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낯 설은 방 안,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이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 질 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지금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시간대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잠시 멍하게 주변을 살폈다.
내 옆에서 알몸인 채로 쌔근거리면서 눈을 감고 있는 지선이를 보면서 현실 감각이 조금은 생기는 듯 했다.
“후~”
심호흡을 길게 내뱉었다. 아직 창밖에서는 환하게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멍하기는 했지만, 창밖이 환한 걸로 봐서는 낮 시간 일 것 같았다. 낮잠을 푹 자고 나면 이런 경우가 많았다.
잠들기 전 벗어 놓은 손목시계의 위치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곳 저곳을 더듬으며 겨우 찾은 시계는 이제 5시가 넘어 있었다.
상황을 보면, 새벽 6시는 아닌 것 같으니 오후 6시인 것 같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작게 혼잣말을 한다고 했던 것이 조금 소리가 컸던 건지 지선이가 뒤척였다. 잠도 좀 보충을 한 것 같고, 이보희가 저녁 6시가 식사시간이라고 일러 주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몸을 옆으로 누인 채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면서 상채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곤하게 잠이든 지선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아무리 이곳 사람들이 하루 쉬라고 했지만, 완전히 이렇게 얼굴도 안 비추는 것은 좋을 것 같지가 않았다.
난 남는 한 손으로 지선이의 허리를 감았다. 손끝으로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왔다.
“으응…”
지선이가 살짝 움찍거리면서도 깨지는 않았다. 순간 지선이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지선이의 풍성한 가슴으로 올라갔고, 내 입술은 지선이의 입술을 살짝 덮었다.
“으음… 오빠… 잘 잤어요? 지금 몇 시쯤 됐어요?”
살포시 덮었던 입술을 떼자, 지선이가 움찍거리며 눈을 떴다.
“깼어? 오후 6시쯤 됐나봐. 식사시간 다 됐어. 일어나서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보자. 아무리 오늘 하루 쉬기로 했다지만, 온 첫날인데 너~무 퍼져 있는 것 같아.”
손 끝에 느껴지는 그 감촉이 너무나 아쉽긴 했지만,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고 옷을 챙겨 입었다.
지선이도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옷을 챙겨 입고, 무기를 챙겨들고서, 기웅이가 생활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는 기웅이 외에 몇몇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여자들이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얼큰한 라면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우와~ 냄새 끝내주네요? 한동안 국물 있는 걸 못 먹고 지냈는데.”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 냈다.
“호호.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다들 돌아올 거예요.”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던 김진숙이라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살짝 웃음을 보이며 대답을 했다.
“오빠. 난 주방 일 좀 거들게.”
“그래. 난 기웅이 좀 볼게.”
지선이를 주방으로 들여보내고 기웅이가 지내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기웅이는 그 방안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다친 데는 좀 어때?”
기웅이 옆으로 다가가 같이 벽에 기대어 앉았다.
“괜찮은 것 같아요. 나아지겠죠.”
기웅이가 한결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상처 자체는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소독을 며칠간 하지 못해서 살짝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런데 지선이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던데, 어딜 갔나요?”
“아니. 여기 같이 왔어. 주방에서 식사 준비하고 있어서 거든다고 갔어.”
“아…”
특별한 의미 없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았다.
“그리고, 기웅이 너 치료 받는 동안은 이곳에서 지내기로 하긴 했지만… 어떤 것 같아?”
“아직 많이 부딪혀 본 것은 아니니까 뭐라고 말을 하기는 좀 힘들어요.”
기웅이는 다소 고민이 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래. 말했다시피 너 치료받는 동안은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으니까, 그 동안 잘 살펴보자. 알았지?”
말을 하며, 기웅이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방 밖에서 사람 말소리가 늘어났다. 식사시간에 맞춰서 사람들이 돌아오는 듯 했다. 방문이 열리면서 오전에 마주쳤던 사내들이 들어왔다.
“어. 와계셨네요. 푹 쉬셨나요?”
기웅이를 먼저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안내를 했던 사내가 들어오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차차 알아 가면 될 일이었다.
“예. 오늘 새벽에 다들 잠을 못 잤는데, 덕분에 푹 쉬었네요.”
그와 간단한 인사를 하는 사이 다른 세 명의 남자들도 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여섯 명의 남자들이 한 방에 모여서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이곳에서의 생활규칙, 외부 상황,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일들, 뭐 그런 것들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정보를 공유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외부상황에 꽤 관심을 가지는 듯 보였지만, 이보희씨의 애인이라는 김현운이라는 사내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처음 이보희와 함께 우리와 만났을 때의 반응을 보면서 좀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지금 직접 이야기를 해 본 바로는 그의 관심사는 오직 이보희 하나 뿐인 것 같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정신이 없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파하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그의 관심사는 온통 이보희 뿐이었다.
나도 지선이를 사랑하긴 하지만, 이런 사내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
하루가 지나고 무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현석형님과 함께 충주 시내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나왔다. 여태까지 내가 겪었던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충주 시내로 들어가서 물건들을 구했다.
시 외곽지역은 필요한 것들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이런 세상이 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도 있지만, 우리가 원래 목적지로 삼았던 곳의 군인들이 싹 쓸어간 이유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지트에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지내는 편이지만, 생필품을 구하는 것은 다른 지역보다 좀 위험한 편이었다. 지금도 동진형님과 함께 충주의 작은 동네마트 안에서 식수와 식량을 구하는 중이다.
“동철아.”
내 바로 옆에서 나와 함께 가방에 생필품을 쑤셔 넣고 있던 현석형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예?”
나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서 고개를 돌려 동진형님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세요, 형님?”
현석형님은 주변머리가 살짝 허술하고, 뱃살이 조금은 두둑한, 어디선가 봤음직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두둑한 뱃살도 예전보다는 많이 빠진 것이라는, 어제 저녁 그의 능청스러운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
“멀었어?”
현석형님은 벌써 가방을 다 채운 모양이었다.
“저도 거의 다 되갑니다.”
“그래. 빨리 끝내고 가자.”
그의 이야기에 빈자리가 조금 남아 있던 배낭에 음식을 쓸어 담았다. 재빨리 배낭을 다 채우고, 둘러메자 어깨가 묵직해 졌다. 현석형님은 이미 배낭을 메고 엽총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 출발할게.”
현석형님이 엽총을 들고 조심스럽게 앞장을 섰다. 가게 안은 너무나 어두웠고, 그나마 밝은 출입문으로는 언제 좀비가 난입해 들어올지 알 수가 없었다.
출입문 쪽으로 다가가면서 나와 형님이 들어올 때 처리한 좀비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자 긴장감은 배가되었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 하더라도 도시 안에서의 활동은 외곽지역에서만 활동을 한 나에게 엄청난 긴장감을 선사했다.
출입문 바로 옆에 기대선 현석형님이 그 자리에 서서 고개만 삐죽이 내민 채 바깥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난 그런 형님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가자!”
차를 출입구에 바짝 붙여 놓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곳은 구조적으로 차를 멀찍이 세워놓을 수 밖에 없었다. 현석형님이 빠른 걸음으로 이곳저곳 몸을 숨겨가며 이동했다.
꽤 먼 거리이긴 했지만,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는 와중에 잘도 들키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로서는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 불안했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좀비 눈치를 살피면서 형님이 갔던 길을 따라 그대로 따라가기 위해 애썼다.
“먼저 뒷좌석에 가방 벗어놓고, 다시 앞쪽에 타는 거야. 알겠지?”
“예.”
현석형님의 말에 바짝 긴장한 채 짧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님이 차를 향해 뛰어 나갔다. 나도 그를 뒤따라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차로 접근한 우리는 뒷좌석에 배낭을 던져 넣고, 재빨리 앞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은 지리도 익힐 겸 내가 하기로 했는다.
부릉~
자동차 열쇠를 돌리자, 자동차 엔진 소리가 힘차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가 너무나 반가웠다.
“가자. 가자.”
조수석에 앉은 형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재촉했다. 나도 여기서 더 시간을 끌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부앙!
힘 찬 소리를 내며 차가 움직였다.
“후~ 역시 오래 살아 남은 이유가 있네. 잘 움직이는데?”
조금은 여유를 찾은 형님에 조금은 가벼운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말도 마세요. 이렇게 시가지 안쪽으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는 건 처음이라서요. 엄청 긴장했어요.”
그렇게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서 차를 몰았다. 그런데, 투다다당! 투다다당!
어디선가 총성이 몇 발 들려왔다. 그러면서 핸들이 왼쪽으로 확 쏠렸다.
“헉!”
나도 모르게 핸들을 바로 잡으려 애쓰면서 브레이크를 있는 힘껏 밟았다.
끼~~~익!!!
쿵!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차는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다른 차에 그대로 박아버렸다. 다행인 것은 속도를 그렇게 올려서 달리고 있지 않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사람이 다칠 정도로 충격이 오지는 않았다.
“으윽… 형님. 괜찮으세요?”
“어. 윽. 괜찮은 거 같아. 뭔 일이지?”
정신을 차린 우리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부앙!
그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차량 한 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빠르게 멀어져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