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영감님은 녹초가 되어 있었고, 나도 얼이 빠진 듯 멍하게 앉아 있었다.
일행들은 오늘 더 이상 놈들과 마주한다는 것은 힘들 것이라 판단하고, 각자의 방으로 가서 좀 쉬기로 했다.
나는 일행들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물며 지선이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때까지 그냥 멍한 기분이었는데, 그렇게 혼자 있게되자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으…”
한번 시작된 떨림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됐다. 놈의 몸에서 느껴지던 그 한기와 이질적인 피부의 감촉이 아직까지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똑똑.
“오빠, 나예요. 지선이. 들어가도 되죠?”
아무래도, 지선이가 내가 걱정이 돼서 와본 듯 했다. 그런데, 지선이의 목소리를 듣자, 멈출 것 같지 않던 내 몸의 떨림이 지선이의 목소리를 듣자 거짓말처럼 멈췄다.
“어. 들어와.”
난 침대에 웅크리고 있던 자세 그대로 지선이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오빠, 괜찮.. 오빠! 괜찮아요? 어디 안좋아요?”
지선이는 방으로 들어서며 내가 이러고 있는 모습에 놀랐는지 나에게 다가와 이마를 만지고, 여기저기를 살피며 내게 물었다.
“괜찮아. 어디가 아파서 그런건 아니고… 좀 놀랐나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상태가 좋지는 않네.”
“아. 다행이다. 오빠, 많이 놀랐지. 여기 이렇게 답답한 곳에 있지말고, 저랑 같이 옥상으로 올라가지 않을래요? 하늘보고 맑은 공기 마시고 그러면 좀 좋지 않겠어요?”
“그럴까? 후~”
나는 지선이의 말에 따라 옥상에 올라가서 여유를 좀 가지기로 했다. 지선이 말마따나 꽉막힌 방안에 있는 것 보다는 바깥공기를 좀 마시는게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선이와 함께 있다는게 마음의 여유를 좀 가지게 해주는 것 같았다.
옥상으로 올라온 우리는 놓여있던 평상에 나란히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다. 평상에 있던 먼지 같은 것은 지금 내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지선이와 함께 누워서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할 뿐이었다.
“하~ 그땐 정말 끝인 줄 알았는데… 너하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수 있다니…”
“나도 깜짝 놀랐어, 오빠. 그런데, 그 오빠를 덮쳐 왔던 그 좀비, 그 빠른 좀비는 다 그런걸까요?”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긴 하지만, 나도 정말 궁금하긴 했다.
“글쎄… 나도 궁금하긴 한데, 지금은 그때 생각은 하고 싶지가 않아. 미안해. 지금은 그냥 이렇게 좀 있자.”
“아! 미안해, 오빠. 너무 내가 궁금한 것만 생각했나 보다. 이리와, 오빠.”
지선이는 내 머리를 끌어 당기며, 나를 꼭 끌어 안아 주었다. 나는 말없이 그런 지선이에게 몸을 맡겼다.
지금 너무나 편안했다. 그냥 이대로 이곳에서 계속 이렇게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놈의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해줄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던 것 같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기 만 했다.
“오빠, 자요?”
“아니. 안자. 그냥 있어.”
“그럼, 밥먹으러 내려가요. 점심시간 다 됐네요.”
“그럴까? 읏차!”
나는 자세를 고쳐 평상에 걸터 앉았다. 지선이도 마찬가지 였다. 그리고는 둘이 손을 꼭 붙잡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 옆에서 나와 손을 잡고 걷는 지선이를 힐끗 쳐다보면서, 이런 소소한 일상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했다.
주방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서 일행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와 영감님이 오늘 좀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지선이와 인수가 오늘은 음식준비를 자청했다.
개수가 많지 않아서 잘 먹지 않고 놔뒀던 예전 세상이라면 잘 먹지도 않았던 즉석요리로 된 미트볼이며, 햄버그 스테이크를 내놨다. 즉석밥에 즉석요리로 해결하는 식사지만, 오늘 먹는 점심은 이전에 먹었던 식사들 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그 어느때 먹었던 밥과 고기보다 맛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보통때라면 다들 자기 식사가 끝나면 인사를 하고 자기 방으로 갔지만, 오늘은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우선 인수군, 지선양. 오늘 점심 식사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네.”
“아뇨. 그냥 데운게 다인데요 뭘.”
“아니네. 어찌됐든 맛있게 얻어 먹었으니 말이야. 하하”
“저기… 다들 이렇게 안가고 모여 있는걸 보면 무언가 이야기 하고 싶은게 있기 때문일 텐데요. 하실 말씀있으신분은 말씀해 주세요.”
식사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듣고 있다가 내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다들 갑자기 표정이 조금 어두워 지면서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영감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음… 오늘 동철군도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 뭐라 그래야 될까? 편의상 원형 좀비라고 하겠네. 아무튼 그 원형 좀비들에 대한 대비책을 무언가 마련해야 되지 않겠나?”
“예.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오전에 보여준 놈의 몸놀림이라면 건물 안은 몰라도 담장 정도는 놈을 막을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런 놈이 많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비는 해야겠죠. 예전에는 어찌어찌 그냥 해결을 했지만, 이번에는 다들 보셨듯이 장애물을 뛰어 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지금까지도 그러기는 했지만, 이곳에 오면서 담장을 믿고 생활 공간을 조금 넓혀 볼까 했지만, 그냥 지금처럼 모든 생활은 공장 건물 내부에서만 하는 것으로 해야겠어요.”
내가 말을 마치자, 영감님이 또 한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그놈과 마주 했을때도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네. 우선 다들 봤다 시피 그놈 움직이는게 엄청 빠르네. 혼자서 그런놈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 것 같네. 해서 그런 놈이 나타나면, 몸을 빼낼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놈을 먼저, 그리고 함께 상대를 해야 할 것 같네. 그게 아니라면 그야말로 각개격파 당할 듯 하네.”
“놈이 나타나면 오늘 지선이 누나가 해준 것처럼 권총으로 여유를 만들어 주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인수도 영감님의 말을 받아서 한마디 했다. 그렇게 모두들 한마디씩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요약하자면, 원형 좀비가 나타나면 그놈의 저지나 제거를 최우선으로 하고, 소총을 제외한 모든 무기를 총동원 해서라도 놈을 제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밖에서 몸에 아무런 상처도 없는 좀비를 보게되면 놈이 인식하기 전이라면 무조건 도망가라.
이 정도 였다.
어느 정도 의견을 맞추고, 그것보다 다들 오늘 느낀 공포 때문에 수다를 떨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난 이후에 다들 자신의 방으로 흩어졌다. 나와 영감님만 남아 있었다.
“영감님도 오늘 많이 힘드셨죠? 저도 오늘 영 죽다 살았더니, 기분이 완전 색다르네요.”
“그렇게 달려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구만. 정말 그땐 숨넘어 가는 줄 알았다네. 그리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네. 항상 조심하고, 대비를 해야 되겠네.”
“예. 영감님. 그래도, 지선이도 그렇고 영감님이나 인수도 그렇고, 다들 함께 있으니까 마음도 편하고, 좋네요.”
“하하.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네. 그래서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거라고 하는거 아니겠나.”
“예. 그런가 보네요. 후. 영감님도 피곤 하실텐데, 방으로 가서 쉬시죠. 저도 좀 쉬어야 겠네요.”
“그러세. 자! 일어나세.”
나와 영감님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큰대자로 누워버렸다. 오늘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또 생존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우선은 밖에 나가서 자물쇠를 구해와야 했다. 대문과 건물의 미닫이문의 잠금장치를 새것으로 교환해야 했다. 그리고, 날씨도 쌀쌀해 지기 시작해서 나갈 때 마다 옷가지들을 챙겨올수 있는만큼 좀 챙겨야 할 것 같았다.
난방도 되지 않기에 옷이라도 두껍게 입어야 될 듯 했다. 그리고 식수나 씻을 물을 신경써야 했다. 어떻게 보면 물문제가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었다.
사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없었지만, 물은 그 중에서도 가장 생존에 직결될수 있는 문제인 듯 했다. 신경을 써야할 문제였다.
어찌 됐든 오늘은 몸을 움직이기가 싫었다. 누워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났지만, 오늘 무언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점심을 먹었을 뿐이지만, 어서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