드 블레이즈가 현재 계약된 팀은 오클랜드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약체구단 중 한 곳이다.
사이버 매트릭스를 접목해 머니볼이란 이론을 내세웠던 빌리빈 단장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 팀이다.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팀은 여전히 스몰마켓으로 선수의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로스터도 약하고 여기에 들어가면 트레이드로 강팀으로 이적되기도 쉬워.’
이곳을 1순위로 잡은 이유였다.
‘무엇보다 트라이아웃이 가장 빠르고.’
하성은 버스에 몸을 실으며 베이커즈필드로 향했다.
* * *
베이커즈필드 블레이즈의 홈구장인 샘 린 볼파크.
시즌이 끝난 이곳에 선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백인, 흑인, 라틴계는 물론이거니와 동양인들도 보였다.
“후우…… 긴장되네.”
동양인 중 한 명인 가진동이 한숨을 내쉬며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번에는 꼭 붙어야 하는데.”
올해 24살인 그는 대만 실업팀에서 뛰다 꿈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벌써 세 군데에서 트라이아웃을 진행했지만, 연락이 온 곳이 없었다.
점점 초조해졌다.
꿈을 위해 직장도 뒤로 하고 넘어왔으니 말이다.
그는 떨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하나같이 키도 크고 몸도 좋아 보여. 저런 사람들의 대시를 막을 수 있을까?’
가진동의 포지션은 포수다.
포수는 투수가 던진 공을 받는 게 주업무이나 그것만 하는 게 아니었다.
벤치와 선수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때로는 감독 대신 투수를 진정시키는 역할도 해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홈플레이트를 방어하는 마지막 문지기의 역할도 했다.
‘으으…… 스치기만 해도 사망할 거 같은데.’
미래에는 홈플레이트 충돌 규정이 생긴다.
주자가 홈으로 들어올 때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막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아직 그 규정이 생기기 전이었다.
그렇기에 홈으로 주자가 들어올 때는 포수가 몸으로 막아야 했다.
동양인치고 큰 몸을 가진 가진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양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응?’
큰 서양인들에게 기세가 눌려 있던 가진동의 눈에 의아한 인물이 들어왔다.
‘동양인? 일본인인가?’
꽤 큰 키, 하지만 서양인에 비해 작은 덩치를 가진 그를 본 가진동은 일본인을 떠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한국은 아직 세계에 덜 알려진 상황.
가진동이 일본을 떠올리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들 모여!!”
그때 베이커즈필드 블레이즈의 관계자가 나와 선수들을 집합시켰다.
가진동도 잡념을 떨쳐내고 집합했다.
집합한 선수들 중에는 또 다른 동양인, 하성도 있었다.
‘제법 피지컬들은 좋네.’
하성도 가진동처럼 자신의 경쟁자들을 보며 테스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통과하는 건 나야.’
첫 번째 트라이아웃이 시작됐다.
* * *
트라이아웃 테스트는 크게 2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신체 능력을 테스트하는 단계였다.
하성은 여기에서 투수조 3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달리기 겁나 빠르네.’
1위로 통과한 녀석은 종목을 잘못 택한 게 아닐까 싶었다.
‘11초가 나온 거면 차라리 단거리로 갔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이후 몇 가지 테스트를 더 진행하고 1단계를 통과했다.
2단계는 피칭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다.
마운드가 정리되고 관리자가 마운드 옆에 섰다.
“이제부터 순서대로 10개씩 던진다. 먼저 토니.”
‘사실상 여기에서 통과해야지.’
본격적인 테스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