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마을 안의 한 건물에 일행들이 모두 모였다. 12명이 전부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들 한자리에 모였다.
건물 안의 공기는 너무나 무거웠다. 모두 입을 꼭 다문 채 긴 정적이 흘렀다.
이곳에 모이는 것도 매끄럽게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일행 중 몇몇이 좀비에게 상처를 입은 현석형님을 마을로 들이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표시했던 것이다.
현석형님 입장에서는 조금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긴 했지만, 이들 중 몇몇은 아직까지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 봐야 뭐 달라질게 있다고…”
긴 정적을 깨고, 누군가 한탄 섞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현석형님이 입을 열어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나도 일을 이렇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 놈한테 상처를 입고… 나도 정신이 없긴 했지만 말이야. 사실 나도 왜 마을로 돌아왔는지 잘 모르겠어. 돌아와 봐야 좋은 꼴 못 볼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후~”
현석형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 도착해서 생각을 좀 하긴 했어. 나 때문에 소란이 이는 걸 보니까,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되더구만. 뭐… 이제… 먼저 간 마누라나 애들을… 볼 수 있겠지. 그런데 좀비로 세상 떠도는 건 하고 싶지가 않아. 어차피 죽는다면… 깔끔하게 죽고 싶어. 그렇다고 자살은 못하겠고… 그래서… 부탁 좀 하려고 말이야. 나… 깔끔하게 좀 보내줘. 애들이랑 마누라… 만날 수 있도록.”
현석형님의 이야기 내용은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했지만, 형님은 너무나 차분하게 말을 했다. 그런 형님이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여태까지 버텨오면서 생각을 많이 해봤던 문제였다. 좀비에게 부상을 당한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때 까지 버티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깔끔하게 인간인 채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서, 나도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좀비로 변하고 나 자신이 내가 아닌 상황이 온다고 해서 굳이 내 삶을 내가 포기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현석형님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한층 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혼자 멍하니 생각에 빠져들 때,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형님.”
기웅이가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나를 불렀다. 그때서야 나는 혼자만의 상념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으, 응. 그래. 무슨 일이야?”
기웅이의 작은 목소리에 그를 따라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형님. 잠시만 이쪽으로…”
기웅이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다른 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분위기에 휩쓸려 작은 목소리로 기웅이에게 물었다.
“형님. 그… 영감님이 전해주셨던 성과물… 둘 다 아직 가지고 계시죠?”
기웅이의 예상치 못한 언급에 다시 한번 주변을 살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나나 지선이, 기웅이의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왜?”
내가 내뱉은 싸늘한 말투에 내 자신이 흠짓했다.
“형님. 그 물건들… 사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영감님도… 마지막 순간이다 싶을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구요.”
기웅이의 말에 왠지 모를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것이 두 개니까, 하나를 여기서 테스트해보면 어떨까요? 조금 꺼림칙하긴 하지만 우리도 이 물건의 효능을 아직 모르니까… 이 기회에 확인을 해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기웅이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내가 알고 있던 기웅이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나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긴 했다.
더욱이 그렇게 나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다행히 효과가 있다면 남은 하나는 우리 셋 중에서 꼭 필요한 경우가 생겼을 때,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혹여, 효과가 없더라도 별 문제 될 것은 없는 듯 했다.
이런 말하기에 조금 그렇긴 하지만 이미 현석형님이 좀비에게 당했으니, 더 나빠질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더 존재 한다는 사실은 숨겨야겠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현석형님이 선택을 하게 하면 될 듯 했다.
설사 현석형님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모두 있을 때, 이야기를 하면 다음 누군가는 사용할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무리의 목적은 달성될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나가자. 내가 나가서 이야기를 할게.”
그렇게 둘은 다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조용히 나갔다. 그곳은 여전히 웅성거리고 있었다.
대충 들리는 바로는 현석형님은 이곳에서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길 원하지만, 사람들 일부가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현석형님을 죽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여태까지 버텨오면서 겪어 봤음직한 일이긴 했지만, 그들 입장에서 오래 함께 지낸 이를 사람인 상태에서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또 이런 것에 익숙해져 버리면 무리 내에서 이상한 분위기가 흐를 수도 있을 것 같긴 했다.
“후~ 잠시만 주목해 주세요.”
사람들을 둘러보며 조금 큰 목소리로 주의를 끌었다. 그러자 의도했던 대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저… 제가 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나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간 영감님과 관련되어서 겪었던 일들을 모두에게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영감과 내가 만나기 이전 영감님이 했던 일, 연구소에 찾아가서 했던 일, 그리고 그곳에서 영감님이 돌아가시기 전 어떤 성과물을 우리에게 넘겼다는 것까지 모두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나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럼 치료제가 있다는 말인가요?”
기웅이의 다리를 치료하고 있는 김진숙이라는 여성 간호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 말에 웅성거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현석형님까지,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아닙니다. 다만…”
다들 실망하는 듯 하다가, 내 말이 끝나지 않자 일말의 희망을 안고서 나를 바라보는 듯 했다.
“실험을 거치지 않은 성과물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저희도 알지 못해요. 영감님 말씀으로는 마지막 최후의 순간이 오면… 사용을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죽는 것 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내 말이 모두 끝나자, 다시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현석형님. 형님이 결정하셔야겠어요.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결정하기는 힘든 일인 것 같거든요.”
모두의 시선이 현석형님에게로 향했고, 형님은 두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이윽고 형님이 나를 바라봤다.
“좋아. 까짓것. 한번 해보지. 대신 효과 없이… 내가… 그렇게 된다면… 뒷일을 부탁하네. 다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구만.”
“좋습니다. 형님이 효과를 본다면… 저희에게 영감님이 하던 연구 자료가 있으니까… 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사람과 시설을 여유가 되는 대로 찾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네요.”
그렇게 사람들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현석형님에게 약물을 투여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약물 투여는 김진숙씨가 하기로 했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현석형님을 밀실에 격리를 하기로 했다.
아무도 쓰지 않던 빈집의 한 방에서 현석형님 혼자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고, 다들 형님이 머물 밀실과 하루치의 식량, 식수를 준비했다. 통상적으로 좀비에게 상처를 입으면 하루 정도가 지나면 몸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준비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계속 다들 한자리에 모여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하러 흩어졌다. 현석형님이 지내기로 한 빈집에 김진숙씨, 현석형님, 이보희씨, 그리고 나와 기웅이까지 다섯 명이 모였다.
휑한 방 안에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의자에는 현석형님이 차분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자! 준비 되셨어요?”
김진숙씨가 현석형님을 바라보며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숙씨. 어째 나보다 진숙씨가 더 긴장한 거 같애. 편하게 해. 어?”
현석형님도 상당히 긴장될 텐데 오히려 바짝 긴장하고 있는 김진숙씨를 다독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얼굴 표정까지 숨기지는 못하고 긴장감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는 듯 보였다.
“그러게요. 어째든… 형님! 행운을 빕니다.”
분위기도 조금 바꿀 겸 나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다들 현석형님의 행운을 빌었다.
“아… 정말… 성공했으면 좋겠다…”
다들 시끌시끌하게 성공을 기원하는 와중에 이보희씨의 한마디가 이상하게 내 귀에 쏙 들어왔다. 내가 느끼기에도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 날것 없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투와 억양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자! 진숙씨! 갑시다!”
현석형님의 조금은 과장되 보이는 한마디에 김진숙씨는 조용히 현석형님의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아 넣었다.
“음…”
현석형님은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내는 듯 했다. 어느새 주사기 안의 내용물은 모두 현석형님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다들 다시 한번 행운을 빌며 한명, 한명 방을 나섰다.
나는 마지막으로 방을 나서며 방안에 남아 있는 현석형님을 돌아봤다. 서로 눈을 맞추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까지 방을 나서자, 현석형님이 있는 방문은 외부에서 잠금장치를 하며 봉쇄를 했다. 그리고 지금 모여 있는 네 명이 번갈아 가며 이곳에서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자! 그럼 다들 일들 보시죠.”
가장 먼저 문밖에서 감시하기로 한 김진숙씨가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은 김진숙씨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한마디씩 건내며 집을 나섰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을 나서면서도 나는 이것이 성공하길 빌고 또 빌었다. 물론 단순히 현석형님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래야만 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성과물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