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us Tekbon RAW novel - Chapter 95
95화
또, 하루가 지나고, 아침 햇살이 숙소 안을 비췄다. 어제 밤까지 내리던 비는 밤 사이 그친 모양이었다. 비가 내린 이후의 하늘은 역시나 맑고, 개운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신변 정리를 하고서, 식당으로 갔다. 지선이도 그렇고, 영감님 또한 밝은 표정으로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일찍 잠을 잔 때문인지 아침 일찍부터 활기가 넘치는 듯 보였다. 물론 나나 기웅이, 원진이는 그런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둘 모두 아직 골아 떨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잘 주수셨어요?”
“어! 오빠 잘잤어?”
“아. 동철군. 어서오게.”
말투도 확실히 생기가 넘치는 기분이었다. 영감님은 이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니까 그렇다 치지만, 지선이의 이런 업된 기분은 잠을 푹 잔 것 때문이라고 하기는 조금 과한 느낌도 들었다.
“지선이, 오늘 기분 좋은가보네?”
“어? 헤~ 나 바뀐 것 모르겠어?”
“응? 어! 너! 옷이 바뀌었네? 예쁜데?”
사실 이렇게 세상이 변한 이후, 먹고 사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리다보니, 대부분 생존자들은 겉모습에는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았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이런 기본적인 행위들 조차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렇다보니,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우선순위는 당연히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우리가 나선 공장의 경우는 조금 예외에 속했다. 작기는 했지만, 발전기가 있었고, 발전기를 가동시켜 지하수를 물탱크에 저장해 놓고,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양이 아주 풍족하지는 않았다. 발전기를 사용할 때 드는 연료도 생각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것을 이용해 씻고, 세탁하고 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해결 할 수 있었다.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불평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런 세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맘속 한켠으로 밀어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의 외모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 지선이의 경우에는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다. 지선이가 잤던 방에 사이즈가 맞는 맘에 드는 여자 옷가지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침에 숙소들을 한바퀴 돌며 쓸어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음… 나도 옷을 좀 챙겨야겠는데?”
“걱정 하지마. 내꺼 챙기면서 남자들 옷도 챙겨 놨어. 다른 분들도 계셔서 크기 적당하다 싶은 것들은 죄다 모아 놨으니까, 나중에 보고 입을 만한 걸로 골라.”
언제 생필품 가지러 나갔을 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옷가게에 한번 들려야 할 것 같다. 조금 위험 할 수도 있겠지만, 기숙사에서 누군가 입던 옷 챙겨 입는데도 저렇게 좋아하니…
“잘 주무셨어요. 저희가 좀 늦었네요.”
기웅이와 원진이도 이제 일어났는지 둘 다 몽롱한 눈동자에 눈을 부비면서 식당으로 들어왔다.
마침 준비를 마친 우리는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하면서 자연히 대화의 주제는 지선이가 챙겨 두었다는 옷가지에 대한 것과 오늘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것이었다.
나나 기웅이, 원진이는 옷가지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비릿한 피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있는 옷들을 좋아서 입지는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닌 탓이었다. 그리고, 입을 옷이 있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우선 옷을 챙길 사람은 챙기기로 했다. 그리고, 먼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모든 채비를 해 놓고, 잠겨 있는 여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다른 사항들은 특별히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 할 것도 많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들 한자리에 모여 새 옷은 아니지만, 피와 땀에 아직은 절어 있지 않은 옷들을 각자 챙겼다. 남이 입었던 옷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무리 빨아도 비릿한 피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옷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식사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여 옷가지를 챙겼다. 다들 사이즈에 맞는 옷 중에서 활동하기 편한 옷들을 골랐다. 그리고 나서, 각자 짐들을 챙겨서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차에 실었다.
준비를 모두 마친 우리는 1층의 그 봉쇄되어 있는 문 앞에 모였다. 빠루, 오함마, 파이프 랜치 등등 차에 실어 놓았던 온갖 공구들이 모여 있었다.
쇠사슬과 자물쇠는 절단기로 손쉽게 제거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반대편에서 잠겨 있는 잠금장치였다.
문손잡이 쪽 틈으로 빠루를 넣어서 젖히고, 틈을 벌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아우… 힘들어 죽겠네요. 조금만 더 어떻게 하면 열릴 것도 같은데…”
쇠로 만들어진 문이 꽤 찌그러지면서 틈사이가 보이고 있긴 했지만, 아직 문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더 힘을 쓰고 나서, 잠금 장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 했던 쪽을 완전히 찌그러뜨리면서 잠금 장치가 드러나며, 그 사이로 쇠톱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되겠다. 되겠어.”
지선이도 뒤쪽에서 남자들이 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이제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슥! 슥! 슥! 툭!
드디어! 힘든 작업이 끝이 났다. 굳게 잠겨 있던 잠금장치를 아예 잘라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잠금 장치를 잘라내 버리자, 일행들은 말이 없어졌다. 다들 긴장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긴장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을 다들 아는 탓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쇠톱을 바닥에 내려 놓고, 놓아 두었던 무기를 챙겨 들었다. 그리고, 일행들을 쭉 둘러봤다. 모두들 벌써 무기를 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문 열게요.”
내 말에 다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
끼~익!
문이 뒤틀렸는지, 오래 방치되어 있어서 인지, 듣기 싫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긴장감은 한층 더 심해 졌고, 심장은 너무나 급격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열린 문 반대편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하지만, 1층에서 들어가는 빛이 비춰지는 작은 부분을 제외하면 너무나 어두웠다.
다행히 아래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나 잠금장치를 부수며 났던 소음이나, 문을 열면서 났던 쇳소리 때문에 좀비가 있다면 이쪽으로 이끌려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긴장을 하며 대기를 했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가장 선두에서 기웅이가 도끼를 들고 선두에 섰다. 그 뒤를 나와 지선이가 석궁을 들고 뒤따랐으며, 그 뒤를 영감님이 석궁들 들고 뒤따랐다.
원진이는 제일 후미에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정글칼을 들고서 뒤를 살피면서 따라왔다. 그리고, 일행들은 손에 들고 있는 무기 말고도, 모두 소총을 매고 있었다. 물론 손전등도 각자 하나씩 들고 있었다.
다들 완전한 어둠속에서 손전등에 의지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여태까지 이렇게 어두운 곳을 수색해 보기는 처음이라 긴장감이 극에 달해 있었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어떻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천천히 계단을 다 내려오자 눈앞에는 통유리로 된 문이 앞을 막고 있었다. 문제는 그냥 문이 아니라 무슨 카드를 대면 열리는 그런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잠시 그 잠금장치 너머의 모습을 살폈다. 그곳에는 특별히 피가 튀어 있다 던지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는 좀비가 없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었고, 그런 생각 때문에 긴장을 풀 수도 없었고, 풀고 싶다고 풀어지는 긴장감도 또한 아니었다. 그만큼 완벽한 어둠이 주는 공포는 대단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죠?”
기웅이가 뒤를 돌아보고는 물어왔다.
“방법이 없잖아. 깨버리자. 이 문 열자고, 발전기 돌리고, 출입증 찾고, 그러다 혹시나 잘못되면 보안 경보 같은 것이 울릴지도 모르고… 그냥 깨는게 좋겠어.”
내 대답을 듣고서, 기웅이는 다시 일행들을 둘러봤다. 다들 별 말이 없자, 한 발짝 물러서서는 도끼로 툭 쳤다.
와자창!
생각보다 큰 소리에 일행들 모두 바짝 긴장을 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분명 안에 좀비가 있다면 이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조용한 하네. 아무 것도 없는 거 아닐까?”
지선이가 조용히 말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상이고, 희망 사항이었다. 하지만, 잠시 기다려 봐도, 나타나는 놈은 없었다.
“나도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그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선 복도로 쭉 연결되 있는 것 같으니까, 윗층 수색했 듯이 문이 닫혀 있는 곳은 그냥 지나칠게요.”
기웅이의 의견에 일행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천천히 복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복도 오른쪽으로 문이 나타났다. 하지만, 닫혀 있었기에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복도 끝까지 확인을 했다. 모든 문은 닫혀 있었고, 특별히 긴장을 해야 하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후~ 다행이네요. 일단 여기까지는 안전하다는 말인데… 어둡고, 상황이 이래서 그런지… 좀 무섭긴 하네요.”
많이 긴장을 했었는지 지선이가 복도를 끝까지 확인하고 나자, 바로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 대꾸를 하지도 않았고, 지선이도 누가 대답을 해주기를 바라고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