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예전 영감님을 만날 때를 즈음해서부터 나는 날짜를 신경 쓰지 않고 지내왔다. 지금을 살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계절 정도만 파악을 할 수 있으면 살아남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시간에 주위를 한번 더 둘러보는 것이 차라리 생존에 더 도움이 됐다.
대충 내가 휴가를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름에서 가을이 될 시기가 되었으니, 아마도 1년쯤 지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할 뿐이었다.
“조금 더 가면 마을이 나올 것 같은데, 다들 무기 점검하고 준비들 하고 있어.”
잠시 조용히 달리며 감상에 잠겼던 나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으며 일행들에게 말을 했다. 기웅이는 달리는 와중에 붕대를 갈고 오는 길이라, 또 다시 그런 난리는 겪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네비 상으로는 집이 별로 없는 것 같던데… 어떨지 모르겠네. 좀 편했으면 좋겠다.”
지선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총기를 금새 점검 하고는 푸념을 하듯 혼잣말을 했다. 잠시 그렇게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하다 보니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 주변으로 신경이 쓰이는 것들이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선아. 기웅아. 저기 차들… 일부러 바리케이드처럼 세워둔 것 같지 않아?”
자세히 보자 마을로 들어가는 하나 뿐인 도로 위에 바리케이드처럼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도로가 아닌 논밭에는 작은 말뚝이 세워져 있고 그것들 사이를 낮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철조망도 쳐놓은 것 같고… 누가 일부러 해놓은 것들 같은데요?”
기웅이가 목을 앞으로 쭉 내밀고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잠시 차 세울게.”
나는 무작정 들어가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급하게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지선이와 기웅이를 돌아봤다.
“어차피 사람들을 찾으러 온 거니까, 가보는 게 좋겠지?”
“그렇지. 대신 말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는 하고. 우리가 찾는 그 군인들 무리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일지 모르고, 또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 졌을지 모르니까, 어느 정도 대비는 하고 다른 사람들 무리를 만나야 할 것 같아.”
지선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말에 답했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찾는 그 군인들이라면, 큰 걱정은 없어도 될 듯 해요. 무전으로 대충 전해들은 바로는 군인들 무리 대부분이 민간인들을 받아들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선이 말대로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까, 지금은 또 어떤지 모르는 일이긴 하죠. 그리고 저도 꼭 군인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가하지는 않아요.”
기웅이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좋아. 그럼, 우선 저 마을에 접근을 해서 사람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어떤 사람들일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준비 확실히 해서 가는 것으로 하고. 그럼 여기서 총기하고 탄약 넉넉하게 준비를 하고 들어가 보자.”
주변에 좀비도 보이지 않고, 마을에서 우리의 존재를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라고 해봐야 준비해 놨던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차를 마을 쪽으로 몰았다. 천천히 차를 몰아서 도로를 막고 세워져 있는 차량에 도착을 하자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내려서 주변을 좀 살펴볼까?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말에 다들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우선은 차에서 내려서 차가 어떻게 세워져 있는지 좀 살펴보죠. 사이드를 당겨 놓은 건지…”
기웅이가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안에 사람들이 없는 건가? 이정도 되면 뭔가 인기척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차 안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좀비를 상대하면서 차밖으로 나가는 것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었다.
“내가 우선 내려서 좀 살펴보고 올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 알았지?”
일행들에게 당부를 하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주변을 살펴봤지만, 다시 살펴보게 됐다.
마을 내부는 별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빈집들처럼 보였다. 다만 마을 주변은 본대로 진입로가 빈 차량으로 막혀있고, 도로가 없는 넓은 지역은 철조망이 둘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철조망을 따라서 좀비들의 시체가 몇몇 보였고, 차에는 총알 구멍 같은 것이 꽤 많이 뚫려 있었다. 그것을 보자 긴장감이 한층 더 고조됐다.
“여기도 총이네. 후~”
그저 푸념하듯 혼잣말을 했다. 그러면서 차로 조용히 다가가서 차량 내부를 살펴봤다. 차 문은 잠겨 있었지만, 기어는 중립에 들어가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차를 좀 밀기로 했다. 차선을 따라서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차량 세대 중 한 대의 뒤로 돌아가서 힘껏 밀었다.
“읏차!”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공간을 만들고는 일행들의 차로 돌아갔다.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지선이가 뭐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빠!”
“형!”
차 안에서 지선이와 기웅이가 고함을 치면서 총을 들어 어딘가로 겨눴다.
“정지! 손들어!”
뒤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차창 사이로 총을 겨누고 있는 지선이와 기웅이를 살펴보는데 그들 또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아무래도 상대는 말을 한 사람을 제외하고도 꽤 많은 수인 것 같았다.
“저희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 일행 중에 다친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데,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등 뒤에서 들려왔던 말을 따라 양손을 들어 올린 나는 그들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너희들 자동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나온 놈들 아니야?”
등 뒤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저희는 타지 사람들입니다. 이 지역에 오는 것도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병원 놈들이라는 것이 우리가 찾아가려는 그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이 지역 생존자들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차에 타고 있는 일행 중 한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상처 치료를 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좀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다면 그 이후에는 바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들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사정을 했다. 잠시 등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웅이와 지선이도 바짝 긴장을 한 채 어딘가를 겨누고 있었다.
“음… 좋아요. 무기를 모두 버리라고 해봐야 그건 씨알도 안 먹힐 것 같고, 마을 안으로 들이기 위해서는 신체검사를 해봐야 해요. 그 상처라는 게 어떤 상처인지도 확인을 해봐야 하니까요.”
조금 전까지의 남자가 아닌 다른 여자가 말을 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죠.”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서 기웅이와 지선이에게 말을 했다.
“들었지? 이 정도는 다들 예상했을 테니까 협조하자.”
내 말에 다들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총을 내려놓지는 않았다.
“저쪽에서도 무장을 해제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하니까, 일단 총을 내리긴 하자. 알았지?”
지선이는 내 말에 총을 내렸지만, 기웅이는 아직 불안한지 쉽게 총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몇 번 더 권하고 나서야 겨우 총을 내리게 할 수 있었다. 그 상태로 기웅이의 다리 상처를 살피게 했다.
“좋아요. 간단하게 살피기는 했지만, 다들 잘 알거예요. 모르는 사람을 외부에서 함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요. 여자 분도 있고 하니까, 마을로 들어가서 세세하게 신체검사를 받으셔야 해요. 이의 없으시죠?”
예의 그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직까지 혼자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상황이 조금 어색했지만 이제는 마을로 들어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좀 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예. 저희가 있던 무리에서도 이 정도는 당연한 절차였으니까요.”
아직까지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긴 했지만, 그래도 다들 무기를 직접 겨누지는 않게 되면서 걸어서 마을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만 기웅이는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마을에 있던 인원이 차를 몰고 마을로 들어가면서 함께 차에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승낙을 받았다.
지선이와 함께 마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서 주위를 살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이들이 좀비들에 대한 대비도 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보다 사람에 대한 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들이 나를 처음 봤을 때 했던 말도 있고 해서, 더 신경이 쓰였다.
단순히 좀비들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냥 펜스가 쳐진 곳에 자리를 잡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들은 논밭에 길게 자라있는 풀들도 정리를 해놓고, 곳곳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경계 초소 같은 것도 설치를 해 놓고 있었다. 어쩌면 조금은 골치 아픈 곳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