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현석형님을 김진숙과 함께 남겨두고 나오자, 집 밖에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일행들 중 두 명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응? 무슨 일이세요? 무슨 급한 일이 또 있는 건가요?”
이보희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보고 물었다.
“아니… 급하다기 보다는… 저…”
둘 중 김진숙의 남편인 박기준이라는 중년의 사내가 입을 열었으나 뭔가 껄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려는 듯 주저했다.
“아… 형님. 거… 말 참 못하시네. 제가 할게요.”
옆에서 보고 있던 내 또래의 장기창라는 사내가 답답했던지 말을 이었다.
“여태까지 함께 지내면서 알고 있는 현석형님이라면 그렇게 쉽게 좀비에게 당할 분은 아니거든. 그래서 어떻게 당하게 된 건지 알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아! 어때요?”
이야기를 들은 이보희씨가 나를 바라보며 물어왔다.
“좋아요. 그럼 어디 자리를 옮기시죠.”
마을 안의 빈집 한곳으로 찾아 들어간 우리는 거실에 둘러 앉았다. 들어올 일이 거의 없었던 집이었는지 집 안에서는 쾌쾌한 먼지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려나…”
잠시 조금 전까지 겪었던 일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현석형님도 이런 경우는 여태 없었다고 했는데 말이예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비교적 차분하게 현석형님과 내가 겪었던 일을 전했다.
군인을 만나 총격을 받은 것에서부터, 둘이서 도망을 치다 스쿠터를 구하는 와중에 만난 특이한 좀비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를 했다. 내 입장에서는 군인들에게 총격을 받은 것보다는 마지막에 만난 특이한 좀비에 대해서 더 신경이 쓰였지만, 마을에 원래 있던 사람들은 그보다는 군인들에게 총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쓰고, 분개했다.
어떻게 생각을 해 보면, 그 전부터 공격을 받던 이들에게서 또 공격을 받은 일이 되다보니 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저기… 그런데 그 군인들 보다는 마지막에 말씀 드린 그 특이한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죠. 도망치는 와중에 현석형님이 처리하긴 했지만, 상당히 위협이 될 만한 존재 일 것 같았어요. 혹시 이전에도 이런 좀비를 본적이 있으신가요?”
그러던 중에 마지막에 만난 그 특이한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그건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요? 사고 능력을 가진 좀비라니… 말이 안되지 않나요?”
이보희가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가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여태까지 겪어 본 것을 미루어 본다면,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분명 존재했어요. 사실… 좀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저와 함께 온 세 명은 이미 그와 비슷한 존재를 본적이 있어요.”
“음… 저희는 그런 건 한번도 본적이 없어요. 착각한 게 아닐까요? 너무 급박한 나머지…”
여전히 이보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이들은 마을 안에서는 좀비를 겪을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 마을 안에서는 안전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좀비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한 느낌마저 있었다.
이들이 이 마을에서 지낸지 얼마나 됐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좀비에 대해서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나대로 생각이 많아졌다.
‘이런 사고 방식으로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뭐… 이 사람들 여태까지 살아 남은 것을 보면 이 마을에서는 이래도 된다는 말일까?’
내가 여태까지 살아남은 방식은 그 어떤 것보다 좀비를 가장 먼저 고려하고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그보다는 인근에 있다는 군인들을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여태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생각하는 좀비라니… 그랬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 같은데…”
“아니… 그렇더라도… 이 마을 안에서 지낸다면 어떤 좀비가 있던지 간에 상관없지 않나?”
내가 잠시 말없이 생각을 하고 있자, 원래 마을에서 지내던 사람들이 각자 한마디씩 더하기 시작했다.
“저…”
내가 그들의 말을 받아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자, 옆에 있던 기웅이가 내 말을 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억지로 이들을 설득까지 시킬 필요는 느끼지 못했던 탓에 기웅이를 따라 입을 다물었다.
이곳이 끌리는 장소이긴 하지만, 이들과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기웅이가 다 나은 이후에 이곳을 떠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더욱이 좀비들이 이 마을로 접근하지 않는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은 언제 좀비가 마을로 들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기는 했다.
“음… 다들… 생각이 그렇다면 뭐… 더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아. 기분이 나쁘셨나요? 이곳에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러실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정말이지 좀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내 표정이 살짝 굳는 것을 보고 이보희가 한마디 더 했지만, 나로서는 그 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완전히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다면 큰 문제없겠지만, 어차피 마을 밖에서 생필품이나 식량, 식수를 구해 와야 한다면 좀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하고, 그 때문에 현석형님도 당한 게 아닌가. 하지만 이들에게는 그것이 좀비 때문이 아닌 인근의 군인들 때문이라고 인식된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전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이상 이야기해 봐야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들과의 자리를 마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음.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그러세요. 여기서 좀 더 지내시다 보면 저희가 하는 말을 이해하실 거예요.”
자리를 파하며 내뱉은 내 말에 이보희가 다시 여태까지 했던 말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몇 마디 말을 더 나누다가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찾아 흩어졌다. 그리고 나와 기웅이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나와 지선이가 지내는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들끼리 만이라도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비록 바로 하루 전, 마을 사람들이 정해준 숙소이긴 하지만 돌아오니 복잡하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아… 정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커플끼리 숙소 따로 쓰는 건 정말이지… 부럽네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은 과장되게 기웃거리던 기웅이가 능청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마을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와는 달리 표정과 말투가 한결 밝아진 듯 했다.
“자식. 별로 좋을 것도 없어.”
집으로 들어선 우리는 거실 쇼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깨끗한 집안에 한가로이 앉아 있자니 커피 생각이 문득 나긴 했지만, 이곳에서도 기호식품 같은 것은 지급되어 있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 고생하셨어요.”
어느새 진지한 얼굴을 한 기웅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현석형님한테 비하면 고생이랄 것도 없지.”
비록 이곳에 온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함께 고생을 한 탓인지 현석형님은 왠지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와 함께 나갔던 사람이 나도 모르는 사이 좀비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동철이형. 여기 이 마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다리 치료하는 것 때문에 오긴 왔지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거든. 그런데, 또 모르지. 여기 사람들 말처럼 이곳에서 지내다보면 우리도 저 사람들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지도. 어쨌든 너 상처치료가 끝날 때 까지는 여기서 지내자. 좀 이상한 것도 있고 하니까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말고. 다음일은 그때까지 우리가 겪어보면서 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거야.”
내 말에 기웅이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그런데 시가지에서 만난 군인은 어떤 것 같았어요?”
기웅이는 그래도 군인들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글쎄다. 나도 직접 겪은 건 아니니까, 뭐라고 말하긴 힘들어.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긴해.”
“뭔데요?”
“그 군인들… 마을 인원을 줄이는 게 목적이라면… 왜 확실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차만 좀 쏘고 갔을까? 나 같으면 확실히 마무리를 하고, 상황을 확인을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내 말에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뭐… 그거야 놈들도 좀비들이 신경 쓰여서 그런 거 아닐까요? 어쨌든 기분이 찝찝하네요.”
“그래. 그게 아니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처음 보는 사람들 그냥 믿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 그리고 아무래도 여기… 이보희라는 여자가 발언권이 가장 큰 것 같으니까… 신경을 좀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어요. 형님.”
나와 기웅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하면서 간만에 조금은 편안한 기분으로 잡담을 나눴다. 그런 한가로운 시간은 내가 마을 외곽 경계를 서야 할 시간이 되어 집을 나설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