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닌지 한참이 지났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이후로 나는 언제나 그 공장에서 도망친 놈들을 찾아 다녔다.
이렇게 떠돌아 다녀서 과연 찾을 수 있을지 조금씩 회의가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 뿐이었다. 내 자신은 놈들을 쫒고 있다고 위안을 하지만, 사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라곤 떠돌아 다니는 것이 전부 였기 때문이다.
그 사이 팔과 다리의 상처는 통증이 없다보니 잊고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안 좋은 냄새도 조금씩 나는 것 같았고, 육안으로 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 상태로 생존자들을 만나면 바로 의심부터 할 것이 분명했다. 한명씩 만나는 생존자 들은 내가 먼저 처리를 해버리면 문제가 없지만, 혹시나 무리로 다니는 생존자들을 만나면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몸이 좀비와 비슷하다면, 나 또한 좀비처럼 머리를 공격당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팔과 다리의 상처는 불로 지져버렸다. 그러자, 상태가 더 나빠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떠돌아 다니던 내가 지금 이 외딴 시골 마을에 머문 지 십여 일이 지났다. 꽤 많은 수의 군인과 민간인이 이 마을에 주기적으로 다녀가는 것이 근처에 생존자들의 무리가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오늘이 그 놈들이 또 오는 날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될까. 차로 움직이는 놈들이니 바로 차로 뒤쫓으면 놈들이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혼자 남은 생존자인 척 해서 구조되는 척을 해볼까…”
놈들이 생필품과 연료를 구하기 위해서 자주 들르는 곳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어떻게 놈들의 아지트를 찾아 낼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부앙!
차동차 소리가 들리는게 아마도 놈들이 온 듯 했다. 요즘 들어 생각하는게 조금씩 귀찮아 지긴 했지만, 어쩌다 이곳까지 혼자서 흘러 들어온 것처럼 해서 놈들에게 구조되는 방법이 제일 그럴 듯하게 생각되었다. 그렇게 들어가서 혹시 놈들이 있나 좀 살펴보고, 없으면 뭐… 한, 두놈 뜯어 먹고 나오면 재밌을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창문으로 다가가서 차에서 내리는 놈들을 살펴 봤다.
“슬슬 준비해서 내려가 볼까? 차 소리 듣고 나와 봤다고… 어!”
분명 그놈이었다. 공장 놈들 중에서 내가 살려 보내줬던 바로 그놈이었다. 다른 연놈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놈이 여기 있으면, 분명 다른 놈들도 이곳에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놈들을 찾았다. 나를 내 동생을 죽이고,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버린 놈들을 찾은 것이다.
“좋아. 이번에는 그냥 돌려 보내고, 다음에 저놈이 없을 때 구조되는 걸로 하고… 크크. 기다려라. 이 새끼들아. 아주 잘근잘근 씹어 먹어주마.”
그렇게 다짐하면서 그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그 이후 며칠간은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놈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놈들이 봤을 때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끔 준비도 해 나갔다. 나는 물이나 식료품이 필요가 없었지만, 완전히 빈 몸으로 나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을 놈들이 본다면 의심부터 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백팩을 하나 준비하고, 그 안에 여러 가지를 챙겨 넣었다. 그리고, 손도끼 외에도 쇠파이프 같은 것도 하나 준비를 했다.
부앙~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놈들이 다시 돌아왔다. 예전에 왔던 그곳은 아니지만, 자동차 소리로 봤을 때 이 근방 어딘가 인 것은 분명했다. 나는 준비해 놓은 것들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놈들과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근처에 있는 몇몇 가게를 둘러보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총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놈들을 봤지만, 예전 그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나가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괜히 무턱대고 나갔다가 몸 어딘가에 또 구멍이 나는 경험은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다.
‘오호… 꽤 빠릿빠릿 한 놈들인거 같네.’
놈들은 확실히 이 짓을 많이 해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말도 거의 하지 않고, 거의 수신호로만 의사 소통을 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언뜻보면 군복을 입은 놈과 민간인인 듯 사복을 입고 있는 놈들이 섞여 있었지만, 꽤 오랜시간 호흡을 맞춰온 것 같았다.
‘가만있자… 어떤 타이밍에 나가야 될까…’
우선은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 일대에 좀비도 안보이고, 그냥 지켜보다가는 놓칠 것 같았다.
‘최대한 일반적인 생존자처럼…’
적당한 위치를 골라서 팔을 머리 위로 흔들며, 그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들 중 일부가 가지고 있던 석궁과 총으로 나를 겨눴다.
난 적의가 없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쥐고 있던 쇠파이프를 바닥에 천천히 내려 놨다. 그리고, 허리춤에 있던 손도끼도 천천히 꺼내 들어서 마찬가지로 바닥에 놓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길 기다렸다.
역시 그들 쪽에서 두명이 나에게 무기를 겨눈 채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명은 내 쇠파이프와 손도끼를 챙겼고, 다른 한명은 내 뒤로 와서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가라는 듯 총구로 등을 쿡쿡 찔렀다. 그들의 뜻에 따라서 나는 그들이 경계하고 있던 미니버스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중사 계급장을 단 군인이 있었다. 그는 내게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그가 버스 몸체를 한번 퉁 치자 건물 안에서 경계를 하던 인원과 물건들을 챙기던 인원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곳에 있던 인원들이 재빨리 빠져나와서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역시 움직임으로 봐서는 이 일들에 많이 익숙하고 숙달된 느낌이었다.
그들이 모두 버스에 올라타자, 그들은 마지막으로 나까지 버스에 태우고는 바로 출발했다.
그제서야 그들 중 중사로 보이는 놈이 나에게 말을 했다. 물론 그들 중 한명은 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누구시죠? 그리고, 거기서 뭐하고 있었던 겁니까?”
역시 경계를 하는 모양이었다.
“흠흠. 박진우라고 합니다. 그 근처에 숨어 있다가 차소리를 듣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전에는 일행들이 있었는데 저 빼고 모두 당해버렸어요. 그래서 혼자 적당한 곳을 골라서 떠돌고 있었죠. 이정도 인원이 이정도 무장을 하고 있는 곳이라면 안전할 것 같아서, 염치 불구하고 저도 좀 낄 수 있을까 싶은데요.”
그렇게 적당히 둘러대고는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 중사나 다른 사라들 모두 크게 중요하게 생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음… 일단은 이런 일은 제가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복귀 후에 제 상급자와 이야기를 하시죠. 하지만, 뭐 어지간하면 민간인 분들을 내치지는 않으니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몸도 불편해 보이시는데 대단하시네요. 아! 정말 감탄하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들도 살아 남는 게 힘든 세상이잖습니까. 아! 그리고, 도끼와 쇠파이프는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나중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도 제가 신기하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런 험한 세상에 살아남은 몸이 조금 불편한 젊은 사내… 내가 생각해 봐도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꽤 괜찮은 것 같았다.
미니버스는 어딘가로 한동안 이동을 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집이었거나, 일터였을 그곳에서 연료를 빼내왔다. 그 중간에 좀비가 몇 나타나긴 했지만, 한두놈씩 나타나는 좀비는 이들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일은 마무리가 되었고, 또 다시 버스는 어딘가로 이동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 보다 나에게는 더 큰 문제가 생겨 버렸다.
사방이 막힌 미니버스 안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오래 있으려니, 속에서 또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간신히 참아내고 있기는 했지만,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기… 창문 좀 열어도 될까요?”
도저히 그냥은 참기 힘들 것 같아서 그 중사에게 말을 하고, 창문을 열었다.
“후~”
밖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아직 내가 많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젠장. 버스안이 이 정도면… 이놈들 아지트로 가서… 견딜 수 있을까? 실외에 있을 때는 어떻게 견디겠지만… 건물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 냄새로 꽉 들어 차 버리면… 그건 좀 걱정인데…“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드디어 버스가 목적지로 하는 듯한 꽤 큰 공장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옥상에서는 흰 깃발도 나부끼고 있었다.
‘거참. 사람들끼리 무슨 표신가? 왠 흰 깃발?’
따지고 보면 나도 참 대책 없이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그놈이 갑자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놈도 이 놈들처럼 밖으로 물건을 구하러 나오기도 하는 놈이니, 무슨 역할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몸이 이렇게 변한 뒤로는 좀비들도 신경 쓰지 않고, 먹을 것과 마실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지내다보니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는 것이 나도 모르게 몸에 젖어든 것 같았다.
나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그것으로는 모자란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것 저것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아… 어떻게든 되겠지. 일은 벌어졌고, 이제는 주어 담을 수도 없으니까. 닥치는 대로 어떻게든 해보자.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