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57
57화
창혁 형님과 내가 화살을 구해 온지 보름쯤 지났지만, 특별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음 졸이며, 이것 저것 준비를 하고, 순찰 시간이나 경로 등도 변경해 가면서 대비를 한 것들이 머쓱 해질 지경이었다.
며칠간 혹시 모를 외부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생필품 보급도 중단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름 가까이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외부로 나가야 했다. 그것 때문에 다들 옥상에 모여 상의를 했다.
“내일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저하고 인수가 나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위험성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저하고 동철이가 제일 좋을 것 같지만, 나간 사이에 누가 들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동철이는 공장에 남아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좀비를 상대하는 것은 이제 다들 어느 정도 경험이 있지만, 지금 저희가 걱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닥쳤을 때인데… 사람을 상대로 총을 쏴본 경험이 없으신 분들만 공장에 있는 것은 위험할 것 같습니다.”
창혁 형님의 이야기에 뭐라고 다들 이야기를 하려다가, 사람을 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살짝 굳으면서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선이는 사람에게 활을 쏴본 적이 있긴 했지만, 표정을 봐선 지선이도 썩 내키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도 총으로 쏘는 것 말고도 다른 경험도 있기는 하지만, 자랑 삼아 이야기 할 것은 아니었기에 특별히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람을 쏜다는 것에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보자, 걱정이 조금 되기는 했다. 여태까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보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막상 사람을 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름정도 지났는데도, 별다른 일이 없으니까…… 며칠정도 더 지나도 별다른 일이 없으면, 예전하고 비슷하게 지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선은 내일 나가면서 도로에 긁힌 표시가 확 나던 자국들을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보름 정도 지나면 도로가 파인 것은 그대로 더라도, 파인 부분이 색 차이가 나던 것은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창혁 형님의 이야기에 살짝 굳은 듯 있다가, 다들 동의를 표하며 그렇게 하기로 했다.
형님이 이야기 할 것은 다 한 것 같았다. 나도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 저도 한마디 할께요. 형님 이야기 할 때 다들 표정들을 봤는데요. 아직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데 거부감을 많이 가지 신 것 같아서요. 사람들을 보자마자 막 죽여버리자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다만, 우리한테 해를 가하는 사람들은 좀비들과 같은 놈들이라고 생각을 해주세요. 뭐.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좀비를 상대로 여태까지 생존해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건 좀비들 보다 훨씬 더 위험해요. 저와 형님이 저번에 겪어 본 바로는 그건 확실해요. 지선이나, 영감님 같은 경우는 저번 공장에서 일도 있고 하니까, 잘 아실 꺼예요. 앞으로도 우리가 살아 남으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요.”
내 이야기가 끝이 났지만, 다들 아무말 없이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내 말에 동의를 하면서 독한 마음을 먹는 것인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분위기가 착 가라 앉아 버렸다. 특별히 이야기 할 것도 더 없고, 분위기도 썩 좋지 않게 흐르자 다들 형님의 이야기대로 하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좀비를 상대로는 더 없이 믿음직했던 이들이지만 왠지 생존자들 사이에서의 문제에서는 그렇지 읺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스러웠다.
지금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그런 내 걱정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시간은 갔고, 일단은 오늘 또 하루를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창혁 형님과 인수는 계획대로 아침 일찍 출발을 했는지, 내가 일어났을 때는 그들이 벌써 공장을 나선 후 였다. 둘이 돌아오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 다들 기다리고 있었지만, 왠일인지 오늘은 이전보다 좀 늦는 모양이었다.
가까운 곳부터 필요한 물품들을 챙겼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먼 곳까지 갈 수 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 하더라도 많이 늦는 것 같았다.
“오늘 많이 늦네요. 별일 없어야 할텐데.”
“그러게나 말이야. 부디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다들 옥상에 올라와 둘을 기다렸다. 내 걱정스러워 하는 말에 영감님이 맞장구를 쳤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공장 초입 먼곳에서 형님과 인수가 타고 나갔던 차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 오네요. 다행입니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차가 공장 앞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렸다. 차가 천천히 다가오자, 이상한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분명 창혁 형님과 인수, 둘이 함께 나갔는데, 지금은 운전석에 앉은 창혁 형님 밖에 보이질 않았다. 무언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젠장. 뭔가 잘못 됐어요. 제가 내려 갈께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재빨리 뛰어 내려갔다.
공장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더욱 명확하게 차 안을 볼 수 있었다. 인수는 차에 타고 있지 않았다. 나는 얼른 게이트를 열었다. 그러자, 차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게이트를 닫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고 있는 창혁 형님에게로 다가갔다.
“형님! 인수는요?”
창혁 형님은 내 물음에 물끄러미 나를 몇 초간 바라봤다. 잠시 바라본 창혁 형님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동철아…… 내가 지켜 줬어야 하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젠장.”
“좀비…… 인가요?”
“그래. 식량을 찾으러 들어간 가게에서… 한놈 밖에 없었는데… 그게 원형좀비였어… 젠장…”
역시 그 좀비 같지 않은 그놈들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하…… 겁이 좀 많긴 했어도, 착한 놈이었는데… 세상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까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그래도, 형님이라도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들어가시죠. 많이 피곤하시겠지만, 그래도 들어가셔서 다들 모인 자리에서 형님이 직접 얘기를 좀 해주세요. 그래도, 모두에게 형님이 직접 얘기해 주시는게…”
“그렇지. 그래야지. 내가 마지막을 봤으니까… 따지고 보면… 빌어먹게도 말이야… 인수가 당하는 사이에 도망 칠 수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리고…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주지도 못했어. 젠장… 내가… 내가… 너무 무서워서 말이야. 인수도 놈들처럼 그렇게… 거리를 방황하겠지.”
“아니예요. 형님. 인수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형님이라도 돌아 오셨잖아요.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민수 생각 하셔야죠. 힘내세요. 자 들어가세요.”
그렇게 형님을 위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러기 힘든 것이 지금 현실이니까. 솔직히 내가 그 입장이라도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행들 에게도 몇 번 이야기 했지만, 난 누구 대신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 내가 나가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다. 내가 직접 겪고,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겠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다.
형님을 먼저 옥상으로 올려 보내고, 방에 있던 지선이를 불러서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민수는 방에 아직 있었지만, 그냥 방에 두기로 했다. 어린 꼬맹이까지 이런 자리에 동참시키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나중에 형님이 따로 조용히 이야기를 해 주는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형님. 민수는 그냥 뒀어요.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 고맙다. 나도 민수가 올라 왔으면, 돌려 보내는게 어떻게 생각했는데. 먼저 신경을 써 줬구나.”
지선이에게는 올라오면서 인수가 당했다는 이야기는 했다. 영감님도 옥상에서 창혁 형님 혼자 돌아오는 것을 봤기에 짐작은 하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우선 창혁 형님이 직접 이야기를 전하고,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자리가 마련되자 창혁 형님은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우린 비교적 안전해 보이는 상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점 안을 둘러보고 좀비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음식을 챙기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느 정도 음식을 챙기고 있는데, 갑자기 상점 밖에서 좀비 두 놈이 근처를 방황하던 중이었는지 상점을 지나가다가 저희를 발견 했나 봅니다.
그때 저희는 물건 챙기느라 건물 밖은 신경을 못 썼습니다. 명백한 실수였죠. 한명은 망을 봐야 했는데… 음식을 많이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잠시 말을 멈춘 형님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후~ 아무튼 그놈들은 다행히 처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소음이 심했는지, 어딘가에 있던 원형좀비가 상점 안으로 달려 들어 왔습니다. 이놈이 인수에게 달려들었는데,….. 제가 어떻게 도와줄 틈도 없이 당해버렸습니다.
저는… 저는… 젠장… 인수를 도와주지 않고, 놈이 인수를 공격하는 동안 도망을 쳤습니다. 놈을 처리하고, 인수를 편히 쉴 수 있게라도 해주는 것이 옳았겠지만, 저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런 원형좀비란 것을 눈앞에서 보자… 놈에게 당할 것이 무서웠고, 혼자 남겨질 민수가 생각났습니다. 변명이라고 하셔도 할 말이 없긴 합니다만… 그땐 그랬던 것 같습니다.
”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모두들 침통한 표정이었다. 민수까지 여섯이던 일행이 이제 다섯이 되었다. 꼭 살아남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다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영감님이 그 침묵의 시간을 깼어버렸다.
“인수… 그 아이가 그렇게 당했다니… 그래도, 자네라도 살아서 돌아왔으니, 천만 다행이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영감님의 이야기 이후로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음식을 챙겨 오긴 했지만, 많지는 않다고 했다.
인수가 당하면서 인수가 가지고 있던 음식들은 챙겨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경쓰이던 자동차 휠 자국은 금방 파인 것 같은 색차이는 많이 덜해 졌지만, 신경 쓰고 보면, 충분히 알아볼 정도로 남아 있다고 했다. 아마 그것은 계속 그 정도의 자국은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예전처럼 차가 많이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공사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렇게 자리는 끝이 났고, 창혁 형님은 방으로 돌아갔다. 남은 셋은 그대로 옥상에 남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