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소리는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갑자기 현석형님이 왜 저러는 거지? 정말 형님이 이상해진 건가?’
하지만 멍하니 계속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일이 정말 골치 아프게 꼬여버린 것 같았다.
“다들 현석형님에게서 떨어져요! 어서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저 웅성거리기만 할 뿐이었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면서 현석형님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형님. 무슨 일이예요? 그냥 몸싸움일 뿐인데…”
기웅이가 나를 따라 움직이며 조용히 물었다. 표정을 봐선 기웅이나 지선이도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지금은 길게 이야기 못하겠고… 우선은 자리를 옮기고 이야기를 하자. 형님하고 형수님도 저희하고 같이 가시죠. 어서요!”
무슨 일인지 몰라 우리를 쳐다보며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나와 일행들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물론 나와 일행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총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요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현석형님에서는 내 생각일 뿐이지 직접적인 증거는 현재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총기를 사용한다면, 잘못하면 내가 마을 사람들에게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설령 현석형님이 좀비가 확실하고 그를 사살함으로써 그의 시체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석형님과 한패라고 생각되는 이보희와 김현운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튼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으악!!!”
갑작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내가 생각이 잘못된 것이길 빌었지만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석형님이 쓰러져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석형님이 장기창을 쓰러뜨리고, 그 위에 올라타서는 그의 얼굴쪽을 물어뜯고 있었다. 장기창은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왔을 붉은 피가 바닥으로 번져 나가고 있었다.
“젠장!”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후.”
깊은 숨을 들이 쉬며, 재빨리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지선이도 권총을 꺼내 들고 있었고, 기웅이는 어깨에 메고 있던 소총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이내 현석형님이 내가 본 지능이 있는 좀비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그 놈은 이렇게 무턱대고 덤비는 경우가 없었다. 일반적인 좀비들을 수족처럼 이용했고, 자신이 노리던 사람을 집요하게 노렸다. 그런데 지금의 현석형님은 나에게 덤벼들다가 장기창이 그것을 막아서자 그를 공격하고, 그의 살점을 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건 무언가 달랐다.
‘아! 현석형님이 당했던 놈! 그놈도 지능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했어.’
잠시 다른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 그런 것을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현석형님이 장기창에게 흥미를 잃은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기웅이 지선이와 눈빛을 교환하고, 서로 가지고 있는 총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비명을 지르던지, 아니면 넋 나간 사람처럼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이 알던 사람에게서 그것도 여태까지 좀비들로부터 안전하다고 믿었던 마을 안에서 공격을 받다보니 다들 정신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그것은 기준형님이나 진숙누님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현석형님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탕!
기웅이가 들고 있던 소총이 먼저 불을 뿜었다. 운이 없었던 것인지 기웅이가 쏜 첫 총알은 현석형님의 한쪽 빰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것이 신호가 되어 나와 지선이의 권총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첫 한발에 한쪽 뺨이 길게 찢긴 현석형님이었던 그 좀비는 고개를 들어 총을 쏘고 있는 우리를 향해서 막 달려들다가 팔과 몸통에 연이어 날아드는 몇 발의 총탄을 맞고 나가 떨어졌다. 하지만 놈은 일반적인 좀비와 달리 아주 민첩하게 반응을 했다. 몸통과 팔에 몇 발의 총탄이 박혔지만, 크게 제약을 받지 않으며, 우리를 피해 몸을 숨겼다.
아무래도 우리가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을 한 모양이었다.
“이젠 어쩌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 사이 모여 있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보희와 김현운도 보이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이곳에는 우리 일행들과 쓰러져 있는 장기창의 시체만이 있을 뿐이었다.
“후…”
기웅이가 긴 한숨을 내쉬며 장기창의 시체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기준형님은 그런 기웅이를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진숙누님은 기준형님의 곁에 서서 쓰러져 있는 장기창의 시체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기웅이는 그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기창의 시체에 다가가서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작은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조용히 쓰러져 있는 장기창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퍽!
언제 들어도 유쾌하지 않은 소리가 또 다시 내 귀를 자극했다. 그리고 기웅이가 다시 돌아올 때 까지 다들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기다렸다. 잠시 후 일행에게로 돌아온 기웅이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은 기준형님 숙소로 자리를 옮기시죠?”
여건이 허락 한다면 지금 바로 이 마을을 뜨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더욱이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 될것 같았다. 또한, 다들 맨몸에 기본적인 무기들만 가지고 있고,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다른 일행들도 다들 마찬가지였던 것인지, 이견이 없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꺼내 들고서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움직였다. 기준형님의 숙소까지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되고 보니 이곳에 올 때와는 다르게 남은 거리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꺄악!!!”
일행들이 움직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다급해 들리는 것은 분명했다.
“응? 어디지?”
조심스럽게 전진하고 있던 기준형님이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듯 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런 형님의 어깨를 움켜쥐며 듣기 안 좋을지 모를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형님. 마음은 알겠는데… 지금은 우선 숙소로 돌아가시죠. 이렇게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기준형님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어깨를 붙잡고 있던 내 손을 쳐내고는 나를 노려봤다.
“동철이, 너. 아까부터 왜 그러는 거야? 현석형님 저렇게 되고… 기창이까지 당하고… 이제 이 마을에 남자라고는 여기 있는 우리 셋하고, 현운이 밖에 없어. 그리고 현운이는 나도 이제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될지 모르겠고… 그런데 어떻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비명을 지르는데 그냥 모른 척 하자는 소리를 하는 거야?”
기준형님은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에 분노한 감정이 잔뜩 묻어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대충 이야기해서 자리를 옮길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후~ 형님. 좀 전에 일은 뭔가 숨기는 것 같아서 좀 흔들어볼까 했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 자체도 너무 위험합니다. 보셨잖아요. 현석형님이었던 그 좀비… 총을 쏘니까 도망을 갔어요. 위험하면 도망가는 좀비… 보신 적 있으세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런 몸놀림을 보이는 좀비를 상대로 비명소리가 들렸다면… 우리가 찾아가는 사이에 상황은 끝나 있을 거예요. 여기 이 인원들만이라도 안전을 확보해야 합니다.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도 위험하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니시잖습니까?”
내 말이 끝난 후에도 기준형님은 잠깐 동안 계속 나를 노려봤다. 내 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고민은 됐는지 잠깐 동안 생각에 빠지는 듯 했다. 그러고 나서 형님은 진숙누님을 잠깐 보더니 결정을 한 듯 말문을 열었다. 그래도 그녀의 안전이 걱정 되는 듯 했다.
“후~ 그래. 좋아. 일단은 자리를 옮기자.”
그렇게 일행들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조금은 서먹서먹한 기운이 감돌긴 했지만, 우선은 그런 것 보다 숙소로 돌아가는 것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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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건 이게 전부예요.”
진숙누님이 자신의 앞에 약품들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하~ 갑작스럽게 일이 터지다 보니까, 많이 답답하네요. 뭐가 어떻게 된건지…”
기준형님의 숙소 거실에서 기웅이가 누님과 누님이 내려놓은 가방을 바라보며 힘 없는 목소리로 푸념하듯 이야기했다. 나 또한 현재 상당히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사실이 짜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 있는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기준형님은 특히나 안 좋은 모습이었다. 그저 멍하니 숙소 거실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뒤부터 계속 저런 모습이었다. 사실, 돌아오는 길에 있었던 의견 충돌 때문에 숙소로 돌아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그의 모습이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여태까지 좀비들로부터 안전하다고 믿었던 마을 안에서, 그것도 함께 지내던 친한 사람이 좀비로 변해 버렸다. 이 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길지 않은 나에게도 오늘 일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함께 지낸지 오래된 기준형님에게는 너무나 큰 일이었던 것 같다. 또, 이 숙소에 오면서 누군가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무시했다는 사실도 한몫 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쨌든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후~ 차 열쇠하고 식량, 식수는 기웅이 숙소에 있고… 권총이나 소총 실탄은 우리 숙소에 있고… 아! 엽총 실탄도 기웅이 숙소에 있네.”
일행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다들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기웅이가 다시 의견을 이야기했다.
“우선은 제 숙소로 가서 이것저것 챙기고… 차로 확보해야겠네요. 그러고 나서 형님 숙소로 가서 실탄을 챙기구요. 일반좀비는 없으니까… 그나마…”
기웅이의 말 이후로 다들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말마따나 일반좀비들이 마을 안에 없다는 것이 다행이긴 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준 아저씨!”
숙소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아까 비명소리는 누군지 알아 듣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분명 이보희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 목소리가 반가운 건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기준 아저씨! 저예요. 보희! 좀 나와보세요.”
잠시 후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숙소 안 누구도 거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반응을 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다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반응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기준형님이 멍하니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