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커튼과 이불을 이어서 만든 밧줄을 밑으로 내리자 길이는 충분한 것 같았다. 관건은 최대한 빨리 내려가서 놈의 시야에 띄지 않고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래에서는 총소리가 들려왔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모두 지금은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 같았다.
빨리 이곳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옥상으로 올라오는 입구의 쇠로 된 덮개를 덮었다.
이것도 계단의 철문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쏘면 뚫릴 것 같은 얇은 두께였지만, 이것이라도 덮어 놓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먼저 기웅이가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지선이가 조금 불안 하긴 했지만, 운동선수라서 그런지 너무나 쉽게 줄을 타고 내려갔다. 둘이 내려 가고나자 아래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영감님 어서 내려가세요. 입구가 좁아서 못 올라 올 거예요.”
탕! 탕!
“헉!”
영감님이 밧줄을 잡으려는 찰나, 운이 나빴던 것인지 영감님이 총에 맞은 것인지 사방으로 피가 튀고, 영감님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영감님!”
난 쓰러져 버린 영감님을 살폈다. 3층에서 총을 쏜 놈이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뭐라고 하는지 내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크윽! 일이 이렇게 되는 구만.”
영감님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복부에 총을 맞은 것 같았다. 영감님의 옷은 벌써 시뻘겋게 물이 들었다.
“영감님.”
“자, 이거 받게.”
영감님이 나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품에서 꺼내 줬다.
“큭! 실험도 제대로 못한 중간 성과물이네. 효과가 없을 수도 있네. 핫!”
영감님이 통증이 심한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놈들에게 작은 상처를 입었을 때 사용해보게. 좀비가 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보는 게 좋겠지. 이걸 너무 믿지는 말고, 사용을 할 일이 생긴다면 그 사람의 경과를 꼭 지켜보게. 안심하지 말고. 그리고 그 안에 연구 성과도 있으니 나 대신 연구를 할 사람을 찾는다면 꼭 좀 전해주게.”
어렵게 말을 끝내고, 고통스러워 하는 영감님이 너무나 힘들어 보였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내려가게. 난 이제 좀 쉬어야겠네.”
“영감님…”
영감님과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의 상황을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혼자서 겁에 질려 지내다가 영감님을 만나면서부터 사람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정신적인 지주와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영감님이 내 눈앞에 총에 맞고 고통에 겨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우리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어서 가게. 놈이 눈치 채면 다들 위험 할게야. 지선양을 생각해야지. 안 그런가?”
나는 지선이 이야기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영감님도 소중한 존재였지만,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지선이도 나에게는 소중한 존재였다.
“영감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영감님에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영감님도 더 이상은 힘이 들었던지,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 눈빛에는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영감님을 뒤에다 남겨두고 옥상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오빠! 영감님은? 그 총소리는 뭐였어?”
내가 영감님보다 먼저 내려오자 지선이가 나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웅이는 대충 짐작을 하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봤다.
“가자! 영감님은 돌아가셨어. 빨리 움직여!”
나는 말을 하고 발걸음을 땠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각자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과 등 뒤로 매고 있는 총과 활이 전부였다. 총알은 가지고 있던 탄창 몇 개가 전부였다. 식량도 없고 식수도 없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기웅이는 조용히 나를 따랐고, 지선이도 눈이 붉어지는 와중에도 울음을 꾹 참으며 나를 따라왔다.
사실 건물 뒤쪽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건물 앞쪽으로 가야했다.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이트는 앞쪽에 있는 것이 유일했다.
막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순간, 기웅이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내 발걸음을 세웠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기웅이를 쳐다봤다.
“저기요.”
나는 기웅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지금 건물 안의 놈이 뒤쪽으로 돌아올 때 만든 것 같은 개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이 보였다. 놈이 게이트의 쇠사슬을 자를 때 썼던 절단기로 이곳에 구멍을 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가자!”
나는 그 구멍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기웅이와 지선이도 나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놈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것인지, 좀비들이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려서 연구소 주변에는 좀비들이 거의 없었다.
달리는 와중에 두 놈 정도가 있었지만,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칼로 썰어버릴 수가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연구소와 꽤 멀어져서, 잠시 숲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와중에 마구 난사를 하는 듯 한 총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우리를 놓친 것을 알아챈 놈이 발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영감님이 마지막으로 놈들에게 총알을 퍼부어 주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제 어쩌죠?”
기웅이가 기운이 다 빠진 듯 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영감님이 그 동안 연구자료 정리한 것들을 주셨어. 그걸 가지고 일단은 공장으로 돌아가자. 기회가 된다면 연구를 계속할 사람을 찾을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영감님이 마지막 했던 말들을 일행들에게 전했다. 다들 소리 내서 울지는 못하고, 조용히 눈시울을 붉히면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슬픔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지금 차량도 식량도 식수도 없었다. 최대한 놈에게서 멀어져서 쉴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다시 움직이자. 아직은 위험한 것 같아. 후~ 저놈하고 엮이고는 정말…”
일행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최대한 몸을 숨길 수 있게, 풀숲을 가로질렀다. 우리들의 시야도 가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너무나 갑자기 상황이 악화되어 버려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감님이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왠지 조금 있다가 영감님이 한 말씀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완전히 모르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살았던 곳이어서 이 근처 지리는 꾀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마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하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 가까운 마을로 가기로 했다. 애초에 방향도 다르고 해서 놈이 우리를 찾기 힘이 들기를 바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갑작스럽게 원진이와 영감님까지 잃어서 인지, 말이 없었다. 난 한참을 걸으면서 어떻게든 연구소에서 놈을 처리 하는 게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놈은 분명 계속 우리를 찾으려 할 텐데, 그런 놈을 뒤에 남겨 두고 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그 상황에서 놈을 처리하는 것도 힘들었고, 그럴 정신도 없기는 했지만, 놈이 우리 뒤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불안했다.
오늘은 우선 마을에 들러서 차를 구하던지 하루를 쉴만한 집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늘 차로 돌아다니던 마을을 걸어서 가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좀비들이 없을 법한 곳을 골라 다닌다고는 하지만, 좀비들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 비해서 빈도가 작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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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방향.”
내가 무미건조하게 말을 했다.
“내가 처리할께.”
나는 다른 일행들보다 조금 빨리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앞에 있는 좀비는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 나의 접근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놈도 이내 내 존재를 알아차릴 것이다. 완전히 접근할 때 까지 놈이 내 존재를 알아채지 못 했으면 하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는데 색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팔 하나가 잘려나간 놈이었는데, 그 팔이 무언가 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놈의 팔이 좀비들에게 뜯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깨끗하게 무언가에 의해서 잘려나간 것 같았다.
한 놈 밖에 없어서 놈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 존재를 알아채고 괴성을 지르긴 했지만, 이렇게 굼 뜨는 놈들은 칼 하나로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근처에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저 놈 팔이 아주 깨끗하게 잘려 있었어. 사람들에게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거든.”
일행들에게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자 다들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위험한 사람들은 아니라야 할텐데… 이럴 때는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은 안 만나는 게 속은 편할 것 같은데 말이예요.”
기웅이가 혼잣말을 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렇지? 아까 전 그 괴물 같은 놈도 그렇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지…”
우리들은 한 동안 사람들에 대해서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에도 흥미를 잃고 그냥 힘없이 걷기만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