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차에서 내린 나는 바로 대문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기웅이와 지선이는 내 등 뒤를 지키고 서서 주변을 살폈다.
“형님. 거리 좀 있으니까, 침착하게 하세요.”
“그래. 고마워.”
철컹! 철컹!
기웅이가 하는 말에 기계적인 대답을 하며, 대문을 닫았다. 대문에 달려있는 잠금장치가 아직 고장이 나지 않은 상태여서, 대문을 봉쇄하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렸다.
재빨리 뒤돌아 선 내 눈에 보이는 좀비의 수는 모두 다섯. 가급적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 처리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긴 하지만, 일반좀비 뿐이라면 이 정도는 무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돌아서는 것을 확인한 지선이가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뒤이어 내가 그 뒤를 따랐고, 기웅이는 아직 다리가 조금은 불편했기에 다른 방향에 있는 좀비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선이가 막 가장 앞서 있는 놈의 머리에 쇠꼬챙이를 꽂아 넣는 것을 보면서 그녀를 지나쳤다. 그리고 몇 걸음 더 나아가서 나 또한 좀비와 마주했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물어 뜯었는지, 놈의 이 주변에는 마른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놈과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놈의 치아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검붉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놈의 뺨쪽 피부까지 뜯겨저 나가 있어서 더욱 흉물스러웠다.
“흡.”
짧게 숨을 들이 쉬며, 오른손에 들려있던 손도끼가 놈의 두개골을 쪼개고 들어갔다. 이전에는 그래도 길이가 좀 있는 정글칼이 놈들을 상대하기 편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느 정도 놈들을 상대하는데 익숙해진 요즘에는 놈들의 두개골을 아예 부셔버려서 끼어버릴 걱정이 들한 손도끼가 차라리 더 편한 느낌이 들었다.
‘거참. 머리 쪼개는 것에 익숙해지는 건가?’
“오빠!”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등 뒤에서 지선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지선이가 쇠꼬챙이를 빼는 타이밍이 늦은 때문인지, 쓰러지는 놈의 체중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또 다른 한 놈이 그런 지선이에게 바짝 다가서고 있었다. 물론 얌전하게 다가서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빨리 몸을 틀어 지선이에게 다가서고 있는 놈에게 대쉬해 들어가려는 순간, 지선이는 손에서 쇠꼬챙이를 놓고, 허리에 차고 있던 정글칼을 빼들고 있었다. 저 정도 반응이면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잠깐 사이 지선이가 꺼내든 정글칼이 그녀에게 달려들고 있는 놈의 목을 그대로 끊어 버렸다. 잠시 전까지도 놈의 목 위에 달려 있던 머리통이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조심해.”
“예, 오빠. 오빠두요.”
마주친 김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제 남은 좀비는 셋.
이내 기웅이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좀비 하나를 처리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도 나와 지선이가 하나씩 맡아서 보내버렸다. 그리고 담장 안쪽 여기저기를 수색했다. 으쓱한 곳에서 생각지도 안은 시점에 놈들이 튀어나오는 것은 최대한 막아야하는 일이었다.
******
철컥.
“응? 안에서 잠겼는데? 누가 안에 있는 것 같아.”
담장 안 수색을 마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합판으로 막아 놓은 1층의 창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합판 안쪽은 어떻게 해 놨는지 알 수 없지만, 저 합판 뿐이라면 부숴버리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가장 가까이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지선이와 기웅이도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를 챈 듯 했다. 우선 손으로 합판을 쳐 봐도, 소리로만 판단해서는 다른 것이 덧대져 있지는 않은 듯 했다. 손도끼를 정작 원래 목적인 나무 자르는 용도로 쓰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빠각!
한쪽 귀퉁이가 찍혀, 부서져 나갔다. 충분히 손도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듯 했다. 다시 한번 내려치기 위해서 막 들어 올리려는 찰나였다.
“잠깐! 잠깐! 그만 하세요. 부수지 마세요. 문 열어 드릴게요. 해치지만 마세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긴 했지만, 지금 타이밍에 안에서 누가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있었군요. 미안합니다. 혹시 혼자 계시는 건가요?”
“예. 지금은 저 혼자예요. 무기도 없어요. 위험한 사람 아니예요.”
******
건물 안에서 문을 열어 준 이는 군인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군인인 것 같긴 한데, 총기도 실탄도 하다 못해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그와 건물 안의 한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저희는 뭐 좀 건질게 있을까 해서 오긴 왔는데… 그런데 이런 넓은 곳에 어떻게 혼자 있는 건가요? 혹시 누군가 숨어서 저희 뒤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닌가요?”
말을 이렇게 하긴 했지만, 사실 이곳은 한동안 버려졌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했다. 누군가 있다면 위험하게 담장 안쪽에 까지 좀비들이 들어오도록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우린 널 완전히 믿는 게 아니야’ 라는 인상을 좀 주려는 것이었다. 너무 쉽게 믿어주면 딴 생각을 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 혹시나 정말 누군가가 숨어 있다면 어색한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아뇨. 아뇨. 아니예요. 원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예요.”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손사래까지 치며 부정했다. 군인도 젊은 사람일 뿐이고, 또 요즘 같은 세상에 군인에게 특별한 것을 바라는 것도 조금 그렇긴 하지만, 이 사람은 좀 말로 표현하긴 그렇지만 느낌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군복을 아직까지 입고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긴 했다.
“그런데 어떻게 혼자 있게 된 거죠?”
기웅이는 자신도 군인이란 사실을 밝히고 싶지는 않았던 것인지, 계급을 밝히거나 하지 않고 존대를 했다.
“하… 그러니까 어떻게 된거냐면 말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몇 달 전부터 유별나게 좀비들이 이곳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전까지 어느 정도는 편안한 생활을 하던 이곳에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그런 갈등은 얼마 후 벌어질 일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곳과 맞지 않는다고 이곳을 나간 사람들이 다시 찾아 왔는데, 그들이 생긴 것이나 말하는 것은 이전과 똑같은데, 좀비들을 조종하는 것 갈았고, 또한 사람들을 공격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게 누구인지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들은 이보희와 김현운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보희와 김현운은 그들과 함께 지내던 이들은 보호하며 좀비들이 마을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았지만, 이곳에서는 그들의 새로운 욕구를 해소한 듯 보였다.
어찌 되었든 그런 상황이 계속 되면서 사람들이 분열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따로 이곳을 탈출하기 시작했단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그 자신을 포함해 세 명이었는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도 얼마 전에 탈출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자신은 식중독 비슷한 것에 걸렸고, 그 둘은 자신을 버리고 이곳을 나섰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들이 떠나면서 무기는 다 쓸어갔지만, 식량은 남겨줘서 그걸 먹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종합해 보면, 이보희와 김현운이 이곳을 탈출한 이후 그들과 마찰이 조금 있었고, 그 이후 그 둘이 좀비로 변한 뒤로는 그들이 좀비를 이용해서 이곳을 봉쇄해 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곳은 와해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탈출했다는 두 명은 대충 기간을 따져보아도 그렇고 현석형님과 내가 시내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그 둘이 이곳을 탈출하면서 이 사람을 빼놓은 것이 자신의 말로는 몸에 이상이 있었던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부터 표정이나 몸짓 같은 것들이 왠지 거부감이 들었다.
“제 이름은 박용진 입니다. 보시다시피 군인이구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전부 찾아보세요. 아니, 저한테 말씀을 하세요. 있는 거라면 제가 찾아 드릴게요. 대신…”
“대신?”
머뭇거리는 것이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 대충 짐작이 갔다.
“대신. 저도 같이 함께 데리고가 주세요. 부탁드려요.”
‘역시나…’
“음… 사실, 처음 보는 사람 무리에 함부로 들이기 좀 꺼려지기는 하네요. 하지만 지금 즉흥적으로 대답을 하기도 그렇고 상의를 해보고 대답을 드리도록 하죠.”
“예. 그러세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렇더라도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아셨죠?”
“예. 알겠습니다.”
잠시 박용진을 피해 우리들 끼리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그와 내가 말을 하는 동안, 기웅이의 표정은 분명 좋지 못했다. 그리고 지선이도 그리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때?”
“음… 저 사람에 대한 거라면 반대. 여기는 뭐… 무기류는 싹 챙겨갔다는데… 찾아보지 않은 다음에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저 사람 왠지 꺼림칙해.”
역시 지선이도 별로 였던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기웅이도 입을 열었다.
“솔직히, 지금 같은 세상에서 군인으로서 민간인을 보호하고… 뭐 그런 건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저 박용진이란 사람은 뭐랄까요. 너무 입만 산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그거라도 정말 기가 막히게 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혼자 남아 있을 일도 잘 없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사람들이 받는 느낌이란 게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엇하나 확실히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지만,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세상이니 달리 방법도 없었다.
“그럼…”
사람을 쉽게 죽이는 것은 아직 내키지 않지만, 약탈자가 되어야 할 때는 확실히 약탈자가 되는 것도 지금 세상에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여기서는 그렇게 약탈자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