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91)
마운드의 빌런-91화(91/285)
마운드의 빌런 91화
공항을 떠난 하성은 김혜령이 준비한 밴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자리에서 하성은 앞으로 있을 일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내일까지는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어요. 긴 여행에 지치셨을 테니, 충분히 쉬셔야 할 테니까요.”
“그럼 모레부터 일정이 있는 거네요?”
“네. 첫 번째 일정은 오성전자 실무진과의 미팅이에요. 그쪽에서는 홍보팀장을 비롯해 전무급 인사가 한 명 나온다고 들었어요.”
“휘유, 제법 공을 들이네요. 절 보기 위해 대 오성전자 전무님이 나 오시고요.”
“하성 씨의 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소리죠.”
“좋네요. 한국 최고의 회사가 제 가치를 인정해 주다니 말이죠.”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거예요. 참, 그리고 정치인들이 만나자는 연락을 많이 해오는데.”
하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리 말씀드렸지만 다 거절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일제히 거절하도록 할게요. 종교행사나 자선단체 행사도 모두 제외할까요?”
“예. 차라리 그런 거 잡을 시간에 광고를 하나 더 찍는 게 낫겠네요.”
“동감이에요.”
김혜령이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앞으로 한 달간의 스케줄 표예요. 중간에 요청하셨던 서울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해두었어요.”
“대학병원 예약 힘드셨을 텐데. 용케 잡으셨네요.”
“이것도 모두 정하성 선수가 유명해서 가능했던 거예요.”
서울대 병원은 웬만한 유명인이라도 순서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하성은 이미 웬만한 유명인의 범주를 넘어선 선수가 되었다.
거기에 김혜령의 인맥이 조금 더해져 일찌감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좋네요.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네, 알겠어요. 그럼 도착할 때까지 쉬세요.”
“예.”
하성은 안대를 내리기 전.
창밖을 통해 인천대교의 화려한 모습을 바라보며 한국에 왔음을 느꼈다.
* * *
하성의 부모님은 본래 공항에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성의 만류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아들이 들어온 모습을 TV로 먼저 마주했다.
“아들 말대로 나가지 않은 게 다행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사람들이 아주 많이 왔어.”
“우리 아들이 1년 만에 정말 유명해졌어요.”
“회사에서도 매일 하성이에 대해 이야기하잖아. 당신도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알아본다며?”
“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떨어졌을 때 동네 사람들이 모두 슬퍼했잖아요.”
“하하! 맞아.”
아들의 유명세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 덕분에 느낄 수 있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반응에 아들이 유명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런 아들이 도착한다는 사실에 벌써 가슴이 뛰었다.
딩동-!
그때 벨 소리와 함께 인터폰에 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버지가 버선발로 현관까지 나가 문을 열었다.
“아들!”
“아버지!”
오랜만에 만난 부자가 진한 포옹을 나누고 하성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반년 만에 만난 아들의 달라진 모습에 눈물을 글썽였다.
“아들~”
“엄마, 저 왔어요.”
“고생했다! 고생했어!!”
부모님과의 해후를 만끽하고 집안에 들어온 하성은 어머니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방에 짐을 풀었다.
‘하나도 달라진 게 없네.’
방의 배치는 하성이 떠날 때와 그대로였다.
용품은 물론이거니와 먼지도 전혀 없었다.
어머니가 매일같이 들어와서 청소를 하셨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역시 부지런하시다니까.’
회귀를 했음에도 어머니는 달라진 게 전혀 없으셨다.
여전히 부지런하셨고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아들! 나와서 밥 먹어!”
“네~”
오랜만에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맛볼 시간이었다.
* * *
이틀 뒤.
하성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검은색 밴이 도착해 있었는데, 하성이 보이자 곧 문이 열리며 김혜령이 내렸다.
“대표님이 직접 매니저를 하세요?”
“당연하죠. 저희 회사 VIP이신데요. 어서 타세요.”
“네.”
본래 매니저는 직원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혜령 정도의 짬밥이면 직접 현장을 뛸 일은 많지 않다.
그런데 직접 왔다는 건 그만큼 하성을 챙기고 있다는 소리였다.
“오늘 코디는 이걸로 입으시면 되세요. 아르마니에서 제공한 정장이에요.”
“오늘도 카메라에 서는 건가요?”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거리를 다니면 아무래도 대중의 눈에 띌 일이 많아서요. 최근 스마트폰 보급률도 높아지고 있고요.”
스마트폰의 보급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애플에서 나온 아이폰, 오성전자에서 나온 스페이스를 비롯해 다양한 스마트폰들이 시장에 나오고 있었다.
‘결국 살아남는 건 아이폰과 스페이스폰 두 가지밖에 없지.’
지금은 춘추전국시대였지만, 앞으로는 두 개의 스마트폰이 시장을 점령한다.
그런 전국시대를 깨는 게 중국의 화웨이지만, 조금 더 미래의 이야기였다.
‘지금 시기에 오성전자의 주식을 사두면 대박인데.’
물론 불가능한 일이기에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만약 투자가 가능했다면 다른 것보다도 비트코인을 백 개 정도 사서 쟁여두고 싶었다.
‘하아…… 돈을 벌 길이 있어도 투자를 하지 못하니…….’
할 수 없이 불로소득이 아닌 열심히 뛰어서 버는 수밖에 없었다.
하성의 입장에선 눈물 나는 일이었다.
“도착했네요.”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강남의 한 한식당이었다.
프라이빗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약속 장소는 아예 별채로 잡아 더더욱 외부인의 방해를 받지 않게 했다.
“손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별채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오성전자의 직원들이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의 얼굴은 하성도 익히 하는 이였다.
“반갑습니다, 정하성 선수. 저는 이용진 전무입니다.”
이용진 전무.
현 오성그룹의 회장인 이희건의 장남으로 미래 오성그룹의 회장이 되는 인물이었다.
예상치 못한 거물의 등장에 놀라는 건 김혜령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도 몰랐다는 건, 이용진이 스스로 나왔다는 소린데. 저런 거물이 날 만나러 나올 정도로 내가 커졌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하성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건 나쁜 일은 아니지.’
하성은 이용진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했다.
“정하성입니다.”
* * *
자리에 앉은 뒤.
이야기를 주도하기 시작하는 건 이용진이었다.
“정하성 선수의 올 시즌 활약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더군요. 정하성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아, 이 선수를 꼭 모델로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기를 직접 모셨나요?”
“매일 챙겨보진 못했지만, 대부분은 봤습니다. 하이라이트 영상들도 물론이고요.”
이용진의 말에 하성은 회귀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야구장에도 몇 번 왔었지. 한국시리즈라든지 플레이오프 경기에는 자주 왔었고.’
실제 오성그룹은 오성 라이온즈라는 야구구단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용진은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올 정도로 구단에 애정이 깊은 인물이었다.
“그럼 절 모델로 기용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전무님이 내신 건가요?”
“예. 제가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정하성 선수가 가진 국내에서의 인지도 그리고 미국에서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국내에는 따로 대안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시는군요.”
“날카로우시군요. 맞습니다. 국내시장에만 있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회사가 커지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을 노려야 합니다. 그 시작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미국입니다.”
이 당시 한국기업들은 아직 글로벌화가 되지 않았다.
내수시장이 우선시 되어 왔고 그로 인해 기업의 성장에 한계를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기업들의 글로벌화가 가속화됐다.
특히 오성그룹은 전 세계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거대그룹이 될 정도로 커진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오성전자였다.
“저희의 글로벌 전략에 맞춰 회사를 홍보해 줄 모델로 정하성 선수가 적합합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최고의 조건으로 정하성 선수를 모시고 싶습니다.”
이용진이 직원에게 눈짓을 하자 한 장의 파일을 건넸다.
“저희의 제안서입니다.”
하성은 그것을 받아들여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은 10년이었고 총액은 100억에 달하는 대형 계약 규모였다.
주요 내용을 확인한 하성이 제안서를 김혜령에게 건넸다.
제안서를 열어본 김혜령이 눈이 커질 정도로 대규모 계약이었다.
‘아무리 오성전자가 크다지만, 이제 1년을 뛴 선수에게 100억을 안겨주는 계약을 한다고?’
이런 계약은 듣도 보도 못했다.
특히 10년이라는 기간은 오성전자가 얼마나 정하성을 높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스포츠 스타는 언제든지 기량이 하락할 수 있어. 부상으로 인해 고꾸라질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장기 계약을 맺지 않는 법인데.’
매년 10억짜리 계약이다.
이는 국내 홍보 모델로는 최고 수준의 대우였다.
‘S급으로 분류되는 스타들도 이 정도의 금액을 받지 못하는데…….’
첫 계약에 이 정도의 금액을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조건들이 달려 있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조건들이었다.
‘당장 승낙해야 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사인을 하고 확정을 받아야 했다.
김혜령이 그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거절하겠습니다.”
하성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왔다.
* * *
이용진과의 첫 만남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김혜령은 두통이 있는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머리 아프세요?”
“하아…… 당연히 아프죠. 매년 10억짜리 계약을 지금 거절하신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하성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더 화가 났다.
“도대체 왜 거절하신 거예요?”
“계약서에 한국은 물론 글로벌 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요.”
“그건 원래 대부분 계약 내용에 들어가는 거예요. 큰 문제가 없는 조항이고요.”
“1년에 10억짜리 계약이었으면 저도 바로 했을 겁니다. 하지만 10년이면 너무 장기로 묶여 있어요.”
“오히려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10년 뒤에 더 큰 선수가 되어 있으면 헐값에 계약을 하는 거죠.”
하성의 말에 김혜령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반론하면 하성의 성장성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 말이다.
“저는 제 성장성에 배팅을 한 겁니다. 지금 장기 계약을 할 이유는 없어요.”
“그럼 최대 기간은 얼마나 생각하고 계세요?”
“2년. 그 이상은 모두 거절할 생각입니다.”
부상이라도 입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라는 말이 목구멍을 때렸지만, 김혜령은 그걸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하성이 더 우위에 있는 계약이었으니 말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절 믿으세요.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했던 것들 중에서 지키지 않은 건 없잖아요?”
“그건…….”
할 말이 없게 만드는 하성이었다.
“오성전자와는 2년 계약으로 잡아보세요. 매년 5억 이상의 모델료를 받으면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하아…… 알겠어요.”
김혜령은 이내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20살이 맞아? 무슨 말을 저렇게 잘해.’
지금까지 만나온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그의 모습에 김혜령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일정이 시작됐는데. 벌써부터 피곤하다니…….’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되는 김혜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