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이른 아침 눈을 떴다. 눈꺼풀이 조금 무겁고, 몸도 조금 찌뿌둥 했지만, 기분이 전에 없이 상쾌했다.
한 밤중에 잠깐 경계를 선 것이 컨디션에 조금은 영향을 줬지만, 그 중간에 지선이가 옥상으로 올라와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옥상에서 서비스를 해준 것이 그 어떤 것 보다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옥상에서의 그 짜릿함에 자연스럽게 다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지선이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내 정신세계는 진즉에 너덜너덜한 걸레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또 어딘가로 목적지 없이 가야했다. 어딘가로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인 것 같았다.
“어? 차에 기름 다 되가네요? 좀 있으면 불이 들어오겠는데요?”
“응? 정말? 정신이 없어서 어제 신경을 못쓴건가? 어디봐.”
오늘은 내가 운전을 하기로 해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데 연료 게이지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일단은 차를 출발 시켰다.
“공구 챙겨 온 것들이 있으니까, 지나다가 트럭이나 승합차 보이면 기름을 좀 옮겨 싣죠. 기름 앵꼬 나기 전에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지금 딱히 목적지가 있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좀 멀리까지 가보는 건 어때요? 계속 이 근방에만 있으니까, 계속 제자리 걸음 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 안전한 곳을 금방 찾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어느 지역에 구애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거든. 특히나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말이야.”
다른 일행들도 일정 지역에서 안전한 곳을 찾는데 집착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창혁 형님은 조금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이 보이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동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위험 할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한자리에 계속 무작정 있을 수도 없고… 어디든 안전한 곳이 있다면야… 그런 곳을 찾는게 문제겠지.”
그렇게 이동을 하면서, 도로변에 차가 나오길 기다렸다. 몇몇 승용차가 지나가고, 애타게 찾던 트럭이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사고가 난 채로 버려져 있는 차였다. 승용차와 트럭이 사고가 나 있었는데, 승용차 안에는 사고가 났을 때 죽었던 것인지, 시신이 한구 있었고, 트럭은 운전석이 열린 채로 버려져 있었다.
나는 트럭 옆에 차를 세웠다.
“먼저, 창혁 형님이랑 제가 주변을 좀 살필께요.”
나와 창혁 형님은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고, 영감님은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겨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
주변을 살피면서 사고가 난 승용차 안도 살피기 위해서 다가갔다.
“크악!!!”
조용하던 주변에 갑작스런 좀비의 괴성에 깜짝 놀랐다. 놀라기는 창혁 형님도 마찬가지 인 듯 보였지만, 좀비가 보이지는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자, 승용차 뒷자석에 있었서 차에서는 확인이 안됐던 좀비 하나가 뒷자석에 앉은 채로 안전밸트에 묶여 있었다. 아무래도 원형 좀비가 뒷자석에서 난리를 치면서 사고가 났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던 모양이었다.
안전 밸트 덕에 산채로 물어 뜯기는 고통을 당하지는 않은 듯 보였다. 사고가 나서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즉사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죽은 것이 차라리 이런 세상을 경험하고 좀비에게 당하는 것 보다는 나을 수도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자석의 좀비는 아무래도 원형 좀비인 듯 했다. 그렇다면 한참을 이 상태로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태까지 봤던 원형 좀비 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조금 굼뜬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놈들은 사람을 뜯어 먹기는 하지만, 안 먹는 다고 해서 큰 문제는 없는 모양이었다.
형님과 나는 조용히 놈이 있는 좌석쪽으로 다가섰고, 놈은 우리에게 달려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전 밸트에 묶여 있는데다, 창문으로 막혀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은 듯 했다.
“안전 밸트를 풀 지능은 없네요. 역시…”
“그렇네… 다행인건가?”
그렇게 말을 주고받고서, 나는 가지고 있던 칼자루를 유리창에 가져다 댔다. 형님은 석궁을 조용히 들어올렸다. 나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칼자루로 유리창을 힘껏 때렸다.
팍!
유리창이 박살이 나면서 그 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창혁 형님은 석궁을 쐈다. 화살은 정확하게 놈의 머리에 박혔고, 놈은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다시 주변을 살폈지만, 더 이상 위험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제가 공구 챙겨 올께요.”
“이제 다들 기름 절도에 도가 텄다니까. 하하.”
이짓도 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뭐 요령이 생겨도 힘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연료탱크에 연결돼 있는 파이프를 잘라내고, 호스를 밀어 넣어서 기름을 옮겨 실었다. 큰 트럭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하고도 기름이 남아 있었고, 남은 기름을 기름통에도 옮겨 실었다.
차에 타서 꽉 차있는 연료 게이지를 보자, 조금은 마음이 푸근해졌다.
“자. 갑니다.”
다시 우리는 어딘가로 출발했다. 잠시 쉬기도 하고, 통조림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면서 그냥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지금이 어디쯤인지도 인지를 못하고 달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그냥 얕으막한 산과 밭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그리고, 도로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꽤 커보이는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요! 저기 왠지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주변에 다른 건물들도 안보이는 것 같고… 도로에서 보이는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가까이 가볼까요?”
“오빠! 당연히 가봐야지. 안갈려고 했어? 차에서 좀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들 비좁은 차안에서 하루 종을 달리다시피 했으니 피곤할 법도 했다. 그리고, 저런 건물을 보면 확인을 해봐서 나쁠 것은 없는 것 같았다. 그곳으로 연결이 되있는 듯한 작은 도로를 따라갔다. 그런데, 거리가 가까워지자 건물 옥상에 왠 하얀 깃발이 서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거 뭐지? 첨에는 그냥 뭐가 걸려 있는 건가 했는데… 누가 일부러 깃대를 세우고, 걸어 놓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생존자들이 살았던지, 아직도 살고 있는 곳이 아닐까 하네만… 의도는 알 수는 없네만… 순수하게 생존자를 불러 모으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고, 아니면 나쁜 의도로 끌어드리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음… 글쎄, 우리가 사람들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또 살아 남기 힘들지 않겠는가? 우리처럼 말이네. 일단은 좀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 보는 것은 어떨까 싶기는 하네. 어떤 사람들인지 좀 알아 본 다음에 결정하는게 어떨까 하네만…”
“좋아요. 그럼. 뭐, 이번에도 형님과 제가 다녀올께요. 영감님하고 지선이는 민수하고 같이 차에 계세요. 썬팅이 진하게 되있어서 밖에서 안이 전혀 안보이니까, 좀비 한둘 쯤 온다고 해도 못보고 지나칠 가능성이 클 거예요. 아니라도, 무기는 차에 있으니까 별 문제 없을 것 같구요.”
“우리는 걱정 말게나. 알아서 잘 할테니. 자네들이 위험할까 걱정이구만.”
“교수님. 저희가 출발하고서 만약에 총성이 한번 울리면,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저희도 미친 듯이 돌아올 테니까요. 그런데, 만약에 소총으로 마구 쏴댄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주십시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떤 놈들이 있을지 알 수 없잖습니까?”
나는 창혁 형님의 말에 깜짝 놀라 쳐다봤다.
“자동소총으로 마구 쏴대기 시작했다면, 저희들이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들일 겁니다. 그러니 민수라도 꼭 살려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난 형님이 저런 생각까지 하는지는 미처 몰랐다. 아무래도, 저위에 있는 인간들이 나쁜 인간들이 아니길 간절히 바래야 할 것 같았다.
“아! 형님도 참. 어디 죽으러 가세요? 잠깐 망만 보고 오는 거예요. 너무 거창하시네. 하하.”
“아니. 생각난 김에 말씀 드리는 거야. 사실 난 어떤 것보다 민수의 안전이 중요해. 그건 이해해줘. 지금이 아니라 다음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때도 그렇게 생각해 주셨으면 해서 말씀 드리는 거야. 이것도 지금 민수가 자고 있어서 말씀 드리는 거지만… 한번쯤은 시간 있을 때 꼭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알았네. 걱정말게. 다만, 자네나 민수군 뿐 아니라, 동철군도 우리에겐 중요하네. 그래서, 자네 부탁, 완전히 그렇게 하겠다고는 장담 못하겠네. 대신 최대한 민수군이 안전한 방향으로 하겠네. 이정도면 되겠는가?”
“예.”
그렇게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우리는 길을 나섰다. 그렇게 많이 멀지는 않은 위치였고, 주변에 풀숲이 꽤 있어서, 들키지 않고 접근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됐다.
다행히 건물 주변으로는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이동하는 쪽으로만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안전한 지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저기 펜스가 보이는 데요. 다 왔나 봅니다. 땅도 꽤 넓은 데요? 건물도 꽤 크고.”
“그렇지? 그런데, 저기 저 사람들 군인 아냐?”
건물의 펜스에 접근해서 몰래 숨어서 안을 살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많이 있었다. 꼬마도 보였고,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상당수 보이는 것 같았다.
“군인들인가? 그리고, 민간인들도 저렇게 꽤 있다면… 억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구요. 믿을 만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지? 그럴듯한 안전지대인 것 같은데?”
사람들의 행동이나 차림새를 보자 조금은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꼼짝마! 총 버려!”
건물 안을 보느라 신경을 못 썼던 것인지 뒤에서 누가 접근 하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다.
“어서! 총 버려!”
나와 창혁 형님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총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