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4
4화
또 하루가 지났다. 아침에 눈을 뜨고서, 혼자가 아니라는게 이렇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지 처음 알았다. 아침밥을 대충 해결하고, 둘이서 텐트 앞에 앉아 앞으로의 일은 얘기하는 자리가 자연히 마련됐다.
“동철아. 우선 섬에서 나가는건, 들어온 것처럼 보트를 타고 나가면 될거야. 둘이니까 어제처럼 그렇게 힘들지도 않을거고 말야. 차도 인적드문 곳에 주차해 뒀으니까,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예. 뭐 하루니까요. 예전이랑은 다르겠지만… 인적이 드문곳이라면 별 문제 없겠죠. 일단은 형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을 해야 할텐데… 근데 저도 차를 가지고 오긴 했거든요. 차를 그 마을에다 주차를 해 놔서 다시 거길 들어가서 가지고 나온다는게 겁이 나네요. 우선 형 차가 있으니까, 형차로 그냥 이동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뭐 지금 어디 갈곳도 갈만한 곳도 없어요. 지금 집에가봐야 달라질 것도 없구요. 형이 어제 얘기한 것처럼 형 공장으로 가는게 어떨까 싶긴해요.”
정말 그렇다. 지금 혼자 살던 집은 가봐야 아무 득될것이 없다. 위험하기만 할뿐. 현 상황을 봐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 테지만, 그렇다고 생존한 사람이 아주 없지도 않을 것이다. 현재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될 것이 안전이고, 그다음은 식수나 식량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형. 그 공장이요. 제가 한번도 안가봐서 그러는데, 어디 공단 한복판은 아니죠?”
사실 공장이란 얘기 들었을 때 이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공단이라면… 거기에 사람이 무지 않을테니까.
“그럼. 대구 외곽이야. 좀 한적한 곳이고. 그것 때문에 출퇴근 힘들다고 직원뽑기 힘들었는데. 지금 같은 때에는 이게 이점일꺼 같네. 음… 그리고, 철문으로된 출입문 말고는 1층에는 창문도 없고, 2층에는 창이 있지만, 거기는 창이 있다고 위험하진 않을거고. 아무튼 들어갈때까지만 신경써서 들어가면, 들어가서는 안전할거야. 그리고, 다른건 없어도 참거리로 라면 몇박스 사놓은게 있거든. 식량도 어느정도는 있고, 식수도 지하수 끌어다 쓰니까 수도가 끊기더라도 문제 없을거고. 아무튼 지금 내가 갈수있는곳중에는 제일 안전한 곳일거야.”
생각보다 괜찮은 장소같다. 안전도면에서도 식량이나 식수면에서도.
“한가지 걸리는건 차를가지고 내부로 들어갈수 없다는건데. 다행히 근처에 좀비가 하나도 없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그때가 아마 제일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
“아뇨. 이정도만 해도 꽤 괜찮은 장소 같아요. 백퍼센트 안전한곳이 있지는 않을테니까요.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지내기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앞으로 이동할 목표는 정해졌다. 민철이형의 공장. 가는 과정은 형과 대화를 해봤지만, 지금으로선 특별할 것은 없었다.
최대한 한산한 길을 이용해서 차로 이동하는수 밖에. 형도 섬으로 들어올 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배낭을 가지고 왔지만, 풀지는 않아서 그냥 가지고 가면 됐고, 나도 짐은 배낭을 다 싸놓은 상태였다. 텐트는 두고 가기로 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야외에서 텐트설치해서 잔다는건 자살행위일거 같으니, 가지고 가더라도 쓸모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의견을 맞추고 나니까, 둘다 이제 떠날때가 됐다는걸 알았다. 식사는 괜히 먹고 출발했다가 보트로 이동중에 고생할까 싶어서, 차로가서 차에서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바로 출발을 하려다가 형은 무기로 쓸만한 것은 가지고 오지 않은 것 같아서, 야전삽을 형에게 건내고, 나는 손도끼를 들고 그렇게 보트에 탔다.
고무보트는 생각보다 잘나가긴 했지만, 역시 힘들었다. 형말로는 가면서 말도 할수 있고, 번갈아 가면서 노를 저을수도 있어서 한결 편하고 좋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한시간 좀 덜되게 노를 저어서 겨우 육지에 다다를수 있었다. 몸이 힘들긴 하지만, 어서 움직여서 차로 가야 했다.
육지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안도감과 공포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형. 차는요?”
조용히 형에게 말했다.
“방향을 조금 잘못잡아서 한 50미터쯤 떨어진 것 같아. 저기 마을반대 방향에있는 두 번째 전봇대있지? 거기 도로변에 세워져 있어. 바로 가로질러서 그쪽으로 가자.”
형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말대로 약 50미터쯤 거리에 전봇대가 보였다.
도로가 있을것으로 보이는 전봇대 맞은편은 야트막한 야산이 있고, 그 전봇대까지는 정리를 안한듯한 무성한 풀숲이 이어져 있었다. 다행히 주위에 인기척은 없었고, 우리둘은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있는 힘껏 그 전봇대를 향해 뛰었다.
고작 50미터라는 생각에 뛰기 시작했는데, 짊어진 배낭무게와 한손에든 손도끼가 생각지 않게 크게 느껴졌다.
전봇대에 거의 도달해갈 무렵, 풀숲이 끝나고 도로가 보이는 시점이었다. 옆에서 잘 달리던 형이 무언가에 걸린 듯, 땅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깜짝 놀란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때 처음으로 좀비라는 존재를 실재로 보게 되었다.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한건지, 무릎아래로는 뜯겨져 나간 듯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그래서 손으로 몸을 끌고 왔는지 옷은 다 해져 있고, 그사이로는 상처가 가득했다. 그리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붉은 눈동자를 한 채로 넘어진 형을 잡으려고 손을 뻗고 있었다. 다행히 약간의 거리가 있어 손이 닺지는 않았다.
형은 신음성을 내다가 고개를 돌려 그 상황을 보게 되었다.
“흐억! 어!어!어!”
형도 놀란 나머지, 일어나서 달려갈 생각은 못하고 팔다리에 생긴 숱한 상처에서 피가 나는 상태로 버둥거릴 뿐이었다.
“키약!!!!!!!”
형을 잡지 못하자 화가 났는지, 그놈이 소리를 지르고는 형에게 기어가서 형을 잡으려 했다. 형이 계속 버둥거리던 탓에 잡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위험한 지경인건 분명했다.
그때까지 어찌해야할지 몰라 두리번 거리던 나는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에 그 좀비에게로 뛰어 갔다. 좀비가 형의 발을 잡았다 놓쳤다를 반복하길 몇 번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오른손에 들고있던 손도끼로 놈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려쳤다.
퍽!
한번 내려치고 나자, 머리가 비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한가지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놈을 처리해야지 형이 산다. 그래야 나도 산다. 난 살아야 한다. 나는 그생각에 몸을 맡겼다.
퍽! 퍽! 퍽! 퍽! 퍽!
나에게는 무한히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뒤에서 내 등에 손을 대면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동철아. 됐어. 그만해도 돼. 어서 차로 가자.”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민철이 형이 무언가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 나를 향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이제야 좀 제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 깜짝놀라 놈을 다시 돌아보았다. 놈의 머리가 있던 곳에는 그저 뼛조각과 고기덩어리가 있을 뿐이었다.
“흐억!”
깜짝 놀란 나는 내 오른손을 봤고, 거기는 원래 무슨색이었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버린 손도끼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어서 차로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일으켜 세운 형이 앞장서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바로 몇미터 앞에있는 차로 다가섰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형을 뒤따라 갔다. 배낭은 둘다 뒷자리에 던져 넣고, 형은 운전석으로, 나는 조수석으로 말없이 문을 열고 앉았다. 그렇게 말없이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형이었다.
“고맙다. 동철아. 그리고, 미안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건 나도 처음이라 당황했었나보다.”
“아뇨. 아니예요, 형. 전 괜찮아요. 넘어지면서 다치신곳은 괜찮아요?”
말은 하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다리를 삐끗한거 같긴 한데, 심각한건 아니야. 전력으로 뛰거나 하긴 힘들지 몰라도 어느정도 움직이고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동철아. 그… 좀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마주치고서 우리가 그놈들 처치하지 않으면 우리가 그놈들처럼 되버려. 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인데… 나도 그렇고… 지금 세상이 이럴 수밖에 없는 세상인거 같아.”
그렇게 말하고는 형이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차는 인적이 드문곳을 골라서 대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