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그건… 비약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요?”
내 생각을 모두에게 이야기하자 기웅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비약이 좀 심하긴 해. 하지만, 저 둘이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이야기 한 것들도 모두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야. 그렇다면 내가 이야기 한 것도 여러 가능성 중에 하나 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럴 가능성도 충분한 거 같고.”
잠시 일행들을 둘러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오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정신없이 터져서, 이야기가 두서가 없네요.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결정을 해야 되요.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저는… 어떻게든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들이 쉽게 보내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후로 일행들이 하나하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기웅이와 지선이 그리고 진숙누님은 마을에서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기준형님은 그래도 기약없는 떠돌이 생활보다는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진숙누님의 의견은 의외였다. 솔직히 누님은 이곳에 남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기웅이와 지선이는 겪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형님. 여기저기 다니다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정착을 하면 되요. 저희도 처음부터 계속 이렇게 돌아 다니지는 않았거든요. 생각보다 지내기 괜찮은 곳이 꽤 있을 거예요.”
“여보. 그렇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이 마을이… 현석씨 그렇게 되고 하루만에 어떻게 됐는지 봐요. 여기서 지내면 하루하루 피가 마를 거예요.”
기웅이와 진숙누님이 나서서 기준형님을 설득했다. 기준형님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을 봐선 내가 다수 의견을 따라야겠네. 그런데 당신.,. 마을 밖으로 나가면 여기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 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어?”
기준형님의 표정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진숙누님이 나가겠다고 하니 별다른 말 없이 마음을 바꿨다.
“여보. 우리 군인들이나 여기 사람들하고 함께 지내기 전하고 비슷하겠죠. 그 기간이 그렇게 길는 않았지만요. 또 이 마을 생활에 많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여기 이렇게 든든한 일행들이 있잖아요.”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나자, 이보희와 김현운, 그 둘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게 이 마을을 벗어날 것인지, 아니면 당당하게 그들에게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둘을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그들에게 알리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도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문제는 여태까지 그들이 비밀을 숨긴 채 지내왔기 때문에 그들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몰래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차량과 필요한 물품들을 그들 몰래 준비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의견을 나눴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결론이 날 것 같지가 않네요.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에는 우선 몰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말을 해서 보내 줄 사람들 이라면 몰래 준비를 하다가 발각이 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구요. 그리고 밖이 완전히 어두워 지면 준비를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우선 최대한 빨리 계획을 세워서 준비를 해야 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실제로 발각이 되면, 괜찮을지 혹은 괘씸죄라는 게 적용될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확신을 가지고 일을 벌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조금은 강하게 나갔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던 일행들이 내 말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 동철이, 니 말대로 결정을 내렸으면 질질 끌어서 좋을 게 없지. 준비할 것도 있고, 차 같은 경우는 들키지 않을 수 있을지 확실치도 않고… 그러니 다들 머리를 맞대서 쥐어 짜내 보자.”
기준형님의 동조에 다른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얼굴에 일말의 망설임이 조금씩은 묻어 나는 듯 했지만,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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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계획을 짜는 일이 그렇게 수월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았고, 상황 자체도 녹녹치가 않았다.
약품들은 이미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준비를 해야 할 것은 총기류와 탄약류와 같은 무기류들, 최소한 한끼 정도를 해결 할 수 있는 식수와 식량, 그리고 차량이었다. 물론 최악의 경우라면 식량과 식수는 포기 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차량과 무기만 확보 한다면 식량과 식수는 확보 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가장 먼저 무기류를 확보해야 했다. 지금도 몇정의 총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총알이 너무나 부족했다.
나와 지선이가 쓰던 숙소에서 탄통을 챙겨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도끼나 칼 같은 것들도 필요했다. 여기저기를 다 뒤지고 다닐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숙소로 가서 탄통과 거기에 있는 무기들만 챙기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다음으로는 식량과 식수를 구하는 것은 상의한 결과 따로 챙기지는 않기로 했다. 다만 식수는 이곳과 무기류를 챙겨 올 숙소에서 조금은 챙길 수 있을 듯 했다.
마지막으로 차량은 기웅이가 머물던 숙소에서 열쇠를 챙겨야 했다. 그리고 차량들은 그 숙소 바로 앞에 세워져 있었다.
그렇게 준비해야 할 물품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기웅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무엇보다 그 둘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가… 가장 큰 문제인거 같네요.”
“그렇지. 그런데, 예전처럼 좀비가 있는 마을에서 물품을 구한다고 생각을 하면 큰 문제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발각되지 않고 모든 일을 마칠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고, 혹시나 발각이 되더라도 일반 좀비들에게 발각되는 것 보다는 상황이 좋지 않을까? 말이라도 해 볼 수 있으니까. 어쨌든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에서 좀 떨어져 있기를 바라야지.”
지선이가 가만히 기웅이의 말을 받았다.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갔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마치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고, 확신을 갖기 위한 최면과도 같은 것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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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웅이는 다리가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준형님 숙소에 남아 그곳을 지키기로 했다. 물론 걷거나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아직은 뛴다거나 무거운 물건들 옮긴다거나 하기에는 통증이 있었다.
나와 기준형님은 탄통을 나르기로 했고, 지선이와 진숙누님은 몇 통 남아있는 식수를 챙기기로 했다.
기준형님의 숙소에서 내 숙소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하지만 갈림길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았다. 이보희와 김현운이 그들의 숙소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 곳이 내 숙소와 반대 방향이라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였다.
우리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주변을 살피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100미터도 못가서 내 숙소가 위치했다.
“정지.”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낮은 담벼락을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이다가 갈림길에서 일행들을 세웠다. 이제 남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방심할 수는 없었다.
“…”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지만,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기분이 영 찜찜했다. 그것이 겉으로나마 호의를 보이는 이보희와 김현운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상없네요. 갑니다.”
최대한 몸을 숙인 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일행들의 조심스런 발소리가 들려왔다.
******
“자! 출발할게요.”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물품을 챙겼다. 탄통은 반쯤 들어 있는 하나 밖에 남지 않았지만, 혼자서 옮기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와 기준형님이 함께 옮기기로 했다. 지선이와 진숙누님은 메고 온 배낭에 1.5ℓ 생수통 두 개씩을 넣었다.
‘이제 무사히 돌아가서 차량만 확보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어.’
앞쪽에서 탄통을 함께 들고 있던 기준형님이 현관문을 열었다.
막 기준형님을 따라 발을 떼려는데, 형님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움직이질 않았다.
“여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숙누님이 기준형님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좁은 현관사이로 밖을 슬쩍 옅보자 그곳에는 김현운이 총을 들고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보희가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봐. 보희야. 이런다니까?”
이전과는 달리 조금은 경박하게 들리는 김현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하려고 해도 이미 저쪽은 이쪽을 조준하고 있고, 우리는 물건들을 옮기기 위해서 총을 어깨에 메고,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왜… 왜… 아저씨… 여기서 같이 지내는 게 그렇게 싫으신 거예요?”
왠지 힘이 쭉 빠진 듯한 이보희의 말소리도 들려왔다.
‘바보같이 왜 이 생각을 못한 거야? 젠장!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 짧은 사이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 갔다. 물론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한 것은 내 자신에 대한 짜증이었다.
오늘 하루 종일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아무래도 그 와중에 정신줄을 놔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와중에 기준형님은 현관문을 나서지도, 그렇다고 다시 들어오지도 못한 채로 그 자리에 얼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