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철컥! 철컥!
박용진을 조용히 찾아간 우리는 조용히 소총을 들어 올리며 장전을 마쳤다.
“아! 잠깐. 잠깐만요.”
박용진은 총을 겨누는 것을 보자마자, 양 팔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이렇게 총까지 겨누고 하실 필요 없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다 들고 가세요. 해치지만 마세요.”
“우리도 사람을 해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다만, 처음 본 사람을 바로 믿을 수는 없는 세상에 살다 보니까 어쩔 수가 없네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무리에 합류시키는 건 더욱 그렇구요.”
기웅이와 나는 여전히 총을 내리지 않았고, 그 상태로 내가 나서서 그의 말을 받았다.
“정말 중요한 정보가 있어요. 그것 때문에 여러분들과 이곳을 나서려던 거예요. 여러분들에게도 절대 나쁘지 않은 일이예요. 한번 들어나 보세요. 예?”
크게 흥미가 동하지는 않았지만, 뭐… 들어봐서 나쁠 건 없었다.
“음… 무슨 정보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음이 동한다면 저도 함께 대려 가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뭐… 약속이란 것도 별 쓸모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 주세요.”
“듣고 나서 판단해 보죠.”
“좋아요. 후~”
그의 이야기는 또 한번,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긴 했지만, 이번 것은 그리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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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며칠 전에 우연히 미군의 무전을 들었는데… 그것이 항모에서 여러 나라를 돌면서 물품들을 조달하는데… 보름 후에 우리나라로 온다? 그리고 그때 혹시나 생존한 자국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 전파하는 무전을 들었다? 그 장소가 부산 외곽지역이고 그곳까지 함께 가자?”
“예! 바로 그 얘기죠. 뭐… 물론 자국민들을 대피시키기겠다는 거긴 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밑져야 본전이구요.”
확실히 흥미가 동하긴 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라면 어딘가를 보다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우리를 이용하는 것일 텐데, 기분은 굉장히 더럽겠지만,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지지는 않을 듯 했다.
그 외의 다른 경우는 처음 보는 우리에게 저렇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라면 무기를 강탈하기 위한 것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셋이서 하나 감시를 하면 어렵지 않을 듯 했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예상한 대로 딱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이번 경우는 그가 말한 내용이 꽤나 솔깃했다.
“그러면, 당신 영어는 잘해요? 갔다가 말 안통해서 무슨… 폭도로 오해 받아서 공격 받지 않을 자신은 있는 거예요?”
웃기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걱정하지 마세요. 영어 하나는 자신 있으니까. 어때요?”
박용진은 사뭇 자신 있는 말투로 우리의 의사를 물어왔다.
고민이 되었다. 그는 밑져야 본전이지 않냐고 했지만, 세상에 밑져서 본전인 것은 없다고 예전부터 생각해 온 나였다.
물론 미군을 만나서 이야기가 잘 되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은 밑져야 본전일 수 있겠지만, 좀 더 넓은 시야로 봤을 때, 그 곳으로 가면서 겪게 될 위험들은 밑지면 본전 일 수가 없었다.
“거기 항모에는 좀비가 없는 건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좀비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나 변형된 좀비들이 섞여들 수도 있을 텐데?”
기웅이는 어느 사이엔가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고 있었다.
“얼핏 들은 말로는 그런 걱정을 하지 말래요. 그 항모에 연구실이 차려져 있고, 거기서 무슨 감지기 같은 걸 만들었는데, 그걸로 좀비인지 아닌지 판별이 가능하다고…”
들으면 들을수록 한번쯤 시도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저치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미군이라면 영어가 필수 일테고, 저치가 꼭 필요하긴 했다.
잡음이 섞인 영어를 무전으로 알아들을 정도면 영어 실력은 믿을 만 할 것 같으니까. 우연히 만난 사람이 혹하는 제안을 해 오니,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독단으로 결정하기는 힘든 내용이라, 잠시 기웅이와 지선이를 불러 모았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몇 가지 전제 조건을 거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좋아요. 그럼, 몇 가지 사항에 동의한다면, 당신이 말한 곳으로 같이 가죠.”
“예. 어떤 조건이든 상관 없어요. 어차피 혼자서는 절대 거기까지 갈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 만큼 절박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정도는 예상을 한 것인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말에 바로 답을 했다.
“무기를 지급하지 않을 겁니다. 몸수색을 해서 가지고 있는 무기도 압수 할 겁니다.”
“아니! 그, 그건!”
“이게 마음에 안 들면, 함께 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린 확실히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기까지 쥐어주며 우리 곁에 둘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위험하게 될 가능성과 당신이 위험하게 될 가능성, 둘 중에서 고르라면 당연히 우리가 위험하게 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줄일 겁니다. 양보는 없습니다.
뭐… 일정 중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아… 알겠어요.”
“아. 그리고 출발은 내일입니다.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기한이 있는 일정이라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겠죠. 가서 며칠을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대충 대화는 마무리가 됐다. 그리고 박용진의 안내를 받으며 식량과 여러 물품들을 준비했다.
******
“무기류는 하나도 남은 게 없는 건가?”
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음식과 여러 가지 물품들을 싣던 와중에 기웅이가 박용진에게 물었다.
“예.”
박용진이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내,
“아! 9밀리 실탄이 좀 남아 있던가? 그런데 권총이 없어요. 몽둥이 같은 건 찾으면 좀 나오겠지만… 칼이나 도끼, 활, 수류탄… 이런 건 싹 쓸어 갔어요.”
“그럼 그것도 챙기도록 하지.”
“권총도 있나 보네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챙길 수 있었다. 식량은 물론이고, 깨끗해 보이는 옷가지, 갖가지 공구들, 거기에 생각지 않았던 권총탄 까지. 수류탄도 몇 개 있었다는데,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소음 때문에 함부로 쓰긴 좀 그렇지만, 위기 순간에는 그만한 물건이 또 없을 것 같았다.
물품들 정리가 어느 정도 끌나고, 사무실에서 박용진은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나머지 우리 셋은 옆 사무실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기웅아. 다리는 좀 어때?”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예요. 아직 뛸 때 조금 통증이 있긴 한데, 급할 때 뛰는 정도는 참을 수 있을 정도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으니까 걱정안하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 요즘 먹는 게 소염제 종류인 것 같던데… 챙겨온 약 잘 챙겨 먹고.”
잠시 말을 끊고, 기웅이와 지선이를 둘러봤다.
“후~ 언제까지 세상이 이 모양이려나. 끝이 나긴 하려나…”
나도 모르게 다들 있는 상황에서 약한 소리가 세어 나와 버렸다.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이었다.
“흠! 그냥 해본 말이야. 신경 쓰지 말고. 저치… 밖으로 나가면 야간에 불침번 서고 할 때나…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을까?”
“오빠…”
“신경 쓰지마. 다들 비슷 할 텐데… 무심코 튀어 나온 말이야. 그것 보다 당장 내일 밤부터 저 사람 밤에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할지가 고민이야. 불침번을 시키기도 그렇고… 물품이나 무기나… 차에 잔뜩 있으니까…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기웅이가 입을 땠다.
“제 느낌은… 처음 볼 때부터 말이 앞서고, 좀 다른 사람 이용해 먹으려 하는… 좀 얍삽한 스타일 같았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생각에 변화가 좀 생긴다고 해도 한동안은 지금 처럼 했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로 안 좋았어요? 난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는데…”
지선이의 말에 나도 동감이었다. 믿음이 가지 않고, 왠지 거부감이 드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또 기웅이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도 처음이라 심각하게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도 직접 겪어본 건 아니라서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군생활 할 때, 비슷한 병들을 종종 봤거든. 딱 그 스타일이야. 지금은 정말 운 나쁘면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니까, 확신이 설 때 까지는 말한 대로 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
기웅이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찜찜한 게 있는데 목숨을 걸고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기웅이 말도 일리가 있네. 지선아 혹시나 마음에 안 다는 부분이 있어도 그렇게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알았어요. 오빠.”
지선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