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멀어져 가는 차량을 그저 멍하게 바라봤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 생필품을 강탈해 가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차를 못 쓰게 만들고는 떠나버리다니.
“젠장. 군인 놈들이야. 그 자식들 이제 이런 식으로 하기로 한 건가? 빌어먹을…”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낮게 뇌까렸다.
“어떻게 아세요? 총 쏘고 바로 도망갔는데… 그리고 그 놈들이라면 확인 이라도 하고 가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 근처에 우리가 아는 다른 무리도 없을 뿐더러, 저런 자동소총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뻔하지. 지나가던 다른 군인이었다면… 우리가 가진 것들을 강탈해 가려고 했겠지… 이렇게 총만 몇 발 쏘고 가지는 않을 거야. 그 놈들이니까 우리가 무장하고 있는 걸 알고… 혹시나 확인하러 왔다가 당할 걸 생각해서 그냥 간 거 같아. 좀비가 있으니까… 그 놈들에게 맞긴 거겠지. 뭐…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충주로 오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갈걸 그랬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온 이튿날 이런 낭패를 당하다니. 앞이 깜깜했다.
“어쩌죠? 일단은 여기 벗어나야 될 것 같은데요?”
“시동 걸리는지 한번 걸어보자. 시동이 걸리면 펑크 난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형님 말대로 시동을 다시 걸기위해서 차 키를 돌려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주변에 있던 좀비들이 천천히 차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가까운 거리에는 놈들이 없다는 것이었지만,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안 되겠어. 일단 벗어나자. 혹시 모르니까, 각자 가방 메고. 자!”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오늘만 하더라도 오는 중간중간 가끔 가벼운 말투로 분위기를 풀어주던 현석형님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각자 배낭을 둘러메고 총을 든 우리는 도로변의 한 골목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날 따라와.”
난 그저 앞장서는 형님의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길을 모르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좁고 지저분한 골목을 따라 가정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정신없이 달렸다. 우선은 우리가 있던 차 근처로 몰려들던 좀비들을 피해야 했다.
“헉! 헉!”
대문과 현관이 모두 열려 있는 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는 그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궜다.
“허~ 허~”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들고 있던 총을 어깨에 메고 허리춤에 꽂혀 있던 작은 도끼를 손에 쥐었다. 배낭 때문에 총을 어깨에 메는 것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소음이 큰 총을 사용하기는 무리였다.
현석형님도 마찬가지로 작은 쇠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잠시 숨을 고른 우리는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으로 들어서고 현관문까지 걸어 잠궜다. 그러자 집 안에서 너무나 익숙한, 묘한 피비린내와 역한 냄새가 진해지는 듯 했다. 이곳에 움직이는 놈이든지, 그렇지 않은 놈이든지 간에 좀비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냄새는 좀비가 된지 오래된 놈이 아니면 이 정도로 확연하게 표시가 나지는 않기에 어쩌면 불행 중 다행 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톡. 톡.
내 앞에서 집안을 두리번 거리며 살피던 현석형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을 입에 갔다 대며 조용히 하나는 표시를 했다. 그런데 현석형님의 반응은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왜? 안쪽 살펴봐야지.”
속삭이는 듯 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이렇게 좀비들이 역한 냄새를 풍기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형님은 깜짝 놀라며 주위를 살펴보는 나를 ‘뭔 호들갑이야’하는 듯 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키르륵!!!”
주방 쪽에서 좀비 하나가 조금은 특이한 소리를 지르며 어슬렁거리듯 걸어 나왔다. 놈은 한쪽 다리가 뒤틀려 있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이 내는 괴상한 소리도 목 부위가 뜯겨 나가 있어서 그런 듯 했다. 또 복부는 여기저기 뜯겨 있었다.
나는 그런 처참한 몰골을 하고도 우리에게 달려들기 위해서 어기적거리며 팔을 휘젓고 있는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쪽 발을 들어서 있는 힘껏 놈을 뒤로 밀었다. 그러자 놈은 그대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손도끼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내리쳤다. 주변으로 거무튀튀한 살점들이 튀었다. 그리고 놈이 완전히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고서 도끼질을 멈췄다.
“후~”
저절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작은 손도끼로 내려치다보니 손과 옷 여기저기에 검붉은 살점과 피가 잔뜩 묻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피도 피비린내가 진동을 할 텐데, 좀비의 그것은 역한 시체 썩는 냄새까지 더해져 있었다. 다른 곳에 묻은 것은 몰라도 손은 특유의 그 찐득한 느낌과 역한 기분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냥 반사적으로 바닥 여기저기에 닦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도 그 찝찝한 기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형님. 집안에 들어오면서 굉장히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나요? 좀비로 변한지 꽤나 오래 된 놈인지 집안에 들어와서 문을 닫으니까 냄새가 엄청 심해지던데.”
생존에 관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현석형님을 돌아보며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랬구나. 미안하다. 큰일 날 뻔 했구나. 사실 나 냄새를 잘 못 맡아. 몇 년 전에 수술을 했거든. 그 뒤로 냄새를 잘 못 맡아.”
현석형님이 인상을 살짝 쓰면서 대답을 했다.
“아… 무슨 수술을 하셨길래… 큰 수술이었나 보네요.”
“암이었어.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대단하지? 암에… 이 빌어먹을 좀비까지… 거참…”
감각 하나가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큰 문제였다.
“형님. 이제 어쩌죠? 무전을 해봐야겠죠?”
“후~ 일단은 가지고 온 무전기로 연락을 해보자. 연락이 되면 다행인데…”
무전기로 연락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확실한 방법일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마을까지의 거리가 문제였다. 소형 민간용 무전기다보니 그 교신거리에 제한이 심했다.
“여기는 김현석. 기웅아, 응답해라.”
현석형님이 무전기로 기웅이를 불렀다. 마을에서는 기웅이가 부상 중이라 무전기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기에 기웅이를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무전기는 조용하기만 했다. 뒤이어 몇 번을 더 호출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후~ 형님. 마을까지 길 아시죠?”
아무래도 마을까지 둘이서 어떻게든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길은 아는데… 갈 수 있을까? 거리가 꽤 되는데…”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일행들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 위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기대를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총도 있고… 다른 무기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우리끼리 해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현석형님은 내 말에 한동안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좋아. 그렇게 하자.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 무서울 것도 없어. 식구들 다 먼저 보내고… 젠장.”
둘은 우선 배낭을 정리했다. 지금의 배낭은 식량과 식수로 가득차서 너무나 무거웠다. 혹시나 오늘 내로 돌아가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조금의 식량과 식수는 필요하겠지만, 지금처럼 무겁게 짊어지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바로 준비를 해서 길을 나서기로 했다. 현석형님이 길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앞장을 서고 내가 뒤에서 형님을 따르기로 했다.
집안에서 창문으로 대문 밖의 상황까지 파악을 하고 길을 나섰다.
좁은 골목으로 나선 우리는 우선 우리가 타고 있던 차가 있는 곳에서 멀어졌다. 현석형님이 앞장을 서서 길잡이를 했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언제 어디서 좀비들이 들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긴장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서로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현석형님을 따라 골목길을 지니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형님이 양 갈래로 갈라지는 골목길에서 가정집으로 보이는 건물의 담벼락에 기대서서 주변을 살폈다.
“오른쪽. 100미터. 좀비 셋.”
현석형님이 고개를 돌리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기다렸다가.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는 현석형님의 속삭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다시 골목길을 살피는 현석형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주시했다. 그렇지만 일이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키아악!!!”
전방의 갈림길 때문에 앞쪽에만 잠시 신경이 쏠려있는 사이 뒤쪽에서 좀비들의 괴성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온 골목길에 팔 하나가 온전치 않은 좀비가 우리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전방에 있는 좀비도 분명 이 괴성을 듣고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 같았다.
“젠장! 앞에 있던 놈들도 이쪽으로 오고 있어. 거리도 있고, 천천히 오고 있긴 하지만…”
현석형님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할 상황이었다. 뒤쪽은 무시하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려서 좀비들을 따돌리던지, 아니면 놈들을 처리하던지 결정을 해야 했다.
“둘 밖에 없으니까, 일단은 여길 벗어나죠. 괜히 여기서 시간 끌다가 골목길 안에서 갇혀버리면 빼도 박도 못할 것 같아요.”
좀비들 괴성을 지르는 습성이 확실하게 눈으로 보고 달려들 때만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놈들의 움직이는 속도가 늦고 하니,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 그렇게 하자. 후~”
길게 숨을 내쉰 현석형님이 앞쪽에 있던 좀비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형님을 뒤따라 나도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 좀비 뿐만 아니라 앞쪽에 있던 좀비들도 우리를 보고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놈들의 괴성에 다른 좀비들이 몰려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었다.
“헉! 헉!”
배낭을 메고 달릴려니 숨이 턱까지 차오는 듯 했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현석형님도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는 듯 했다. 조금만 더 달리면 갈림길에서 놈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갈았다. 그저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