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어렵사리 차를 구한 우리는 쉬지 않고 달렸다. 이제 연구소의 그놈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대신 가능한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서 기웅이를 치료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오빠. 얼마나 걸릴까?”
“글쎄… 올 때하고 비슷하려나? 이 차가 네비가 없어서… 조금 헛갈리는 길이 나오면 헤맬지도 모를 것 같은데… 최대한 빨리 가볼께. 후~”
공장에서 처음 연구소로 갈 때, 오후에나 도착을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공장에 도착을 하면 아주 밤 늦은 시간일 것 같았다.
밤에 돌아다녀서 좋을 것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럴 때 공장을 떠날 때 박 소위가 챙겨준 부대 주소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도망을 나오느라 아무것도 챙겨 나오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기웅이는 뒷좌석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지선이는 가끔씩 내 말상대를 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쉼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공장 주변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이미 하늘에는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 있었다. 그리고 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지선아. 지선아! 거의 다 도착했어.”
“으음~ 오빠, 미안. 나 졸았나봐.”
지선이는 길게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어두워서 공장 건물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장 위치는 머릿속에 정확히 담겨 있었다. 그런데 달리는 차 주위로 좀비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였다. 놈들은 어슬렁 거리다가 차소리와 전조등 불빛에 반응하며 차를 향해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차를 놈들이 어쩔 수는 없었다.
“지선아. 좀비들이 이전보다 좀 많은 것 같지 않아?”
“그래? 그런가? 오빠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지선이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분명 공장 주변에 이 정도로 좀비가 많지는 않았다.
“공장까지 따라오지는 못하겠지?”
“그럼. 차가 이렇게 빠른데. 그리고 공장까지 몇몇이 따라 온다고 해도, 경계조가 있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서서히 공장에 가까워져 오자, 이상하게도 좀비의 숫자가 더 늘어나고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공장으로 가까이 갈수록 좀비의 숫자가 적어야 했다. 내 머리 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속도를 줄이며 드디어 공장 게이트 앞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나는 공장 내부 풍경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게이트는 반쯤 열려 있었고, 펜스 안쪽으로는 꽤 많은 숫자의 좀비들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전조등 불빛에 이끌린 놈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 어!”
지금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지고,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다. 나와 일행들이 이곳을 떠난 지가 조금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그 사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많은 사람들과 무기가 있었는데 이렇게 당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멀리서 우리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에 끌려, 이곳으로 오고 있는 좀비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전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일부는 나와 같은 분대에서 함께 고생을 하던 이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그들이 전부 좀비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하~”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는 여태까지 내가 아는 사람이 좀비가 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같은 광경을 보게 되자 그 참담함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시간을 끈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듯 했다. 그냥 얼굴이나 보고 지내던 사람이라면 이렇지는 않았겠지만, 함께 서로의 뒤를 봐주던 분대원들이 눈에 띄자 좀비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돌아 나갈게. 더 시간을 끌어봐야 위험해 지기만 할 테니까… 오늘은 우선 물러날게.”
“아. 알았어, 오빠.”
나는 당장 차를 돌려서 들어온 길을 다시 돌아 나갔다. 처음 들어오면서 좀비들을 볼 때는 분간이 힘들었지만, 나가면서 다시 찬찬히 살피자 공장 주변에 평소 보다 많던 좀비들이 전부 공장에서 살던 사람들이었다.
“젠장.”
나는 공장에서 지낼 때 봐 둔적이 있는 한적한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서 기웅이를 깨워서 집안으로 들어가자 기웅이는 공장으로 가지 않고, 왜 이곳으로 온 것인지 의아해 했다. 나는 숨기지 않고, 공장의 현재 상황을 본대로 이야기해줬다.
“크윽! 쉽게 무너질 리가 없을 텐데… 박 소위님과 차 중사님은요?”
기웅이는 그 소식에 벌떡 일어나려다가 그대로 불편한 다리 때문에 그 자리에 쓰러졌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어. 이런 어두운 밤에 그곳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어.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한번 가볼까 생각 중이야.”
“그런데… 괜찮을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좀빈데… 엄청 몰려있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지선이가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조금 고민이야. 우리가 내부를 잘 아는 곳이고, 물자가 있는 곳을 알고 있으니까… 가져나올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기는 한데… 아무래도 좀 위험해 보이긴 해. 하지만, 방법을 좀 고민해보자. 정 안되면 입구 컨테이너 안에 놔두는 실탄이라도 좀 챙겨야해.”
내 말에 기웅이와 지선이 모두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빠져들었다. 나도 말을 꺼내긴 했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저번에 연구소에서 했던 것처럼 자동차로 유인을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진입로 쪽에도 좀비 숫자가 꽤 있어서 잘못하면 중간에 끼여서 오도가도 못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기웅아. 너 상처는 좀 어때? 좀 견딜 만 해?”
물어보나마나 아프고 괴롭겠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예. 움직이려면 좀 아프긴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견딜 만 해요.”
기웅이가 이야기를 하면서 작게 미소를 보였다. 왠지 그것이 더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우선은 이곳에서 하룻밤 보내자. 다들 고생했어.”
공장을 나설 때만 해도 이렇게 까지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다섯이던 일행은 셋으로 줄었고, 멀쩡하던 공장마저도 무너져 버렸다.
자리에 누워있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잠이 오지를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
어떻게든 하룻밤 시간은 흘러갔다.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따뜻한 햇살이 세상을 밝게 비췄다. 하지만 그런 것들 과는 무관하게 세상은 여전히 참혹하기만 했다.
눈을 뜬 기웅이와 지선이는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나 또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머리도 띵하고, 힘이 들었지만 그들과 함께 준비를 마쳤다.
하룻밤을 보낸 허름한 시골집의 현관을 나서는데 밤새 몰려 든 좀비들이 담장 주변으로 당장 넷이나 있었다. 다행히 한곳에 몰려 있지는 않았다.
경계를 서지도 안고 그냥 하룻밤 보냈으니 담장 주변에 몇몇 모여 있는 것은 당연했다.
“아침부터 니들 얼굴보고 시작을 해야 되다니… 휴~”
실없는 소리부터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총으로 처리하고 나가자. 위험하겠어. 공장에서 총알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불확실 하니까 총알 아끼자.”
내 말에 기웅이와 지선이는 일제히 총을 들어 올렸다. 어지간 하면 세명 무리에 좀비 넷이면 총을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지금 기웅이가 몸을 움직이는 것도 불편하니 이것이 확실하고 안전해 보였다.
총을 앞으로 겨눈 채 우리는 담장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키악!!!”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서 담장 너머에서 놈들이 괴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우리는 담장 안에서 총구를 놈들 머리에 겨누고는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놈들은 하나씩 그 자리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머리를 박살내는 것에 많이 익숙해 지기는 했지만, 바로 눈앞에서 한때는 사람이었던 놈들의 머리가 박살이 나면서 여기저기 파편이 비산을 하는 광경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았다.
하긴 이제는 그렇게 심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니 많이 익숙해 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선이는 재빨리 밖으로 나서서 주위를 경계했고, 나는 기웅이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그리고 지선이와 나도 차에 올라 탔다.
부르릉!
나는 시동을 걸고서 차를 출발시켰다. 아침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이런 세상에서 살아 남으면 뭐가 좋을까? 이런 세상에 끝이 있는 걸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가끔 이런 생각에 힘이 빠지기도 했지만, 그러다가도 나를 향해 달려드는 좀비를 보면 내 족에 있는 생존 욕구가 꿈틀대면서 나를 지배하는 것 같았다. 방금도 그랬다. 힘도 없고, 너무나 피곤했지만, 아침부터 좀비들을 해치우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