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차창 밖으로 논밭이 빠르게 지나갔다. 예전 이맘때라면 푸른 벼들이 한참 자라고 있을 때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지금은 벼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논이 온통 피가 가득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피가 논을 거의 뒤덮어 버릴 지경이었다.
어제 저녁을 먹고 일행들과 오늘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번에는 영감님과 지선이가 공장을 지키고, 인수와 내가 나가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한명만 공장을 지키는 것은 불안한감이 있었다.
“형, 이제 저기 조금 더 가면 작은 삼거리가 나오는 데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빠지세요. 그러면 조금만 더 가면 큰 공구상이 있어요.”
인수가 이 지역 토박이라서 길안내도 겸해서 나와 함께 나왔다. 그리고, 자물쇠를 찾기 위해서 인수가 안내해 주는 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인수야, 근데 내 기억이 맞으면 그쪽으로 가면 아마 하양으로 들어가는 길일텐데… 괜찮겠어?”
“아… 그쪽이 하양으로 들어가는 길은 맞는데요. 공구상이 다른 건물들이랑 많이 떨어져 있어서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자세히 아는 데가 이 동네니까요. 그 가게에서 챙길 것 챙기고 바로 돌아서 나오면 될거예요. 그 가게 거창하게 지어놔서 주차장도 크고, 차 돌리는건 문제 없을거예요.”
“그래? 아무래도 나보단 이 동네 살았던 니가 잘 알겠지.”
일단은 인수말을 믿고 가보기로 했다. 상황이 영 아니다 싶으면 바로 돌려서 나오면 될 것이다.
그렇게 잠시 차를 달려서 인수의 말대로 멀리서 공구상의 간판이 나오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가게의 위치가 절묘했다.
그 공구상을 시작으로 가게들이 시작되었는 위치였다. 단순히 그런 위치라면 놈들이 좀 많을 수도 있지만, 공구상 다음이 스틸하우스를 제작하는 곳이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그 다음부터 여러 가게들이 보였다.
공구상의 간판을 보고 위치만 확인을 하고, 그곳에서 꽤 떨어져서 차를 세웠다. 이곳까지는 아직 주변으로 논이 펼쳐져 있었다.
“인수야. 공구상 앞으로 가면 시동을 끄고 잠시 기다릴꺼야. 혹시나 주변에 놈들이 있으면 차에 타고 있을 때 확인 하려고 말이야. 그러니까, 시동 끈다고 바로 내리면 안돼. 알았지?”
“예, 형.”
엑셀레이터를 천천히 밟으면서 차를 공구상으로 접근 시켰다. 공구상은 부지가 상당히 넓었고, 주위로 철제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게 건물의 전면이 전면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어? 인수야. 공구상 펜스가 닫혀 있는데? 셔터도 내려와 있고… 어떻게 할까? 그냥 차로 밀고 들어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시끄럽게 만들어서 좋을건 없을 것 같으니까, 그냥 넘어서 들어가 볼까하는데… 어때?”
“음…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여기 말고, 제가 아는 철물점이나 공구상이나 그런건 죄다 좀 복잡한 곳에 있거든요. 여기가 제일 한산한 곳이예요. 여기가 안되면 좀 여기저기 뒤져보는 수 밖에 없을거 같아요.”
“좋아. 그럼 펜스 넘어서 한번 들어가 보자.”
인수는 나오기전 몇 번 사용해본 석궁을 들고, 허리춤에 쇠파이프를 꽂아두고 있었다. 나는 쇠봉에 권총, 소총까지 모두 챙겨서 나왔다.
조용히 차에서 내려 주위에 놈들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펜스로 다가갔다. 다시 한번 주위를 확인해 봤지만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방에 무기까지 챙겨 들고서 펜스를 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밀어올려주고, 끌어당겨주고 하면서 겨우 넘을수 있었다.
“우선 셔터부터 한번 확인해 보고, 안되면 건물 뒤로 한번 돌아가 보자. 보통 이런 가게는 뒷문이 있으니까, 거기도 확인을 해보자.”
“예.”
인수는 긴장을 단단히 했는지, 말투가 아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도 이 짓을 꽤 하긴 했어도 정도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긴장이 되는건 어쩔수 없었다. 조심스레 가게 입구로 다가가서 셔터를 살짝 들어봤다. 역시 셔터는 잠겨 있었다.
“인수야. 안돼겠다. 뒤로 한번 돌아가 보자.”
건물 벽을 따라 돌아 뒤편으로 가보니, 역시나 뒷문이 하나 설치되 있었다. 그리고, 창문도 몇 개가 나있었다.
“형. 뒷문도 잠겨 있는데요?”
“인수야 이 창문은 열려 있다. 이쪽으로 들어가면 되겠어.”
인수와 나는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들어가서 살핀 내부는 가정집의 구조와 흡사했다. 그리고, 내부에는 누군가 있다거나, 좀비들이 들어온 흔적은 없는 듯 했다.
가게 뒤편은 가정집으로 사용했던 것 같았다. 우선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위해서 가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도 몇 개가 있고, 주방,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뒷문이 있는곳에 신발이 한 켤레 놓여 있었다.
“인수야. 여기 아무래도, 누가 사는거 같은데? 신발도 한 켤레가 저기 있는 것도 그렇고, 여태까지 들어가 본 집들과는 다르게 먼지가 거의 없어. 꼭 청소를 하는 것처럼 말이야. 들어오면서부터 뭔가 좀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데, 저기 신발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
“그러네요. 그런데… 지금도 여기 있는 걸까요? 아님 밖으로 나간 걸까요?”
“글세… 여기서 놈들에게 당한 것 같지는 않고, 방은 전부 확인해 봤는데 아무도 없었어. 번잡한 곳과 가까워서 옮긴건가? 모르겠네. 그리고, 사람이라고 전부 믿을수 있는건 아니란거 명심하고, 직접 당해봤으니 알지? 일단 우리가 필요한 것부터 챙기자.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서 움직이자. 아! 잠시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발걸음을 옮기려다 잠시 멈춰섰다.
“저기. 저희 나쁜 사람들 아니예요. 빈곳인줄 알고 들어왔는데, 혹시 누구 계세요? 저희 자물쇠 몇 개만 좀 챙겨서 갈께요. 그러니까, 누군가 있다면, 지금 대답해 주세요. 아니면 그냥 계속 그렇게 있던가요. 만약에 우릴 공격하면 저희도 반격할꺼예요.”
펜스가 둘러쳐져 있는 건물 안이고, 주변에 놈들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말해 봤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괜한짓 한건가? 아무튼 가자. 긴장풀지 말고.”
가게로 들어서자 갖가지 공구와 소모품들이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아이고… 자물쇠 찾는것도 일이겠는데… 인수야. 흩어져서 찾자. 너는 저쪽을 찾아봐. 꼼꼼하게 잘 찾아야한다. 그리고, 자물쇠 찾으면서 쓸모 있겠다 싶은건 바닥에다 내려놔볼래? 가지고 갈수 있는건 가지고 가보자.”
“예. 대충 봐도 탐이 나는건 많은 것 같아요.”
나와 인수는 각자 자리를 잡고서 샅샅이 뒤졌다. 탐이 나는게 많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필요한건 자물쇠였다.
“형! 여기요. 자물쇠 찾았어요.”
“그래? 잠시만… 그래. 그 정도면 문제없겠다. 좀 여유있게 챙겨두고, 다른 쓸만한거 더 있는지 좀 살펴보자.”
우리는 자물쇠를 챙겨두고서 다시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여기저기 살폈다.
“니들 뭐하는 놈들이야?!! 내 가게에서 당장 나가!”
갑자기 굵직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수와 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 40대에서 50대쯤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왠 총을 우리에게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10대쯤으로 보이는 소년이 그의 뒤에 몸을 숨긴채 서있었다.
“아! 가게 주인이신가 보네요. 저희가 자물쇠가 좀 필요해서요. 빈 가게인줄 알고 들어와서 물건을 좀 살펴봤어요. 들어오면서 내부가 왠지 사람이 있겠다 싶어서 양해를 구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실례를 했네요.”
나와 인수는 놀라서 가지고 있던 권총과 석궁을 그 남성에게 겨눴다. 그리고 내가 변명하듯 둘러댔다. 중년 남성은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봤고, 아이는 그런 그의 시선을 받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자물쇠는 챙겨 줄테니, 그만 내 가게에서 나가!”
양해를 구했다는 것에 마음이 좀 풀린 것인지,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 졌다. 그냥 나서기는 왠지 좀 아쉬워서 그를 한번 떠보기로 했다.
“저희도 이 근처에서 생활하다가, 최근에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아지트가 무너지면서 지금은 영천쪽 산에 있는 공장에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쪽에 좀비들이 많지 않나요? 하양읍내에 가까운 쪽에 자리를 잡고 계서서 많이 신기해서요. 아! 저희 아지트에 침입했던 놈들 이후로 아이와 함께긴 하지만 생존자 무리를 만난건 처음이라서, 궁금한게 좀 있어서요…”
이런 대치상황에서 내가 말이 많아지자 나를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 봤다.
“정보 교환겸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이전까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저희에게 찾아왔던 약탈자 무리들이 또 없다고는 장담하기 힘들텐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겨누고 있던 권총을 방아쇠 울에서 손가락을 뺀채로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또, 인수에게 눈치를 주자, 인수도 겨누고 있던 석궁을 위로 향하게 했다.
이런 시기에 이런 가게주인과는 안면을 트고, 껄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무기를 거두는 제스쳐를 취하자, 그도 경계심이 조금은 풀어진 것 같았다.
“좋아. 그것도 나쁠건 없겠지. 천천히 이쪽으로 가까이 나와봐. 천천히.”
그의 말에 따라, 우리가 그의 앞에 모여서자, 그제서야 그도 우리를 겨누고 있던 총구를 천정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좋아. 빌어먹을 약탈자들로는 보이지 않는구만. 좋아. 저기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좀 나누는건 어때?”
그렇게 우리는 묘한 긴장감을 유지한채 방으로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