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93)
마운드의 빌런-93화(93/285)
마운드의 빌런 93화
갑작스러운 하성의 태도에 앞서 걸어가던 선수가 멈춰 서서 하성을 바라봤다.
하성은 그 선수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야?”
“네?”
“이름. 저 아저씨보다 내가 더 유명하거든? 형이 사인해 줄 테니까, 그만 울자.”
“바…… 박태우예요!”
“박태우. 이름 멋지네. 야구 하고 있어?”
“네! 커서 프로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좋다. 태우가 프로선수가 되면 형이랑 한 팀에서 뛸 수도 있겠네. 형 메이저리그에 있는 거 알지?”
“무…… 물론이죠!”
“다음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만나자. 알았지? 자, 여기.”
“가…… 감사합니다!!”
박태우가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런 태우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주던 하성에게 그 선수가 다가왔다.
“너 인마, 방금 뭐라 했어?”
“뭐가요?”
“네가 나보다 더 유명해? 올해 반짝하니까 아주 네 세상 같지?”
“내가 뭐 틀린 말 했습니까? 내가 당신보다 더 유명하잖아요? 설마 나보다 더 유명하다고 생각합니까?”
“뭐라고? 이 새끼가 진짜!”
“그리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나이만 많으면 반말 찍찍 싸대도 돼?”
조용히 말하는 하성의 말에, 선수 양대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분위기에 주위에 있던 선수들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뭐 하는 거야 지금?”
“팬들 앞에서 싸우는 녀석들이 어디에 있어?!”
선수들의 만류로 양대현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 사인 원하시는 분?”
“저요!!”
“꺄아아악! 저도 해주세요!”
“저도요!!”
하성은 남은 팬들 한 명, 한 명에게 사인하면서 마지막까지 팬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뒤에서 내려오던 선수들 몇몇도 사인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팬들은 원하던 선수의 사인을 받으며 기다림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 * *
하성과 양대현의 일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성이랑 양대현 한판 했다던데?
-무슨 소리임?
-시상식 끝나고 지하주차장에서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웬 남자애가 양대현 옷을 잡았나 보더라고.
한 유저가 자세한 이야기를 쓰자 댓글이 바로 달렸다.
-ㅅㅂ 게비오놈들 팬서비스 개구리네.
-뭐 하루 이틀이냐?
-그나저나 하성이 그런 면이 있음?
-TV에서 봤을 때는 완전 개차반일 거 같던데.
-걔 팬서비스 하나는 죽이잖아.
-거기 모여 있던 팬들 모두한테 사인해 주고 갔다던데?
-와…… 그 사람들 계 탔네.
-정하성 보기와는 다르네.
-양대현한테 한소리 한 것도 쩌네 ㅋㅋ
-너무 싸가지없는 거 아니냐?
-그래도 연장자한테 말 너무 함부로 하네.
-먼저 반말한 게 양대현임 ㅋㅋ
-반말하니까 반말로 말한 거지 뭐.
-이번 일에 하성이 잘못한 건 전혀 없음.
팬들 사이에서 화제 되면서 관련 기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여론은 하성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한국에서 프로선수들의 팬서비스는 악명이 높았다.
어떤 선수는 사인을 너무 많이 해주면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라서 해주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기다리던 팬들을 무시하는 건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언론도 그런 부분들을 지적했다.
[팬을 무시하는 프로선수들의 행태!] [메이저리거 정하성! 끝까지 남아 팬들에게 모두 사인을 해주고 돌아가!] [프로는 팬이 있어야 존재하는 법이다.]기사의 대부분은 하성의 행동보다 양대현, 그리고 KBO 선수들의 팬서비스에 대해 비난했다.
그리고 팬들은 여기에 열광하며 팬서비스를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성은 다시 소란의 중심이 되었지만, 당사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참, 이런 것도 기사화가 되고. 한국에선 프로선수가 갑이에요, 갑. 그렇지 않아요?”
“맞아요. 그래서 하성 씨의 행동에 감동받았어요.”
“그런 건 당연한 거죠. 팬이 있어야 스포츠가 있는 건데요.”
“그게 당연한 마인드인데. 어쨌든 이번 일은 저희에게 호재로 작용했어요.”
“호재요?”
“하성 씨를 원하는 기업들의 러브콜이 더 거세지고 있어요. 그들 입장에선 마케팅의 대상이 되는 대중에게 호감도가 높은 하성 씨의 가치가 높아졌거든요.”
기업들 입장에선 소수인 프로선수들보다 절대다수인 대중이 더욱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일로 하성의 호감도가 크게 올라갔으니 기업들 입장에선 더더욱 하성을 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성전자에서 2년 계약으로 20억이란 금액을 다시 제시해 왔어요.”
“금액이 그대로네요?”
“네. 그쪽에서 하는 말이 장기 계약이 아니더라도 정하성 선수에게는 이 정도의 가치가 있다 하더라고요.”
“대기업도 입에 발린 말을 잘하네요.”
“후후, 아무한테나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만큼 정하성 선수의 가치가 올라갔다는 소리죠.”
“그럼 그대로 계약하는 걸로 하죠. 참, 그리고 제가 말씀드렸던 날짜에 스케줄 조정은 가능한가요?”
“네, 가능할 거 같아요. 애초에 이브라서 스케줄을 적게 잡아뒀거든요. 그런데 이브에 갑자기 약속이라니, 데이트예요?”
하성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은하 씨가 공연에 선다고 해서 티켓 보내줬거든요. 거기에 참석하는 거예요.”
“오~ 은하 씨랑 계속 연락하시는 거예요?”
“한국에 와서 다시 연락이 왔어요. 티켓 줄 테니, 관심 있으면 오라 그래서 알겠다고 했죠.”
“아직 은하 씨가 단독공연을 하기에는 인지도가 부족하니. 아마도 회사 차원의 공연이겠네요.”
“그런 거 같더라고요.”
“어쨌든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세요. 대신 그날의 일정을 앞당겼으니 더 힘내고요!”
일이 힘들어진다는 말을 저리 쉽게 하다니.
김혜령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 * *
시즌이 끝났지만, 크리스는 매일 같이 사무실에 나와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트윈스에 괜찮은 타자들이 좀 있지 않나?”
“트리플A에 제법 있는 걸로 알아요. 명단은…… 여기요.”
“토마스…… 나쁘지 않지만, 오른손잡이는 충분해. 힐 얘는 1루수잖아. 우리 1루는 이미 충분하다고. 유격수와 2루수 위주로 뽑아서 골라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단장님, 휴스톤의 매튜가 연결해달라고 합니다.”
“내가 다시 전화한다고 해!”
“네!”
스토브리그가 한창 진행되면서 내년 시즌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필요 없는 선수를 내주고 필요한 선수를 영입하는 트레이드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방출하면서 선수단을 정리한다.
거기에 내년 시즌 선수들과의 계약 부분도 처리해야 하니 시즌 때보다 오히려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내년 시즌 마케팅은 역시 하성을 중심으로 잡아야겠죠?”
“당연하지. 거기에 한국을 위한 마케팅도 넣도록 해.”
“한국을 위한 마케팅이요?”
“과거 LA다저스가 코리안데이라고 해서 큰 재미를 봤던 일이 있어. 그것을 벤치마킹하자고.”
“그 정도로 하려면 시와 협의를 해야 할 텐데요.”
“그럼 하면 되지. 오클랜드에도 관광객이 늘어날 테니 좋아할 거야. 관계자와 미팅을 가지고 준비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크리스는 하성이 가진 스타성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 *
크리스가 하성을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KBO는 하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언론에서 연일 선수들의 팬서비스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도대체 며칠이나 가는 거야?”
“아무래도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한 번에 터진 거라.”
“쯧! 그깟 사인 좀 안 해줬다고 너무들 하는군. 그나저나 정하성은 왜 이런 일로 시끄럽게 만들어?! 거기에 양대현한테 반말까지 했다면서?”
“예……. 현장에 있던 다른 선수들에게도 확인했는데. 확실한 거 같습니다.”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도대체 교육을 어떻게 받았으면 선배한테 막말을 해?”
회의에서는 하성을 지탄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선후배 관계의 붕괴였다. 그렇기에 팬서비스에 대한 부분은 후순위로 밀려 있었다.
“당장 불러서 해명을 하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때 김태현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정하성은 KBO 소속이 아닌 메이저리그 소속입니다. 그런 그를 우리가 어떻게 불러서 사과를 하게 만든단 말입니까?”
“그거야…….”
해명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위원이 입을 다물었다.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태현은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회의실에 있던 위원들을 보며 말했다.
“사실상 이번 일은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문제입니다. 왜 그걸 외면하고 정하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겁니까?”
“팬서비스야 선수들의 자유 아닙니까?”
“그동안 자율적으로 맡겨왔더니 개판이 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팬들이 우리를 외면할 겁니다.”
“하하! 지금 프로야구는 최대의 호황기입니다. 올해 관중 수만 700만이 넘었어요.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외면한단 말입니까?”
“김 위원이 너무 흥분했군. 일단 이 일은 그냥 내버려 두도록 하지. 김 위원의 말대로 정하성을 불러올 방법이 없으니 그냥 잠자코 있으면 조용해질 거야.”
김태현의 일갈에도 회의의 분위기를 바꿀 수 없었다.
레전드라고는 하나 지도자의 길을 걸은 시간은 길지 않다. 그렇기에 KBO에서의 발언권도 약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 녀석들은 팬을 뭐로 생각하는 거야?!’
팬이 있기에 프로가 있다.
그것이 김태현이 프로 생활을 하면서 지켜온 신념이었다.
하지만 협회는 그런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저 자신들의 명성을 지키는 데 급급한 모양새였다. 거기에 인기가 영원할 거라 생각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거란 없어. 이런 모습이 계속되면 결국 팬은 등을 돌릴 거다, 이 머저리들아!’
하지만 지금은 이런 외침이 무의미했다.
자신에게는 힘이 없었으니까.
‘힘을 길러야 한다. 협회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길러야 해.’
김태현이 의지를 다지는 사이.
쓸모없는 회의는 계속 이어졌다.
* * *
“훅! 훅!”
하성은 바쁜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트레이닝에 시간을 투자했다.
12월부터 몸만들기에 들어가면서 내년 시즌을 준비했다.
‘선발로 뛰기 위해서는 올해보다 더 좋은 체력을 만들어야 해.’
클로저와 선발투수는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다.
1이닝을 던지는 클로저가 단거리선수라면 선발투수는 마라톤과 같은 체력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련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심폐 지구력을 극단적으로 발달시켜야 해.’
심장과 폐가 강화되면 한 번의 호흡으로도 신체 곳곳으로 혈액을 보낼 수 있다.
이러한 효과는 체력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첫 시즌은 클로저로 뛰었기에 체력적인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선발로 풀타임을 소화하면 분명히 체력적인 문제가 생길 거야.’
선발로 풀타임을 뛸 수 있는 체력을 키우는 것이 현재 하성이 해내야 할 첫 번째 임무였다.
그것을 위해서는 하와이에 가기 전에 충분히 몸을 만들어야 했다.
스케줄이 빡빡한 상황에서도 하성이 시간을 쪼개 운동을 하고 있는 이유였다.
“후우…….”
땀을 거하게 흘린 하성은 다음 스케줄을 위해 움직였다.
12월이 끝나가고 있기에 대부분의 계약과 광고 촬영은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일정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은하에게 초대받은 공연에 가는 날이었다.
‘공연은 오랜만이네.’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하성은 자신의 차에 올랐다.
애스턴마틴에서 제공해 준 스포츠카에 몸을 실은 그가 주차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