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오전에 출발을 한 우리는 어둑어둑 해질 즈음이 다 되어가서야 목적지 인근에 다다를 수가 있었다. 중간에 식사도 해야 했고, 생각보다 둘러 오는 길이 시간이 걸렸다. 그 연구소에 도착 해서는, 그 내부도 살펴야 하고, 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오늘은 그곳 주변에서 하루 쉬었다가, 내일 그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자!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쉬죠.”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서 조금 돌아다니다가 인적이 드문, 숲속에 있는 전원주택을 하나 발견하고는 그곳 입구에 주차를 했다. 외진 곳에 있는 것은 좋은 조건이긴 했지만, 담이 너무 낮은 것이 조금 걸리긴 했다. 하지만, 어차피 불침번을 설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냥 이곳에서 하루 보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듯 했다.
집 안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위험 요소는 없었다. 집 안은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부터 사람이 살지는 않았던 것인지, 먼지가 뽀얗게 싸여있었다. 전원주택이 아니라 무슨 별장 같은 용도로 쓰던 집인 것 같았다.
“이렇게 깨끗한 집은 정말 오랜만에 봅니다.”
김 병장이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 보고는 그렇게 한마디 툭 내뱉었다. 내가 보기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우리가 보아 온 집안 풍경이라면, 여기저기 피가 튀어있고, 시체가 나뒹구는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먼지가 싸여있거나, 물건이 널려 있는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김 병장, 이 하사. 우리 말 편하게 하자. 아무리 군인이었다지만, 이제 군대라는게 계속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꼭 그렇게 딱딱하게 다나까로 나갈 필요는 없지 않아?”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하다 못해 이 곳에 우리끼리 있는 동안 만이라도 좀 편하게 얘기하자. 너무 딱딱하잖아. 이 하사가 먼저 대답해. 김 병장이 눈치 보잖아. 어?”
“뭐…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대신 형도 저희 부를 때 김 병장, 이 하사 이렇게 말고 이름을 불러 주세요. 제 이름이 하사인 줄 알겠네요.”
이 하사도 나쁘지 않았는지 금세 농담을 걸어 왔다.
“좋아. 그럼. 영감님도 이제 기웅이, 원진이 이렇게 부르시는 겁니다.”
“허허. 좋지.”
“지선이도. 알았지?”
“알았네요. 호호”
다들 하루 종일 차만 타서, 조금은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오자 말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다들 긴장을 풀고, 자신이 잘 자리를 잡았다. 그 후, 조금 넓은 방에 다시 모인 우리는 잠시 긴장을 풀면서, 식사 준비를 했다.
식사를 하고는 차례대로 경계를 서기로 했다. 그리고, 경계를 설 때는 총과 석궁을 함께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원진이나 기웅이, 모두 석궁은 처음이긴 했지만, 다들 금세 적응하는 듯 했다.
경계를 서는 순서는 영감님은 아무래도 체력적으로도 감안을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새벽잠도 많이 없으신거 같아서, 새벽으로 잡아드렸다. 또, 지선이는 아무래도 여자라는 메리트 때문인지 다들 초번을 양보했다. 나머지, 우리 셋은 그냥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부터 자신이 서고 싶은 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지선이 다음은 원진이, 그 다음이 나, 마지막이 기웅이었다.
물론 기웅이 다음은 영감님이었고 말이다.
먼저 지선이가 경계를 서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고, 남은 인원들은 집안 곳곳에 자신이 자리잡은 곳에서 쉬기 시작했다.
“기웅아. 우리가 가는 연구소 있잖아. 거기 대략 몇 명 정도나 지냈는지 알고 있어? 박 소위는 정확한 숫자까지는 모르고 인원이 적다는 정도 밖에 모르던데. 너도 마찬가진가?”
“그렇죠. 인원이 몇 명인지 까지는 당시 저희한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별로 신경을 안 썼다는 것이 맞겠죠.”
내 근처에 자리를 잡고 편하게 누워있던 기웅는 갑작스런 내 질문에 대답을 하고서는, 다시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내일 오전이면 그 연구소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좀비들에게 모조리 당하면서 좀비 소굴이 되어 있을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 무전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알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비 소굴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곳에 상주하던 인원이 원래 적었다고 하니, 잘만 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기가 좀비에게 당했을 때를 대비해서 계획을 세우시려구요?”
“아니, 꼭 계획까지 세우는 건 아니고. 거기 구조도 모르고, 아는 것이 없으니까, 그런건 무리지. 그냥 알아 두면 좋을까 해서. 하하.”
내 말을 듣고 있던 기웅이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내게 물었다.
“아! 그런데 형. 거기가 연구소고, 회사였으면… 그 회사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거기 있던 애들 사람 수도 적었다는데 회사 인원들이 전부 좀비였다면 걔네들 끼리 그 연구소 안에 있던 좀비들을 처리한 걸까요?”
“야야. 그런건 나한테 묻는게 아니라, 니가 나한테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냐? 난 거기에 대해서 들은게 바로 며칠 전이야.”
슬쩍 나무라듯 이야기를 했지만, 말투는 장난을 치듯이 웃음기를 머금은 채였다.
“아! 그러네요. 하하. 처음에 무전으로 연락하고 할 때 좀 신경을 써놨으면 여러 가지로 편했을 텐데. 조금 아쉽네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외진 산속이라 더 빨리 어두워 지려는 지도 모르겠다.
“아! 많이 늦은 것 같다. 일찍 자자. 내일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체력보충 해야지.”
그렇게 기웅이와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원진이와 영감님은 진작에 잠이 든 상태였다.
자려고 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잠이 쉽게 오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산과 가까운 곳에서 자게 돼서 그런지 벌레소리며 바람소리, 그리고 쾌쾌한 오래된 먼지 냄새까지, 여러 가지가 잠이 드는 것을 방해했다.
무엇보다 큰 이유는 내일에 대한 불안감 때문 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선이에게나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은 그냥 있기로 했다. 처음 온 낯선 곳에서 괜히 유별난 짓하다가 혹시나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돈 많은 사람이 이런 곳에다 별장까지 짓고 살았나본데… 그 사람은 지금 좀비가 됐으려나? 아님 살아 남았으려나… 그 사람도 나처럼 그일 벌어질 때 이곳에 휴가 왔으면 살았을 텐데 말이야. 거참. 운이란게…’
별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뒤척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몸을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경계 서야 할 시간이 됐나보다.
“아함.”
무거운 눈을 뜨면서, 몸을 일으키자 하품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 나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 했지만, 여전히 찌뿌둥 했다.
“형. 원진이예요. 시간 됐어요.”
“어. 그래. 수고했어. 들어가서 자.”
“예. 형.”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리듯 이야기를 하고서, 원진이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잠들 준비를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를 서기 위해서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발을 신고 총과 석궁을 챙겨 들고는 현관을 나서려 문을 열자,
끼~익
듣기 싫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대신 잠은 확실히 달아났다. 밖에 나와서 본 풍경은 생각보다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별빛과 달빛 때문인지 아니면 어두운 곳에 적응을 한 탓인지, 어슴푸레하게 사물을 식별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옥상으로 올라와 총은 난간에 걸쳐 세워놓고, 석궁은 끌어안듯 안아 들고서, 난간에 기대어 섰다. 예전 산속 공장에서 살 때는 정말 이런 경계 서는 것이 당연한 일상생활 이었다. 그런데, 요 얼마간 사람들이 많으면서 뜸해지다보니 몸도 더 찌뿌둥한 것 같고, 더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음~ 하~”
오랜만에 차가운 산에서의 밤공기를 깊게 들이 마셨다가 내뱉었다. 차가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면서 왠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잠도 깨고, 기분도 좀 나이지고. 출발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옥상에서 집 주변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날이 어두운데다가 조명을 사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보니, 멀리까지 살필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집 주변도 겨우 분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벌레소리를 음악소리 삼아, 좋은 기분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는데 어느 순간엔가 그 벌레소리가 뚝 그쳐버렸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으르렁 거리는 듯 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천천히 몸을 움직여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담에서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 어른어른 거렸다. 일행들을 깨울까 싶다가, 아까 나올 때 문에서 나던 그 거슬리는 소리가 생각이 났다.
만약 놈들이 여럿이라면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는 상황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을 일이었다.
‘그래. 좀 더 살펴보고 한 놈이면 석궁으로 처리하고, 여럿이면 조용히 지나가길 기도하자. 그게 안 되겠다 싶으면 총으로 갈겨버리면 다들 일어나겠지.“
어른어른 거리는 물체가 좀 더 담장에 다가오자, 이제 어렴풋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놈은 분명 좀비였다.
어기적 거리며 걷는 모양세가 영락없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주변에 다른 놈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어두워서 조준을 정확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석궁을 조준하고, 한발을 쐈다.
쉬익!
왠지 자신이 없더니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나는 일부러 놈과 좀 떨어진 곳의 담장으로 화살을 하나 날렸다. 날아간 화살은 팍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 소리를 들은 놈이 소리가 난 곳으로 어기적 거리듯 걸어갔다.
난 그 사이 재빨리 화살을 하나 더 장전 하고 계단을 내려가 놈이 바라보고 있는 쪽과 반대 방향에서 좀 더 다가갔다. 그러자 확실히 놈의 모습이 보였다.
“큭! 키악!”
그러다가 갑자기 놈이 무언가에 반응하듯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홱 돌려 내 쪽을 바라봤다. 너무 놀라 심장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도 놈들과 여태까지 상대해 오면서 놀라더라도 일단은 몸이 반응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한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석궁을 쐈고, 그것은 정확히 놈의 머리에 박혔다. 조준을 정확하게 하고 쏠 상황은 아니었지만, 거리가 워낙 가깝다 보니,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었다.
팍!
그리고, 놈은 그대로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그 와중에도 내 눈은 주위를 다시 살폈고, 다행히 주변에 다른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방금 쓰러진 좀비에게서 왠지 찝찝한 느낌이 나서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쓰러져 있는 놈을 바라봤다.
“젠장.”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쓰러져 있는 놈은 분명 군복을 입고 있었다.
어딘가 먼 곳에서 군인 좀비에게 당해서 이곳까지 왔을 가능성 보다는, 이 근처 연구실에서 지내던 군인이 좀비가 되어 이곳에 왔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연구소 안에 좀비들이 득실거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꼬이네. 꼬여.”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일행들을 깨우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냥 두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당장 보이는 놈은 처리는 했고, 그래도, 혹시 저기 보이는 놈이 전부가 아닐 수는 있기에 최대한 집중을 해서 살펴보다가 조그마한 낌새라도 있으면, 깨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