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가끔 도로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는 좀비들이 보이긴 했지만 길을 막을 정도로 다수가 모여 있다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신경은 크게 쓰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가끔 도로 한복판에서 어슬렁 거리는 놈들은 신경을 써야 했다.
사고가 나면서 만에 하나라도 차량이 고장이 나버리면 정말 큰일이었다.
이동을 하면서 네비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로변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세워져 있는 차들이 많이 있었다.
기름이 다 떨어져서 생존자들이 타고 다니다가 버려 놓은 차도 있었고, 좀비가 최초 발생할 때 사고가 나서 세워져 있는 차들도 있었다. 다른 이유에서 버려져 있는 차들도 많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버려진 차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중에서 네비가 장착되어 있는 차를 찾아서 떼어 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열쇠를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차창을 깨고 뜯어오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도 없었다.
행선지는 충주 외곽의 한 요양병원으로 정했다. 공장에서 찾은 쪽지에 있던 몇 군데 중에서 이곳이 기웅이의 상처 치료를 하는데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의사가 있고, 없고는 복불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병원 건물이라고 해서 그곳에 있던 의사나 간호사가 아직까지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있던 공장에도 원래 공장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양 병원으로 가는 것은 약품은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떤 곳이든 의사나 간호사가 있을지 없을지는 가 봐야 하는 것이라면, 일단은 약품이 있을 만한 곳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참을 달려서 오후쯤 충주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병원에는 다음날 찾아가기로 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도 모르기 때문에, 다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오늘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논과 밭도 사람의 손길이 끊어지자, 잡초가 무성히 자라있었다. 중간에 좀비 몇이 있어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좁은 도로를 따라 그런 논밭인지 잡초숲인지 알 수 없는 풀숲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런 조용한 도로 변에 차를 세우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먼저 둔기류나 활, 석궁 같은 무성 무기를 새로 장만하자는 데 다들 의견을 같이 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총기류 밖에 없었다.
총이 강력한 무기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또한 위험한 무기이기도 했다. 분명 놈들을 조용히 처리해야 할 상황도 있었다.
연구소에서 나와서는 운이 좋게도 잘 지내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네비로 충주 인근의 총포사와 공구상, 캠핑 용품점 같은 것들을 찾아 봤다. 그 결과 총포사나 캠핑 용품점은 죄다 사람들이 많이 있을 법한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공구상은 몇 군데가 시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가려는 요양 병원과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도 몇 군데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좋아. 그럼 이곳으로 가보자.”
우리는 네비에 표시되는 공구상 중에서 한군데를 골랐다. 네비상으로 정확한 파악은 힘들지만 꽤 한적해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우리가 가려는 병원가도 많이 멀지는 않은 위치에 있는 공구상이었다. 그곳으로 가기 전에 기웅이의 붕대도 갈고, 총과 총알도 점검을 하면서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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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200미터 거리를 남겨두고 차를 세웠다. 좁은 왕복 2차로의 도로가 공구상까지 연결이 되어 있었고, 도로를 따라 더 가면 저 멀리 하나, 둘 상가건물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부근으로 좀비들도 하나, 둘 보이긴 했지만, 거리가 멀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았다.
공구상은 생각보다 꽤 컸다. 단층 건물 하나를 통째로 가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게 주변으로 초록색의 철조망으로 된 펜스가 둘러져 있기는 했지만, 게이트는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기웅이가 밖에서 경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아… 저 가게 보니까… 창혁형님 만났을 때 생각이 나네…”
무심결에 생각나는 대로 말을 뱉었다가, 아차하는 생각에 지선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고, 그녀는 이미 민수에게 생각이 미쳤는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흠. 흠. 저기… 후~ 지선아. 미안해. 근데… 잊어야지.”
일을 치르기 전에 쳐져있으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 질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기는 좀 그랬다.
“아무튼. 멀긴 하지만 좀비도 몇몇 보이고 하니까, 최대한 차를 조용히, 천천히 가게 앞에다 세울게. 기웅이는 역시 차안에서 경계를 해주고. 지선아. 너는 또 나하고 같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들어가서 만약 총을 사용해야 되는 경우가 생기면… 건물 안의 그 상황을 정리하고 나서 바로 건물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먼저 살피고… 혹시라도 좀비가 몰려드는 낌새가 있다 싶으면 모든 걸 제쳐두고 도망쳐야 돼. 알았지? 그리고… 우리한테 우선 필요한건 무기류니까… 다른 덩치 큰 물건들은 차에 싣기도 힘들고 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알았어, 오빠.”
지선이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선아. 미안해. 요 며칠… 정말… 내랑 나랑 위치가 바뀐 것 갈아서… 너무 미안하네…”
준비를 하고 있는 나와 지선이를 보면서 기웅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선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기웅이가 다치면서 일행들을 보호했기에 지금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크지 않은 부상이었고, 회복을 한다면 그는 또 예전처럼 우리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인물이었다. 이런 세상 이전이라면 그냥 사람을 평가할 때 이런 식이지는 않았겠지만, 요즘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사실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또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후~ 그런 생각 하지 말고! 그렇지, 지선아?”
“그럼~”
지선이도 밝은 모습을 보이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내 말에 대답을 했다.
“자. 간다.”
천천히 차를 몰고, 공구상 안으로 들어갔다. 펜스 안에 깔려 있는 쇄석 위를 차가 지나가면서 ‘촤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이긴 했지만, 신경이 쓰였다. 가게 입구에 물건을 꺼내 와서 싣기 좋은 위치에 차를 세웠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나와 지선이는 차에서 내렸고, 기웅이는 총을 들고 주변을 경계했다.
가게의 유리로 된 출입문은 깨져 있었고, 출입문을 통해서 보이는 가게 안의 모습도 이미 사람들이 쓸어가 버린 듯 어질러져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이 가려는 요양 병원 근처에 있는 공구상이니 그들이 이곳을 그냥 뒀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내부 수색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선이와 나는 출입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이런 순간은 언제나 긴장이 됐다.
예전처럼 공포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 긴장감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또 만약에 이런 순간 긴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선이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수신호를 하고 가게 내부로 진입했다. 날이 밝은 대다가 출입문과 가게의 전면에 크게 설치되어 있는 유리 때문에 가게 내부는 밝은 편이었다.
가게 안은 어지럽게 물건들이 널려 있고, 벽면이나 진열대 여기저기에 피가 튀어 있었다. 그리고 가게 바닥에는 언제 생겨난 것인지 모를 마른 핏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생각보다 꽤 많은 물건들이 남아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알 수 있었던 것은 현재 가게 안에 분명히 좀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밖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가게 안에 들어서자 좀비 특유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숫자는 알 수 없지만 가게 안에 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우선은 내가 앞에서고 지선이가 조금 뒤에 서서 가끔씩 뒤를 살피면서 가게 내부를 조용히 살폈다. 손에는 소총이 각자 들여 있었지만, 기본적인 용도는 몽둥이 대용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다면 총을 쏴야겠지만, 가능 하다면 총을 쏘지 않고 일을 끝내는 것이 좋았다. 작은 발소리까지 신경이 쓰였다.
좀비가 내고 있는 소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진열대 근처까지 왔다. 보통의 좀비라면 놈이 이미 먼저 덤벼 들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낮은 진열대 뒤에 있다면 어떻게든 놈이 눈에 띄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바로 진열대 맞은편에 있다는 생각을 하자 숨을 고르기 위한 한숨조차도 내쉴 수가 없었다.
놈이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개머리판으로 때릴 수 있게 자세를 취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나와 지선이가 움직일수록 놈이 내는 소리는 커질 뿐, 놈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 놈을 쳐야 할 것 같았다.
지선이에게는 내 뒤에 바짝 붙어 있으라는 수신호를 하고서 놈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진열대 옆으로 몸을 홱 돌렸다.
그곳에는 좀비 하나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놈의 사지는 무엇으로 잘렸는지 잘려나가 있었고, 놈의 목도 반쯤 잘려 있었다. 그런데 그런 꼴을 하고도 놈은 나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목이 반쯤 잘려 소리를 내지도 못하면서 다른 좀비들이 괴성을 지를 때와 비슷한 모습을 하며 입을 쩍쩍 벌려댔다. 나는 더 볼 것 없이 놈에게 다가가 개머리판으로 놈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 찍었다.
퍽!
놈의 두개골과 그 내부에 있던 내용물이 어기저기로 튀어 나갔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가게 내부를 살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은 좀비가 없을 것 같았지만, 꼼꼼히 모두 확인을 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잠시 동안 가게 안 여기저기를 살펴 본 후에야 조금 긴장감을 덜 수 있었다.
“후~ 자… 그럼 쓸만한 게 있는지 흩어져서 찾아보자. 쓸만한 게 있으면 작은 건 그냥 주머니에 챙겨 넣어 놓고… 조금 큰 건 출입문 쪽에다 옮겨 놓자. 그리고 너 혼자 옮기기 힘든건 날 부르고… 알았지?”
“응, 오빠.”
나는 혹시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작은 목소리로 지선이에게 말을 했고, 지선이는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다른 진열대로 향했다. 그렇게 지선이와 나는 가게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가지 물건을 챙겨서는 차에 실었다. 우리가 챙긴 물건은 나뭇가지를 정리할 때 쓰는 커다란 양손 전지가위와 작은 손도끼,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더 큰 길이가 50센티는 될 법한 도끼였다.
그것들을 두 개 정도씩은 챙겼다. 가위는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두려다가 지선이에게는 도끼보다는 가볍고 길이도 있고 해서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그냥 쓰려는 것은 아니고 가위의 두 개의 날 부분을 연결하는 것을 분리하면 그냥 찌르는 용도로는 제법 쓸만해 보였다.
쓸만한 것들을 챙기고서 가게를 나선 우리는 다시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가게에서 보았던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거기 있던 좀비… 어쩌다가 그러고 있었던 걸까?”
내가 먼저 운전을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좀비가 어땠는데요?”
직접보지 못한 기웅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몰라 물었다. 그러자 지선이가 가게 안에서 본 좀비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줬다.
“음… 아무리 좀비라지만… 아예 죽여 버리는 것도 아니고… 뭐…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닌 긴 하지만… 꽤나 공격적인 사람들인 것 같긴 한데…”
기웅이도 조금 찜찜한 듯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이곳에 생존자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찾는 군인들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뭐랄까… 좀비를 좀 과격하게 다루기는 하는 것 같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완전히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지. 가족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좀비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나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지선이가 조작해 놓은 네비를 보면서 시 외곽의 한적한 마을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