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in on the Mound RAW novel - Chapter (99)
마운드의 빌런-99화(99/285)
마운드의 빌런 99화
스프링캠프 기간에 어슬레틱스는 인근의 호텔을 숙소로 사용했다.
배터리들이 먼저 합류했기에 호텔은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며칠 뒤에는 이곳이 북적일 것이다.
‘야수 조도 합류하면 시장통이 되겠지. 그전에 이 평화를 충분히 즐기자.’
최대한 호텔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힘이 마지막에 분산된 이유가 뭘까?”
하성은 오늘 있었던 불펜피칭을 떠올렸다.
분명 하체와 상체의 움직임은 완벽했다. 거기에 팔로 힘이 전달되는 것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힘이 분산됐다.
‘손끝에서 공을 때릴 때 힘이 분산되면서 제대로 때리지 못했어. 그로 인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공이 뻗어 나가지 않아.’
제대로 된 데이터는 아직 얻지 못했다.
하지만 느낌상 평소 던지던 투구보다 무브먼트가 덜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건 한 번이 아니라 15번의 투구에서 모두 동일한 현상이 발생했다.
‘근육이 너무 늘어나서 그렇게 된 건가?’
많은 전문가가 하성의 근육 증가에 대해 우려를 내놓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하성 본인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라고 하는 놈들은 내 투구를 한 번도 지켜보지 않았어. 거기에 내가 어떻게 훈련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런 놈들이 하는 말이 맞을 리가 없잖아?’
사람들은 말을 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이 맞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근거는 대부분 기존에 있던 데이터를 통해 추산된 결과물에 의해 나온다.
다양한 데이터로 나온 결과이기에 그것이 정답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게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순 없었다.
‘데이터로 나라는 인간을 완벽하게 정립할 수 없어. 나는 나다.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고 해서 같을 순 없어.’
이전 삶에서 하성은 야구에 자신의 생각을 투여할 수 없었다.
코치가 시키고 감독이 말하는 대로 공을 던지는 것에 집중했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치 과정을 밟으면서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는 파지법이 정형화되어 있지만, 미국은 각자의 개성에 맞게끔 던지게 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변화구가 나오는 법이지.’
공을 던지는 그립은 물론이거니와 투구 방식 역시 선수들의 개성을 참고해서 가르친다.
그런 미국의 방식을 한국도 나중에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성은 그러한 미국의 교육방식을 배웠고 자신이 배웠던 것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자신에게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나만의 피칭을 찾아야 해. 현재는 그걸 찾아가는 단계일 뿐이다.’
하성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과정에 불과했다.
이 고단한 과정이 끝나면 결과를 찾아낼 것이다.
* * *
캠프의 훈련은 길지 않았다.
단체 훈련과 피칭 훈련이 끝나면 오전이 마무리됐다.
당연하게도 훈련량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훈련시스템은 원래 이랬다.
‘자율적으로 훈련을 해나가야지. 누군가가 길을 안내해 주지 않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하성은 자신만의 스케줄을 만들었다.
‘오전에 하는 훈련은 그대로 하고 오후 훈련에는 웨이트와 심폐 지구력 훈련을 추가하자.’
웨이트의 강도는 하와이 때보다 줄였다.
그 정도 수준까지 하게 되면 근육은 계속해서 성장하게 되고 그것은 현재 몸 상태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폐 지구력 훈련은 현재를 유지하는 수준으로 가고.’
반면에 심폐 지구력 훈련의 강도는 유지하는 걸 택했다.
이는 트레이너들과의 논의 끝에 나온 결과였다.
(심폐 지구력은 훈련하지 않으면 빠른 시간에 떨어질 수밖에 없어. 이게 떨어지면 네가 풀 시즌을 치르는 데 문제가 생길 거야.)
샘의 조언을 떠올리며 하성은 스케줄을 결정했다.
그리고 스케줄에 맞춰 훈련을 이어나갔다.
“훅! 훅!!”
웨이트와 심폐 지구력 훈련을 병행하면서 천천히 캠프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흡!”
뻐어억-!!
“나이스 피칭!!”
불펜피칭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단계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는 피칭이었다.
“어때?”
“구속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비해 그 속도가 조금 더디지만, 선발로 뛰는 걸 생각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긴, 선발로 뛰면서 마무리로 뛸 때처럼 던지면 금방 퍼질 수밖에 없지.”
“예. 그래서 전력투구를 하면 조언이라도 해줄까 싶었는데. 미리 준비해온 거 같더라고요.”
“역시 하성이군.”
하성의 구속이 작년만큼 나오지 않는 건 그저 의도한 체력 분배로 생각하고 있었다.
실상은 그러지 않았지만, 하성은 내색하지 않았다.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이 힘이 분산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
최후의 순간에는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있었다.
자신이 아는 게 전부가 아닐 테니 말이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서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해결 방법이다.
‘지금 내가 바뀐 게 뭐가 있지?’
그러나 하성은 아직까지 혼자 하려 하고 있었다.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아직 막히는 부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근육의 증가. 하지만 이는 힘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감소시키지 않아.’
근육의 증가는 일단 제외했다.
‘두 번째는 신체가 이전보다 커졌다는 거지. 하지만 이건 근육의 증가로 인해 생긴 부가적인…….’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뻐어억-!!
옆에서 베일리가 공을 던지면서 좋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힘은 늘었지만, 제구가 흔들리는 건 여러 이유를 들 수가 있다.
하지만 베일리는 아직 그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제구가 흔들리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하성은 템포를 죽이고 베일리의 피칭을 지켜봤다.
베일리가 킥킹을 하고 뒤이어 스트라이드를 내디뎠다.
발이 벌어지는 각도를 본 하성의 눈이 빛났다.
쐐애액-!
뻐어억!
이번에도 공은 제대로 제구가 되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끼는 베일리를 향해 하성이 말했다.
“베일리, 너 작년보다 키가 큰 거 같다?”
“어? 그런가? 이전이랑 같은 거 같은데.”
“스트라이드를 하는데 무릎이 이전보다 펴지는 느낌이 아니야. 키가 커져서 조금 더 벌릴 수 있는 거…….”
순간 머리가 번쩍였다.
“아, 그런가?”
베일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에게 조언하면서 무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나이는 아직 20살에 불과하다. 성장기라는 소리지. 내가 마지막으로 키를 잰 것은 11월이다. 하지만 그 뒤로 내 영양은 이전보다 더 좋아졌어.’
하와이에 있을 때 하성은 체계적인 식단 관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이전보다 더 질이 좋고 많은 양의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의 근육이 폭발적인 성장을 해냈다.
하지만 성장한 건 근육만이 아니었다.
‘키도 큰 게 분명해.’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 *
훈련을 끝낸 하성은 곧장 메디컬센터를 방문해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제대로 체크했다.
검사를 모두 끝내고 팀닥터와 함께 데이터를 확인했다.
“이거 참…….”
데이터를 확인한 팀닥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이 정도의 변화라니. 도대체 어떤 훈련을 하면 근육량이 이렇게 늘어날 수 있는 거야?”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한 거죠 뭐.”
“하…… 그게 정답이니 뭐라 말을 못 하겠네. 네 유전자는 정말 타고난 거 같아. 다수의 동양인을 만나봤지만, 이 정도의 데이터는…….”
“다른 건 괜찮고 신장은 차이가 있나요?”
“신장?”
자신의 말이 잘렸지만, 팀닥터는 그러려니 했다.
메이저리그의 톱클래스 선수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일일이 신경 쓰면 오히려 자신이 피곤해질 뿐이었다.
그저 그들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가장 좋았다.
“어디 보자…….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2㎝가 컸네. 지금은 193㎝야.”
“상체 쪽이 컸나요? 아니면 하체가 컸나요?”
“음…… 하체 쪽이 2.2㎝가 늘었는데?”
답을 찾았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룬 하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어지는 그를 보며 팀닥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하성은 그런 팀닥터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2.2㎝.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는 길이지만, 스트라이드에서 이 정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엄청난 차이야.’
스트라이드는 마운드에서 발을 내딛는 보폭을 의미한다.
이 보폭이 길면 길수록 홈플레이트와의 거리가 짧아지고 공을 더 앞으로 끌고 와서 던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스트라이드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었다.
‘스트라이드가 길어질수록 하체가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무게중심의 이동이 불안정하게 돼.’
하성은 스트라이드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이전과 같은 형태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하드웨어에 변화가 일어난 상태였다.
‘하드웨어는 한세대를 넘어갔는데. 소프트웨어가 그 상태라면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없는 게 당연하지.’
하드웨어가 업데이트됐으면 소프트웨어 역시 업데이트를 해야 했다.
그게 하성의 실수였다.
‘이제 에러를 찾아냈으니 업데이트를 할 시간이다.’
스스로의 문제점을 찾아낸 하성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 * *
하성의 일거수일투족은 기자들에 의해 모두 대중에게 노출되고 있었다.
[스프링캠프 첫 피칭에서 88마일을 기록한 정하성.]첫 피칭부터 시작해서.
[두 번째 피칭에서 89마일을 기록한 정하성, 작년보다 2마일가량 떨어져.]두 번째 피칭과 세 번째 피칭까지.
모든 것이 기사화되어 대중에게 공개됐다.
첫 번째 피칭은 기자들 출입이 금지됐지만, 두 번째 피칭부터는 기자들도 관람할 수 있었기에 그들은 더 생생한 기사를 전달했다.
[작년보다 공의 위력이 감소한 듯한 정하성.] [공의 구속이 떨어진 정하성.] [선발로 전향에 따른 전략인가? 아니면 근육을 키운 것이 화근이 되었나?] [전문가들 정하성의 불펜피칭에 우려의 의견을 내놓아.]시간이 지날수록 기사의 분위기는 나빠졌다.
불펜피칭이 작년과 비슷한 형태로 흘러가니 기자들은 어그로를 끌기 위해 자신들의 상상을 추가했다.
팩트로 전달해야 하는 기자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걸 지키는 기자도 있었다.
[백준기의 스프링캠프]백준기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칼럼 형태로 스프링캠프 취재기를 내놓았다.
당연하게도 이 칼럼의 중심에는 하성이 있었다.
[정하성의 몸 상태는 아주 좋아 보인다.불펜피칭의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어슬레틱스 구단의 도움을 받아 정밀한 데이터를 확인했을 때 작년과 비슷한 수치의 RPM과 무브먼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데이터로 하성에 대한 실드를 쳤기에 대중들은 그 기사에 더 신뢰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대중은 아니었다.
-작년보다 구속이 떨어진 건 팩트 아님?
-구속이 가장 중요하지.
-메이저리그에서 하성이 통했던 건 결국 구속 덕분이었는데. 그게 줄었는데도 괜찮다고 하는 건 무슨 궤변임?
하성의 안티들은 단지 구속만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의견이 맞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대되는 의견에는 귀를 막고 떠드는 그들의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런 의견이 소수라면 그저 묵살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이런 의견이 소수가 아니란 점이었다.
‘팬도 늘었지만 안티도 늘어난 느낌이야. 역시 눈에 띄는 행동을 많이 하니까 그에 따라 안티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백준기는 자신의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경기가 중요하겠군.’
백준기의 시선이 어슬레틱스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선수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청백전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실전에 가까운 피칭을 볼 수 있을 거야.’
시뮬레이션 게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하성은 백팀의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